귀농한 깡패가 너무 유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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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천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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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11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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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9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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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화 공양(供養)

DUMMY

잠을 자느라 반쯤은 죽어있었던 시간이 끝이 났다. 참담하고 지옥 같은 감방이라도 새 날은 왔다.


날이 환하게 밝았다. 주변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란함이 일었다. 이어서 기상 나팔 소리도 구슬프게 들려왔다.


혁대도 없는 옷가지를 챙겨 입고 담요를 개고 머리카락을 매만지면 이른 아침 복도 끝에서 “배식 준비!” 라는 함성이 들려왔다. 감방 재소자들은 화장실에 가는 등 하던 일을 멈추고 부리나케 식사 준비를 해야만 했다. 식충이 밥벌레처럼 식사 시간만 꼬박꼬박 기다리는 재소자도 있었다.


그 뿐인가? 하루 해가 얼마나 무료한지 만기 출소 날을 끼니 수로 계산, 꼬박꼬박 손가락을 꼽는 정신이상자도 있었다. 서너 평 감방에서 7~8명이 생활해야 되는 협소함 때문에 큰 발걸음조차 할 수가 없었다. 환경 만으로는 식사 뒤 소화조차 안 될 것 같지만 그렇지도 않았다.


칼로리까지 계산된 식단은 감방 생활이 쌓일수록 맛이 괜찮았다. 밥덩이를 가지고 더 먹겠다고 우격다짐 할 때는 ‘징역 체질’ 이라고 서로를 비난하기도 했다. 인간은 환경의 동물임이 틀림없었다.


감방장을 포함 모두가 자신이 사용할 숟가락을 꺼내서 어깨 밑 옷 자락에 닦느라 비벼 댔다. 숟가락이 맨몸에 걸친 옷만큼 더러워졌다.


육중한 철문 하단에 만들어진 네모난 배식구를 열었다. 배식구는 겨우 밥그릇 하나가 들어 올만한 크기 작은 구멍이었다.


사람들은 징역을 가면 콩밥을 먹는다고 했다. 그러나 서울을 가 보지도 않은 사람이 서울을 봤다고 우기는 것처럼 이것은 틀린 말이었다. 3년 교도소 생활 중 단 하루라도 아니, 한 끼라도 콩밥을 먹어 본 일은 없었다. 비싼 콩으로 콩밥을 할리도 없었다.


보리쌀과 쌀이 반반으로 섞인, 들통에 찐 밥을 먹었다. 영치금이 많은 범털은 ‘관식’대신 ‘사식’을 먹었다. 사식은 반찬이 두 종류쯤 많고 들통에 찐 밥이 아닌 훨씬 부드러운 쌀밥을 뚜껑 있는 밥그릇에 담아다 주었다.


배식 순서 역시 사식이 먼저 나오고 다음으로 관식이 나왔다. 나쁜 죄를 짓고 벌을 받는 교도소 감방이지만 이곳 역시 돈 가진 ‘범털’과 돈 없는 ‘개털’은 차별을 당해야만 했다. 인간이 사는 곳이라면 차별은 어디나 있고, 돈은 어디서나 최고였다.


***


평소와 다른 새벽 시간 기상 탓일까? 아니라면 한증막에서 나온 사람처럼 땀이 나도록 죽어라 부처님께 큰절을 올려서 일까? 절에서 처음 먹어보는 공양(供養)은 꿀맛이었다.


절간 식사가 이렇게 맛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알았다. 손님이나 다름없는 정우는 체면 불구 밥도 반찬도 추가로 가져다가 먹었다. 먼저 시작한 스님들은 자리를 떴다. 정우는 늦도록 맛있고 배부르게 먹었다. 식사가 끝나자 수업 중 쉬는 시간처럼 여유가 생겼다.


새벽 시간, 자신이 부처님께 올렸던 큰절이 몇 번이나 될까? 갑자기 횟수가 궁금해졌다. 자리를 일어서는데 ‘용순’이가 다가와 팔을 잡아끌며 말을 걸었다.


“아저씨, 이렇게 밥그릇하고 식판 두고 가면 어떡해요? 나, 따라해 봐요. 밥그릇은 숭늉을 부어 깨끗하게 가신 후 물 한 방울까지 다 마셔야 되고. 반찬도 처음부터 남기지 않고 먹을 수 있는 양 만큼만 가져 와야 해요.”


졸지에 초등학교 5학년 ‘용순’이가 정우 지도 교사처럼 행동했다. 그러나 옳은 지적인지라 딱히 대꾸할 말이 없었다. 5학년 ‘용순’이한테 잔소리를 듣는다는 것은 유쾌한 일은 아니었다. 정우는 나이만 어른인 셈이었다. 그러나 한 가족 같은 친밀감이 들었다.


“용순아! 너, 몇 살이냐?”


“열네살이요. 열 살 때 학교 입학했으니까.”


열네 살, 정상적이라면 중학생 나이였다.


“엄마 아빠는 어디 계시는데?”


정우는 묘하게도 ‘용순’이와 동질감까지 느꼈다. 창피한지 대답을 못하고 얼굴만 빨갛게 상기되었다.


이 모습을 늦은 시간 공양하러 오시던 사형스님이 물끄러미 보았다.


“아침 공양은 했느냐?”


어제는 정우에게 꼬박꼬박 존댓말을 했는데 하루 만에 졸개를 대하듯 반말을 하셨다. 그러나 주지스님인지라 싫은 기색을 할 수는 없었다. 절간에서 숙식(宿食)을 하고 있는 신세라 차라리 잘 됐다고도 생각했다. 얼떨결에 ‘네’하고 대답을 했다.


“그러면 쓸데없는 생각은 말고 네가 먹은 밥그릇이나 닦아라.”


아랫사람을 대하듯 완전히 종 부리는 말투를 했다.


“주지스님 화나면 무서워요. 빨리 대웅전에 가서 ‘백팔배’해요.”


‘용순’이가 가까이로 와서 속삭이듯 작은 귓속말을 했다.


스물여덟 나이, 나름 어른인데 하루 만에 아랫사람을 대하듯 하대를 하는 사형스님 말투가 이해되지 않았다. 그러나 사형스님 마음을 알 수는 없었다. 정우는 ‘용순’이 말처럼 대웅전에 가서 큰절을 계속 하기로 했다.


큰절은 맨 땅에 삽질을 하듯 모든 신체를 써야 하는 중노동(重勞動)이었다. 수 없이 앉았다 섰다를 반복해야만 했다.


새벽 시간부터 몇 시간째 허리를 구부렸다 폈다 하면서 큰절을 한 탓일까? 종아리와 허벅지가 알통이 박힌 것처럼 당겼다. 다리까지 절뚝거렸다. ‘천배’나 ‘만 배’는 아무나 할 수 있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젠, 그만 할까도 생각해 봤으나 체육관 달린 기와집에서 체력 단련을 한다는 이유로 한나절씩 운동을 하고 나면 몸이 천근만근이었던 게 생각났다. 이런 고통쯤은 얘깃거리도 아니었다.


이열치열(以熱治熱)!


맷집을 키우는 일은 권투 선수가 스파링 하듯 열중 쉬어 자세로 형님들에게 수시로 맞는 일이었다. 주먹으로 가슴을 세게 맞았을 때는 호흡이 멎는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럴 때는 한동안 숨을 참았다가 휴우! 하고 호흡을 크고 길게 해야만 했다.


단 한 가지라도 도움이 되거나 배울 것이 없다고 생각했던 깡패 생활이 고통을 참아내는 일에는 작은 도움이 되기도 했다.


술독은 술로 풀듯 쉬지 않고 계속 절을 해야만 종아리나 허벅지에 벤 알통이 풀릴 것이라고 생각했다.


***


다시 점심시간이 되었다. 꼬박 반나절 동안 아무것도 안하고 절만 한 셈이었다.

언제 왔는지 보국스님이 정우 옆에서 나란히 큰절을 올리고 있었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몸이 받는 고통이 꽤나 심할텐데 괜찮겠어요?”


“네. 죽어라 오기로 합니다만, 종아리와 허벅지가 무척 당기긴 합니다.”


“뭐라도 오기는 절대로 안 됩니다. 물이 낮은 곳으로 흐르는 것처럼 세상은 순리대로 살아야 합니다.”


“근데 스님! 사형 스님께서 어제는 저한테 꼬박꼬박 존대를 하셨는데 오늘은 갑자기 반말을 해서요?”


“하하하. 뭐라고 하시면서 반말을 했다는 겁니까?”


“제가 ‘용순’이한테 부모님은 어디계시냐고 물어 보는데, 아침 공양은 했느냐고 딴 말씀을 하시며 '쓸데없는 생각 말고 밥그릇이나 씻어라’ 고 선생님이 학생 다그치듯 반말을 하셨어요.”


“좋은 일입니다. 단 하루 만에 마음을 주시지 않는데, ‘정우’씨 도량(度量)을 단 하루 만에 알아 본 듯합니다.”


“잘못을 저지르고 감방에서 벌 받고 나온 죄인인데, 도량이라니요? 천부당 합니다.”


“아니요. ‘정우’씨는 척박했던 초년 운만 있는 것이 아니라 날렵한 콧날, 나팔꽃처럼 생긴 큰 귀, 더구나 양쪽 귀가 눈 아래 자리 잡은 것이 큰 복을 누릴 상이라니까요.”


“귀가 크고 눈 아래 있으면 복이 많은 거에요?”


“예. 소승이 수십 년 탁발을 통하여 확인한 것도 그렇고, 책에서 배운 것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하하, 복이 많다니 기분은 좋습니다. 오늘은 탁발 안 나가십니까?”


“요즘은 게으름을 피느라 일주일이면 하루씩만 나갑니다. 옛날에 비하면 사는 것이 열 곱절은 잘 살게 됐는데, 인심은 오히려 옛날만 못하거든요.”


“맞아요. 저도 봤어요. 고만고만한 가게 문 앞에서 탁발스님이 장사 잘되라고 염불하며 목탁을 두드려도 ‘우린 교회 나가요.’ 하면서 찬바람소리 나잖아요?”


“그러게요. 시골은 태반이 빈집이고 도시로 가면 현관문도 안 열어주니 하루 종일 다리만 아플 때도 많답니다.”


“그러시겠어요. 그런데 스님은 탁발(托鉢)을 흡족하게 생각지 않으면서 왜 그렇게 다니시는 거예요?”


“땡 중으로 살라는 전생 업보지요. 부처님 말씀대로 살아야만 하는 업보! 자, 자랑거리도 아닌 업보 타령은 그만 하고 점심 공양이나 하러 가십시다.”


***


점심 공양은 계란 지단을 부쳐 썰어 올린 국수였다. 파란색 애호박도 하얀 국수에 구색을 맞추었다. 절간은 일체 육류를 먹어서는 안 되는 불문율 같은 것이 있었다. 그러나 국물을 내는 멸치는 고기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듯 했다.


멸치 우려낸 국물 냄새가 진하게 났다. 그러나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었다. 주방에서 음식을 하시는 아담한 스님과 잘 사귀어 둬야만 나중 누룽지를 얻어먹을 수 있다고 귀 뜸했다.


주방 스님을 가까이서 보니 어제 택시에서 내렸을 때 가장 먼저 ‘처사님’이라고 말을 걸었던 스님이셨다. 어쩐지 아귀가 딱 맞지 않는 것처럼 엉성했고 구운 소세지를 가지고 왔었는데, 식당을 맡고 있었다.


짐작컨대 정우처럼 사연이 있는 인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의식중에 앉다 보니 젊은 스님과 마주 보고 앉게 되었다.


“나무관세음보살!”


이 스님은 예쁜 두상이나 애기만한 목소리도 그렇고 틀림없는 비구니였다. 아직은 자신 나이처럼 서른 살도 안돼 보이는 보송보송한 여승이었다.


어찌나 젊은지 귓가, 눈가 주변 솜털까지 뽀송했다. 이곳이 절간만 아니라면 상대방 처지나 마음 같은 것은 안중에도 없이 왜 비구니가 됐느냐고 경거망동 했을 것이다.


그러나 정우가 감방을 가야만 했던 절박한 사정이 있었던 것처럼 마주 앉은 비구니 역시 사정이 있었을 것이라고 짐작이 되었다.

예의를 차려가며 기다란 국수 면발을 후루룩하고 먹는 중에도 슬쩍슬쩍 비구니 얼굴을 훔쳐보았다. 점 하나 없이 깨끗한 예쁜 얼굴이었다.


강가 조약돌처럼 빛이 났다. 육식을 피하고 채식만 해서일까? 절간 스님들 피부 톤은 얼굴이 살아있는 선홍빛이었다. 표정 만으로는 단 한 가지 고민도 짐작할 수가 없었다. 아마도 여유 있고 좋은 마음가짐이 한 몫 한듯했다.


이런 예쁜 비구니도 탁발을 나갈까? 나간다면 새싹이 피어나는 계절 친구들과 봄 소풍 가듯 따라가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감방생활 지금껏 잠자고 있었던 연애 감정도 호기심이 일었다. 정우는 이러면 안 된다고 애써 마음을 눌렀다.


***


운방사 생활 5일째,


정우는 병이 나서 새벽부터 몸 져 눕고 말았다.

무조건 부처님께 큰절을 올려야겠다는 생각이 인간이 견뎌낼 수 있는 고통의 한계를 넘긴 것 같았다. 몇 날을 몸이 부서져라 큰절을 하며 '이정우'란 이름자를 적었다. 지금껏 단 한 가지 일을 이토록 혼신의 힘을 다해서 해본 일은 없었다. 바보 같은 짓이었다.


온몸이 움직일 수 없을 만큼 고통이 따르고 열이 나며 땀이 비 오듯 했다. 신기하게도 오장육부가 살아서 숨 쉬는 우리 몸은 자신의 위기에 리트머스 시험지처럼 여러 가지 증상으로 반응했다.

사형 스님이 오셔서 이마와 팔목을 만지며 진맥했다.


“허허, 이 녀석! 삼년씩이나 징역을 버텨냈으니 강한 놈 일거라고 생각했는데 허약하구먼.”


혼잣말을 하시며 청심환 같은 동그란 환약을 주셨다.


정우는 지금껏 단 한차례 몸이 아파서 누워본 적이 없었다. 어린 시절 역시 부모님이 지켜주지도 않았다. 이런 일은 생전 처음 겪는 일이었다.


몸이 병이 나자 마음도 약해지며 따라서 아파왔다. 불쌍한 자신이 두 배쯤 가엾다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자신이 이곳을 왜 왔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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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30화 칠순잔치 +1 24.09.09 347 10 12쪽
29 29화 정우와 사형스님은 부자(父子)? 24.09.08 341 13 11쪽
28 28화 단감, 매실나무 24.09.07 372 12 12쪽
27 27화 잡념(雜念) 24.09.06 425 11 12쪽
26 26화 인과응보(因果應報) 24.09.05 432 10 12쪽
25 25화 용순이 실종 +1 24.09.04 410 13 12쪽
24 24화 박수무당은 아니지? +2 24.09.03 410 11 11쪽
23 23화 동가 숙(宿), 서가 식(食) +1 24.09.02 466 17 12쪽
22 22화 운방사 백중 +1 24.09.01 527 15 12쪽
21 21화 지리산 백사 +2 24.08.31 545 19 12쪽
20 20화 지리산 연주암 +1 24.08.30 589 15 12쪽
19 19화 깡패 양아치 +2 24.08.29 610 13 12쪽
18 18화 스님과 재소자 +1 24.08.28 646 14 11쪽
17 17화 회장님 제안 거절 +1 24.08.27 653 17 12쪽
16 16화 원석(原石), 정우 +1 24.08.26 694 18 12쪽
15 15화 서울 나들이 +1 24.08.25 718 19 11쪽
14 14화 오야붕 닮은 회장님 +1 24.08.24 759 17 12쪽
13 13화 망나니 ‘용순’이 아빠 +2 24.08.23 794 20 12쪽
12 12화 별의별 사람들 +1 24.08.22 798 18 12쪽
11 11화 탁발(托鉢) +1 24.08.21 877 2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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