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물들이 착각한다 괴물 천재 피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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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태유 아카데미 작가
작품등록일 :
2024.08.11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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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6 2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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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1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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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내기

DUMMY

1화. 내기




“본방 시작합니다!”


막내 피디의 우렁찬 외침과 함께, 호프집 벽에 걸린 TV에서 광고가 끝났다.


화면이 전환되면서 산뜻한 느낌의 오프닝이 흐르고, 곧 ‘6회’ 자막과 함께 드라마가 시작됐다.


첫 씬은 회사 로비. 여주인공은 카메라 쪽을 죽일 듯이 노려본다.


-뭐? 그렇게 쳐다보면 어떡할 건데? 나 여기 블랙 등급이야. 니네 대표보다 돈 많이 버는 사람이라고!


전형적인 갑질 대사를 읊는 고객에게, 주인공은 결국 허리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그래. 처음부터 그렇게 나왔어야지. 누구 앞이라고 그렇게 눈을 부라리고-

-저희는 사람을 상품 취급하는 결혼정보회사입니다.

-······뭐?


주인공이 다시 얼굴을 들고 차갑게 고객을 응시한다.


-사람이 아닌 건 상품으로 취급하지 않습니다. 이만 돌아가 주시죠.


카메라는 그런 여배우를 클로즈업했다. 기다란 속눈썹과 하얀 피부를 자랑하듯 길게 담는다.


화내는 것도 예쁘지 않냐고. 채널 돌리지 마시라고 시청자에게 말하는 것 같다면 기분 탓일까.


화면을 빤히 쳐다보던 감독이 말했다.


“이야··· 우리 여주 미모는 날이 갈수록 물오르네. 이번엔 필터도 얼마 안 쳤는데 말이야. 유 배우, 요즘 뭐 좋은 거 먹고 다녀?”

“아하하. 아니에요, 감독님.”


감독의 너스레에 유수현이 웃으며 손사래를 쳤다. 하지만 같은 테이블에서 그 모습을 보던 작가는 못마땅하게 강냉이를 씹었다.


“···배우만 물이 오르면 뭐 하냐고. 시청률이 죽 쑤고 있는데.”


어깨를 움찔한 감독이 헛기침하며 작가 쪽으로 몸을 돌린다.


“···아니, 우리 전 작가는 또 왜 이리 뿔이 나셨을까?”

“몰라서 물어요?! 쥐꼬리만 한 시청률 볼 때마다 아주 속에서 천불이 나는데.”

“에이, 웰메이드 소리 들으면 시청률 쉽지 않은 거 알면서 또 그런다. 그래도 인터넷 반응은 괜찮잖아?”


감독의 능글맞은 태도에 전미주 작가가 기어코 소리를 빽 지른다.


“난 안 괜찮아요! 에휴, 씨.”


성질부린 작가는 남은 맥주를 한 번에 들이켰고, 잔을 세게 내려놓았다. 덕분에 호프집 안 분위기는 초상집이 됐다.


감독은 어색하게 웃으며 눈치만 보다가, 결국 작가 건너편에 앉은 내게 턱짓했다.


고개를 끄덕인 나는 조용히 일어나 3000cc 잔을 기울이며 말했다.


“작가님. 작품 아직 5부 능선도 안 넘었습니다. 거기다 7, 8회에 힘 많이 준 거 작가님이 제일 잘 아시잖아요.”

“······뭐, 그러긴 했지.”

“그때부터 확 치고 올라갈 겁니다. 모처럼 회식인데 오늘은 좋은 일만 생각하시죠.”


그제야 좀 풀린 얼굴의 작가가 슬쩍 젓가락을 든다. 매운 거 좋아하는 전 작가를 위해 주방에 특별히 부탁한 골뱅이소면이다.


작가는 골뱅이를 하나 집어 먹더니 눈이 살짝 커진다.


“이거 좀 먹을만하네?”

“괜찮습니까?”

“음, 맵싹한 게 나쁘지 않아. 이 피디도 좀 들어요.”


웃는 얼굴로 나도 젓가락을 들었지만, 소면만 조금 건져 먹었다. 맵기를 두 배로 해서 나는 못 먹거든.


맥주나 한 모금 더 한 뒤, 등을 돌려 뒤쪽 테이블에 있던 막내 피디에게 손짓했다.


그러자 전 작가 심기에 짓눌려 있던 막내가 벌떡 일어나 분위기를 띄운다.


“크흠! 자자, 6회 최고 시청률 내기 들어갑니다! 최소 3만원 부터! 상한은 없습니다! 이번 설 보너스 빵도 가능합니다!”


막내의 넉살에 제작진이 이제야 피식 웃기 시작하고, 나는 지갑에서 신사임당 두 장을 꺼내 흔들었다.


“6프로에 10만원!”

“예?! 5회 고점이 4.2프론데, 괜찮으시겠어요?”


막내가 반신반의하며 물었지만 나는 웃으며 지폐를 건넸다. 누가 미친 척하고 위쪽에 걸어야 내기가 흥하는 법이다.


다행히 작전이 통했는지 제작진이 하나둘 지갑을 열었다.


“5.2프로!”

“음··· 그럼 나는 딱 5프로.”

“에이 모르겠다. 5.8 가자!”


내기와 함께 술이 돌기 시작하고, 자연스럽게 대화도 돈다. 대부분 시청률 우상향에 걸자 작가와 감독, 배우의 얼굴이 밝아진 건 덤이고.


호프집이 금세 시끌벅적해지면서 제자리를 찾았다.


권태용 감독은 그쯤 다가와 내 어깨를 툭 쳤다. 검지와 중지를 입에 대는 게 의미가 뻔하다.


배우 유수현과 두런두런 얘기를 나누던 작가에게 양해를 구하고, 감독과 함께 호프집을 나와 골목으로 들어갔다.


담배를 입에 물고 주머니를 뒤지는 감독에게 먼저 불을 붙여주고, 나도 하나 입에 물었다.


감독이 깊게 한 모금 빨고는 피식 웃으며 입을 뗀다.


“···짜식. 열심히 산다. 덕은 맨날 내가 봐서 어떡하냐.”

“덕은요. 저도 다 먹고살자고 하는 짓인데요.”

“그놈에 출신이 뭐라고. 고생이 많아.”

“아닙니다. 하하.”


권태용 감독은 알고 있다. 5년 차인 내가 기획 까이고 이쪽에 시다바리로 붙었다는 걸.


피디가 보통 5년 차, 6년 차쯤 되면 못해도 공동연출이나 단막극은 하나 하게 되어있다.


하지만 나는 작년 말부터 기획을 넣었음에도 계속 반려 당하고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내 태생이 구리기 때문이다.

지금이야 종편 GTBN 피디로 일하고 있지만, 내 출신은 외주제작사다.


조연출 3년 경력을 인정받고 경력직으로 들어왔음에도, 언론고시로 입사한 성골들은 여전히 외주 출신인 나를 배척했다.


물론 권 감독처럼 크게 신경 안 쓰는 부류도 있다.


하지만 그건 정말 소수고, 대부분은 나를 꺼리는 편이다. 심지어 내 소속인 3팀 CP도 탐탁지 않아 할 정도면 말 다 했지.


“···그나저나, 7, 8회 진짜 괜찮겠습니까? 돈도 공도 많이 들이긴 했는데, 지금까지 반응이 영.”

“어쩔 수 있냐. 타이밍이 안 맞은 거지.”


권 감독이 푸념하듯 덧붙인다.


“하필 동시간대에서 검사물이 터질 줄 알았겠냐고.”

“홍보팀 닦달해서 SNS라도 쫙 깔아보시죠. 그래도 감독님에 전 작가표 로코면 브랜드가 나쁘지 않은데요.”


그럴듯한 제안에도 감독은 뒷머리를 벅벅 긁는다.


“모르겠다. 위에서도 패전처리 식으로 넘기려는 분위기야. 대세 거스를 바에야 돈 아끼겠다는 거지.”

“나 참··· 이 조합을 안 밀면 대체 언제 밀겠다는 건지.”

“그러게나 말이다.”


한숨을 섞어 뻑뻑 피워대니 연초가 금방 타들어 간다.

감독이 아쉬운 얼굴로 꽁초를 쓰레기통에 던져넣더니, 한 까치를 더 꺼내서 쓱 들어 보인다.


마주 웃으며 나도 꺼내 들었고, 이번엔 천천히 연기를 즐긴다.


감독과 함께 건물로 들어간 후, 화장실을 들러 냄새를 빼고 다시 호프집으로 복귀했다.


그런데 나갈 때랑 분위기가 다르다. 고요할 정도로 말소리가 적다.


뭐지? 누가 취해서 사고라도 쳤나?


얼빠진 표정의 막내 피디 김주성이 곧 나를 발견하고는 허겁지겁 뛰어온다.


“피, 피디님!”

“···왜 그래? 뭔 일인데?”


스마트폰을 쥔 막내의 얼굴이 확 밝아졌다.


“주조정실에서 연락왔는데, 초반부 5.9% 스타트 찍었답니다!”

“······뭐?”

“어! 또 왔습니다. 6프로! 6프로 뚫었답니다!”


뒤늦게 들어온 감독이 소리를 지르며 전 작가에게 달려간다. 취기 오른 작가와 부둥켜안고 방방 뛴다.


다른 제작진들도 마찬가지다. 술집이 두 배는 더 시끄러워졌고, 추가 주문이 쭉쭉 이어졌다. 호프집 사장이 함박웃음을 짓는다.


잠시 당황했지만 나도 방긋 웃었다. 당연히 좋지, 다른 사람도 아니고 권 감독 작품인데.


그런데 아까부터 속이 계속 울렁거린다. 정확히는 호프집 다시 들어오고 나서부터.


머리도 어지럽고, 눈앞이 멀미하는 것처럼 흔들렸다. 주량만큼 자신 있는 종목이 없는데··· 갑자기 왜 이러지?


“이 피디님? 괜찮으세요?”

“어··· 잠깐만···.”


막내가 비틀거리는 내 팔을 잡아주는 것과 동시에,


확!


세상이 360도로 돌았다.


누가 찬물을 끼얹은 듯 순식간에 정신이 맑아지고, 호프집 입구에 있던 나는 어느새 테이블로 돌아와 있었다.


······지금, 뭐가 어떻게 된 거지?


“피디님. 내기, 같이 하십니까?”

“뭐?”


나는 손에 오만원 권 두 장을 들고 있었고, 막내 녀석이 그걸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있었다.


뭐야? 왜 시청률 내기를 이제 하려는 것처럼···


“몇 프로에 거시게요?”


막내가 웃는 낯으로 묻는데 등줄기가 서늘하다.


“···내가, 6프로 라고 말 안 했나?”

“네?! 6프로요?! 5회 고점이 4.2프론데, 괜찮으시겠어요?”


순간 소름이 돋는다. 이 녀석, 아까 했던 거랑 똑같은 말을 한다.


나는 무심코 뒷목을 쓸었지만, 혹시나, 아주 혹시나 하는 생각에 말했다.


“···잠깐.”

“앗. 목표를 조금 낮추시려고요?”

“아니. 6프로에 20.”


5만원 권 두 장을 더 얹었다. 막내가 들뜬 얼굴로 돈을 받아 챙긴다. 덕분에 내기 분위기가 더 후끈해졌다.


설마 설마 했지만, 이후 상황은 귀신처럼 전과 똑같이 흘러갔다. 주조정실에서 연락이 오고, 막내가 모두에게 알리고, 술자리가 더 시끌벅적해지고.


회식이 끝날 때, 내 수중에는 건 돈의 두 배가 넘는 돈이 들어왔다.


하지만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시청률이 예상보다 잘 나왔으니까.


그리고 나조차 돈은 안중에도 들어오지 않았다.


내 관심은 오로지 한 곳에만 가 있다.


······방금 그거, 뭐였지?





작가의말

반갑습니다. 잘 부탁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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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24화. 위기를 기회로 (1) +1 24.09.03 1,475 32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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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22화. 누가 왕이 될 상인가 (5) +1 24.08.31 1,428 31 15쪽
21 21화. 누가 왕이 될 상인가 (4) +1 24.08.30 1,432 32 15쪽
20 20화. 누가 왕이 될 상인가 (3) +4 24.08.29 1,445 34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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