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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니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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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12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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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8 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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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30 2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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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화: 마음의 봄날

DUMMY

홀을 보고 자세를 잡았다. 몸의 긴장을 최대한 풀었다. 오직 목표에만 집중했다. 이번 홀은 경사가 왼쪽에 살짝 있었다. 난, 집어넣을 수 있어. 천천히 퍼터를 들어 스윙을 했다.


투웅-. 도르륵. 토옹-.


어느 때 보다 경쾌한 소리였다.


한 주먹을 쥐고 몸을 웅크리며 예쓰!, 파이팅 동작을 했다. 길수가 눈썹과 미간이 찡그렸다.


치-.


바로 다음 동작을 취하는 길수였다. 3m 쯤이야.

역시나 바로 넣었다.


6m 퍼트. 이번에는 오른쪽과 왼쪽으로 브레이크가 있었다.

나는 자세를 잡았다. 공에서부터 홀까지 걸어서 경사도를 확인했다.

발바닥 감각으로 기울기를 확인했다. 바로 섰을 때, 무릎이 굽혀지는 정도로 기울기를 확인했다.


후욱-. 눈으로 가상의 선을 그렸다. 상상했다. 공이 굴러가는 모습을.


가슴부터 차오르는 느낌이 있었다. 이거였구나.

자신을 믿는 다는 것이.


퍼팅 스윙을 위해서 손을 뒤로 올렸다. 툭, 내렸다.


투웅, 도르륵. 공이 오른쪽으로 가다가 왼쪽으로 다시 오른쪽 홀로 향했다.


토옹-.


예스. 연속 2번 성공이다. 정길수와 신윤호 둘 모두 살짝 놀란 눈치였다. 난 나에게 더 집중했다.


길수가 자세를 취하러 지나가면서, 어깨를 툭 쳤다.

“이번 건 제법이다”


정길수가 6m 퍼트를 놓쳤다. 다행이었다.


난 9m에 표시된 볼 마커로 갔다. 공을 조심스럽게 놓고, 홀까지 걸었다. 길수는 좀 더 빨리 진행하라고, 나를 재촉했다. 아랑곳 하지 않았다.


길수가 재촉하는 소리, 풀벌레 소리, 공기로 들리는 미묘한 전기음 등. 여러 가지 소리가 들리다가 점점 사라졌다. 어제 눈을 감고 퍼팅을 했을 때와 비슷한 느낌과 감정이었다.


이 감정과 느낌이구나. 홀까지 가는 길을 상상했고, 공이 들어갈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9m는 공이 들어가지 않은 확률이 더 높다. 그럼에도, 왠지 모를 자신감이 있었다.


프리펏을 세 번 했다. 이정도 거리와 스피드.

바로 자세를 잡고, 투욱-.


공이 천천히 흐르는 듯 도로록, 굴러갔다. 오른쪽, 왼쪽, 다시 오른쪽.


토옹-.

경쾌한 소리와 함께 공이 들어갔다. 그래! 이 느낌이지!


길수와 윤호, 두 사람은 믿을 수 없다고 생각했는지 서로를 쳐다봤다. 윤호가 가까스로, ‘성공’이라고 말해주었다.


길수는 다음 6m 퍼트를 성공했다.


나는 12m 볼마커 자리로 갔다. 후우-. 긴장이 되었다. 이런 것일까?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퍼트를 하는 모습을 상상했다. 생각만 해도 가슴이 떨렸다. 나 자신을 진정시키고, 자세를 준비했다.


프리펏을 세 번 하고, 공이 가는 길을 상상했다. 뭔가가 어긋난 느낌이었다. 말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스윙하는 내 자신이 불편하게 느껴졌다.


다시 프리펏을 해야 하나 생각했지만, 그냥 치기로 했다. 들고, 퍼팅.


퉁-. 공이 길을 따라서 갔다. 오른쪽, 왼쪽, 다시 오른쪽. 홀로 가까이.

공이 좀 덜 휘어서 홀컵 앞에서 꼬부라졌다.


에잇. 역시 느낌이 이상했어. 좋은 느낌과 감정, 내 몸의 스윙 동작이 일치하지 않을 때는 다시 한 번 물러나 프리펏을 하던지, 나를 점검했어야 했다.


길수가 9m 퍼팅 장소로 왔다. 이미 앞에서 지나간 길을 봐 왔던 그는, 9m 퍼트를 쉽게 성공했다.


‘역시, 만만치 않다’라는 생각을 했다.


다시 12m 퍼트에서 자리에서, 앞으로 보고 프리펏을 하고 자세를 잡았다. 이정도 속도감과 거리감이면 괜찮겠지. 그리고 속으로 템포를 세었다. 하나, 둘.

원장님이 가르쳤던 내용이 생각났다. 똑딱거리며 박자를 맞추는 메트로놈과 같이, 퍼트 스윙에서는 템포가 중요하다고. 템포를 맞추지 못할 때, 속도와 거리감은 모두 달라진다고.


모든 감각이 내 퍼트 자세와 함께 정렬되었다. 홀을 보고, 프리펏을 하고. 이 모든 동작들이 기계적으로 이루어졌고, 8초를 넘기지 않았다.


준비가 됐다. 투웅-.


도로로로로록, 토옹-.


예스, 들어갔다. 처음으로 길수를 이겼다. 공이 들어가는 것을 보자마자, 길수는 당황한 표정과 함께 부르르 떨었다. 윤호는 ‘운’이 라며 어깨를 툭툭, 쳤다.


4홀까지 퍼팅 게임을 진행했지만, 결국 내가 지고 말았다. 길수가 12m 퍼팅을 성공했을 때, 나 역시 9m 퍼팅을 성공했기에 끝까지 따라 붙기는 했다.


경기가 끝나고, 정길수는 투덜거리기 시작했다.

“약속대로 여기 다 치우고 가라”

“퍼팅도 내가 이긴 거야”

“그리고 겨우 퍼팅이라고”

“초보자 주제에 까불지 말고”


굳이 민감하게 반응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서, 무심하게 대답했다.

“그래”

“내가 다 정리하고 갈게”


어쩔 수 없는 결과에 연연하지 않았다. 중요한 건 꺽이지 않는 마음이라고 했던가. 그런 거라면, 내가 전문이었다.


축구를 할 때도 처음부터 성과가 났던 건 아니었다. 서투른 트래핑, 드리블, 슛. 모든 게 제멋대로인 때가 있었다. 다만 그 모든 것들이 즐거웠기에, 못하는 것이 싫었기에 연습하고 또 연습했었다.


축구를 할 때 내 마음대로 되지 않았던 것이 답답했었다. 벽이 있는 것 같았고. 그런데, 그 벽은 무너진다. 내 마음이 꺽이지 않으면. 결국 문제는 벽이 무너지는가 아니면 내 마음이 무너지는가, 였다.


그 때의 습관이 있었다. 오늘은 내가 졌다. 그리고 길수가 연습한 시간과 노력을 지금 당장 따라 갈 수는 없었다. 하지만 중요한 것! 내 마음만 꺽이지 않으면 됐다.


둘은 곧 자리를 떴다. 길수는 여전히 투덜거리며, 윤호는 떠나면서 나를 힐끗 힐끗 보았다.


하아-. 널부러진 도구들과 공. 여기 저기 흩어져 있는 볼마커들와 쓰레기.

하나 하나 정리하며 오늘 있었던 일들 다시 생각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길수에게 한 홀 이긴 건, 흠. 통쾌했다. 원장님이 가르쳐 줬던 것들이 길수와 시합을 하면서, 내 퍼팅 속에 녹아드는 느낌이었다. 홀에 공이 들어가는 순간, 스트로크를 하는 내 손의 감각과 느낌.


즐거웠다. 골프가 이렇게 재밌는 스포츠였다니.


흥얼거리며 정리하다 보니, 얼추 주변이 정리가 된 듯 했다. 허리를 쭈욱 펴고, 건물 쪽을 바라봤다. 원장님이 사무실에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길수와 이럴 걸 예상하고 있었나. 곰이 아니라 능구렁이 같은 아저씨.


***

다음 날 학교,

선미가, 방과 후 나가려는 나를 붙잡았다.


“야! 너 또 어딜 도망가!”


도망가려던 나는 선미에게 목덜미를 잡혔다. 으아-. 무슨 여자애가 이렇게 드세냐? 지금은 너랑은 대화하기가 힘들다고. 반장님아.


“너 공부는 제대로 하고 있어?”

“나한테 골프 졌다고 날 피하는 거야? 뭐야?”


“아니, 그게 아니라”


“그게 아니면 뭔데”

“내가 나중에 이야기 해 줄 테니까, 이거 좀 놔주면 안 될까?”


“안 돼”

“너 어디 가는 지 말하기 전까지 단 한발자국도 못 나가”


“야야, 좀”


‘야, 진선미!’라며 선미 베프인 최나연이 교실문을 활짝 열고 소리쳤다. 목덜미를 잡고 있는 선미를 보고 놀라는 눈치였다. 슬그머니 다가오더니, “이건 무슨 시츄에이션?”이냐며 꺄우뚱 거렸다.


“혹시 그린 라잇(Green Light)인가?”


우리는 동시에, “아니거든!”이라고 말했다. 동시에 말하고 나서, 서로를 쳐다봤다. 마주보고 있는 얼굴이 낯 뜨거워졌다. 얼굴이 많이 붉어진 건 아니겠지?


“야야야, 귀 떨어지겠다”

“그럼 무슨 상황인데?”

“이게?”


서로 우물쭈물 했다. 틈을 타서 선미의 손을 슬그머니 풀려 했는데, 그녀는 얼굴 표정을 바꾸며 목덜미를 놓아주질 않았다.


쓰읍-, 매서운 눈빛을 나에게 쏘았다.

“얼렁뚱땅 도망가려 하지 마라”


나연이에게 금방 풀어진 표정으로, “아니 내가 지난 번에 골프 이겼다고 삐졌는지 날 자꾸 피하잖아”라고 말했다. 억울했다. 나를 그런 ‘쫌생이’ 쯤으로 본 건가. 졌다고, 창피해하고 피하는 뭐 그런 사람으로?


“진선미! 내가 그런 걸로 삐지는 사람으로 보이냐?”

“그럼 아니야?”


“그럼 도대체 왜 나를 피하는 건데”


나연이는 선미의 모습이 낯선 듯, 어이없다는 듯이. 한숨을 쉬었다.

“너희 그러다 정든다”

“적당히 해 적당히”

“그러다가 갑자기 여자친구 남자친구 한다고 하지 말고”


"아니거든"하며 또 동시에 소리 질렀다.


"야야야, 알았다! 알았어"

“넌 산이가 피하는게 왜 그리 신경 쓰이는데”


“나도 몰라”

“이씨, 그냥 피하니까 짜증나잖아”


씩씩되는 그녀의 얼굴이 유독 더 귀여워 보였다. 왜 자꾸 귀엽지? 귀여우면 끝난 건데. 여자를 보고 이런 감정이 드는구나.


선미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이야기를 하고 싶었지만. 골프 이야기는 좀 더 나중으로 미뤄두고 싶었다. 정말 골프선수로서 한 발자국씩 걸어간다고, 말할 수 있을 때.


목덜미를 잡혀 있는 내가 안스러워 보였는지, 나연이가 선미를 말리고 나섰다.

“뭔가 사정이 있나 보지”

“그냥 냅둬라”


고마운 마음에, 난 나연이를 보고 엄지손가락을 치켜 올렸다. 슬그머니 다시 도망가려는 찰나, 선미는 ‘어딜’하며 내 목덜미를 세게 당겼다. 순간 균형을 잃어 몸이 선미 쪽으로 기울었다.


“어... 어... 어...”


그녀가 바닥으로 넘어질 것 같아서, 황급히 내 몸을 바닥 아래로 돌렸다.


쿵-. 아야야.


다행이다. 선미가 다치지 않은 것 같아서. 다행이 아닌건가. 지금 이 상황은.


나연 뿐만 아니라 교실에 남아있던 다른 친구들도, 모두 동작을 멈추고 포개어져 있는 우리의 모습을 보았다. 놀랄 새도 없이, 주변에 친구들 소리를 치기 시작했다.


“엇, 어어”

“이야야”

“반장하고 김산”


놀라움이 탄성으로 바뀌는 시간, 그리 길지 않았다. 내 뺨이, 내 귀가 뜨거워지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큰일이네. 교실 친구들의 반응도 신경 쓰였지만, 선미가 다치지는 않았는지도 걱정이었다.


“어어, 선미야”

“다치지 않았지?”


“응... 응...”

그녀의 얼굴도 홍당무처럼 붉어졌다.


선미는 뒤돌아서서, “나 갈게”라고 짧게 말하고 나연이의 손을 잡고 후다닥, 밖으로 달려 나갔다. 나연이도 선미에게 붙들려 가며 “다음에 보자”라고 말했다.


폭풍이 지나간 것 같았다. 방금 전 일도, 내 마음도.


‘이젠 내가 선미를 피하는 게 아니라, 선미가 나를 피하겠는데’


멍하니 잠시 있다가, '안되겠다'라는 생각이 들어 서둘러 선미를 쫓아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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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제18화: 첫 주말 24.09.04 74 3 12쪽
17 제17화: 다툼, 그리고 마무리 24.09.03 91 4 12쪽
16 제16화: 혼란스러운 감정 24.09.02 94 3 12쪽
» 제15화: 마음의 봄날 24.08.30 105 3 11쪽
14 제14화: 골프의 시작 (2) 24.08.29 106 3 12쪽
13 제13화: 골프의 시작 (1) 24.08.28 104 3 12쪽
12 제12화: 뜻밖의 발견 24.08.27 109 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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