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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니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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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12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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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8 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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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0 2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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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화: 그 놈의 등장

DUMMY

난 디깅(Digging)하는 것을 좋아했다. 무언가를 집요하게 파고 들어, 그것을 내 것으로 만드는 것. 그것이 나의 장점이었다.


선천적 천재라는 말. 그 말은 나에게 어울리지 않았다. 왜냐하면 난 처음부터 타고난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축구도 노력의 산물이었다. 수많은 고민과 집요함의 산물이었다. 힘들어도 참았고, 우는 소리를 하지 않았다. 참고 견디었더니, 실력이 월등히 나아져 있었고 내가 원하는 플레이가 가능했다.


아마도 ‘노력형 천재’라고 한다면, 적합한 말일 수도 있겠다.


난 ‘나 자신의 기준’을 세우는 것을 좋아했다. 그리고 나와의 싸움을 시작했다.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지 않고. 언제가 마강도 원장님이 이것이 골퍼에게 필요한 자질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난 그 자질을 잘 가지고 있는 것 같다고.


“Par”라는 말은, ‘평균’이라는 라틴어에서 기원했다고 한다. 그래서 골프에서 Par는 기준점이 되는 점수였다. 전체 18홀 기준으로 72라는 숫자는, 골퍼라면 달성 가능한 스코어 즉 그 기준점이 되는 숫자였다.


싱글디짓 핸디캡퍼 (Single Digit Haddicapper). 경기 스코어 72에서 평균적으로 한자리 타수(0~9)를 더 치는 골퍼도 아마추어에서는 실력자이지만, 프로의 세계에서는 월등하지 않은 숫자였다.


그래서 현재 나의 기준점은 바로 72 (이븐)이었다. 오늘 경기결과는 그 기준점에 한참을 미치지 못하였다. 당연한 결과일 수도 있겠지만,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절망과 좌절을 맛보게 될까?


이제 마지막 18홀이었다.


Par 4, 321m 였고, 티 박스 앞으로 두 개의 페어웨이, 그린이 위치해 있었다. 첫 번째 페어웨이 왼쪽으로 작은 벙커 세 개, 두 번째 페어웨이 주변에는 벙커가 없었다. 다만 두 번째 페어웨이와 그린 사이에 작은 벙커 하나가 위치해 있었다.


2개의 페어웨이까지는 어려운 지점이 없어 보였지만, 그린 위의 홀컵이 앞쪽으로 위치해 있어서 그린 위 플레이가 까다로웠다.


선미가 먼저 자리하고 샷을 했다. 공은 왼쪽으로 살짝 휘는 드로우 구질로 부드러운 곡선을 만들었다. 비거리는 193m로, 페어웨이 중앙에 안착했다.


어떻게 저렇게 일관된 샷을 할 수 있을까. 대단하다는 생각을 들었다. 자리를 바꾸면서 손을 들고, “하이파이브”


그녀는 “고마워”라며, 미소로 화답했다.


나도 자세를 잡고 샷을 했다.


파앙-.


드라이버도 아이언 샷도 점점 나아지고 있었다. 스윙을 할 때, 선미가 알려준 척추각 (Spine angle) 유지하는 것과 몸의 중심을 이동하는 것이 나에겐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축구로 단련된 코어 근육이 도움이 되었다.


축구 슛을 할 때, 모든 힘이 중심이 코어근육에서 출발해서, 허리가 회전하며 허벅지가 뻗는 힘으로 때린다. 반복된 훈련으로 슛할 때 몸의 중심이 어떻게 움직이는 지도 느꼈다. 축구는 앞으로, 골프는 측면으로 슛하는 템포, 발을 디디면서 몸을 멈추는 동작, 차는 발이 치고 나가는 동작이 골프의 스윙 매커니즘과 비슷했다.


공은 출발했고, 오른쪽으로 살짝 휘는 페이드 구질로 날아갔다. 187m로 페어웨이 안착했다.


“이야, 산! 벌써 비거리가 이렇게 나기 시작한다고”

“역시 대단해”


“고마워”


우리는 플레이를 계속 했다. 번갈아 한 샷 한 샷. 두 번째 페어웨이에 공을 보내고, 마지막 그린에 공을 올렸다. 선미는 버디 (-1)로 마지막 홀로 경기를 마쳤고, 나는 파(0)로 경기를 마무리 했다.


옆방도, 경기가 끝난 것 같았다.


정길수 (-5), 67

신윤호 (-3), 69

최나연 (+3), 75

진선미 (-9), 63

김산 (+12), 84


최종 스코어였다. 선미는 정말 넘사벽이구나. 길수는 선미를 이기지 못해서 못내 아쉬워했고, 나연이는 그런 길수를 놀렸다. 윤호는 기지개를 펴며, 몸을 스트레칭했다.


“아 그래도 즐거웠다”


“그러게”

나도 맞장구를 쳤다.

“난 처음이었는데, 재밌었어”

“점수가 안 나와서 그렇지”


모두가 어이없다는 듯이 나를 봤다. 나연은 신기한 생물을 보듯, 고개를 꺄우둥거렸다.


“네 점수가 잘 안 나온거라고?”

“너 오늘 처음 스크린 친 거야!”


“알지”

“너희들 점수를 봐”


길수는 나에게 한손으로 어깨동무를 하며, 머리 위에 손을 얹었다. 머리를 헝클었지만, 따뜻한 손의 느낌이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놈을 보게”

“지금 스코어는 절대 처음 치는 사람이 할 수 있는 점수가 아니야”

“그런 말이 안 되는 점수를 네가 만들었다는 거지”


뜻하지 않은, 그리운 감정이 올라왔다.


누군가 내 어깨에 손을 올리고, 나를 축하해주었던 순간들. 축구를 하면서 어시스트를 하고, 골을 넣었을 때 그 때의 감정이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북받쳐올라왔다. 눈에 눈물이 나도 모르게 순식간에 고였다.


“야야야, 왜 그래?”

“너 내가 놀렸다고 그러는 거야”


다들 어리둥절해 했다. 길수는 갑자기 손을 치우고, 당황해했다. 나연이는 선미에게 “산이 원래 눈물이 많아? 울보야?”라고 물어봤다. 선미는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었고, 윤호는 또 안절부절하지 못해했다.


하-.


기분 좋은 울음이었다. 나는 양손을 비비며, 웃었다.

“아니, 축구할 때가 생각나서”

“골프를 하면서도 좋은 친구들이 생겼다 싶어서”


길수는 다행이라는 듯이, 한숨을 쉬었다.

“그렇지?”

“내가 놀려서 울고 그런거 아니지”


“야, 그럼 내가 그런 걸로 울겠냐?”

“니가 손을 어깨에 올려서 그렇잖아”

“내가 골을 넣으면 형들이 자주 하던 행동이라서”


나는 씨익, 웃으며 말했다.

“어쨌든 너 때문에 울었던 것은 맞아”


“야야야, 그럴려고 그런 거 아닌데”


길수답지 않게 허둥지둥 됐다. 하하하. 그 모습이 웃겼다. 지금 내 앞에 있는 친구들의 모습이 눈에 담겼고, 이 순간이 소중하다고 생각됐다.


주말에 이렇게 나오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밖으로 나와 지하철역으로 걸었다.

길수는 뭔가 만족한 듯.

“우리 오늘 하루 진짜 잘 보내지 않았냐?”


나연이가 맞받아 쳤다.

“그러게 재밌었네”


“아, 그리고 나연아, 연습 좀 해”


나연이의 미간이 올라가고, 얼굴을 찡그리고 길수를 봤다.

“내가 프로 지망생도 아닌데 그 정도면 잘하는 거지”

“선미한테도 지는 게”


길수는 또 발끈했다. 진심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뭐... 뭐라고”


하하하. 다들 웃었다.


친구들에게 “즐거웠다”라고 인사하고, 선미에게도 눈인사를 다시 했다. 선미도 미소 지었다.


***

집으로 가는 길.


스크린골프를 칠 때 했던, 동작들을 반복했다. 골프 치는 사람들 특징이, 주변에 막대기 같은 것이 있으면 휘두르면서 연습한다고 하던데. 그 심정이 이해됐다.


걸어가면서 골프 연습을 하듯, 손동작을 휘적휘적 했다.


골목 초입길에 다다랐다.


검은 그림자가 스윽, 나타났다. 가슴이 송곳에 찔린 듯, 숨 막히는 느낌이 들었다. 장필두였다.


“김산, 즐거운 일 있나봐”

“흥얼거리면서 다니고”


그는 갑자기 어디선가 나타나 내가 지나가려 길, 한쪽 벽을 막고 섰다. 그는 여전히 나쁜 놈이었다.


“소년원에서 나왔나 봐요?”


어둑어둑해지는 저녁이라 얼굴이 선명하게 보이지는 않았지만, 인상이 전보다 더 험악해져 보였다.

“그럼 누구 덕분에 아주 귀중한 경험을 하고 나왔지”

“다녀오니까 별거 아니더라고”


“웬일로 혼자예요?”

“매번 여러 사람들 달고 다니더니”


“김산, 안 본 사이 겁을 상실했구나”

“아니면 여전하다고 해야 하나?”


“주변에 물어보니 축구는 더 이상 안한다고 하던데”

“그만 뒀어?”


“그건 형이 상관할 바가 아닌 것 같은데요”

“그리고 우리가 이렇게 얘기할 사이도 아니잖아요”


하아-. 장필두는 당돌한 내 행동이 어이가 없다는 듯. 쯧, 하며 혀를 찼다. 그리곤 순간 주먹을 뻗어 내 갈비뼈를 향했다. 나는 움찔하며, 손이 들어오는 곳을 팔로 가드하며 막으려 했다.


그의 주먹은 내 팔 근처에서 멈췄다.

“쫄았냐?”


그는 다시 자세를 바로 잡으며, 옷을 툭툭 털었다.

“긴장하지 말어”

“오늘은 인사나 하러 온 거니까”


“갈비뼈는 괜찮나?”


이씨-. 누구 때문인데. 어금니를 꽉 깨물고 표정을 바꾸었다. 나는 금방이라도 싸울 자세를 잡았다.


“어이-. 김산!”

“싸우기도 전에 그렇게 긴장하면 어떻게 해”

“너 100% 나한테 진다”


킥킥킥, 크크크 대며, 웃었다. 나 같은 것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이.

“내가 재밌는 거 알려줄까?”

“네 덕분에 간 소년원이 재밌는 곳이더라고”

“이놈 저놈 별것도 아닌 일로 시비를 거는 데”

“처음에는 정신이 하나도 없더라고”


“처음에는 나도 좀 털리고”

“그리곤 시간이 지나면서 하나 둘씩 때려 눕혔지”


나에게 얼굴을 들이밀었다.

“그랬더니 어땠는지 알아?”

“다들 알아서 기더라고”

“예전에 내 따까리들이 그랬던 것처럼”

“아니 더 나아졌다고 해야 하나”


“전에 있던 녀석들 중에는 뒷통수 치는 녀석도 있었고”


마치 무언가 생각이 났다는 듯이, 자신의 검지손가락을 이마 끝에 튕겼다.

“동혁이라고 알지”

“경찰들한테 우리 이야기 털어 놓은 녀석”


“그 녀석은 어떻게 됐을까?”


마치 미친 놈 같았다. 혼자 즐거워하며 웃고, 이야기하고. 자아도취에 빠져, 마치 스스로 신이라도 된 냥 떠들어댔다.


얼굴을 보고 있는 것만 해도 화가 치밀어 올랐다.

“알고 싶지도 않고, 저랑 상관도 없어요”


“그래?”

“그럼 이건 어때?”


“세찬이 형이라고 했나?”

“나한테 거들먹거리고 멱살 잡았던?”


나는 눈살을 찡그리고, 장필두를 째려보았다. 냉정함을 잃어버려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지만 그게 잘 안 되었다.


“아직 축구하지?”


이성을 잃었다. 뭔가가 툭 끊어지는 느낌이었다.

“너! 세찬이 형한테 무슨 짓 했어?”


“워워워-. 무슨 짓은?”

“그냥 안부나 물어보는 거지?”


“재밌네. 이제는 나보고 너!라고 하고”

“그래 김산 이제는 자주 보자고”


장필두는 내 어깨를 자신의 어깨로 툭 치고 지나가며, 손을 들어서 인사했다. 이씨-. 트라우마인가? 저 녀석의 얼굴을 본 이후로, 갈비뼈가 욱씬거리는 느낌을 받았다.


‘아, 세찬이 형’


나는 세찬이 형에게 바로 전화를 걸었다. 뚜르르. 뚜르르. 뚜르르. 아, 왜 이 형 전화를 안 받아. 진짜 무슨 일 생긴 거 아니야? 제발 전화를 받아줘요.


뚜르르. 뚜르르.


“어, 어, 어, 김산”


몽롱한 상태에서 전화를 받은 듯 했다.


“세찬이 형”

“별일 없어요?”


“아니 이 녀석은 갑자기 전화해서 다짜고짜 ‘무슨 일 없냐’라니?”

“너야말로 별 일 없냐?”


휴. 안도했다. 놀란 목소리가 조금 가라앉는 듯 했다.

“네, 전 별 일 없어요”


“근데 갑자기 무슨 일이야?”

“네가 전화를 다 주고?”


“아니 그냥 형이 보고 싶어서 전화했죠”


“녀석, 싱겁긴”


일부러 더 밝은 목소리를 냈다. 떨린 목소리가 감추어 질 수 있도록.

“왜요, 전 형한테 전화하면 안 되요?”


“안 되긴”

“반가워서 그러지”


“내일 기석이한테 연락해야겠다”

“산이가 먼저 나한테 전화했다고”


“너 기석이한테는 아직 전화 안 했지?”


“네”


“그래 오늘은 나한테만 전화한 걸로”

“언제 또 같이 보자”


“네 형”

“푹 쉬세요”


“그래”


전화를 끊었다. 하아-. 다시 보지 않을 줄 알았던 녀석을 이렇게 다시 보게 되다니. 내 머릿속이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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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제26화: 알 수 없는 감정 24.09.16 39 2 11쪽
25 제25화: 여러 가지 방법 (2) 24.09.13 50 3 12쪽
24 제24화: 여러 가지 방법 (1) 24.09.12 55 2 11쪽
23 제23화: 불필요한 긴장감 24.09.11 56 3 12쪽
» 제22화: 그 놈의 등장 24.09.10 56 3 12쪽
21 제21화: 스크린골프 (2) 24.09.09 71 3 12쪽
20 제20화: 스크린골프 (1) 24.09.06 75 3 12쪽
19 제19화: 들통 24.09.05 77 2 11쪽
18 제18화: 첫 주말 24.09.04 75 3 12쪽
17 제17화: 다툼, 그리고 마무리 24.09.03 91 4 12쪽
16 제16화: 혼란스러운 감정 24.09.02 94 3 12쪽
15 제15화: 마음의 봄날 24.08.30 105 3 11쪽
14 제14화: 골프의 시작 (2) 24.08.29 107 3 12쪽
13 제13화: 골프의 시작 (1) 24.08.28 104 3 12쪽
12 제12화: 뜻밖의 발견 24.08.27 109 3 12쪽
11 제11화: 고민의 시간 (2) +1 24.08.26 108 3 11쪽
10 제10화: 고민의 시간 (1) 24.08.23 113 3 11쪽
9 제9화: 좌절 24.08.22 115 2 12쪽
8 제8화: 사건의 마무리 24.08.21 123 2 12쪽
7 제7화: 미필적 고의(2) 24.08.20 127 3 12쪽
6 제6화: 미필적 고의(1) 24.08.19 129 2 12쪽
5 제5화: 일어나지 않았으면 할 일 +2 24.08.16 136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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