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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니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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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12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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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6 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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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6화: 알 수 없는 감정

DUMMY

경수진의 독촉 때문인지, 우리는 서로 눈치를 봤다. 50m 지점에서의 어프로치였다. 공과 그린 사이, 25~30m 지점에 작은 벙커가 위치해 있었다. 우르르 몰려서 자기 차례를 의식했다.


“내가 먼저 칠께”


경수진은 먼저 자리를 잡고, 핸드퍼스트 어드레스 자세를 했다. 몇 도 웨지를 사용할까? 궁금했지만 물어볼 수 없었다. 상대방의 클럽 넘버나 정보를 물어보는 것은, 실제 경기에서는 ‘벌타’이기 때문에 물어볼 수가 없었다. KM 아카데미에서는 혹여라도 실수를 할 까봐 연습 중에도 코칭하거나 가르치는 사람 외에는 필드에서의 규정들을 최대한 지키도록 하였다.


백스윙, 다운스윙.


타-악-.


공이 높게 떴다. 벙커를 넘어 바로 홀 컵 근처에 떨어졌다.


투욱, 툭-.


섬세한 정확도와 방향 컨트롤로 홀컵 바로 옆에 공이 떨어졌고, 높은 공의 궤적과 적당한 스핀량은 공이 구르지 않고 땅을 바로 투욱 치고 올라 바로 옆에 떨어진 거였다. 0.7m 이내로 붙었다. 저것도 툭 치면 들어가겠네.


“봤지, 봤지?”


인정이었다. 로브 샷으로 장애물을 넘어 바로 홀컵으로 공략한 것이었다. 더욱이 그녀의 정확한 컨트롤이 돋보이는 샷이었다.


이찬호, 명수빈, 장호진, 김진수 모두 차례대로 쳤다. 공략법은 모두 달랐지만, 모두 1~2m 정도의 거리로 공을 붙었다. 이찬호는 벙커를 넘겨 공이 그린의 경사대로 굴러서 홀컵 쪽으로 향하게 했지만, 홀컵 왼쪽을 지나며 좀 더 굴러서 지나갔다. 방향만 좀 더 맞았으면 들어갔을 수도 있었던 샷이었다.


내 차례가 왔다.


나는 56도 웨지 클럽을 잡았다. 그립을 놓치지 않은 정도로 양손을 조였지만, 좀 더 부드러운 느낌으로 감쌌다. 백스윙은 90도 정도로. 몸의 중심을 왼쪽에 두고, 낮추고. 왼쪽 골반을 열고 연습스윙을 두 번 정도 했다.


휘잉, 휘잉-.


“오 좋은데-”


명수빈이 작게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부드러운 스윙의 느낌이 들었다. 목표에 대한 방향을 명확하게 하고, 헤드페이스를 살짝 열고 집중했다.


백스윙, 다운스윙.


몸의 중심과 부드러운 스윙의 움직임이 느껴졌다. 기분이 좋았다.


타- 악-.


공은 높은 궤적으로 부드럽게 올라갔다.


쑤웅-, 투욱. 도로록.


거의 붙은 느낌이었다. 다른 친구들이 멍하니 서서 피니시를 하고 멈춰 있는 나를 보았다. 공은 떨어져서 살짝 구른 후에, 홀컵 근처에 멈춘 걸로 보였다.


1, 2, 3초가 지날 때쯤.


토옹-.


홀컵으로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이야-”


이찬호의 탄식이 들렸다. 찐 탄식이었다. 경수진은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입을 살짝 벌리고 멍하니 나를 봤다.


명수빈은 폴짝폴짝 뛰며 좋아했다.

“이야, 이정도면 짧은 홀인원 아니야?”


조금 쑥스러웠다.


경수진은 아직도 얼떨떨한지, 눈을 껌뻑거렸지만 “나이스 샷”이라고 말해주었다. 다른 친구들도 “나이스,”“굿 샷”이라며 한마디 씩 보탰다.


오늘 연습이 끝나고, 모두 돌아갈 때쯤 난 연습을 더 해야겠다고 퍼팅/어프로치 연습장에 남았다.


오늘 한 스윙 동작을 복기하고, 벙커에서 연습을 할 때 쯤 돌아간 줄 알았던 수진이 내가 연습하는 곳으로 왔다.


“넌 지독한 연습벌레구나”

“오늘 어프로치도 우연이라고만 할 수는 없겠네”


“난 남들보다 좀 늦었으니까”


“너무 조급하게 생각하지 마”

“선배들 보니까 골프 전성기는 사람마다 다 다르더라고”


“그렇게 말해 줘서 고마워”


경수진은 싱긋 웃었다. 그녀는 승부욕이 강해 보였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그리 적대적이지 않았다.


“벙커 연습 좀 도와줄까?”


“나야 고맙지”


그녀는 내가 자세를 잡고 스윙하는 것을 보고, 나쁘지 않은 스윙이라고 했다. 다만 벙커에서는 공의 앞쪽 보다는 뒤쪽을 겨냥하고 치는 것이 나을 것이라고 알려주었다. 그리고 공을 넣으려고 하는 욕심보다는 공을 그린 위에 올려놓는 생각으로 치라고.


“골프는 욕심이 과할수록 망가지지 쉬운 경기야”

“벙커로 보내지 않는 게 제일 좋긴 하지만, 벙커로 왔을 때 그린 위에 잘 올리기만 해도 성공한 거라는 마음으로 치는 게 좋아”


“자기 절제가 되지 않으면 스코어도 자기 절제가 되지 않을 걸”

새로운 사실들을 많이 알게 되었다. 잔디 위에서의 연습스윙도 벙커에서는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도.


“벙커에서는 모래의 질을 파악하려는 어떤 행동도 해서는 안 돼”

“손으로 모래를 집는 다거나 클럽 헤드로 바닥을 쳐도 안 되고”


“바로 2벌 타를 받게 될 거야”


“다만 공을 치기 전 다리를 견고하게 고정하기 위해서 바닥을 비빈 다던가 하는 동작들은 가능해”

“벙커를 정리하는 ‘고무래’ 같이 움직일 수 있는 장애물은 치워도 괜찮고”


나는 유심히 듣고 있다가 대답했다.

“생각보다 복잡하네”


“응 우리처럼 프로를 지망하는 연습생들은 규칙을 잘 숙지하고 있어야 해”

“그리고 애매한 상황을 만나면 반드시 경기위원을 불러 확인하고 벌타(Penalty Stroke)를 받지 않도록 하는 게 중요하고”


“스코어 한 타로 프로 골퍼들은 많은 것이 달라지니까”


모르고 있었으면 ‘경기 중 손해를 볼 수 있었겠구나,’는 생각이 들었다.


“고마워”

“아마 네가 이야기해주지 않았으면 몰랐을 내용이었을거야”


“뭘 그런 걸로”


“그런데, 김산! 너 재능 있더라”

“배운 내용을 바로 바로 흡수하는 게 스폰지 같아”


그녀의 계속된 칭찬이 고마웠다.


“고마워”

“나도 힘이 나네”


“그랬다니 다행이네”

“그럼 다음에 봐”


“응”


나는 벙커에서 여러 가지 상황을 상상하며 더 연습했다. 바운스 각도에 대해서 생각을 했다. 벙커가 딱딱해지는 상황, 부드러운 상황에 대해 상상하고 몇 도의 클럽을 고르고 그것과 함께, 바운스 각도를 어떻게 구성해야 할 지 고민했다.


보슬비가 추적추적 내리기 시작했다. 이제 연습은 끝내야겠는 걸. 웨지 클럽들을 챙기고, 고무래로 벙커를 정리했다. 손에 끌리는 느낌이 무거웠다.


손으로 모래를 만졌다. 습도가 높아지고 비가 오기 시작하니까, 모래의 느낌이 이렇게 달라지는 구나.


골프백에 우천 비닐을 씌우고, 나는 바운스 각도를 확인하고 웨지 클럽 2개를 꺼내어 들었다. 56도와 60도 클럽이었다.


비가 점점 떨어지는 중에, 벙커 샷 연습을 했다.


바운스 각도가 14도, 4도로 각각 다른 클럽으로 샷 연습을 했다. 14도는 평소에 칠 때는 문제가 없었지만, 비에 젖은 벙커에서는 걸리는 느낌이 더 무거웠다. 확실히 낮은 바운스 각도의 느낌이 벙커 샷을 하기가 좋았다.


결정했다. 60도 클럽은 바운스 4도로.


새로운 무기가 생긴 것 같았다.


***

동성중학교 교실.


몸이 으슬으슬 추웠다.


어제 비가 점점 굵어지는 중에도, 다양한 어프로치 연습 하는 것이 즐거워 오랫동안 스윙 연습을 했다. 결국 마강도 원장님이 지나가면서 나를 보고, “지독하다”고 하며 사무실로 데리고 가 큰 수건으로 둘러주었다. 그는 ‘부전자전’이라며, 혀를 찼었다.


으에취-. 아, 진짜-. 감기 제대로 걸렸나, 보네. 아프면 안 되는데. 방과 후에 연습도 해야 하고.


연신 코를 훌쩍거렸다. 수업도 제대로 집중할 수가 없었다. 이 정도로도 몸 관리를 못하면 안 되는데.


집중을 하려하면 할수록 교실 전체가 웅웅웅-, 거리는 느낌이었다. 선생님이 수업을 진행하는 소리, 여기저기서 들리는 작은 소음들이 더 멀어져 들리는 느낌이었다.


도저히 견딜 수가 없어서, 책상에 한 팔을 괴고 머리를 한쪽으로 뉘어 기대어 누웠다. 온 몸이 뜨거워져 있었다.


“선생님, 산이가 많이 아픈가 봐요”


선미의 목소리였다. 그 많은 소음 중에서, 선미의 목소리만 선명하게 들리는구나. 정신을 못 차리는 중에, 눈이 감겼다 살짝 떠지기를 반복했다. 향기. 선미의 향기였다.


살짝 스치는 풍경 속에서, 선미가 눈 앞에 있었던 걸 확인했다.

“너 왜 이렇게 아파”

“이 열 좀 봐”


내 몸이 누군가에 의해 들리고 움직여지는 것을 느꼈다. 간간이 들리는 목소리를 따라 몸을 움직이려 했지만, 뜻대로는 되지 않았다. 시체처럼 들리기도 걷기도 하며, 가까스로 보건실로 이동해서 누웠다.


선미인가, 보건 선생님인가. 흐릿하게 보이는 두 사람이 이야기를 주고받았고, 나는 침대에 누워 불규칙한 호흡을 하고 있었다.


......


시간이 얼마나 흘렀던 걸까? 미열과 함께 온몸이 저릿저릿한 감은 있었지만, 많이 나아졌다. 주변이 어둑어둑해져 있었다.


눈을 뜨고, 몸을 일으키려 하니 손에 걸리는 것이 있었다.


으에. 선미.


선미가 침대 턱에 걸쳐 누워 잠들어 있었다. 새근새근, 자면서 얼굴을 살짝 살짝 돌리면서도 일어나지 않았다. 조심스럽게 몸을 일으켜 침대 벽에 기대어 앉았다.


자고 있는 모습이 이뻤다. 시간이 잠시 멈춰있어도 좋을 것 같았다. 그녀의 코, 입... 눈을 감고 자고 있는 그녀의 모습까지도. 심장이 더욱 울리는 것 같았다.


그녀가 깨면 안 되는데.


그녀의 얼굴을 자세히 보고 싶어서 천천히 그녀의 얼굴로 다가갔다. 나 때문에 보건실에 계속 있었던 건가? 아님, 수업이 끝나고.


아, 맞어. 지금 시간이 어떻게 되지? 연습 갔어야 하는 시간인데. 나는 주섬주섬 조심스럽게 핸드폰을 찾았다. 버튼을 눌러, 시간을 확인. 헉. 벌써 오후 8시라고? 이미 연습훈련을 가야할 시간은 지났는데.


이런 저런 걱정을 하며, 핸드폰 속 아카데미 전화번호를 찾았다.


전화번호를 찾아서 전화를 걸 무렵.


“내가 이미 전화했는데”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반히 선미가 바라보고 있었다.


“헉-. 너 언제 일어났어?”


“니가 그렇게 부시럭거리는 데 어떻게 안 깨냐?”


그녀는 나에게 가까이 와서 내 목 한쪽에 자신의 손을 가져다 댔다. 그녀의 따뜻한 손이 느껴졌다. 그리고 숨을 쉴 수가 없었다.


“그래도 열이 많이 내렸네”

“너 내가 얼마나 걱정 했는 줄 알아?”


“아... 미안”


“미안은 무슨, 미안이냐”

“넌 왜 그렇게 무식하냐?”

“뭘 시작하면 앞 밖에 볼 줄 몰라”


말을 하는 선미의 눈 끝에 눈물이 살짝 고여 있었다. 당황스럽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고. 어떻게 선미에게 반응해야 할 지 몰랐다. 문제는 내 감정회로가 고장 난 것 같다는 거였다. 무슨 말을 해야 할 지, 어떻게 해야 할지 아무 것도 몰랐다. 그냥 그녀 앞에서 바보가 된 것 같았다.


“마강도 원장님과 통화했는데”

“너 그럴 줄 알았다며 오늘은 푹 쉬라더라”


“어제 비 속에서 연습을 계속 했다고”


“교실에서는 너 열이 너무 많이 올라서”

“횡설수설하고”

“정신도 제대로 못 차리는 것 같고”


“나는 너 ... 진짜 잘못되는 거 아닌가 하고 엄청 걱정했단 말이야”


선미는 거의 울기 직전이었다. 그리고 나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걱정하게 해서 미안...”


나는 그만, 그녀를 꽉 끌어안았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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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26화: 알 수 없는 감정 24.09.16 42 2 11쪽
25 제25화: 여러 가지 방법 (2) 24.09.13 53 3 12쪽
24 제24화: 여러 가지 방법 (1) 24.09.12 59 2 11쪽
23 제23화: 불필요한 긴장감 24.09.11 59 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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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제19화: 들통 24.09.05 83 2 11쪽
18 제18화: 첫 주말 24.09.04 81 3 12쪽
17 제17화: 다툼, 그리고 마무리 24.09.03 97 4 12쪽
16 제16화: 혼란스러운 감정 24.09.02 101 3 12쪽
15 제15화: 마음의 봄날 24.08.30 112 3 11쪽
14 제14화: 골프의 시작 (2) 24.08.29 114 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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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제2화: 또 다른 영역 24.08.13 199 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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