톱스타가 사랑하는 괴물 천재 작가

꺼내고 발굴하고 (3)

남에게 처음으로 작품을 보여주는 순간에는 항상 묘한 떨림이 있다.

까일 수도 있고, 다른 기획을 제안받을 수도 있고, 다른 작품을 각색해달라는 얘기가 나올 수도 있다.

어떤 결과든 받아들인 후 검토해야겠다고 여기려던 찰나.

팔락- 종이를 테이블에 놓은 차대성이 입을 뗐다.

“허... 작가님 머릿속에는 대체 몇 명의 캐릭터들이 사는 건지 궁금하네요.”

소감의 첫마디였다.

“그... 저... 어디까지 집필이 되어있죠?”

“트리트먼트와 1부 대본 초고까지 작업했습니다.”

“아아... 1부 초고요... 좋은데요.”

“차대성 피디님께서 하신 전 작품들을 찾아보니 제가 지금 쓰고 있는 이 작품과 성향이 맞을 거라고 판단했습니다.”

“맞습니다. 제가 찾고 있던 컨셉이네요. 기본적으로 설정에 후킹이 있고...”

그가 정성껏 감상평을 읊었다.

업계에서 오래 일한 송창한, 연세호, 임원택이 차대성에 대해 알아봐 줬었다.

부정적인 구설수도 없는 피디라고 했기에 괜찮을 거라고 했다.

나는 어느 정도 함께 하고 싶은 마음을 내비쳤다.

이 작품의 시너지, 제대로 내보고 싶다고.

.

.

.

피디 생활도 12년째.

글을 보면 감이 온다.

이건 된다. 아니, 이건 만들어야 한다.

덧붙여, 도민준 또한 성공의 근거를 따지기엔 입 아픈, 문화계가 주목하는 라이징 작가.

그 작가가 차대성의 앞에서 자몽 티를 홀짝이고 있다.

고민은 사치였다.

계약부터 해서 잡아두고 싶은 마음에 말이 앞서 튀어나왔다.

먼저 1부 대본도 보고 싶다고 말했어야 했는데.

“도민준 작가님과 계약하고 싶습니다. 그러니까... 함께 작업하고 싶습니다. 좋은 드라마 만들도록 최선 다하겠습니다.”

대답을 듣기 전, 차대성은 회사에 대해 몇 가지 어필도 했다.

대본료에 대한 얘기도 꺼냈다.

“회차 당... 저희는 오천만 원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8부작으로 가면 좋을 듯 하구요.”

“오천...”

생각보다 큰 액수라.

도민준이 섣불리 답을 하지 못했는데, 망설이는 줄 알았다.

차대성이 성급히 입을 열었다.

“저, 압니다. 다른 회사에서도 큰 금액을 제시하셨겠죠. 협의도 가능합니다.”

협의?

여기서 더 올리겠다는 건가?

음료 잔을 든 도민준이 멈칫거렸다.

“참신한 설정에 구성도 너무 좋습니다. 전 드라마 <감시의 비밀>처럼만 8부 이끌어주신다면, 전개에는 무리가 없을 것으로 판단됩니다. 그리고 이미 캐릭터가 잘 짜여 있으니...”

마구 중얼거리던 차대성이 고개를 앞으로 내밀었다.

“저희 회사, 긍정적으로 검토 한번 해주시겠습니까?”

순간 의아함도 있었다.

차대성은 중박 작품들을 숱하게 제작해 온 피디.

함께 하고 싶다는 다른 작가들도 많을 텐데, 큰 간절함이 느껴졌으니까.

“실례가 안 된다면, 컨택하신 다른 작가님도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궁금해서 물었다.

없다고 할 수도 있고, 솔직하게 말해줄 수도 있고.

그 대답은 차대성의 몫이지만.

그러자,

“없습니다. 도민준 작가님 뿐입니다. 만약 섭외가 되지 않는다면 저는 조금 쉬려고 했습니다. 요새 작업에 회의감이 들어서요.”

“아... 대답 감사...”

“그렇다고 좋은 드라마를 만들고 싶은 목표가 휘청이거나, 사라졌다거나, 식은 건 아닙니다. 앞으로도 작업에 최선을 다할 거구요. 다만... 그만큼 좋은 스토리를 잡고 싶었는데 생각보다 마음이 가는 이야기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 작품은 다르게 느껴졌습니다.”

그가 얼마나 드라마를 애정하는 지가 와닿는 대목이었다.

침착한 어투는 진솔함도 묻어있었다.

아무래도, 피디 잘 만난 것 같은데.

도민준의 입가에 확실한 호선이 그어졌다.

.

.

.

그리하여,

계약을 마쳤다.

이미 대본 초고가 있었기에 강인 제작사 측은 준비를 서두른다고 했다.

나는 2부, 3부를 더 써가며,

이전의 경험을 살려 배우 캐스팅 진도 짰다.

-<블루 아이즈> 캐스팅 리스트 업-

장한경 역 : (사진) 1순위 ...

임예솔 역 : (사진) 1순위, 2순위, 3순위...

유해준 역 : (사진) 1순위, 2순위...

조합을 바꿔보고, 연기력을 비교해보고, 눈을 감고 상상해본다.

배우들이 대입되었을 때의 장면을.

이 드라마는 특히나 배우 캐스팅이 중요하다.

‘장한경’이라는 주인공의 감정선의 변화 내적 고뇌, 전전긍긍하는 모습들이 핵심 장면으로 묘사될 것이기에.

악역과 조연들도 마찬가지로 성격과 성향의 개성을 잘 이해해야 어느 정도 풀어갈 수 있을 거라고 판단했다.

특별히 ‘장한경’에 있어선, 생각해둔 이미지가 있었으며 주연으로 데려오고 싶은 배우가 하나 있었다.

이에 대해 차대성과 얘기를 나눴는데,

그 또한 주연으로 가장 적합하다며 1순위로 두면 좋겠다고 동의했지만.

“그 배우는 요즘 완전 잠적 상태라서요... 많은 회사들이 컨택을 하고 투자자들 또한 찾고 있는데, 쉽지가 않다고 들었습니다. 지금 상태로는 거의 불가능이라서 2순위를 찾아봐야 할 것 같은데요. 저도 최대한 맞추고 싶지만 말입니다... 일단 무조건 제의 넣긴 하겠습니다. 노력해 봐야죠! 하지만 혹시 실망 하실까 봐 미리 말씀드립니다. 작가님.”

1순위 주인공 캐스팅에 대해 회의적이었다.

내가 원하는 건, 숨어버린 연기파 고수.

하정후였다.

* * *

<검은 손> 관람으로 극장에 다녀온 날은 근래 중 가장 희망찼다.

스펙타클한 일이 없는데도 즐거움이라는 감정이 가슴을 파고드는 하루였다.

어두컴컴한 극장에 빔 프로젝터의 광선이 스크린을 밝게 매우듯,

검게 물든 인생에서 빛 한줄기를 본 느낌.

작품의 힘이라는 건 그런 것이다.

단단히 체감했다.

그 힘을 받아, 하정후는 미뤄둔 대청소를 하고 있다.

배달 용기들을 씻어서 버리고, 바닥을 닦고, 양치를 하고, 이불도 빨아서 널어놨다.

집을 채우던 스산한 정적이 씻겨 내려가고, 요상한 힘이 차올랐다.

“연기... 고윤재와 신하진 역은 어떤 마음으로 임했을까. 석구 형이랑 이준형 씨 연기 좋던데... 분석은 어떻게 했었을까...”

청소기를 돌리는 하정후는 극장에서 본 동류 배우들의 연기를 되새김질했다.

“나라면... 어떻게 연기했을까.”

재기...

하고 싶은 마음은 선명한데, 선뜻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았다.

누군가 주고, 누군가 맡긴 역할들에만 충실해 왔지,

스스로 먼저 나서본 적은 없었다.

무책임하게 활동을 놓고 아프다고만 해뒀기에 소속사 대표랑도 서먹해졌다.

행군을 하고 싶은 병사가 어느 쪽 발부터 내밀어야 할지 고민하는 것처럼 하정후는 침음만을 머금었다.

‘이 지겨운 굴레를 내가 끊어야 해.’

‘도민준 작가가 그려놓은 캐릭터들도, 그렇잖아.’

‘스스로 움직이며 고통에서 벗어나려 발버둥 치지. 매번.’

멍하니 서 있을 때.

소속사 대표 이석형에게 전화가 왔다.

위잉 – 위잉 – 위잉 - ...

항상 미안해서 받기가 망설여지는 전화.

원래 같으면 전화가 끊기길 기다렸다가 문자로 ‘무슨 일이실까요?’ 조심스럽게 물어봤을 텐데.

지금만큼은 주저 없이 받았다.

“네. 대표님.”

“정후야. 요즘은 어때.”

“아... 청소... 하고 있었어요.”

“통화 괜찮아?”

“네.”

하정후는 할 말이 있는지 입을 꾸물거렸다.

그 사이, 대표가 먼저 말을 이었다.

“어... 전달해 줄 말이 몇 가지 있어. 일단 영화 드라마 제의가 많이 밀렸어. 물론 내 선에서 잘 둘러댔고. 연기는 아직 힘들잖아. 맞지?”

힘든 건 맞는데.

“그런데... 흠.”

입술을 살짝 깨문 하정후가 잠자코 들었다.

“많이 힘든 건 아는데, 한번 들어봐. 강인 제작사 시나리오 받았는데 아주 좋더라고. 여태 어두운 연기 하면서 감정적으로 힘들었잖아. 영혼이 깎이는 기분이라고 했었고. 완전히 다른 분위기의 역할이 들어왔거든?”

“아... 네.”

“혹시 도민준 작가라고 알아? 요즘 뜨는 작가인데.”

“네?”

그 이름에 시간이 멈추는 듯했다.

“그분 작품이야. 그분이 널 찾아.”

!!!

핸드폰을 떨어뜨릴 뻔했다.

* * *

3층, 강인 제작사 사무실.

창문에 담긴 따사로운 도심의 풍경을 옆에 두고, 블라인드를 친 차대성 피디가 <블루 아이즈> 문서를 열었다.

마주 본 자리에는 최태인 대표가 함께였다.

스크롤을 내렸다 올렸다를 반복하다가 검토가 끝났다.

188cm의 큰 키가 앉은 자세에서도 드러나는 최태인이 엉덩이를 뒤척거렸다.

“기존에 우리가 알던 형사물이 아니라서 재밌단 말이지요.”

“스릴러 적 공포는 줄이고 형사의 성장과 내면의 고뇌를 희망적으로 변주시킨 것도 특별하구요.”

“톤앤매너가 밝아서 좋아요.”

“전 작품이 <감시의 비밀>이랑 <검은 손>인 게 안 믿길 정도죠.”

“작가님 글 보면 생각나는 단어가 하나 있어요. 카멜레온.”

말하면서 최태인 대표가 장난기를 머금었다.

“색을 막 바꿔. 그리고 어울려. 그렇지 않아요?”

“하하, 그렇네요.”

가볍게 주고받다가, 최태인 대표는 한 템포를 쉬고 입을 열었다.

“새로운 시작이라고 생각하자구요. 차 피디님도 그렇고 나도 작품에 슬럼프가 와버렸었죠. 그걸 벗어날 수 있는 시간이다, 하고.”

“네. 이제 캐스팅이 잘되어야 할 텐데요. 워낙 캐릭터 플레이라... 도민준 작가님께서도 원하시는 배우가 확실하시구요.”

“딱 3순위까지 보장될 소수한테만 보내서 힘 써보게요. 저도 보탤 테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고...”

“대표님, 캐스팅 리스트 업 보셨어요?”

“아직요. 오후에 보려고 했는데.”

“그... 작가님께서 하정후 배우 원하세요.”

“뭐? 하필? 그 배우는 안 돼요. 그쪽은 어려워요.”

“저도 알긴 압니다만.”

“내가 그쪽 대표한테 직접 들었잖아요. 공황장애가 있다나. 재기 불가능. 회사도 손 놨어요. 마지막으로 한 역할이 싸이코패스였잖아요? 배우들이 그런가봐. 영향 크게 받았대요. 정신과도 다녔다는데?”

안타깝지만, 더 안타까운 것은 <블루 아이즈> 캐스팅 1순위라는 것.

도민준 작가가 아주 확고부동하게 원한다는 것.

“어떻게, 어려울까요. 대표님. 좀 괜찮게 접근할 수 있는 경로를 생각 중인데...”

“접근이라... 내가 웬만하면 어렵단 말 하지 않아요. 다 밀어붙여 왔지. 얼마 전에 스트롱이랑 마임 제작사도 까였다고 들었어요. 집도 찾아가 보고, 출연료 최고점 이상으로 불렀는데 안 된대.”

“그렇죠...”

“이대로라면 그 배우도 묻혀지겠지. 한때 반짝했던 배우로... 연기력은 길이길이 남겠지만. 아무튼 주연 캐스팅은 다시 얘기합시다. 도민준 작가님을 설득시키는 게 더 빠를 거예요. 저도 투자자들 만나보고 정보 있나 물어볼게요.”

“네, 대표님.”

최태인이 나가고, 도민준이 들어왔다.

“도민준 작가님, 오셨습니까.”

“안녕하세요, 피디님.”

“참. 오늘도 자몽 티 타 드릴까요? 대표님 사모님께서 작가님이 좋아한다니까 수제 청 갖다주셨어요.”

“너무 좋습니다. 수제라니...”

회사는 도민준의 취향까지 기억하며 섬세하게 맞췄다.

작가의 성향을 먼저 알아 나갔고, 그 속도를 고려해 기획 방향을 검토하며, 투자자 미팅으로 좋은 소식을 수시로 알리고, 야무진 프리 프로덕션을 준비했다.

도민준은 그들에게 귀한 보물이었다.

차대성이 본 도민준은 가끔 사무실에 와서 글을 쓰기도 하고, 집에서 집필하기도 하며, 아주 가끔은 카페에서 집필하기도 하는데.

아무튼 글을 쓴다.

계속 쓴다.

속도는 엄청나게 빨랐고, 회의의 마무리는 항상 만족스러웠다.

한가지, 석연찮은 게 있다면 도민준 작가가 1순위로 꼽은 배우가 지금 대한민국에서 아마 가장 섭외가 힘들다는 배우라는 점이지만.

캐스팅은 항상 그렇다.

배우를 원하는 만큼 배우나 소속사의 마음이 오지 않을 수 있고,

마음이 맞아도 돈 협상이 맞지 않을 수 있고,

돈이 맞아도 작품이 엎어지면 끝나버리고,

작품이 엎어지지 않아도 사이가 악화되어 중도 하차를 할 수도 있고.

진짜 극단적으로는 드라마 촬영 도중 주인공 배우가 바뀌는 불상사가 생길 수도 있다.

계약서에 꼭 들어가는 사항인 천재지변도 있고...

캐스팅이란 작품에서는 ‘대사건’이며

어떤 배우로 캐스팅을 꾸렸냐에 따라 드라마 촬영장 분위기와 결과물의 질이 갈린다.

투자 또한 큰 금액이 왔다갔다하는 중요한 사안.

주연 배우 2순위를 찾아야 한다는 말을 차대성이 조심스럽게 다시 꺼내려는데...

잘 우려진 차를 느긋하게 삼키던 도민준이 말했다.

“아, 참. 날짜 언제로 잡을까요.”

“어떤 날짜요?”

“하정후 배우, 미팅 날짜요.”

“예!???!!”

무슨 일인지...

하정후가 온다고 한다.

“어, 어떻게요?”

활동 중단이라고 들었는데.

“온다고 했다고요?”

“네.”

차대성은 침착할 수가 없었는데.

도민준은 태연하게 차를 홀짝인다.

“연락드렸고 약속 날짜를 잡아야 할 것 같은데요.”

“아, 헙, 대본은요?”

“대본은 수정을 좀 거치고 싶어서 안 보내드리고 회사 통해서 여쭤만 봤습니다.”

“대본 전달도 아직인데...?”

캐스팅이 안 될 것 같다고 차대성이 하도 우려하길래.

도민준이 먼저 연락해본 것이었다.

나머지 대본을 쓸 때 이입을 할 배우가 필요하고, 진짜 안되면 톤앤매너도 다시 잡고 싶었으니까.

“그런데 오겠다구요?”

도민준을 만나기 전, 차대성이 조사했던 게 생각났다.

도민준의 첫 작품 단막극에도 나보영과 이종섭 등 배우들이 철썩 철썩 붙었고, 연세호와 임원태 등 대감독들이 연달아 붙었던 것...

... 이 정도면 인간 자석 아니야?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

[나이슈우]

재밌게 보고있어요!

[까만긴옷]

자몽청보고 "수제라니..."가 뻘하게 웃기네 ㅋㅋㅋㅋㅋㅋㅋ

[세비허]

재밌게 보고 갑니다

[n7******..]

인간자석 ㅎ

[jaeger]

성덕 되려면...저건 못참지 ㅋ

[musado01..]

잘 보고 갑니다.

건 필 하세요^^*

[JohandAr..]

필력 좋은데 왜 인기가 이거밖에 없는고 하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