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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청(卍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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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15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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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27. 그 입 닥쳐라, 석가야

DUMMY

27.




이곳에는 아무나 드나들 수 없다.

루주나 그 직계가 아니라면 함부로 들어올 수 없는 특실의 문이 열리며, 아미파를 상징하는 백색 궁장을 걸친 여인이 안으로 들어섰다.

바닥에 주저앉아있는 총관을 발견한 여인의 눈이 의구심을 표했다.


“총관? 왜 그러고 있어?”

“화, 화영 아가씨.”


설화영(雪華瓔).

명해루주의 하나뿐인 딸이다. 지금은 아미파에 들어가서 곧 진산제자가 될 예정인 그녀는 이번에 무련사태를 따라 고향인 성도로 돌아온지 얼마 안 된 참이었다.


“석 대협께서는?”

“바, 방금 나가셨습니다.”


설화영이 이마를 찡그렸다.


“아버지가 화내실 텐데.”

“어흐흑. 제가 어떻게든 설득해 보려고 했지만, 석 대협께서 너무 완강하셔서···.”

“그건 어쩔 수 없는 거야, 총관. 석 대협은 어디로 가셨어?”

“다녀오겠다고 말씀하시고 나가셨을 뿐, 행선지가 어딘지는 밝히지 않으셨습니다.”


총관의 말에 설화영은 으음, 하고 살짝 앓는 소리를 내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그녀는 그다지 아버지와 총관을 좋아하는 편은 아니다. 차와 요리를 만드는 걸 더 좋아하는 설화영을 아미파로 보내버린 게 아버지인 명해루주고, 그 심복이 총관이기 때문이다.

단지, 상냥한 설화영의 성격상 그걸 겉으로 드러내지 못할뿐.


“아버지께는 내가 말씀드릴 테니까, 걱정하지 마. 총관이 혼나는 일은 없을 거야.”

“감사합니다, 아가씨. 감사합니다···.”

“일단 사람을 불러서 방부터 정리하도록 해. 석 대협께서 돌아오셨을 때 방이 이 모양이라면 마음에 안 들어서 도로 나가버리실 수도 있으니까.”

“예, 아가씨! 바로 처리하겠습니다.”

“알았어. 나는 가볼게.”

“예!”


한결 밝아진 총관의 목소리를 들으며, 설화영은 특실을 돌아 나왔다.

복도를 걷는 그녀의 입가에 쓴웃음이 떠오른다.


‘돌아온 건 오랜만이지만, 그다지 변한 건 없어 보이네.’


주방에서 올라오는 구수하고 향긋한 요리 냄새와 다실(茶室)에서 풍겨 나오는 아련함이 느껴지는 차의 향기.

어릴 적부터 그녀는 이 향기들을 정말 좋아했다.

차를 달이고, 재료들이 요리가 되어가는 소리들을 듣는 것 자체가 즐거웠다.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것이기도 했고.

정작 그녀에겐 그 좋아하는 것을 제대로 해낼 재능이 없었다.


‘차라리 내게 무공에 대한 재능이 없었으면 좋았을 텐데.’


무공에 대한 재능이 너무 뛰어난 탓에, 반쯤 팔려가듯이 아미파로 보내진 설화영이다.

물론 바로 본산으로 들어가는 게 아니라 아미파의 속가 문파인 대정문(大靜門)에서 시작하여 본산으로 올라가는 수순을 밟게 되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논란을 피하기 위함이었다.

설화영의 아버지, 명해루주는 아미파와 돈독한 관계를 수립하기 위해 돈을 아낌없이 쓰는 편이었으니까.

그녀가 아미파에 제자가 되는 대가로 명해루는 아미산에서 생산하는 차의 판매권을 얻었다.

아미파는 문파의 미래를 책임질 뛰어난 후기지수를 얻은 셈이고, 명해루 입장에서도 품질이 좋은 아미산의 차를 고정적으로 공급받을 수 있게 되었으니 서로 좋은 이득을 보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설화영을 배려하지 않은 거래의 결과였을 뿐이다.

설화영은 걸음을 멈추고 창밖에 시선을 두었다.


‘아버지는 백운관을 왜 그렇게 싫어하는 걸까?’


그녀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웠다.

무공 수련을 끝내고 잠시 돌아왔을 때는 이미, 아버지와 백운관의 관계가 틀어져 있는 상태였으니까.

백운관에 대해 설화영이 알게 된 것도 명해루주가 총관에게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걸 들은 기억이 있어서다.


“석 대협께선 백운관으로 가신 건가?”


호기심이 일었다.

아미산과 성도를 잊을만 하면 왔다 갔다 하기는 했지만, 그녀는 백운관 쪽으로 가본 적이 한 번도 없다.

그녀가 백운관을 알게 된 건 아미파 제자가 되고 난 이후였으니까.

집에 오는 것도 하루이틀 정도였으니, 백운관에 흥미가 생겨도 가지 못할 때가 많았다. 말 그대로 잠깐 들러 쉬고 돌아가는 일정이었으니까.


‘지금이라면 가볼 수 있겠어.’


석요명이 백운관에 갔으니 그 뒤를 쫓아간 거라고 둘러대기로 하고, 설화영은 명해루를 나섰다.



***



‘손님을 상대하는 일이라는 것도 쉬운 건 아니구나.’


당소군은 벌써 몇 번째인지 세는 것조차 까먹은 주문을 재확인해 주방의 백서군에게 전달하며 들리지 않게 한숨을 쉬었다.


‘게다가 백 점주, 지금까지 계속 쉬지 않고 일하고 있으니. 몸이 망가질까 걱정되기도 하고···.’


게다가 사천지회가 시작되기 전에 백서군을 자신의 사람으로 만들겠다고 당당하게 단규에게 말하기까지 했는데, 오히려 역으로 그녀가 백서군의 사람이 된 기분이다.

실제로 그의 일을 돕고 있으니, 역으로 부림을 당하는 건 그녀 쪽이기도 했고.

기분이 나쁘다거나 그런 건 아니다.

당소군의 일행들이 없었으면 백서군은 대체 어떻게 할 생각이었던 걸까. 그런 생각이 들어서였다.


‘존경스러울 정도야.’


무림인이기에 이런 생활을 경험해볼 날도 좀처럼 없다.

이제 겨우 일주일 중 이틀째.

백서군은 일주일 동안 어떻게 할 생각이었던 걸까. 그런 생각이 든다. 장칠과 백서군만으로 이렇게 쏟아지는 손님을 받아낼 생각이었던 건 아닐 텐데.


“손님이 이제 좀 줄었네요. 언니.”


남궁화가 이마를 손수건으로 닦으며 다가선다.

폭우마냥 쏟아져 들어오던 손님들이 슬슬 줄어드는 시간대다. 물론 그렇다고는 해도 여전히 노점 안에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사천지회의 비무를 보러 온 사람들 뿐만 아니라, 비무에 참가한 이들도 뭔가 먹을 걸 찾아 돌아다니다 보니 백서군의 노점까지 오는 것이다.

손님은 넘친다.

문제는 그 손님을 다 받을 자리가 부족하다는 점이다. 목이 좋은 자리이기는 하나, 숙수라곤 백서군 하나뿐이니 회전이 빠를 수가 없는 구조이기도 하고.


“조금 쉴 틈이 나네.”

“그러게요. 팽 소협은 벌써 그냥 자리 깔고 누울 기세인데요?”


당소군은 팽우현과 팽윤호 형제 쪽으로 시선을 주었다.

두 사람 다 여러모로 지칠 대로 지쳤다는 게 명확하게 보이는 상태였다. 그 옆에 악심호도 기진맥진한 표정이었고.

백서군은 여전히 안에서 묵묵히 요리를 하고 있는 듯 했다.


“백 점주님 말인데요.”

“음?”

“저러다가 쓰러지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일하시는데, 사람을 더 구해야 하지 않을까요?”

“거기에 대해서는 이미 물어봤어.”

“정말요?”


당소군이 고개를 끄덕인다.

이제 겨우 2일차지만, 백서군은 차만 담당하고 나머지 요리를 담당할 찬모나 숙수가 따로 필요할 듯 싶어서 물어봤었다.

일주일 정도는 일단 버텨보고, 그 이후에 찾아보는 게 맞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조금 기가 찼다.

자기 몸이 강철로 된 무언가라고 착각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었으니까.


“문제는 찾으려고 해도 숙수는 찾기 어렵다는 거지.”

“그런가요?”

“식반행 쪽에 물어봤었으니까.”


아무리 명해루와 선을 대고 있다고 해도 당가, 그것도 대공녀의 질문을 무시할 깜냥 같은 게 식반행에 있을 리가 있나.

당연히 이야기해줄 수밖에 없다.


“대부분 자리가 있고, 대우가 나쁘지 않아서 떠나지 않는 이들이 대부분. 성도에서 사람을 찾으려면 어렵고, 수소문을 더 해봐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어.”

“세상에.”

“그나마 백운관 자체는 손님이 적은 편이니 그간 버텨온 것 같지만.”


그래도 백서군이 담당하는 차와 다과의 영역과 요리를 전담할 숙수의 구분은 반드시 필요했다. 요리를 하느라 백서군의 차 끓이는 실력이 퇴화하거나 한다면 그것만큼 안타까운 일이 없을 테니까.


“노공이라는 분께 부탁한 것만 온다면 괜찮아질 거라고 했으니, 믿어봐야겠지.”

“그 수단이라면 이길 자신이 있다··· 라고 생각하시는 걸까요, 백 점주님은?”


남궁화의 말에 당소군이 무어라 대답하려는 순간, 밖에서 뛰어 들어온 장칠이 외쳤다.


“점주 어른, 노공께서 오고 계십니다!”



***



석요명은 거리를 걸었다.

강호 어디를 가도 느껴지는 것이지만, 사람이 많은 곳은 번잡스러우면서도 소란스럽다. 석요명은 그 소란스러움을 싫어하지 않았다.

사람들이 많고 소란스럽다는 건 곧, 그만큼 사람들이 위협이나 이런 걸 느끼지 못하고 평화롭게 지낸다는 뜻이다.

무림의 싸움이 민생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뜻.


‘무림의 싸움이 어찌 되었든, 민생에 영향을 주면 안 되는 법이니.’


사천지회가 열리고 있는데도 사람들이 거리를 오가는 무림인들을 두려워하는 기색이 없다.

곳곳에 서 있는 당가와 청성파, 그리고 아미파 제자들이 그만큼 강하게 규율을 잡고 있다는 뜻이다.

석요명의 입가에 흐뭇한 미소가 떠올랐다.


“백운관이라.”


호기심이 생기지 않을 수가 없다.

더구나 그 점주라는 놈은 제법 맹랑하기까지 했다. 석요명 입장에서도 재미있는 놈이 아닐 수 없었다.

자신이 이기면 그가 써준 사천제일루의 현판을 내놓으라는 요구.

그걸 다른 인간도 아니고 석요명 본인 앞에서 말한 게 제법 마음에 들었다.


‘무림인도 아닌 놈이 맹랑한 말을 해서 볼 만 했지.’


명해루주보다는 백서군 쪽이 좀 더 마음에 들었다.

무림인은 아니라고 했다.

석요명이 보기에도 무림인은 아니었다. 무림인이라면 지니고 있어야 할 내공을 전혀 느끼지 못했으니까.

만약 석요명의 눈까지 속여넘긴 거라면, 그건 엄청난 실력을 지녔다고 볼 수밖에 없다.

신주십삼좌의 이름은 노름으로 딴 게 아니었으니까.


“명해루주, 그놈을 어떻게 골탕을 먹인다?”


석요명이 명해루를 나온 것은 3일 동안 융숭하게 대접받기는 했지만, 명해루주가 그의 앞에 얼굴을 잘 비추지 않았다는 것도 있다.

명해루주가 그를 사천으로 청한 것도 속셈이 있어서다.

백운관의 점주와 대면했을 때 직감했다.

석요명 자신이 명해루주가 짠 판에 끌려왔음을. 괘씸하지 않으면 이상한 일이다.

게다가 명해루에 석요명이 머무르고 있는 것만으로도 백운관의 점주를 조급하게 만들 수 있다고 여긴 것인지, 아미파 장문인에게 신경을 더 쓰는 모습이었다.

물론 석요명이야 사천에 언제 올지 모르는 위인이니 그럴 수는 있다.

그렇다 해도 태도에서 그게 드러나니 기분이 좋지 않은 것이다.


‘백운관 쪽의 손을 들어주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군.’


하지만 괘씸하다 해서 혼내주기 위해 편파적인 판정을 하는 건 반설괴의 영명(英明)에 누가 되는 일이다.

같은 신주십삼좌들이 들었으면 반설괴라는 별호에 대단한 뭔가 있는 줄 알겠다고 비웃겠지만, 적어도 석요명 본인은 그 반설괴라는 별호에 그 누구보다 큰 자부심을 갖고 있다.


“활기차서 좋군.”


석요명은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으며 걸었다.

일부러 경공을 써서 내달리지 않고 느긋하게 걷는 것은 굳이 그럴 필요가 없는 탓이다. 그가 빨리 간다고 해서 손님이 줄어들겠는가.

그의 위세에 놀라 물러나는 것을 보고자 가는 것이 아니다.


“여긴가?”


석요명의 걸음이 멈추었다.

백운관으로부터 그리 멀지 않은 위치였다.


“사람이 제법 많은···.”


석요명의 말이 끊긴다.

그의 시야에 들어온 한 노인 때문이었다.

낡고 해진 느낌이 강하게 드는 허름한 마의를 둘렀는데, 양 소매가 터져 어깨부터 팔까지 구릿빛 맨살을 그대로 드러낸 노인.

그 얼굴을 모를 석요명이 아니었다.


“당···.”

-그 입 닥쳐라, 석가야.


전대 신주십삼좌의 일좌, 천병제 당무외가 그때보다 훨씬 건장해진 몸으로 그를 보고 있었다.

당무외의 눈이 독사처럼 빛을 뿜었다.


-그 경망스런 입을 찢어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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