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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일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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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16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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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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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5 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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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을 포장하라 (1)

DUMMY

선유리가 활짝 웃으며 노트북을 들고 연습실에 들어왔다.


“안녕하십니까, 팀장님.”


“안녕하세요!”


강은성과 아이들에게 공손한 90도 인사를 받은 선유리는 손을 들었다가 내렸다.


“그런 인사는 넣어두라고 하려고 했는데, 이제는 그냥 받아야겠어. 깨달은 바가 있거든, 은성 씨 쪽지 보고 말이야.”


“잘 생각하셨습니다.”


“하여튼, 좋은 소식이 있어서 알려주려고 왔어.”


선유리는 노트북을 스피커에 연결했다.


“1팀 가서 담판 짓고 받아 왔어. 좋은 데모곡. 여러 개 골라 왔으니까, 컨셉 먼저 정한 다음에 어울리는 걸로 골라도 되고, 곡 먼저 고르고 컨셉 정해도 되고.”


그러고는 강은성에게 문자 한 통을 보냈다.


- 아직 김피터 씨가 팀장 달기 전이라 가능했어. 애들이 들으면 민감할 문제라 이것만 문자로 말할게.


“알겠습니다.”


“후후, 곡이랑 컨셉 먼저 정해 둬. 세계관은 그다음에 나랑 같이 만들자, 은성 씨.”


“컨셉은 저 혼자 정해도 괜찮으십니까?”


“내가 은성 씨 데려온 이유가 뭔데, 은성 씨 미감을 믿어서 그런 거지. 애들한테 어울리는 걸로 정해 줘. 그동안 나는 기획실장님께 샤바샤바 하고 있을게.”


“알겠습니다.”


“늦어질 것 같으니까, 일 끝나면 먼저 퇴근해!”


그렇게 선유리 팀장이 나가자, 강은성은 다시 데뷔조 아이들과 남겨졌다.


“오빠, 우리도 같이 데모곡 들어봐도 돼요?”


“물론이지. 팀장님도 그러라고 여기다 노트북 두고 가신 거고.”


강은성이 노트북의 터치패드를 건드렸다. 손가락을 움직여 1번 곡을 누르려 하자, 유마린이 강은성의 손가락을 잡고 5번 쪽으로 쭉 내렸다.


“마린아, 왜?”


“5번 먼저 들어봐도 돼요?”


“상관은 없지만, 꼭 그래야 하는 이유라도 있니?”


“5번이 마녀 컨셉이잖아요. 다이애나도 자기가 마녀라고 했으니까. 그리고 우리는 다섯 명이니까.”


우리는 다섯 명. 유마린이 다이애나를 데뷔조 바운더리 안에 들였다는 것을 증명하는 말이었다.


“···고맙다, 마린아. 다이애나를 받아들여 줘서.”


“나는 오빠 안목을 믿은 거예요. 아, 오늘 처음 만났는데 이런 말을 하면 이상하나? 그래도, 며칠째 밤마다 내 꿈에 나타나서는 자꾸 능력을 보여 주니까.”


“그래?”


“이상한 능력 아니니까 걱정 마요. 그냥, 꿈속에서는 내가 배우고, 오빠가 자꾸 좋은 대본을 찾아와.”


강은성은 몸을 움찔하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설마, 회귀 전 일이 지금 마린이의 꿈속에 자꾸 나오는 건가?’


“근데 진짜 이상한 꿈이었어. 나는 가수가 아니라 배우였고, 내가 연기를 지지리도 못해서 오디션만 보면 밀렸어. 오빠한테 너무 미안하게요.”


“꿈인데, 뭐가 미안해.”


“그래서 꿈속의 나는··· 오디션에서 떨어지기 싫어서 반칙을 했어. 그렇게 출연한 드라마가 대박이 났어. 오빠가 웃는 걸 보니까 좋았어.”


강은성은, ‘반칙’이 뭘 뜻하는지 알았다. 회귀 전의 유마린을 옥죄어, 사랑 없는 결혼을 하게 만든 그것.


“도저히 오빠한테는 못 털어놓겠더라. 왕자님처럼 멋지게 좋은 작품, 좋은 대본을 척척 가져다주는 사람인데, 나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사람인데.”


강은성은 아무 말 없이 유마린의 등을 토닥였다.


‘이 위로가 회귀 전의 너에게 닿기를 바랄게.’


그렇게 강은성과 아이들은 선유리 팀장이 골라 온 데모곡을 쭉 감상했다.


그리고, 강은성은 선유리 팀장의 능력을 다시 한번 절감했다.


“버릴 게 하나도 없네. 다 좋은데?”


“그러게 말이에요!”


아이들도 모든 곡이 마음에 드는 눈치였다.


‘이 중에서 하나는 도저히 못 고르겠다. 먼저 컨셉을 정한 다음에, 그 컨셉에 어울리는 곡으로 정해야겠어.’


컨셉에는 여러 종류가 있었다. 청순, 상큼, 걸크러시가 대표적이었다. 물론 그렇게 단순하게만 잡고 데뷔하면 팬 반응이 안 좋으므로, 훨씬 더 세부적으로 들어간다.


‘일차원적으로 생각하지 말고, 우리 애들한테 어울릴 만한 게 뭐가 있으려나?’


강은성은 고민을 시작했다.


그리고, 주머니에 있던 ‘설득력’ 5분 이용권을 꺼냈다.


‘회고의 시계, 듣고 있지? 설득력을 자기 자신한테 쓰는 것도 가능해?’


[이미 강은성 님께 소유권이 넘어간 물건입니다. 어떻게 사용하든 소유자의 마음에 달려 있습니다.]


‘좋아, 그럼 이걸 나 자신에게 사용한다.’


강은성은 황금빛 티켓을 품에 안았다.


‘나 자신을 설득해 줘.’


티켓이 서서히 황금빛으로 부서졌다. 그 빛이 눈부셔서 잠깐 눈을 감았다 떠 보니, 강은성은 드넓은 황금빛 밀밭에 서 있었다.


‘여기가 어디지?’


바람결에 흔들리는 밀밭을 제외하면 아무것도 없는 세계였다.


‘설득력이 이렇게 작동하는 거였나? 진짜 당황스럽네.’


강은성은 조심스럽게 밀밭을 헤치며 걸어갔다.


‘부드럽다.’


환상 속의 밀밭이라 그런가, 강은성을 부드럽게 감는 느낌이 들었다.


[‘설득’이 시작됩니다. 설득 대상자: ‘강은성’. 설득 목표: ‘데뷔조에 어울리는 컨셉’.]


[‘강은성’이 ‘데뷔조에 어울리는 컨셉’을 파악하도록 하기 위해, 데뷔조 멤버 분석을 시작하겠습니다.]


[환상 속의 세계로 멤버를 한 명씩 초대하겠습니다.]


‘잠깐, 초대라고? 애들이 갑자기 이런 이상한 세계에 끌려오면 당황하지 않을까?’


[꿈속에 빠진 무의식 상태로 초대받으므로, 꿈에서 깬 뒤에는 기억에 남지 않습니다.]


[예외적으로, 마법의 시전자 ‘강은성’의 기억은 유지됩니다.]


마법이라는 말을 듣자, 강은성의 마음이 싱숭생숭해졌다.


‘마법이라. 역시 마법이구나. 그렇지, 죽었다가 회귀하고, 기밀 정보가 막 보이고. 이런 일은 마법이 일어나지 않는 이상 불가능하지.’


마법을 간절하게 믿던 다이애나의 얼굴이 떠올랐다.


‘마법을 믿지 않는 나에게 마법이 일어났고, 마법을 믿는 다이애나는··· 아니야, 생각하지 말자.’


다이애나가 잃어버린 엄마를 찾는 것은 강은성의 능력 밖에 있는 일이었다.


[마법 시전자의 머릿속에 먼저 떠오른 ‘다이애나’를 불러오겠습니다.]


강은성은 어느새 돗자리 위에 앉아 있었다. 옆에는 도시락통과 사과주스가 있었다.


‘꿈을 꾸는 것 같네. 신기하구만?’


어느새 옆에는 다이애나가 와 있었다.


“안녕, 은인. 나 도시락 먹어도 돼?”


“아까 나한테 존댓말 한다고 하지 않았니?”


“은인도 나랑 같은 마녀니까 좀 봐줘. 나 사과주스 마실래.”


아무래도 깨어 있는 다이애나가 아닌 꿈을 꾸는 다이애나라서 그런가, 실제보다 훨씬 더 무례하고 솔직했다.


‘지금 모습이 어설픈 사극체를 쓰는 것보다 훨씬 매력적이긴 해. 더 날 것이라 그런가?’


날것의 다이애나는 하늘을 보고 누웠다.


“은인, 나 사실 말이야, 진지하게 마법 믿는 거 아니야.”


놀라운 말이었다.


‘그렇게 진심으로 여신을 섬기는 것 같더니?’


“진지하지는 않아도 진심인 건 맞아. 여신님 믿는 거. 그거라도 안 하면 삶을 견딜 수가 없거든.”


다이애나는 한동안 멍하니 구름이 흘러가는 걸 바라보았다.


“전에는 확신할 수 없었는데, 은인을 만나고 나서 마법을 믿게 됐어. 유독 열심히 마법 의식을 한 날에 은인을 만났거든.”


다이애나는 강은성의 옆에 바짝 앉아 귓속에 대고 말했다.


“이건 비밀 이야기니까 듣고 잊어야 해. 나, 여신님한테 금남의 생을 한 번만 깨 달라고 기도했어. 은인이 좋아서.”


다이애나는 강은성의 볼에 뽀뽀를 한 뒤에 사라졌다.


강은성은 깜짝 놀라서 눈을 깜빡였다. 그러자, 밀밭에 레드카펫이 깔렸다.


[다음으로 ‘유마린’을 불러오겠습니다.]


유마린은 회귀 직전에 만났던 모습 그대로, 드레스를 입은 채 레드카펫을 밟으며 걸어왔다.


“은성 오빠, 이거 진짜 갑갑해요. 다 벗어버리고 싶어.”


유마린은 드레스 자락을 죽죽 찢기 시작했다.


“갑갑해. 다 벗어던질래.”


옷을 전부 찢어 던진 유마린은 알몸이 되었다.


강은성은 두 눈을 꼭 감았다.


“오빠 눈 감고 있네요. 눈 떠봐요. 제 비밀을 말해줄게요.”


“안 뜰 거야.”


“제 몸 진짜 예쁜데.”


“그런 건 굳이 안 봐도 알아.”


“와, 오빠도 나한테 관심 많았구나. 나도 오빠한테 관심 많았는데. 배우 하기 전에, 아이돌 연습생일 때 만났으면 바로 유혹했을지도 몰라요.”


유마린은 현재의 모습이 아닌 회귀 전 모습, 그러니까 강은성이 27살, 유마린이 25살 때의 모습으로 나타나서 현재의 기억이 없는 듯했다.


“후회된다, 여배우라고 고고한 척하지 말고 유혹해 볼 걸.”


유마린은 강은성의 입술에 버드 키스를 한 뒤에 사라졌다.


강은성이 화들짝 놀라 두 눈을 뜨자, 눈앞에 댄스 플로어가 펼쳐져 있었다.


[다음으로 ‘이하루’를 불러오겠습니다.]


이하루가 발레 연습복과 토슈즈를 신고 나타나 댄스 플로어 위로 올라갔다.


그러고는 열심히 춤만 췄다.


‘···뭐지?’


강은성이 당황스러워하던 그때, 이하루의 오른쪽 토슈즈가 무너졌다.


“아야.”


이하루는 주저앉아서 오른쪽 발목을 움켜쥐었다.


“하루야, 괜찮니?”


“괜찮아요오. 전에 다친 적이 있어서, 가끔 오른쪽 복숭아뼈 주변이 아파요오.”


이하루는 응급처치 후 왼발로만 춤을 실컷 추다 사라졌다.


‘하루는 여기서도 독특하네. 역시 귀엽다니까.’


어느새 댄스 플로어 위에는 의자와 테이블이 생겨 있었다.


[다음으로 ‘정원’을 불러오겠습니다.]


정원은 터덜터덜 의자에 앉았다. 그리고 한숨을 푹 쉬었다.


“후, 내가 원래 이렇게 부끄러움 많은 성격은 아니었는데.”


강은성은 정원의 포지션이 래퍼에, 심지어 언더그라운드에서 날렸다는 정보를 떠올렸다.


‘혹시 정원이가 소심해질 만한 사건이 있던 건지 이번 기회에 캐 봐야겠어.’


강은성은 정원의 맞은편에 앉았다.


“정원아, 무슨 일인지 나한테 말해줄 수 있니?”


“이 계약서 보실래요?”


정원이 언더그라운드 래펴로 활동하던 당시의 계약서였다.


“저한테 불리한 계약서였어요. 그래도, 음악만 할 수 있다면 다 괜찮았어요. 그러다가 언더 공연에 네버더레스 관계자가 와서 절 캐스팅해 갔어요. 위약금을 다 내준다는 조건으로요.”


정원이 한숨을 쉬었다.


“위약금을 다 내주는 대신에, 계약 조건이 안 좋아진다고 했어요. 저는 아무것도 몰랐으니까, 진짜 그런 줄 알았어요.”


강은성이 정원이 내민 계약서를 받아서 읽었다.


“···좀 심하네. 노예 계약이라고 표현할 만하네.”


“그 후로, 갑자기 대인기피증이 생겼어요. 다행히 랩 할 때는 예전처럼 하면 되지만, 사람들하고 말하는 게 힘들어요.”


정원은 펑펑 울었고, 강은성은 정원에게 손수건을 건넸다.


“감사합니다, 프로듀서님. 훌쩍.”


정원이 사라지고, 갈 곳 잃은 손수건만 공중에서 나풀거리며 바닥에 떨어졌다.


[다음으로 ‘양설희’를 불러오겠습니다.]


어느새 나타난 양설희가 바닥에 떨어진 손수건을 주워 강은성에게 돌려주었다.


“프로듀서님, 안녕하세요! 세계 최강의 아이돌이 목표인 양설희 인사드립니다!”


밝게 인사한 양설희는 아까 정원이 앉아 있던 의자에 앉았다.


“사실은 그 목표가 진짜 제가 생각한 목표가 맞는지 확신이 서지 않을 때가 있어요.”


“확신?”


“네. 처음에 아역배우로 연예계 들어왔을 때는 엄마가 하라는 대로 했거든요. 키즈 모델도 다 엄마가 스케줄 잡아 오고.”


양설희는 한숨을 쉬었다.


“그렇다고 인제 와서 다른 공부를 하자니 다른 애들하고 경쟁이 안 될 것 같아요. 제가 욕심이 많은 편이라 목표를 세계 최강 아이돌로 잡긴 했는데, 이건 진짜 제 자유의지로 정한 진로일까요?”


강은성이 뭐라고 대답해 줘야 하나 머리를 굴리고 있을 때, 양설희가 씨익 웃었다.


“걱정하지 마세요. 어떻게든 되겠죠.”


그렇게 역으로 강은성을 위로한 양설희가 사라지고, 댄스 플로어와 의자와 테이블도 사라졌다.


모든 게 사라지자, 다시 드넓은 밀밭만이 펼쳐져 있었다.


밀밭을 헤치며 걸어가던 강은성의 눈에 뭔가 빨간 게 보였다.


그건, 회귀 전 피투성이가 된 강은성의 몸을 덮었던, 그리고 회귀 후 시계가 흡수한, 피 묻은 연예기획사 명함 뭉치였다.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자, 시계에서 알림이 울렸다.


[5분이 지나, ‘강은성’에 대한 설득을 종료합니다.]


[언제나 판단은 시전자의 몫입니다. 행운이 따르시길 바라며, 환상 속의 세계를 종료하겠습니다.]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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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밝은 빛을 바라보며 살기 위해 (1) 24.09.04 24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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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가랏, 프롤레타리아 (1) 24.09.02 25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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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최고의 육성 계획 (2) 24.08.23 57 1 12쪽
7 최고의 육성 계획 (1) 24.08.22 62 2 11쪽
6 데뷔조를 지켜라 (3) 24.08.21 71 3 12쪽
5 데뷔조를 지켜라 (2) 24.08.20 76 4 12쪽
4 데뷔조를 지켜라 (1) 24.08.19 87 3 13쪽
3 시계가 명함을 삼킴 24.08.18 117 4 12쪽
2 이번 생은 걸그룹 프로듀서 24.08.17 151 5 14쪽
1 배우 매니저, 회귀하다 +1 24.08.16 221 6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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