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량한 악인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새글

불량학생
그림/삽화
초코와플
작품등록일 :
2024.08.16 14:56
최근연재일 :
2024.09.17 09:03
연재수 :
28 회
조회수 :
636
추천수 :
1
글자수 :
146,193

작성
24.08.21 08:16
조회
67
추천
1
글자
12쪽

부당한 거래

DUMMY

“세 분께서는 잠시 뒤에 일본으로 가시게 될 겁니다. ”


검은 정장을 깔끔하게 차려 입은 장신의 남자가 무표정하게 말을 내뱉었다.


난데없이 일본으로 가게 될 것이라는 통보에 앞에 선 세 사람은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남자를 멀뚱히 바라보았다.


일이 이렇게 된 것은 약 40분 전의 일이었다.


정훈, 그의 남동생 김주원 그리고 여동생 최예린은 일과를 마치고 숙소에서 거의 쓰러지다시피 한 채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그런데 별안간 방 문이 둔탁하게 울렸다.


그 소리에 잠이 깬 정훈은 표정을 살짝 구기고는 이불 속에서 주섬주섬 몸을 일으켜 문 앞으로 향했다.


여기저기 크고 작은 흠집이 난 문을 살짝 밀어 열자 앞에는 얼마 전에 새로 들어온 조직원 한 명이 긴장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정훈은 불쾌한 감정을 드러내듯 묵직하게 말을 던졌다.


“..무슨 일이지?”


조직원은 바로 입을 열지 못하고 무어라 우물거리더니 겨우 입을 떼어 목소리를 흘렸다.


“저..강태 형님께서 부르셨습니다..”


정훈은 잠시 인상을 구기며 뒷머리를 벅벅 긁더니 눈을 얇게 떴다.


“흠..박강태를 얘기하는 건가?”


“예..”


정훈은 그 이름을 알고 있었다.


조직에서 주로 대외 거래를 담당하는 중간 간부 격으로 다른 조직들로부터 물건을 사들이거나 파는 일을 하는 녀석이었다.


평소에 정훈과 연결점도 별로 없고 같이 일을 할만한 경우도 거의 없었기 때문에 이름 정도만 아는 사이였다.


잠시 침묵하던 정훈이 조직원에게 입을 열었다.


“박강태가 누굴 불렀다는 거지?”


“세 분 모두입니다.”


기분이 그리 유쾌하지는 못했다.


자신은 날 때부터 조직에서 컸고 동생들도 아주 어렸을 때부터 조직에 있었기에 박강태가 조직에서 몸 담은 시간보다도 오랫동안 조직에서 있었다.


즉, 박강태가 직접 찾아온다면 몰라도 호출할 정도의 위치는 되지 않았다.


“그 놈이 우리한테 오라 가라 할 정도였나?”


정훈의 얼굴에 살짝 핏줄이 돋아나자 조직원이 식은땀을 흘리며 손을 가지런히 모았다.


“아주 급한 일이라고 어떻게든 모셔 오라고 하셨습니다..제 사정도 좀 이해해 주십시오..”


정훈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안 간다고 버텨봐야 돌아갈 낌새는 보이지 않았다.


“밖에서 기다려라. 동생들 깨워서 바로 나가지.”


정훈은 문을 닫고 안으로 들어왔다.


아까의 대화 소리가 들렸던 탓인지 동생들은 이미 깨어 있었다.


“깼나? 그럼 바로 준비하면 되겠군.”


김주원은 잠이 덜 깼는지 비몽사몽한 상태로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형..무슨 일이야? 이 시간에..”


“박강태가 우릴 불렀다는군. 짜증나지만 급한 일인지 신참보고 어떻게든 우리를 데려오라고 했어. 얼굴만 비춰주고 바로 돌아오자고.”


최예린이 눈을 비비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으으..나 피곤한데..그냥 안 가면 안 돼?”


“나도 쉬고 싶은 마음은 같다만 신참한테 얘기한 걸 보면 급하긴 한 모양이야. 최대한 빨리 끝내고 오자.”


상황 설명을 마친 정훈은 동생들을 데리고 방 밖으로 나왔다.


밖에서는 아까의 조직원이 겨우 안도한 표정으로 바보 같이 웃으며 뻣뻣하게 서 있었다.


“강태가 있는 곳으로 안내해라. 빨리 끝내고 다시 자고 싶으니까.”


“예! 바로 안내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건물을 빠져나와 골목으로 나오니 지나가는 사람들은 비틀거리는 주정뱅이나 모여서 뻐끔뻐끔 담배 연기를 내뿜는 불량아들 정도 뿐이었다.


원래라면 구역에서 헛짓거리 하는 놈들을 정리하고 적당히 돌려보내야 했지만 이미 업무 시간도 끝났고 자다가 나온 상태였기에 오늘은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지나가는 사람들을 무시하고 어두운 거리를 몇 개 정도 지나 조금 걷자 곧 바다쪽으로 넓게 뻗은 거대한 시설이 나타났다.


곳곳에서 보이는 컨테이너와 바다에 정박한 거대한 배들 덕에 정훈은 단번에 이곳이 항구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이 밤중에 박강태가 왜 자신과 동생들을 항구로 불러낸 것인지 이유는 알 수 없었으나 묘한 불안감이 담긴 의문을 품고서 안내를 계속해서 따라가니 사람이라고는 한 명도 보이지 않는 어두운 항구 끄트머리에 박강태가 뒷짐을 지고 서 있었다.


그렇게 피곤한 상태로 동생들을 깨워 항구까지 왔건만 별다른 예고도 없이 일본으로 가게 될 것이라는 말을 들은 것이었다.


“지금..내가 네 농담이나 들어주러 나온 걸로 보이나?”


정훈은 낮은 목소리로 말했지만 그 속에 담긴 분노는 전혀 지워지지 않았다.


“농담 같은 게 아닙니다. 오래전부터 거래해왔던 일본 조직과 약속이 예정되어있습니다.”


“난 모르는 일이야. 약속이 있으면 네가 처리하면 될 일이지 왜 나랑 내 동생들까지 데리고 가는 거지?”


“새 사업을 추진하기로 해서 말입니다. 아시지 않습니까? 요즘 한국에서 눈에 불을 켜고 마약 단속하는 거. 그래서 새로운 루트를 파려고 이쪽에 연락을 해왔다는군요. 그런데 그런 중요한 자리에 저만 보내기에는 부족하시다고 큰 형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정훈은 두 손을 주머니에 넣고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보스와 만나서 직접 얘기해 봐야겠군. 지금 어디 계시지?”


“안됩니다. 시간이 촉박합니다. 지금 바로 배에 올라 주셔야겠습니다.”


“입 다물어. 지금 이 상황에 대해서 제대로 된 설명 정도는 들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나?”


동생들에게 따라오라는 손짓을 하고 뒤를 돌자 정훈 앞으로 열댓명 정도 되는 조직원이 길을 막고 섰다.


“..어디 해보겠다는 건가?”


정훈이 눈을 매섭게 뜨며 무리를 바라보자 사이에 끼어있던 남자가 앞으로 나왔다.


“그게 아닙니다. 형님..저희가 싸움을 벌이기라도 한다면 주변의 이목을 끌게 될 텐데 뭣 하러 그런 짓을 벌이겠습니까? 다만 급한 일이라서 그렇습니다. 이번 한 번만 이해해주십시오.”


단체로 정훈에게 허리를 직각으로 굽히자 박강태가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


“딱히 문제 될 것도 없으시잖습니까? 일본어도 할 줄 아시고.”


정훈과 주원은 조직 생활을 하면서 유달리 일본의 불량 교환학생들과 대치하는 일이 많았는데 상황이 끝나고 취조를 할 때면 녀석들이 통 한국말을 모른다며 잡아뗐기에 직접 일본어를 터득하는 경지에 이르게 되었다.


그러나 박강태의 말 이후로 정훈의 표정이 급격히 굳는 것을 본 주원이 재빨리 끼어들었다.


“그런 문제가 아니라 이런 일이 있기 전에 언질이라도 미리 해주셔야 준비를 제대로 하죠. 오늘 갑자기 불러내서 이러니 형 기분이 좋을 수가 있겠습니까?”


박강태는 고개를 살짝 숙이고 태도를 누그러뜨렸다.


“죄송합니다. 그 점에 대해서는 사과드리겠습니다. 워낙에 예민한 사안이다보니 양 조직 간에 이 일이 아주 긴밀하고 조심스럽게 진행된 것 같더군요. 저도 오늘에서야 알게되었습니다. 아마 평소에 대외 거래를 하다 보니 형님보다도 제가 먼저 알게 된 거겠죠.”


정훈은 체념한 듯이 말을 받았다.


“그럼 저쪽에서 오는 게 아니라 우리가 굳이 일본까지 가는 이유는?”


“뭐..큰 형님께서 새 사업 시작하는데 성의는 보여야 하지 않겠냐면서 사람을 보내겠다고 하셨답니다.”


“하여간..”


자신의 감정을 여과 없이 표정으로 드러내며 머리를 긁던 정훈은 무언가 생각난 듯 입을 열었다.


“잠깐..조직에서 어느 정도 실무를 담당했던 주원이는 그렇다 치고 예린이는 왜 같이 가는 거지?”


평소에 정훈이 걱정을 많이 했기 때문에 최예린은 조직의 일도 하지 않고 지원도 받지 않으며 오로지 정훈과 주원에게 키워지듯이 같이 지냈다.


따라서 예린이까지 조직의 일인 거래에 따라갈 일은 평소 같았으면 없을 터였다.


박강태는 얼굴에 빙글거리는 웃음을 띄웠다.


“평소에 형님께서 여동생 분 아끼시는 걸 알기 때문에 큰 형님께서 배려해주신 걸 겁니다. 옆에 없으면 항상 걱정하신다고 들었는데..”


박강태는 조직 안에서 크게 유명하지 않았던 것에 반해 정훈은 실무 능력을 인정받아 유명했기 때문에 그에 대한 여러 이야기가 조직 안에서 돌았는데 그 중 하나가 여동생을 지극히 아끼고 걱정한다는 것이었다.


대부분의 소문은 과장된 것이었지만 여동생을 아낀다는 것 만큼은 유일하게 정확한 소문이었다.


약간의 부끄러움과 달아오르는 얼굴에 정훈은 곧바로 표정을 고치고 박강태를 노려보았다.


“..쓸데없는 얘기는 그만두고 배로 안내나 해.”


박강태는 몸을 약간 떨며 소리 없이 웃고는 손으로 길 안쪽을 가리켰다.


“이쪽으로 오시면 됩니다.”


박강태를 따라 바닷가 쪽으로 향하자 항구의 규모와는 맞지 않는 작은 어선 하나가 약한 파도에 흔들거리며 끈으로 묶여있었다.


잠시 고민하던 정훈은 동생들을 데리고 조직원 무리와 함께 배에 올라탔다.


세 사람이 승선하자 눈으로 인원을 파악하던 박강태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조종실로 향했다.


*


같은 시각 일본의 도쿄항, 아키바 카케오는 배에 승선한 남자들에게 좌표가 적힌 종이와 함께 몇 장의 사진을 건네주었다.


“중요한 놈들이니까 조심히 데려와라.”


얼굴에 흉터가 난자한 남자는 짧게 대답한 후 안쪽으로 들어가 배를 천천히 움직였다.


먼 바다 쪽으로 사라져가는 배를 바라보던 카케오는 휴대폰을 꺼내 귀로 가져갔다.


“네, 방금 출발 시켰습니다. 꼭 무사히 데려오겠습니다. 그럼 미끼 사냥을 준비할 수 있게 몇 명 정도 지원을 붙여주십시오.”


통화를 종료하고 주머니에 휴대폰을 집어넣은 카케오는 선착장을 떠나 성큼성큼 컨테이너가 널부러진 길 안쪽으로 걸어 들어갔다.


*


부산항을 떠나 2시간 정도 이동하자 배는 바다 한가운데에 멈춰섰다.


그러자 박강태가 일어서서 뱃머리로 향하더니 품에서 망원경을 꺼내 주변을 살피기 시작했다.


한동안 망원경으로 이리저리 시선을 옮기던 박강태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망원경을 내렸다.


그리고 정훈과 그의 동생들에게 다가가 입을 열었다.


“슬슬 준비해 주십시오. 일본 배가 이쪽을 향해 오고 있습니다.”


정훈은 몸을 일으켜 뱃머리 쪽으로 향했다.


곧 멀리서 희미한 등을 켜고서 물살을 가르는 배가 눈에 들어왔다.


배는 점점 가까이 다가오더니 이윽고 정훈이 타고 있는 배 바로 옆에 붙었다.


박강태가 배의 옆 쪽에 서자 안쪽에서 큰 체구의 남자 몇 명이 나와 대열을 갖췄다.


그러나 그 중에서 얼굴에 흉터가 가득한 남자 한 명만이 대열에 합류하지 않고 앞으로 나왔다.


“거래를 진행하러 온 후쿠입니다.”


“마찬가지로 거래를 진행하러 온 박강태입니다.”


정훈은 두 사람 사이에 분위기를 읽었다.


마치 서로 여러 번 보기라도 했다는 듯 익숙한 분위기였다.


박강태는 분명 두 조직 간의 거래가 은밀하게 진행됐기에 자신도 거래가 있다는 걸 오늘 알았다고 얘기했다.


생각해보면 이상한 일이었다.


은밀하게 진행된 거래 이야기가 어떻게 박강태를 따라온 하위 조직원들까지 알고서 자신에게 한 번만 이해해달라고 부탁할 수 있었을까?


정작 조직 안에서 대부분의 실무를 담당하고 있었던 정훈은 일본 조직과 거래를 해왔다는 사실 자체도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조직은 기본적으로 대외 거래든 영역 싸움이든 최종적인 사안을 보스에게 올리기 전에 어떻게든 정훈을 한 번은 거치는 행정 구조를 갖고 있었다.


즉, 정훈이 두 조직 간의 거래를 몰랐다는 얘기는 자신보다 위쪽에서 의도적으로 정보가 정훈 쪽으로 흐르는 것을 막고 있었다는 얘기였다.


보통 조직에서 특정 인물에게만 정보를 막고 일을 진행한다는 것은 한 가지 경우밖에 없었다.


정훈은 박강태와 남자 사이의 모습을 살피다 동생들에게만 들리도록 나지막이 말을 뱉었다.


“..뒤로 물러나.”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선량한 악인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28 정복 NEW 20시간 전 4 0 12쪽
27 함정 24.09.16 9 0 12쪽
26 강제 진압 24.09.15 7 0 11쪽
25 길거리 강도 24.09.14 7 0 12쪽
24 결자해지(結者解之) 24.09.13 11 0 12쪽
23 심문(2) 24.09.12 11 0 11쪽
22 심문 24.09.11 10 0 12쪽
21 성동격서(聲東擊西) 24.09.10 10 0 12쪽
20 밀회 24.09.09 12 0 12쪽
19 준비 24.09.08 12 0 12쪽
18 작전 24.09.07 14 0 11쪽
17 침투 24.09.06 13 0 11쪽
16 시험 24.09.05 15 0 11쪽
15 재회 24.09.04 15 0 11쪽
14 스승 24.09.03 22 0 12쪽
13 경고 24.09.02 16 0 12쪽
12 계약 24.09.01 16 0 12쪽
11 공성전 24.08.31 17 0 12쪽
10 데뷔전 24.08.30 17 0 11쪽
9 태동(胎動) 24.08.29 20 0 12쪽
8 심문 24.08.28 23 0 12쪽
7 발각 24.08.27 23 0 12쪽
6 잠입 24.08.26 24 0 11쪽
5 쇼핑 24.08.25 28 0 12쪽
4 화끈한 신고식 24.08.24 36 0 12쪽
3 탐색 24.08.23 46 0 11쪽
2 부탁 아닌 부탁 24.08.22 131 0 12쪽
» 부당한 거래 24.08.21 68 1 1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