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량한 악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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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량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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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24.08.16 14:56
최근연재일 :
2024.09.17 09:03
연재수 :
28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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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6,1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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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3 0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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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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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UMMY

“..꽤나 무리한 부탁이군.”


“걱정 말게. 이 일에 관한 거라면 내 지원을 아낌없이 해 줄 테니.”


정훈의 숨이 잔잔하게 잦아들자 젠이치는 입가에 주름진 미소를 지으며 다시금 물었다.


“그래..다시 묻지만 자네들이 정훈..그리고 김주원이 맞나?”


“..네”


정훈은 입을 열지 않고 작게 고개만 끄덕였다.


젠이치는 곧 고개를 들어 비장한 표정으로 벽 쪽에 서있는 야쿠자에게 시선을 옮겼다.


“어이 거기! 여기 이 친구들을 숙소로 안내해주게.”


그러자 야쿠자는 정중하게 모았던 손을 풀고 두 형제에게 다가와 팔을 붙들고 일으켜 세웠다.


정훈과 주원은 비틀거리면서도 조심스럽게 걸음을 옮겨 사무실을 빠져나갔다.


그 상태로 허름한 방 문 앞에 도착할 때까지 야쿠자는 두 사람에게 말을 한 마디도 꺼내지 않았다.


“여기가 앞으로 너희들이 지낼 곳이다. 안으로 들어가서 정리는 알아서 하라고.”


말을 마친 야쿠자는 그대로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등을 돌려 걸어가는 야쿠자를 눈으로 한참이나 바라보던 정훈은 정신을 차리고 문으로 시선을 돌렸다.


모서리 부분부터 시작해 곳곳에 무언가 흘러내린듯한 자국이 눈에 들어왔다.


관리를 하지 않고 오래도록 방치한 것인지 문고리 주변은 녹이 슬어 붉은 빛의 철금속이 비릿한 향을 풍겼고 문을 열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인 문고리는 반쯤 튀어나와 있을 정도로 헐거워진 상태였다.


정훈은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 같은 문고리를 잡고 돌렸다.


문 틈 사이로 퀴퀴한 냄새가 풍겨와 정훈은 잠시 손을 멈추고 인상을 구겼다.


“윽..이게 무슨 냄새지?”


주원 역시 불쾌한 건 마찬가지인 것 같았다.


겨우 문고리를 끝까지 당겨 방 안을 훑어보자 브라운관 TV 하나와 발코니, 창문, 그리고 작은 침대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벽지는 오래 되었는지 누렇게 색이 바랬고 곳곳에 곰팡이가 피어 있었으며 환기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공기 중에 회색 먼지가 이리저리 날아다녔다.


정훈과 주원은 떨어지지 않는 발을 겨우 움직여 현관으로 들어왔다.


어째 먼지가 얼굴에 달라붙는 느낌에 정훈은 팔로 코와 입을 감싸고 발코니로 가 창문부터 당겼다.


“으윽..”


하단의 창틀이 창문과 맞지 않아 상당히 뻑뻑한 느낌이 손으로 전해졌다.


정훈은 팔에 핏줄을 돋우며 창문을 힘차게 제꼈다.


창문은 날카롭다고 느껴질 만큼 불쾌한 굉음으로 정훈의 귀를 울리더니 반대쪽에 강하게 부딪히며 완전히 열렸다.


그제서야 정훈은 팔을 내리고 숨을 제대로 쉬었다.


뒤쪽에서 침대에 누운 주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형..우리 이제 어떡하면 좋지?”


“넌 걱정하지 말고 잘 따라오기만 해. 예린이는 내가 어떻게든..”


정훈도 사실 막막했지만 안 그래도 불안한 동생에게 신세 한탄을 해봐야 상황을 더 악화시킬 뿐이었다.


정훈은 주원의 옆에 나란히 누워 눈을 살포시 감았다.


조직 생활은 순항이었던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부모도 모르고 태어나 직후부터 조직에서 자랐다.


그에게 주어진 삶이란 고통과 경쟁, 모략으로 가득한 지독한 생존 게임이었다.


제대로 된 출생 신고조차 이루어지지 않아 국가의 지원은 기대도 할 수 없었으며 학교를 다니는 것은 아예 불가능했다.


때문에 어떻게든 조직에서 살아남겠다는 일념 하나로 폐지를 있는대로 긁어모아 악착같이 지식을 쌓으며 조직 생활을 이어나갔다.


그러나 그런 그에게도 7살 무렵이 되어서야 겨우 동생이라는 안식처가 생기게 되었다.


김주원은 어릴 때 부모님으로부터 버려져 소매치기나 하면서 홀로 길거리 생활을 전전하다가 조직으로 들어왔고 최예린은 아동 학대로 인해 부모님이 감옥에 있는 상태에서 우연히 조직으로 흘러들어왔다.


정훈은 비록 피가 이어지지는 않았으나 주원을 친동생처럼 생각했고 예린을 마치 자신의 딸처럼 갖은 위험으로부터 보호하면서 키웠다.


그에게는 그렇게 만난 동생들이 세상에서 유일한 가족이었으며 또한 쉼터였다.


그렇기에 이번 일은 그에게 있어서 큰 충격이었다.


*


사람이 전부 빠져나가고 조용한 사무실 안에 오직 젠이치의 목소리만이 공허하게 사무실을 울렸다.


“네, 방금 도착해서 방에 들어가 있습니다.”


젠이치는 노랗게 밝은 빛을 차갑게 내뿜는 스탠드의 버튼을 눌러 꺼버렸다.


이제 어두운 사무실에는 휴대폰 화면에서 흘러나오는 희미한 불빛만이 젠이치의 얼굴을 옅게 비추고있었다.


“무대 개막했으니까 원하시는대로 곧 연극이 시작될 겁니다. 그런데..정말 이대로 진행해도 괜찮으시겠습니까?”


휴대폰 너머로 들려온 답변에 젠이치는 시선을 떨어트리며 책상 가운데로 시선을 옮겼다.


“..주제넘은 발언을 용서해주십시오. 네, 이만 통화를 종료하겠습니다.”


젠이치는 전화가 끊어진 휴대폰을 책상에 내려놓았다.


“···..”


자신으로서는 이 남자가 무슨 생각으로 이런 짓을 벌이려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한 가지 사실은 분명했다.


“만약에 문제가 생긴다면..”


젠이치는 등 뒤가 차가워지는 걸 느끼고는 생각을 바로잡았다.


그런 일은 생기게 둘 수 없었다.


*


수화기를 내려놓은 남자는 고민하듯 잠시 책상을 손가락으로 두드리더니 책상 아래에서 두꺼운 책을 꺼냈다.


오래 사용한 만큼 끝 부분은 닳아서 허름해져 있었고 종이는 누렇게 변색되어있었다.


남자는 능숙하게 책을 넘겨 백지 부분을 찾아냈다.


그리고 책상 모서리 부분에 정렬된 필기구를 잠시 바라보더니 가장 위쪽에 있는 검은색 만년필을 꺼내들었다.


그대로 막힘없이 종이에 글씨를 적어내려가던 남자는 거의 한 바닥을 채운 시점에서야 만년필을 내려놓고 종이를 확인하더니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책을 덮었다.


“드디어..시작인가..기대되는군..”


사무실 안 남자의 낮은 웃음이 메아리 퍼지듯 고요히 울렸다.


*


“이거 놔요! 이러지 마세요..”


예린은 격렬히 몸을 흔들며 눈 앞에 있는 남자를 노려보았다.


“여기서 널 도와줄 사람은 없어. 그러니 그만 포기해.”


남자는 예린의 저항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예린에게 손을 뻗었다.


“너무 걱정은 하지 말라고. 난 꽤 상냥한 편이거든..”


“으흐윽..오빠아..”


남자의 뒤로 수많은 시선들이 큭큭 웃으며 예린과 남자를 바라보았다.


예린은 몸을 비틀면서 저항하다가 허리가 잡히자 더는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었다.


*


쨍한 아침 햇살이 정훈과 주원의 눈을 찔러들었다.


“으윽..꿈이 아니었나 보군..”


정훈이 침대에서 몸을 뻣뻣하게 일으켰다.


곧이어 주원도 인상을 찡그리며 눈을 부스스 떴다.


“으음..형..잘 잤어?”


“전혀.”


“나도 마찬가지야..근데 우리 이제 뭘 어떻게 해야 하는 거야?”


정훈은 침대에 걸터앉은 채로 허리를 숙여 오른손으로 이마를 문질렀다.


“음..내가 알기로 가부키초는 거의 야쿠자의 구역이야. 각종 유흥시설이 있고 경찰 대신에 야쿠자가 순찰을 돌며 거리의 치안을 관리하지..성매매나 지나가던 관광객이 객기 부리다가 팔 하나 잘못되는 것도 흔한 일이라고 들었어..하지만 나도 이쪽의 세력권에 대해서는 잘 몰라.”


“응..일단 세력권을 알아내는 것부터 시작이구나..”


“이런 동네에서 대낮부터 정보를 구하기는 쉽지 않을 거야. 대부분 그 놈들의 영업장은 야간에 운영할 테니까. 그리고 지금부터 돌아다니기에는 너무 눈에 띄어.”


“하지만 이라고 있을 시간에 예린이가 무슨 짓을 당할지 모르는데.."


“당연히..그냥 손 놓고 있을 수야 없지. 우선 이 본거지를 돌아다니면서 정보를 탐색해 보는 게 좋겠어.”


일어서는 순간 주원의 배에서 꼬르륵 하는 소리가 울렸다.


“······”


“그래..뭐..어제부터 아무 것도 못 먹었으니..배가 고플 만도 하지..탕비실 같은 걸 찾아서 대충 때우자고.”


주원과 정훈은 일단 방 밖으로 나왔다.


그러나 본거지의 구조를 잘 몰랐기에 곧 길을 헤맸다.


“형..근데 우리 어디로 가야 하는 거야?”


“뭐..길은 다 통하게 되어있다고 하니까..찾다 보면 나오겠지.”


정훈은 계단의 위치만 겨우 떠올려 1층으로 내려갔다.


“3층에는 숙소가 있었고..1층에는 뭐가 있으려나..”


여러 갈래로 나눠진 복도를 뒤지고 뒤져 정훈은 겨우 휴게실이라고 적혀있는 방을 찾았다.


“여기 들어가서 먹을 게 있는지 한 번 찾아보자고,”


정훈은 문고리를 돌리고 방 안으로 들어갔다.


안에는 사각형의 플라스틱 테이블과 철제 휴대용 의자 그리고 서랍장과 정수기가 있었다.


정훈은 망설이지 않고 서랍장부터 열어보았다.


안에는 커피 믹스 한 통과 과자 몇 봉지 그리고 컵라면이 몇 개가 가지런히 정리되어있었다.


정훈은 안에서 컵라면 두 개를 꺼내들었다.


“이거라도 먹자.”


정훈은 컵라면 하나를 주원에게 내밀었다.


주원은 고개를 끄덕이고서는 컵라면 하나를 양손으로 받아들었다.


컵라면에 정수기 물을 붓고서 두 사람은 테이블 위에 컵라면을 올려두었다.


멍한 정신 때문인지 두 사람 사이에 잠시 적막이 흘렀다.


고요한 공기를 먼저 깨트린 것은 주원이었다.


“형, 그래서 여기서 정보를 어떻게 수집할 생각인데?”


정훈은 멍한 정신을 깨워 입을 열었다.


“놈들은 가부키초에 영역을 두고 있다고 말했어. 그렇다면 같이 경쟁하는 놈들에 대한 정보는 알고 있겠지.”


“그래서?”


“젠이치..그 노인네한테 물어보는 수밖에.”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데..그냥 건물 내부를 돌아다니면서 서류 같은 걸 찾아보는 게 낫지 않겠어? 예린이를 찾을 수 있을 지도 모르잖아?”


“나도 그러고 싶지만 건물 구조도 자세히 모르고 의심을 살 수도 있어서 위험성이 커. 차라리 직접 묻는 편이 더 나을 거야.”


“···”


“불만족스러운 건 나도 마찬가지야.”


더 이상의 대화 소재를 찾을 수 없었던 정훈과 주원은 컵라면 뚜껑을 열고 순식간에 컵라면 하나를 비웠다.


뒷정리를 마친 그들은 휴게실을 나오다가 어제 자신들에게 방을 안내해준 야쿠자와 마주쳤다.


“아..네놈들이었나? 안 그래도 방에 없길래 찾고 있었는데 잘 됐군. 두목께서 찾으신다. 따라와.”


정훈과 주원은 어리둥절한 표정 그대로 야쿠자를 따라 젠이치의 사무실까지 도착했다.


“아, 왔는가. 자네 수고했네. 그만 가봐도 좋아.”


야쿠자는 허리를 꾸벅 숙여 젠이치에게 정중히 인사를 하더니 조용히 사무실 밖으로 나갔다.


“우릴 왜 찾았지?”


젠이치는 잠시 침묵하더니 서류 몇 장을 정훈에게 건네며 말했다.


“그래. 자네들을 부른 이유는 이거 때문이네.”


“..이건..”


“자네가 점령해야 할 조직들에 대한 정보일세. 지금쯤 막막할거라 생각해서 그걸 전해주려고 불렀지.”


정훈은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젠이치를 노려보았다.


“그렇게 볼 필요까진 없잖나. 난 이 일에 관해서는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분명이 말했네. 아, 그리고 오늘 저녁에 그리로 사람을 하나 보낼 터이니 알고 있게”


“또 무슨 짓을 벌이려고..”


젠이치는 씨익 웃으며 말했다.


“그때 되면 알게 될 걸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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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정복 NEW 20시간 전 4 0 12쪽
27 함정 24.09.16 9 0 12쪽
26 강제 진압 24.09.15 7 0 11쪽
25 길거리 강도 24.09.14 7 0 12쪽
24 결자해지(結者解之) 24.09.13 11 0 12쪽
23 심문(2) 24.09.12 11 0 11쪽
22 심문 24.09.11 9 0 12쪽
21 성동격서(聲東擊西) 24.09.10 10 0 12쪽
20 밀회 24.09.09 11 0 12쪽
19 준비 24.09.08 11 0 12쪽
18 작전 24.09.07 14 0 11쪽
17 침투 24.09.06 12 0 11쪽
16 시험 24.09.05 14 0 11쪽
15 재회 24.09.04 15 0 11쪽
14 스승 24.09.03 21 0 12쪽
13 경고 24.09.02 15 0 12쪽
12 계약 24.09.01 16 0 12쪽
11 공성전 24.08.31 17 0 12쪽
10 데뷔전 24.08.30 17 0 11쪽
9 태동(胎動) 24.08.29 19 0 12쪽
8 심문 24.08.28 23 0 12쪽
7 발각 24.08.27 23 0 12쪽
6 잠입 24.08.26 24 0 11쪽
5 쇼핑 24.08.25 28 0 12쪽
4 화끈한 신고식 24.08.24 36 0 12쪽
» 탐색 24.08.23 46 0 11쪽
2 부탁 아닌 부탁 24.08.22 130 0 12쪽
1 부당한 거래 24.08.21 67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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