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량한 악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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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량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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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24.08.16 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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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7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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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9 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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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태동(胎動)

DUMMY

*


찔러드는 아침 햇빛에 정훈은 인상을 찌푸리며 눈을 떴다.


“으으..”


바닥에는 어제 에리카에게 받은 서류들이 제멋대로 흐트러져 있었다.


정훈은 머리를 긁적이더니 주원을 흔들어 깨웠다.


“어엉..형..”


“슬슬 일어나라. 가야 할 곳이 있으니까.”


“뭐..어디..?”


“어제 서류에서 본 놈들..알아보러 가야지.”


그제서야 주원도 주섬주섬 침대에서 일어나 기지개를 폈다.


“어디 가는데..?”


“..그 노인네한테 문안 인사 한 번 드리러 가자고.”


정훈과 주원은 대충 사람이 불쾌하지 않을 정도로만 모습을 단정하게 한 후에 젠이치의 사무실로 찾아갔다.


형식적으로 노크를 한 뒤에 사무실로 들어가자 그 안에는 젠이치가 일어서서 창 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자네들인가. 이리 와서 앉게.”


젠이치의 얼굴에 약간의 불편함이 서렸다가 이내 사라졌다.


정훈은 사무실 안을 슥 훑어보았다.


이번에 새로 장만을 한 것인지 사무실 책상 앞에는 고급스러워 보이는 흰색 가죽 소파가 회의 대형으로 배치되어있었다.


젠이치가 시선을 의식한 듯 웃고서 상석에 앉자 그 앞에 정훈과 주원이 나란히 앉았다.


“그래 무슨 일인가?”


정훈은 말없이 어제 에리카에게 받은 서류 더미를 내밀었다.


“이게 뭔가?”


“자야카케구미의 커넥션.”


젠이치는 종이를 넘겨가며 조금이지만 놀란 표정을 지었다.


“놈들은 고리대금업을 통해서 정/재계 인사들을 서로 연결 시켜 주면서 세력을 불린 것 같더군. 그리고 거기 있는 VIP리스트 좀 봐”


젠이치는 서류를 들여다보더니 작게 숨을 들이켰다.


“케베는 현 내각 의원이지. 그런데 그런 양반이 M사의 이사 하고 자야카케구미를 거쳐서 커넥션을 만들었어.”


“···..”


“해서 노리츠키와 케베 각각에 대한 조사를 진행하려고 하는데..”


“무슨 문제지?”


“그 두 사람 말고도 명단이 계속 이어져 있는 걸로 봐서는 자야카케구미가 단독으로 이렇게 촘촘한 커넥션을 만들었다고 보기 어려워. 솔직히 거리에서 얻을 수 있는 정보도 한정적이고. 그래서 뭔가 도움이 될 만한 정보통을 가지고있는지 해서 찾아왔지.”


젠이치는 잠시 턱을 매만지더니 말했다.


“음..키를 소개해줘야겠구만.”


그러더니 자신의 책상으로 가 옆에 있는 책꽂이에 무언가의 종이를 꺼내 내밀었다.


정훈이 한 손으로 종이를 받아 내용을 확인하자 이리저리 선이 그어져 있는 그림이 여기저기 튀어나온 모양새로 인쇄돼있었다.


바로 본부의 건물 설계도였다.


젠이치는 설계도의 한 곳을 손가락으로 짚었다.


“거기 표시된 곳으로 가면 한 놈 자빠져 있을걸세. 깨워서 도와달라고 하면 될 게야.”


종이를 받아든 정훈은 얼마간 말이 없더니 입을 뗐다.


“···예린이는?”


젠이치가 눈치채지 못하도록 빠르게 설계도를 둘러보았지만 최예린이 잡혀있을 만큼 수상한 곳은 보이지 않았다.


“..걱정 말게. 잘 데리고 있네.”


젠이치의 대답이 반 박자 느리자 정훈의 눈썹이 살짝 위로 올라갔다.


길거리에서 사람이 대답을 늦게 하는 경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그러나 그 이유는 언제나 좋지 못한 결말로 이어지곤 했다.


정훈이 차가운 눈빛으로 젠이치를 노려보았으나 젠이치는 흔들림 하나 없이 평온함을 유지했다.


잠시 정적을 유지하던 정훈과 주원은 자리에서 일어나 사무실 밖을 나섰다.


혼자 남은 젠이치는 무어라 알아들을 수 없게 나지막히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밖으로 나오자마자 주원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게 따지고 들었다.


“아니 형 그러다가 예린이가 잘못되면 어쩌려고 그러는 거야?”


“큰 변화가 없더라도..튼튼하게 세워진 책장을 조금이라도 흔들어보느냐 아니면 그대로 두느냐의 차이는 커.”


시간이 지나 그 흔들림 때문에 작은 균열이라도 생긴다면 그걸로 족했다.


그러나 주원은 전혀 이해하지 못한 눈빛으로 정훈을 바라보았다.


“됐다. 그냥 따라와.”


정훈이 한숨을 내쉬며 설계도를 보고 앞장을 서자 주원은 급하게 그 뒤를 따라나섰다.


배치도와 구조를 비교하면서 복도를 걸어가니 두 사람은 곧 한 사무실에 다다랐다.


노크 없이 문을 열고 들어갔으나 불빛이라고는 구석의 책상 위에 있는 컴퓨터 화면 밖에 보이지 않았기에 정훈은 무의식적으로 책상 쪽에 다가갔다.


그리고 곧 폐인처럼 책상 앞에 널부러져 자고 있는 남자가 정훈의 발에 걸렸다.


자다가 떨어졌는지 뒤쪽에는 제멋대로 널부러진 의자가 나뒹굴었다.


정훈은 불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손을 주머니에 넣고 남자를 툭툭 찼다.


반응이 없던 남자는 몇 번을 더 건드리자 귀찮은 듯한 소리를 내며 눈을 떴다.


“으음..잘자고 있었는데 누가 날 깨운거야?”


“미안하지만 일어나주겠나? 부탁할 일이 있어.”


남자는 세상 힘 빠지는 소리를 내고서는 힘없이 몸을 일으켰다.


“누구한테 얘기 듣고 왔어? 난 영감 직속이라서 그 영감 지시 아니면 안 할..”


슬슬 신경질이 날 참이었기에 정훈은 중간에 남자의 말을 잘랐다.


“..그 젠이치가 직접 알려줬으니까 돕기나 해."


증거물이라도 된다는 양 설계도를 흔들어 보이자 남자는 인상을 찌푸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 영감탱이가 진짜..어휴..그래서 무슨 부탁?”


“M사의 이사인 노리츠키와 현 내각 의원인 케베. 그 두 사람을 좀 조사해줘.”


남자는 성가시다는 듯 턱을 긁어댔다.


“거물들이구만..이번엔 일당을 두 배로 달라 그래야겠어. 잠깐만 기다려 보라고.”


남자는 컴퓨터 전원을 키더니 곧 정훈과 주원이 알지도 못하는 프로그램을 이용해 5분 남짓한 시간에 정보를 찾아냈다.


그리고서는 컴퓨터 옆의 프린터기를 통해 서류를 인쇄해서 내어주었다.


“자 빨리 받고 가라고. 난 다시 자야겠으니까.”


정훈은 담담한 표정으로 서류를 받아들었으나 주원은 놀란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옆에서 보자면 거의 턱이 빠질 것 같았다.


정훈은 한숨을 내쉬더니 주원의 뒷머리를 손바닥으로 쳤다.


그제서야 주원은 정신을 차리고 정훈의 뒤를 따라나섰다.


*


어두운 사무실에 앉은 남자는 앞에 놓인 커다란 화면을 통해 가부키초 거리와 정훈의 모습을 계속해서 주시하고 있었다.


두 형제가 거리를 움직이면서 자야카케구미의 움직임이 태동하기 시작해 조직원들을 불러 바로 보낼 준비를 하고 있었다.


남자는 정훈이 서류를 확인하는 모습을 확인하며 동시에 자신의 어깨를 감싸 쥐고 몸을 부르르 떨었다.


“정말이지..기대가 돼서 참을 수 가 없군. 조금이라도 빨리 저 놈들의 출사표를 보고 싶어..”


그러더니 낡은 책에 무언가를 휘갈기며 써내려갔다.


이윽고 마지막 페이지까지 모두 채워지자 남자는 책을 덮고 책장에 꽂았다.


그리고는 서랍장에서 같은 모양의 책을 한 권 더 꺼내들었다.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낡은 부분 없이 겉 테두리가 모두 깔끔했다는 점이었다.


“그러고 보니 벌써 또 한 해가 지나갔군..”


남자는 책 표면의 빈 공간에 ‘16’이라고 새겨 넣은 뒤 아직 뻣뻣한 첫 페이지를 넘겨 접었다.


그리고서 다시 그 위에 펜을 올려 또 무언가를 써내려갔다.


*


정훈은 얼마간 서류를 바라보다 바닥에 내려놓았다.


*형..“


그 모습을 주원이 걱정스러운 모습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아무래도 계속 머리를 감싸쥐고 있었으니 어딘가 아픈 것은 아닐까 걱정된 것이리라.


정훈은 눈을 감고 집중해 서류에서 본 내용들을 머릿속으로 정리해나갔다.


노리츠키의 자금이 M사의 계좌 쪽으로 흘러들어가고있었다.


그 말은 노리츠키는 그저 연결고리일뿐 실제로는 M사 전체가 자야카케구미와 관련돼 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겠지.


또 노리츠키는 케베에게 얻은 부당 이익을 통해 재산을 굴리면서 정/재계의 사람들과 인맥을 쌓는 한편 어린 여자들과 어울리면서 난봉을 피우는 모양이었다.


케베는 노리츠키를 통해 얻은 시장 정보를 바탕으로 마찬가지로 돈 놀이를 하면서 유세활동을 벌여 같은 당원들을 지지하고 내각 독점이 이루어지도록 돕고 있었다.


이런 정보들을 경시청에 넘기면 물론 사회적인 이슈가 되어 자야카케구미와 그 세력들을 파멸시킬 수도 있지만 경시청은 정보의 출처를 물을 게 분명했다.


그리고 경시청에 정보를 제대로 넘긴다고 하더라도 그 안에서 수작이 벌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을 갖는 것은 별개의 문제였다.


그렇다고 언론과 직접 접촉하기에도 여러 문제들이 뒤따르는 상황이다.


손가락으로 무릎을 두드리며 고민을 하던 정훈은 이내 결정을 내리고 눈을 떴다.


“요코를 직접 만나봐야겠군.”


주원의 표정에 의아함이 깃들었다.


“형..지금 무슨 소릴..”


“놈들 무기는 커넥션이야. 경시청에 뿌렸다가 어떤 놈이 튀어나와서 무슨 방해를 할지 알 수 없어.”


“그러니까 이걸 가지고 역으로 그물을 한 번 쳐보자고.”


드물게도 정훈의 뜻을 이해한 주원의 얼굴에 약간의 그림자가 드리웠다.


“그러다가 우리가 당하면?”


정훈은 피식 웃음을 뱉어내고는 시선을 주원에게 옮겼다.


“자신 없냐? 우리는..언제나 위험했어. 안전했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고. 지금에 와서 그걸 실패해봐야 우리 팔자가 거기까지라는 소리 밖에 되지 않아.”


“···”


주원은 잠시 입을 우물거리더니 이내 결의에 찬 표정이 되었다.


“그럼 이대로 진행해도 문제없겠지?”


“근데 형, 두목이 누군지 안다고는 해도 어디에 있는지는 모르잖아?”


“걱정 마. 그건 몰라도 되니까.”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정훈은 무릎에 팔을 대고 턱을 괴었다.


“그 바텐더..아마 지금 쯤이면 한창 얻어터지고 있을걸?”


“···?”


정훈은 에리카에게 받은 서류 중 한 장을 내밀며 말했다.


“이것 봐. 싸인이나 도장이 원래 잉크로 찍혀 있잖아..이거 분명 사본이 아니라 원본을 그대로 빼돌린 것 같아.”


“그렇다면..?”


“그래. 내가 오늘도 가겠다고 얘기를 해놨으니 지금쯤 거기서 진을 치고 있겠지.”


“그걸 알면서도 가겠다고?!”


“녀석들은 우리를 잘 몰라. 많아 봐야 열댓명 아니겠냐?. 본거지 위치야 뭐..그 중에 하나만 털면 바로 튀어나올 거고..”


“정말 괜찮은 거 맞아?”


“호랑이를 잡으러면 굴로 들어가야지 나올 때까지 기다리다가는 밖에서 얼어 죽는다?”


“그..혹시 처음부터 정보를 빼내오라고 시킨 게..”


“맞아. 안에 있는 내용은 별로 중요한 게 아니지. 지금으로서는···”


“아니! 그럼 뭐하러 힘들게 돈 들여서 정보를 구한 건데?”


“넌 정말로 젠이치가 일이 끝나고 나서 예린이를 곱게 풀어줄 거라고 생각해? 난 그렇게 생각 안 해. 이미 여러 번 겪어봤잖아? 사람 말은 믿을 게 못 된다는 거.”


배에서 그들을 쫓아보낸 박강태의 얼굴이 두 사람의 머릿속에 순간 떠올랐다.


“···알겠어..형..그래도 그냥 가기에는 좀 위험하지 않을까?”


“물론 예상치 못한 상황에 대비해야지. 잠깐 방에서 기다리고 있어. 금방 돌아올게.”


*


같은 시각 자야카케구미의 바에서는 준비가 한창이었다.


“넌 거기서 잠깐 대기하고..넌 그쪽 좋아..”


에리카가 서류를 빼돌리라고 사주한 것을 알고 난 뒤부터 자신은 사무실에 가만히 앉아있었던 순간이 없었다.


무슨 일에선지 요코는 겨우 잔챙이 두 명을 잡는 일에 열 명이 넘는 조직의 정예들을 포함해 부두목인 자신까지 움직이게 만들었고 결국에는 바에서 완전히 진을 치게 만들었다.


“하아..”


한숨이 연신 터져 나올 만큼 귀찮았지만 두목의 말이니 거역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어느덧 조직원들이 대열을 갖추자 남자는 그들을 싸늘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다들 피곤할텐데 모이게 했군. 그래도 두 명만 잡으면 되는 일이니 빨리 처리하고 자러 가자고..”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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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정복 NEW 20시간 전 4 0 12쪽
27 함정 24.09.16 9 0 12쪽
26 강제 진압 24.09.15 7 0 11쪽
25 길거리 강도 24.09.14 7 0 12쪽
24 결자해지(結者解之) 24.09.13 11 0 12쪽
23 심문(2) 24.09.12 11 0 11쪽
22 심문 24.09.11 9 0 12쪽
21 성동격서(聲東擊西) 24.09.10 10 0 12쪽
20 밀회 24.09.09 11 0 12쪽
19 준비 24.09.08 11 0 12쪽
18 작전 24.09.07 14 0 11쪽
17 침투 24.09.06 12 0 11쪽
16 시험 24.09.05 14 0 11쪽
15 재회 24.09.04 15 0 11쪽
14 스승 24.09.03 21 0 12쪽
13 경고 24.09.02 15 0 12쪽
12 계약 24.09.01 16 0 12쪽
11 공성전 24.08.31 17 0 12쪽
10 데뷔전 24.08.30 17 0 11쪽
» 태동(胎動) 24.08.29 20 0 12쪽
8 심문 24.08.28 23 0 12쪽
7 발각 24.08.27 23 0 12쪽
6 잠입 24.08.26 24 0 11쪽
5 쇼핑 24.08.25 28 0 12쪽
4 화끈한 신고식 24.08.24 36 0 12쪽
3 탐색 24.08.23 46 0 11쪽
2 부탁 아닌 부탁 24.08.22 130 0 12쪽
1 부당한 거래 24.08.21 67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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