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만년 부장은 재벌로 인생역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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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련(白蓮)
그림/삽화
백련(白蓮)
작품등록일 :
2024.08.16 21:08
최근연재일 :
2024.09.17 18:30
연재수 :
3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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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770

작성
24.09.08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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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첫 출근 (2)

DUMMY


24화. 첫 출근 (2)



유성현 팀장은 내게 잠시 기다리라고 자리에 세워두고는 정대만 과장에게 다가가 귓속말로 속삭였다.


“대만아 이번에 온 놈은 진짜야. 연수원 때부터 예사롭지 않은 녀석이었어. 내가 이런 말 잘 안 하는데 장담할게. 이 친구 잘 키워봐. 너도 이제 라인 타고 승승장구 할 때 됐잖아. 언제까지 뒷방 노인으로 살 거야. 동기들 슬슬 차장으로 진급하고 있는데 너도 올라와야지.”


정대만은 유성현의 살살 긁는 듯한 말투에 살짝 기분이 거슬렸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내 인생 내가 알아서 할게. 그리고 우리는 진짜든 아니든 오래 버틸 끈기 있는 놈이 필요해. 그래도 네가 확실하다 하니 한번 잘 지켜는 볼게.”


유성현 차장은 정대만 과장이 답답했는지 깊은 한숨을 내쉬며 본인의 솔직한 속마음을 꺼냈다.


“대만아 여기가 어쩌다가 유배지라는 별명이 생겼겠냐. 차 팀장님부터 과장인 너까지 끌어주는 사람 없이 혼자 일하니까 그런 소리를 듣지.”


유성현에게 정대만은 10년 넘는 회사 생활을 하면서 언제든 편하게 커피나 한잔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편안한 사람이다.


답답한 마음과 정대만이 조금이라도 잘 되길 바라는 마음에 쓴소리가 나왔지만, 그의 말에 걱정어린 진심이 담겨있어서일까.


유성현 차장의 진심이 어느 정도 통했는지 정대만 과장은 무덤덤하게 반응했다.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할 말 다 했으면 이만 가봐. 신입 무안하게 기다린다.”


“그래 간다, 가. 근데 다시 말하자면, 저 친구 강민혁 차장님 픽이라는거 잊지 마라. 설마 모르지는 않겠지만 강 회장님 손자. 그러니까 모쪼록 네가 한번 잘 키워봐라!”


“신경 써달라 해도 달라지는 건 없을 테지만, 그래도 말은 고맙다. 그래도 제일 믿을만한 건 동기네. 조만간 좀 여유 생기면 커피나 한잔하자.”


유성현 차장은 정대만의 손사래를 이기지 못하고 물러나며 마지막으로 한마디 말을 더 던졌다.


“그래, 간다고 가. 근데 이제는 제발 신경 좀 써주라!”


둘의 짧은 대화가 끝나고 유성현 팀장이 자리를 떠나자 이제 기획개발 3팀에는 셋만이 존재했다.


나와 정대만 과장 그리고 김수호 대리.


그리고 사무실에는 잠깐에 정적이 흘렀다.


‘첫인상이 제일 중요해.’


인사가 시작의 반이라고 하지 않은가. 나는 패기 있는 신입사원으로 보이도록 그들에게 힘이 실린 목소리로 정중하게 임했다.


“안녕하십니까! 기획개발부 3팀으로 발령 난 신입사원 윤선일이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제 인생의 첫 멘토가 되어주셨던 정대만 과장님, 김수호 대리님. 너무나 그리웠습니다.’


3초 정도 뒤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올리자, 나를 향한 이상한 시선이 느껴졌다.


가장 먼저 부서 분위기를 살폈는데 뭔가 오묘했다.


‘뭔가 이상한데. 일단 당분간은 튀지 말고 조용히 상황 파악만 하자.’


모난 돌이 정 맞는다고 괜히 연수원 때처럼 특출나게 보였다가는 경계의 대상이 될 수 있다.


경쟁사의 누군가가 보낸 첩자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니 처음부터 특출나서는 안 된다. 적당히 어리숙하면서 똘똘한 모습.


딱 이 친구 쓸만한데요? 소리 들을 정도만.


그리고 방심한 틈을 타 최대한 빠르게 이들 사이로 녹아든다.


그때 멀뚱멀뚱 서 있는 내게 김수호 대리가 앉으라고 손짓했다.


“윤선일 씨 자리는 앞으로 내 옆자리 쓰면 되고, 앞으로 윤선일 씨 사수가 나니까 모르는 거 있으면 편하게 물어봐. 참고로 지금 팀장님은 출장 중. 그래서 당분간 3팀은 우리 셋.”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작금의 상황이 30년 전과 상당히 유사하다.


‘그때는 신입 길들이기의 존재조차 몰랐는데 바쁜 부서 사정으로 운 좋게 신입 길들이기를 비껴갔다고 할 수 있지.’


앞으로 내가 몸담을 이 팀은 신입의 잦은 이탈로 인해 일손이 부족한 상황이었다.


회사 내에는 신입 길들이기라는 의식과도 같은 행위가 암암리에 이루어진다.


보통 신입이 처음 들어오면 길들이기 작업부터 들어가기 마련인데, 길들이기는 사실 뭐 별건 없다.


그냥 신입에게 아무것도 안 시키는 것이다. 투명 인간 취급이랑 비슷하달까.


정도의 차이긴 하지만 잘해준다고 해봐야 사내 직원들 전화번호와 얼굴, 사내 직원 이름 외우게 하기.


한 발짝 더 가면 복사 해오라고 시키는 정도.


며칠만 그렇게 아무것도 안 시키다 보면 신입은 ‘아,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구나.’ 하며 무력감을 느끼고 알아서 상급자에게 기게 된다.


신입사원에 부푼 꿈과 희망을 꺾어버리고 시작하는 것.


그것이 신입 길들이기의 본질이었다.


그때 김수호 대리가 내 옆으로 바짝 붙어 말을 걸었다.


“점심까지 아직 시간이 조금 남았고, 이곳이 처음이기도 할 테니 기본적인 거만 간단하게 알려줄게.”


“넵. 알겠습니다.”


‘하하. 대리님. 처음은 아니고 따지고 보면 고인 물이라 할 수 있지만 경청하겠습니다. 잠깐만, 근데 이 양반들 왜 이렇게 태도가 따뜻하지? 표정도 안 어울리게 생글생글 웃고 있고. 분명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정대만 과장님도 나를 힐끗힐끗 쳐다본다.


기세를 죽이려는 게 아니라 오히려 내 눈치를 보고 있다.


길들이기 자체를 아예 일말의 여지도 없이 100% 내려놓은 듯 보였다.


‘이 양반들 얼마나 고생이 많았으면···. 물론 우리 부서 사정이야 내가 제일 잘 알지만.’


김수호 대리가 다시 내 옆자리로 와서는 열렬하게 뭐라 뭐라 하기 시작했다.


열의를 다해 말하는 그에게서는 상당히 기쁜 감정이 엿보였다.


살인적인 업무량에 지쳐있는 와중 오랜만에 후임이 들어와서 그런지 기분이 좋아 보인달까.


마치 내 존재를 가뭄 속의 단비라고 여길지도 모르겠다.


가뭄 속에 찾아온 단비는 더욱더 오래 지키고 싶을 터. 그의 마음이 충분히 이해되는 순간이었다.


“자, 윤선일 씨. 회사에는 수많은 직원이 있어. 그러면 우리가 다른 부서 사람들과 커뮤니케이션을 하려면 뭐가 필요할까?”


당연한 상식 퀴즈나 다름없기에 나는 자신감 있게 대답했다.


“인적 사항이 필요합니다. 생김새가 어떤지, 어디 부서에 누구인지, 직급은 무엇인지 정도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대답을 들은 김수호 대리가 자기 책상을 뒤적거리더니 해진 다이어리를 하나 꺼냈다.


그가 처음 입사했을 때 얼마나 노력했을지가 다이어리의 상태를 통해 간접적으로 느껴졌다.


“그렇지! 이게 내가 신입 때 배우면서 정리해 둔 건데 우리랑 자주 왔다 갔다 하는 사람들 위주로 전화번호와 이름, 얼굴, 부서 등등 적어놨으니 외우는 데 편할 거야.”


“감사합니다!”


그리고 김수호 대리는 내게 따라오라고 손짓한 뒤 복사기가 있는 곳으로 들어갔다.


“다음으로 복사기는 이쪽. 누가 복사해달라고 하면 여기서 이거 쓰면 돼. 얘 민감하니까 잘 안된다고 때리면 큰일 난다? 집에서 쓰는 가정용이랑은 모델부터가 달라.

혹시나 종이가 없으면 저쪽 맞은편에 비품실 있으니 거기서 꺼내서 채워 넣으면 돼. 복사는 신입들 역할이니까 알고 있고.”


“명심하겠습니다.”


김수호 대리는 복사기 사용법을 알려준 뒤 이제 뭘 알려줘야 하지? 하고 고민이 되는 표정이었다.


“음··· 그래, 당장 오늘부터 네가 할 일은 없긴 한데 과장님이랑 나랑 둘 다 자리를 비울 상황이 생길 수 있으니, 오후에는 다른 부서에서 전화 걸려 오면 네가 한번 받아 보자. 그때까지 사내 인적 사항이나 좀 보고 있어. 부담스러우면 다음에 해도 되고.”


“할 수 있습니다. 아니, 해보겠습니다!”


“그래 양이 좀 많을 테니까 점심까지 간단하게만 좀 외우고 있어.”


점심은 사무실에서 간단하게 샌드위치로 때우고 김수호 대리의 피와 땀이 담긴 다이어리를 한번 쭉 읽어나가니 시간은 오후가 됐다.


‘내가 대성에서 몇 년을 아니, 몇십 년은 있었는데 이 정도는 누워서 떠먹기지. 근데 너무 완벽하게 하면 안 되겠지?’


전화기를 앞에 둔 채로 내가 자리에 앉고 그 옆에는 김수호 대리가 따라 앉았다.


-따르르릉! 따르르릉!


때마침 다른 부서로부터 전화가 걸려 왔다.


어라? 이 구도가 이 당시에는 아직 개봉하지 않았을 영화 ‘용서받지 못한 자’하고 비슷한 거 같다.


-“통신 보안! 이병 누구누구입니다. 무엇을 도와 드릴까요!?”


-“어, 나 사단 누구누구인데 대대장님 어디 가셨나?”


-“충성! 잠깐 관사에 내려가셨습니다.”


-“관사 전화번호가 어떻게 되지?”


-“관사 전화번호 말입니까?”


-“······.”


그 뒤로 이어지는 유명 배우의 명대사.


“손 대. 몇 대 맞을래?”


새로 들어온 이등병 후임이 전화번호를 외우지 못해 발생한 대참사라 할 수 있다.


물론 나는 다 외웠으니, 참사는 벌어지지 않을 것이다.


김수호 대리가 나를 바라보고는 지시를 내렸다.


“자원팀에서 걸려온 과장님 전화이긴 한데 네가 한 번 받아봐.”


‘최선을 다해서 최대한 빨리 팀의 일원으로 인정 받아내겠습니다.’


나는 자신감 있게 수화기를 들어 올렸다.


“네. 기획개발 3팀······.”


말도 끝나지 않았는데 수화기 건너편에서는 호통 소리가 들려왔다.


“야, 임마! 정 과장 기획안 언제 넘길거야! 너네 바쁘다고 다 같이 야근하자고 작정한 거야? 내가 오늘 결혼기념일이라고 했어, 안 했어! 일 그런식으로 할꺼야?”


“그··· 정대만 과장님 잠깐 자리를 비우셨습니다.”


“뭐라고? 바빠 죽겠는데 말이야.”


“정대만 과장님 잠시 인사팀에 내려가셨습니다. 금방 오신다고 하셨습니다.”


“아 그래? 그러면 정 과장 오면 나한테 바로 기획안 보내라고 전해. 급한 거니까.”


나는 메모지 한 장을 뜯어 그대로 받아 적었다.


[자원팀. 기획안 전달 바람.]


“넵 알겠습니다. 실례지만 어떤 분께서 전화 주셨다고 말씀드릴까요?”


“어, 자원팀 이종훈. 참, 목소리가 처음 듣는 거 같은데 신입이야?”


“넵. 그렇습니다.”


“첫날일 텐데 요즘 애들답지 않게 싹싹하고 좋네. 그럼, 이만.”


-뚜. 뚜.


전화가 끊기고 나는 조심스럽게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그리고 김수호 대리를 바라보니 지진 난 것 처럼 눈동자가 흔들리고 있었다.


다른 팀 상사와의 전화를 너무 부드럽게 끝내고 칭찬까지 들으니 당황한 것으로 보인다.


김수호 대리로서는 과장님이 자리를 비운 상황에서 신입인 내가 전화를 대신 받는 것은 부담스럽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거기에 수화기 건너편의 상대가 화가 난 상태이지 않은가.


비록 김수호 대리한테 나는 초면이겠지만, 내게 그는 10년 넘게 함께 일한 동료이다.


‘행동과 표정만 봐도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있지.’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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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집안의 비밀, 그리고 출장 준비 NEW +1 6시간 전 153 8 11쪽
30 대성물산 +1 24.09.14 449 13 13쪽
29 경기도 화성군 동탄면 (4) +1 24.09.13 503 15 11쪽
28 경기도 화성군 동탄면 (3) +1 24.09.12 567 13 11쪽
27 경기도 화성군 동탄면 (2) +3 24.09.11 625 11 11쪽
26 경기도 화성군 동탄면 (1) +1 24.09.10 719 13 12쪽
25 첫 출근 (3) +1 24.09.09 767 14 12쪽
» 첫 출근 (2) +1 24.09.08 861 16 11쪽
23 첫 출근 (1) +1 24.09.07 1,002 20 12쪽
22 은밀한 거래 +1 24.09.06 1,097 20 12쪽
21 가화만사성 (2) +2 24.09.05 1,130 23 12쪽
20 가화만사성 (1) +2 24.09.04 1,191 21 12쪽
19 수료식 (2) +2 24.09.03 1,190 21 12쪽
18 수료식 (1) +2 24.09.02 1,190 24 12쪽
17 대성 연수원 (11) +2 24.09.01 1,216 24 12쪽
16 대성 연수원 (10) +2 24.09.01 1,252 20 12쪽
15 대성 연수원 (9) +3 24.08.31 1,269 23 12쪽
14 대성 연수원 (8) +2 24.08.30 1,277 24 11쪽
13 대성 연수원 (7) +2 24.08.29 1,306 22 11쪽
12 대성 연수원 (6) +2 24.08.28 1,286 24 11쪽
11 대성 연수원 (5) +2 24.08.27 1,331 26 11쪽
10 대성 연수원 (4) +2 24.08.26 1,355 23 11쪽
9 대성 연수원 (3) +2 24.08.25 1,385 25 11쪽
8 대성 연수원 (2) +3 24.08.24 1,478 23 11쪽
7 대성 연수원 (1) +2 24.08.23 1,601 24 12쪽
6 연수원으로 +3 24.08.22 1,714 25 11쪽
5 면접 (3) +2 24.08.21 1,765 27 12쪽
4 면접 (2) +2 24.08.20 1,800 33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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