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만년 부장은 재벌로 인생역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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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련(白蓮)
그림/삽화
백련(白蓮)
작품등록일 :
2024.08.16 21:08
최근연재일 :
2024.09.17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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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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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24.08.20 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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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면접 (2)

DUMMY


4화. 면접 (2)



“네 백선아 씨. 답변 잘 들었습니다. 다음 분 이어서 답해주세요.”


176번 사내는 바짝 긴장한 듯 해보였다.


회사 건물로 들어오기 전 잠깐 스쳐 지나갔던 청심환을 먹고 있는 청년이 바로 그였다.


“넵!! 저는 어려서부터 화목하신 부모님 밑에서 자랐습니다. 그리고 또 중학교 때는 반장을 역임했고, 어······ 고등학교 때는 전교 부회장과···.”


아직도 저런 대답을 하는 사람이 있나 싶을 찰나 이규철 부장의 제재가 들어갔다.


“그만. 여기까지만 듣죠.”


무척이나 긴장해 보였던 176번 사내의 표정이 암울하게 변했다.


“넵······.”


176번은 사실상 이미 끝이라고 보면 된다.


저런 고전의 고전적인 답변은 아마 176번이 긴장하지 않은 상태로 말했어도 바로 컷 당했을 것이다.


“다음 177번 시작해 주세요.”


제법 풍채가 다부진 사내가 호탕하게 답했다.


“네 저는 청주에서 올라온 오규택이라고 합니다! 세상에는 그런 말이 있죠. 누군가 조국의 미래를 묻거든 고개를 들어 대성타워를 바라보거라! 대성전자에 입사해서 대성(大成)하기 위해 지원했습니다! 뽑아주신다면 누구보다 열심히 일하겠습니다!”


들으면서 어디서 많이 들었다고 생각했는데 국내 주요 대학의 교리를 패러디한 현수막의 내용이었다.


오규택의 답변을 들은 이규철 부장은 책상에 펜을 탁탁 두 번 정도 치고는 오묘한 표정을 지었다.


이규철 부장이 누군가의 흠을 잡을 때 나오는 표정이다.


“네 잘 들었습니다. 규택 씨라고 했죠. 당찬 포부 좋습니다. 그런데 만약 우리가 안 뽑아주면 어떡할 겁니까?”


자신 있어 보이던 사내의 얼굴에 미묘한 흔들림이 보였다.


“비록 이번 기회에 떨어진다 해도 포기하지 않고 다시 한번 지원하겠습니다!”


이규철 부장은 원하는 대답은 아니라는 듯이 갸우뚱한 채 이어서 178번에게 질문했다.


“네 다음 178번 대답해 주세요.”


“······”


178번은 무난하게 답변을 마쳤다.


정말 평범함 그 자체라 옆에서 들었음에도 내용이 기억나질 않는 답변이었다.


나는 다시 한번 면접관들의 분위기를 살폈다.


지금까지 네 명의 지원자의 순서가 지나갔음에도 아직도 다른 두 명의 면접관은 서류만 바라보고 있었다.


‘이쯤 되면 슬슬 눈길 줄만 한데 이 양반들 제대로 시작했구만.’


사실 두 면접관이 지원자들에게 관심조차 주지 않아 보이는 이유는 따로 있다.


예전에 면접관으로 들어간 적이 있어서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이들의 무관심한 태도는 지원자들의 긴장감을 올리기 위한 하나의 수단일 뿐이었다.


그리고 이제 내 차례가 다가왔다.


“마지막으로 180번 대답해 주세요.”


나는 마치 육군 훈련소의 저녁점호 시간을 떠올리며 올곧은 자세로 두 손은 양쪽 무릎에 가지런히 올려둔 채로, 양발은 십 일자로 정갈하게 위치시켰다.


“안녕하십니까. 윤선일이라고 합니다.”


호흡을 가다듬고 진중한 태도로 말을 이어간다.


“거두절미하고 솔직하게 얘기하겠습니다. 대성그룹이 다가올 미래에 대한민국 최고의 일류 기업으로 비상(飛上)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저는 그 주축이 되기 위해 대성에 지원했습니다.”


‘저들의 시선에서 바라보면 어떤 스펙도 내세울 것이 없는 지원자인 내 답변이 오만해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저들은 궁금할 것이다. 무슨 생각으로 이리 자신감에 가득 차 있을지 말이다.’


일단 나한테 어그로(Aggro)를 끄는것. 이게 나의 첫 번째 전략이다.


많은 지원자가 1분이라는 시간 동안 장황한 자기소개를 하거나 구구절절한 사연을 늘어놓기도 하고, 자기소개서에 썼던 내용을 그대로 읽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말하고 싶은 것이 많아지고, 말을 빠르게 하다 실수가 나올 수 있다.


그리고 단순히 종이 서류만 봐도 충분히 알 수 있는 내용을 얘기하는 것은 하루에도 수많은 지원자를 평가해야 하는 그들에게는 최악으로 다가온다.


물론 만년 부장으로 살아온 나의 경험담이기도 하다.


이들의 관심을 끄는 최고의 방법은 첫 질문에 대한 대답은 깔끔하고 담백하게 대답하는 것이다.


때마침 기다렸던 입질이 왔다.


-피식


20대 후반 내 또래 나이인 강민혁 차장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아 미안합니다. 비웃은 건 아니에요. 이런 터무니없는 말을 쉽게 하는 사람은 처음이라 당황했달까.”


1994년 이 당시 대성그룹은 강대성 회장의 뛰어난 진두지휘에도 불구하고 몇 가지 악재가 겹치면서 재계 순위에서 밀려나고 있는 하락세의 대기업이었다.


그렇기에 그에게는 터무니 없이 들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훗날 대한민국 최고의 기업으로 도약하는 대성그룹의 진가이자 대성의 지각변동은 IMF 외환 위기가 찾아오면서부터 시작된다.


다섯 명의 대답이 모두 끝나자, 면접관 세 명의 시선이 거의 동시에 내게로 향했다.


같은 지원자끼리 붙어있다가 보니 자연스럽게 비교군이 형성되어 더욱 더 돋보인 것이다.


이규철 부장이 아예 처음과는 다르게 호기심에 가득한 눈빛으로 이어서 질문하려던 찰나 강민혁 차장이 끼어들었다.


“부장님. 제가 먼저 질문해도 될까요?”


이규철 부장은 당연하다는 듯이 고개를 가볍게 끄덕였다.


“그럼. 그럼. 당연하지.”


이러한 행위는 강민혁 차장이 그룹을 대표하는 실권자 중 하나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선일 씨한테 물어보고 싶네요. 요즘 디지털 혁명이니 뭐니, 말이 많잖아요? 선일 씨는 어떻게 생각해요? 내가 요즘 디지털에 관심이 많아서 말이야.”


이 당시에는 디지털이 막 도입되기 시작한 시기였기 때문에 면접자 대부분은 두루뭉술하게 대답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다르다. 그의 눈에 들기 위해서는 그가 원하는 답을 해야 한다.


‘하지만 바로 원하는 답을 해주면 재미없지 않은가. 일단 감질나게 꼬리를 한 번 흔든다. 이게 나의 두 번째 전략.’


“이른 시일 내로 아날로그 시스템은 대부분 붕괴되고 새롭게 디지털 체재로 바뀔 거로 생각합니다. 그리고 지금부터 준비한다면 대성도 격변하는 대한민국 사회에서 크게 한자리 차지할 수 있을 거로 생각합니다.”


조금 전 피식 웃었던 그의 표정과는 정반대로 삽시간의 강민혁 차장의 얼굴이 팍 식는 것이 보였다.


“선일 씨 그 정도는 조금만 찾아봐도 누구라도 대답할 수 있는 상식 아닌가요? 내가 고작 그런 걸 궁금해서 물어봤을 거로 생각하는 건가요?”


강민혁 차장은 한숨을 내쉬며 한마디 더 거들었다.


“후······. 그래요. 선일 씨 말대로 일단 그렇다 치고, 그러면 우리가 뭘 해야 선일 씨 말대로 될까요? 다시 말해볼래요? 구체적으로.”


그의 표정에서는 아까와 같은 기대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계획대로 흘러가자 무심코 웃음이 흘러나왔으나 나는 간신히 참았다.


‘월척이 걸려들었다. 지금부터는 제대로 해야 한다. 대답하기 전 잠시 마인드 컨트롤.’


‘이번 생에는 대성에서의 꿈도, 그녀도, 복수도 모두 이룰 것이다. 그를 위한 첫 번째 발판은 강민혁 차장이라는 배에 올라타는 것.’


나는 차분하게 차재열 상무와 이규철 부장, 강민혁 차장의 순서로 눈을 한 번씩 마주친 뒤 여유 있게 대답했다.


“제 개인적인 견해를 말씀드리는 거라면, 현재 대성에서 사장되어 가고 있는 반도체의 설계과정인 펩리스 사업을 끌어올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서 펩리스란 반도체의 생산과정 중 설계 부분을 말하는데 애플이나 퀄컴, AMD 같은 기업들이 자체적으로 칩을 설계하는 과정을 예로 들 수 있다.


나는 열렬하게 설명을 이어갔다.


‘다음으로는 회사 내부 사정을 넌지시 언급한다.’


“디지털 시대라면 가장 먼저 반도체의 수요가 급격하게 올라갈 겁니다. 하지만 현재 반도체 공정 과정이 상당히 복잡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현재 대성 전자에서는 해외 펩리스 기업에 외주를 받아 설계된 반도체를 제작하는 파운드리 공정을 주력으로 밀고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면접관들끼리 꽤 놀란 듯한 눈빛 교환이 이루어졌다.


일개 신입사원 아니, 신입사원도 되기 전인 면접자가 회사 내부 사정을 언급하니 놀란 것이다.


“그런데 펩리스 기업 대부분이 해외업체라는 리스크가 언젠가 대성의 발목을 잡을 수 있습니다.”


나는 전생의 경험을 상기하며, 계속해서 대답을 이어갔다.


‘강민혁은 파운드리 기업의 리스크를 예상하고 있었다. 그리고 빠르게 펩리스 사업을 추진시켰었지. 내가 이 자리에서 펩리스 사업을 언급한 이유이기도 하다.’


“반도체 수요가 급증하는 타이밍에 협력관계였던 펩리스 기업들과는 언제든 갑과 을의 관계처럼 변할 수 있습니다. 해외 기업에서 생산 단가를 제멋대로 책정한다거나, 경쟁 파운드리 업체가 생기는 순간 선택에서 밀려날 수도 있죠.”


실제로 훗날 대만의 TSMC가 반도체 파운드리 부분에서 빠르게 치고 올라와 시장의 우위를 점하게 되어 대성의 입지가 크게 약해진다.


나는 마지막 멘트로 대답을 마무리하기 전 잠시 심호흡을 했다.


‘전생에 나를 대기업 부장으로 만들어 준 필승 전략이 있다. 무언가를 지원하거나 프로젝트를 시작하기 전 내가 이미 그 그룹에 속해있는 것처럼 준비하고 말하는 것. 나의 세 번째 전략이다.’


생각을 끝낸 나는 면접자가 아닌 기획개발팀의 일원으로서 자신감 있고 단호하게 의견을 피력했다.


“파운드리 공정도 정말 유망한 사업이지만, 대성에서 펩리스 공정까지 신경 쓴다면 훗날 대성은 누구에게도 휘둘리지 않는 일류 기업으로 거듭나리라 생각합니다.”


강민혁 차장이 말했다.


“선일 씨 좋은 대답 잘 들었습니다. 내가 원한 대답은 그 누구도 말할 수 있는 상식선의 대답이 아니라 선일 씨의 의견을 물어봤던 겁니다. 방금 대답한 것처럼.”


이야기를 다 듣고 나서야 찡그러졌던 강민혁 차장의 표정이 흡족하게 변했다.


차재열 상무나 이규철 부장은 당연히 이미 상당히 놀란 눈치였다.


이때 가장 연륜이 높은 차재열 상무가 말했다.


“강 차장, 이 부장 이번에는 내가 하겠네.”


서류상 스펙은 낮더라도 방금까지의 대답으로 이 자리에서 능력치만큼은 입증한 셈이다.


그래서 나는 이번 질문은 인성적인, 사회적인 질문일 확률이 매우 높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때마침 차재열 상무가 나를 콕 찝어 질문했다.


“윤선일 씨 제가 하나만 더 물어보겠습니다. 회사 생활을 함에 있어서 가장 문제인 상황이 뭐라고 생각합니까? 아 아직 회사 생활을 안 해봤을 테니 한번 상상해서 대답해 볼래요?”


나는 다시 한번 간신히 올라오는 웃음을 참았다.


대성에서의 30년 경험이야말로 내가 가지고 있는 최고의 무기가 아닌가.


나는 한 치의 고민도 하지 않고 입을 열었다.


작가의말

선작과 추천, 댓글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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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집안의 비밀, 그리고 출장 준비 NEW +1 6시간 전 150 8 11쪽
30 대성물산 +1 24.09.14 448 13 13쪽
29 경기도 화성군 동탄면 (4) +1 24.09.13 502 15 11쪽
28 경기도 화성군 동탄면 (3) +1 24.09.12 566 13 11쪽
27 경기도 화성군 동탄면 (2) +3 24.09.11 623 11 11쪽
26 경기도 화성군 동탄면 (1) +1 24.09.10 717 13 12쪽
25 첫 출근 (3) +1 24.09.09 765 14 12쪽
24 첫 출근 (2) +1 24.09.08 859 16 11쪽
23 첫 출근 (1) +1 24.09.07 999 20 12쪽
22 은밀한 거래 +1 24.09.06 1,096 20 12쪽
21 가화만사성 (2) +2 24.09.05 1,129 23 12쪽
20 가화만사성 (1) +2 24.09.04 1,190 21 12쪽
19 수료식 (2) +2 24.09.03 1,189 21 12쪽
18 수료식 (1) +2 24.09.02 1,189 24 12쪽
17 대성 연수원 (11) +2 24.09.01 1,215 24 12쪽
16 대성 연수원 (10) +2 24.09.01 1,251 20 12쪽
15 대성 연수원 (9) +3 24.08.31 1,269 23 12쪽
14 대성 연수원 (8) +2 24.08.30 1,276 24 11쪽
13 대성 연수원 (7) +2 24.08.29 1,306 22 11쪽
12 대성 연수원 (6) +2 24.08.28 1,286 24 11쪽
11 대성 연수원 (5) +2 24.08.27 1,331 26 11쪽
10 대성 연수원 (4) +2 24.08.26 1,354 23 11쪽
9 대성 연수원 (3) +2 24.08.25 1,384 25 11쪽
8 대성 연수원 (2) +3 24.08.24 1,477 23 11쪽
7 대성 연수원 (1) +2 24.08.23 1,600 24 12쪽
6 연수원으로 +3 24.08.22 1,714 25 11쪽
5 면접 (3) +2 24.08.21 1,764 27 12쪽
» 면접 (2) +2 24.08.20 1,800 33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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