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들의 블랙홀이 나의 아공간으로 연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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뚱이둥둥
작품등록일 :
2024.08.20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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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9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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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5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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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29. 삼척 레이드 (7)

DUMMY

어둡고 축축한 공기가 무겁게 내려앉는다. 머리 위로는 미지근한 물방울이 한 방울씩 떨어진다.


게이트에 들어오자 펼쳐진 풍경은 어둡고 습한 동굴의 풍경. 카메라를 들고 함께 걷던 엘라는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오랜만에 동굴형 던전이네. 촬영하려면 조명이 좀 부족하겠어.”


그리곤 인벤토리에서 꺼내는 구 형태의 무언가. 엘라가 구에 대고 속삭이자, 구는 떠오르며 순식간에 타오르듯 빛을 냈다.


엘라의 주변을 맴도는 밝은 구는 마치 태양처럼, 끝없이 이어진 동굴의 길을 밝혔다.


이번 던전의 클리어 조건은 고블린의 우두머리를 잡는 것. 대개는 지정된 몬스터를 잡으면 던전이 클리어되었다는 안내와 함께 안전이 확보된다. 협회는 그것을 안정화라고 부른다.


안정화가 끝난 던전의 게이트는 보통 일주일에서, 길게는 몇 주까지 그 형체를 유지한다. 그러면, 게이트가 유지되는 동안 던전 내부에 있는 자원들을 채취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광산의 역할을 하는 셈.


“걷기 시작한 지 30분 지났나? 이번 게이트는 유난히 조용하네요.”


뒤에서 따라오던 헌터 중 한 명이 심심하다는 듯이 가장 클리셰스러운 대사를 내뱉었다.


“그런 대사 뱉으면 뭐 나오는 거 몰라요?”

“에이, C등급 게이트에서 나와봐야 C등급이죠. 그래도 크리스마스 전에 이렇게 나타나 줘서 얼마나 고마운데요.”

“하긴, 특별히 할 일도 없는 던전에 보너스 두둑한 공략이라니. 이게 바로 크리스마스 선물 아닐까요?”

“입금 들어오면 케이크라도 미리 사갈까 봐요. 애들이 이번 크리스마스는 같이 보낼 수 있다고 하니까 얼마나 좋아하던지...”


등 뒤에서 슬슬 대화 소리가 들려온다. 얼핏 들어서는 아무런 위험도 없다는 듯한 대화. 도대체 짧은 대화 동안 얼마나 많은 플래그를 세웠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대비가 충분히 이루어진 공략이었으니까.


그렇게 산책과도 같은 걸음이 이어질 무렵, 마침내 들려오는 몬스터의 소리.


크륵-!


입에 침이 가득 고인 듯한 소리. 소리를 들은 엘라는 카메라를 꺼내며 나에게 말했다.


“아무래도 고블린이 맞는 것 같네요. 저런 더러운 소리를 내는 놈들은 고블린뿐이니까. 차라리 잘 됐습니다. 귀엽고 사랑스러운 몬스터보다는, 징그럽고 흉측한 몬스터를 무찌르는게 반응이 더 좋지 않겠어요?”

“그걸 소리만으로 알아채신 겁니까?”

“당연하죠. 전투계는 아니지만, 나름 카메라맨으로 잔뼈가 굵은 몸이에요. 준비하세요.”


엘라의 말에 곧장 활을 꺼내 들었다. 조심스레 활 위에 화살을 얹고, 시위를 당겼다.


⎥[알림!] 천리안(千里眼) 발동.⎥


스킬과 함께 가까워지는 시야. 동굴의 어둠 속에서 일렁이는 몬스터의 실루엣이 보이기 시작했다. 대강 보이는 거리는 200미터.


핑-!


경쾌한 소리와 함께 깃이 손을 스쳤다. 순식간에 몬스터를 향해 뻗는 화살. 조금의 시간이 지나서야 화살의 타격 소리가 들려왔다.


“몇 발만 더 쏴주세요!”


카메라를 들여다보던 엘라가 소리쳤다. 뭐, 안 그래도 멀리서 쏠 생각이었으니까.


핑-! 핑-!


허리춤에 미리 꽂아둔 화살을 한 발 한 발 시위에 실어 보냈다. 화살이 향한 몬스터들은 시위가 튕기는 소리와 함께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허무하게 쓰러졌다.


그렇게 허리춤에 있는 10발의 화살을 다 쏘자, 더 이상은 어둠 속에서 어떤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컷! 잘 나왔습니다! 이걸로 인트로는 충분하겠어요!”


만족스럽다는 표정을 짓는 엘라. 그는 카메라에 녹화된 영상을 돌려보며 말했다.


“다음번에는 좀 가까이서 쏴주시겠어요? 그래야 좀 더 극적인 장면이 연출될 것 같은데요!”

“네, 뭐. 노력해볼게요.”


던전이라는 위험한 장소인데도 당장 머릿속에 영상을 촬영하는 것밖에 없는지, 모든 신경이 그것으로 향해 있었다. 나쁘게 말하면 광기, 좋게 말하면 직업정신이 투철한 것이겠지.


그렇게 10분을 더 걷자, 다시 나타나는 새로운 고블린 무리. 이번에는 그 수가 못해도 스물은 넘어 보였다. 허리춤에 있는 화살은 15발 남짓.


“화살 개수보다 고블린이 많은데요?”

“잘됐네요! 딱 원하던 그림이에요! 꽂힌 화살을 빼서 다시 쏘는 거죠! 근접전을 펼치는 로빈후드처럼요!”


정말 머릿속에 연출밖에 들지 않은 것이 확실해지는 말이었다. 뒤를 돌아보니, 함께 따라온 헌터들은 무기를 쥔 채 서로 수다를 떨고 있을 뿐. 내가 도움을 요청하지 않는 이상, 스스로 나설 일은 없어 보였다.


“그래요, 그럼.”


이번엔 화살을 겨누고, 고블린들이 다가오기를 기다렸다. 인기척을 느낀 고블린은 살벌한 표정으로 나를 향해 달려왔다. 100미터, 50미터, 30미터. 그리고 마침내 10미터.


“이제 쏴도 돼요?”

“액션!”


핑-!


엘라의 사인과 함께 쏘아낸 화살. 은빛으로 빛나는 촉은 강한 힘으로 고블린의 두개골을 두 개나 뚫어냈다.


동료의 죽음에는 아랑곳하지 않는 고블린들은, 마침내 무기를 쳐들고 나를 향해 달려들었다.


이미 몇 번이고 연습한 속사. 이미 시위를 잡은 손에는 여러 개의 화살이 들려있었다. 연달아 쏘는 화살은 시위를 떠나는 족족히 고블린의 몸을 뚫어냈다.


턱-!


고블린 3마리가 남았을 무렵, 화살은 먼저 바닥을 드러냈다. 아마도 이것이 카메라를 든 엘라가 정확히 원하는 장면이겠지.


가장 가까운 고블린의 시체로 몸을 움직이고는, 박혀있는 화살을 뽑아 시위에 밀어 넣었다. 이미 눈앞으로 다가온 고블린 한 마리.


촉을 머리에 대고는 툭. 시위를 놓자, 순식간에 힘이 풀리는 고블린.


남은 두 고블린이 무기를 치켜들고는 나에게 뛰어올랐다. 고개를 돌리자 보인 것은 죽은 고블린의 몸에 박힌 화살.


좀 전에 미리 뽑은 화살과 함께 두 발을 활에 올리고는 시위를 당겼다.


투둑-!


뛰어오른 고블린은 넝마가 되어 힘없이 바닥을 굴렀다.


몸을 일으켜 옷을 털자, 흙먼지가 떨어졌다.


“컷! 완벽했어요! 이제 화살씬은 찍을 필요도 없겠어요! 이거면 협회장님도 만족할거에요!”


아마도 만족이라는 단어를 뛰어넘는 반응을 보여주겠지. 뭐, 이럴 줄 알고 승낙한 것이었으니까.


“이제 활 말고, 검을 써보죠? 협회장님께서 검 쓰는 장면을 가능한 많이 찍어오라고 하셨거든요!”


그녀의 말에 따라 활을 집어넣고, 마침내 꺼내는 칠성도. 박정환 협회장은 이 검을 보며 감탄을 뱉어냈더랬지. 아마 저 검을 쓰는 장면을 찍어오라는 지시도 그 감탄의 일환이었을 것이다.


철컥-!


검을 허리춤에 끼우자, 금속이 맞물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곤 뒤에서 들려오는 대화.


“여기가 촬영장이야, 던전이야? 할 일이 없는 건 좋지만, 슬슬 지루해지는데?”

“목숨 걸고 싸우는 것보단 낫죠. 임무도 공략이 아니라 경호였잖아요.”

“C등급 던전에서 무엇으로부터 VIP를 지켜낼꼬?”

“지루함이요?”

“마침 싸우고 있었구먼!”


함께 온 헌터들은 꽤나 지루해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던전에 들어온 지 한 시간이 지났지만 고작 한 것이라고는 촬영을 지켜본 것뿐이었으니까.


크르륵-! 크륵-!


마침 어둠 속에서 들려오는 소리. 좀전의 고블린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울림통의 소리가 느껴졌다.


“소리를 들어보니 이번엔 좀 큼직한 고블린이거나, 오크일 수도 있겠어요! 이번에도 화려하게! 알죠?!”


혼자만 신난 듯한 엘라는 분주히 카메라를 들이댔다. 가만히 보니, 엘라의 카메라에 맞춰 움직이는 발광체. 아마도 저런 용도로 만들어진 스킬은 아니었겠지만, 엘라는 자신의 본업에 스킬을 완벽하게 활용하고 있었다.


쿵-! 쿵-!


동굴의 벽을 타고 들려오는 묵직한 발소리. 어둠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은, 엘라의 말대로 판타지 영화에서 등장하는 오크의 모습에 가까운 생명체.


스릉-!


검을 뽑아 들자, 북두칠성이 그려진 검의 날에서 푸른 빛이 흘러나왔다. 슬쩍 엘라의 표정을 보니, 이미 도깨비불에 홀린 듯 조명을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다.


“그래, 보여달라는데 보여줘야지.”


검날을 세우고는, 다가오는 오크를 기다린다. 얼핏 봐도 3미터는 되어 보이는 거구의 오크.


타닥-!


강한 힘과 함께 지면을 밀자, 몸이 붕 떠오른다. 순식간에 가까워지는 오크의 머리. 검의 날을 세우자, 무언가를 가르는 차가운 감각과 함께 땅이 가까워진다.


툭-!


조심스레 땅에 내려앉아 오크를 돌아보니, 이미 땅에는 오크의 머리가 뒹굴고 있었다. 머리를 잃은 오크는 힘없이 누울 자리를 정했다.


다음으로 들려오는 것은 역시나 촬영 담당 엘라의 목소리.


“컷! 최고였어요! 세상에, 이거면 협회장님도 꿈뻑 죽을 겁니다! 이제 오크 여러마리가 동시에 나타나주기만 하면 정말 완벽...”


쿵-! 쿵-!


곰은 발바닥 때문에 죽고, 사람은 혓바닥 때문에 죽는다고 했던가. 이 말은 엘라의 혓바닥을 보고 말한 것이겠지.


엘라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동굴의 어둠 속에서 거대한 발소리가 여럿 들려오기 시작했다.


고개를 돌려 엘라를 보니, 공포가 아닌 환희에 가득 찬 표정. 모든 상황이 엘라가 바라는 대로 흘러갔다.


“제 촬영 인생 중 이렇게 아다리가 잘 맞는 날은 또 없을 거예요! 이번에도 잘 할 수 있죠?”


마지못해 끄덕인 고개에, 다시 한번 발광체가 화려하게 움직인다.


발자국 소리가 가까워질수록 커지는 엘라의 미소. 그녀의 태도에, 어쩌면 나 또한 즐기고 있는지도 모른다.


휭-!


가볍게 검을 돌리며, 몰려오는 오크들을 향해 자세를 잡았다. 기왕 하는거, 멋있게 나오면 좋으니까.


얼굴이 나오는 것이었다면 민망함에 소극적이었겠지만, 이미 얼굴은 타카시의 하회탈로 완벽하게 가려진 상황. 기왕 이런 상황이라면, 멋지게 나오는 편이 낫겠지.


마침내 오크들과의 거리가 가까워지자, 차갑고 날카로운 소리가 동굴에 울렸다.


스릉-! 툭-!


검의 소리에 이어 들려온 것은, 묵직한 무언가가 높은 곳에서 힘없이 떨어지는 소리. 소리가 들려온 곳에 떨어진 것은 머리였다.


아직 나의 검은 날을 세우지 않았고, 나의 두 발은 땅에 붙어있었다. 소리가 들려온 곳은 달려오는 오크가 아닌, 카메라를 들고 있던 엘라가 있던 방향.


“엘라?”


고개를 돌리니, 엘라의 몸은 머리를 잃고 힘없이 고꾸라졌다. 경호 임무를 맡은 헌터들을 향해 급히 시선을 돌렸지만, 이미 전부 죽어있는 헌터들.


“자, 업무 시작! 곽춘봉씨 맞으시죠?”


목소리가 들려온 곳으로 고개를 돌리자, 죽은 오크들 위에 서 있는 한 남자가 보였다. 게이트 공략에 함께 들어왔던 12명의 헌터 중 하나. 피닉이라는 등록명을 쓰는 헌터였다.


“너 누구야?”


나의 물음에 씨익, 기분 나쁜 웃음을 지어 보이는 피닉.


“처음 뵙겠습니다. 곽춘봉씨를 납치하는 역할을 맡은 타이룽이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선호작과 추천은 큰 힘이 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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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26. 삼척 레이드 (4) 24.09.12 683 11 12쪽
25 25. 삼척 레이드 (3) 24.09.12 696 12 12쪽
24 24. 삼척 레이드 (2) 24.09.11 729 10 12쪽
23 23. 삼척 레이드 (1) 24.09.10 745 13 12쪽
22 22. 농경 사회로의 진입 24.09.09 767 13 12쪽
21 21. 계약 24.09.08 789 13 12쪽
20 20. 입이 가벼운 브로커 24.09.07 813 13 12쪽
19 19. 아공간의 사탑 +1 24.09.06 842 15 12쪽
18 18. 채권 인수 24.09.05 876 16 12쪽
17 17. 새로운 주민 24.09.04 877 15 12쪽
16 16. 협회장의 제안 24.09.03 887 16 12쪽
15 15. 곽춘봉 24.09.02 882 15 12쪽
14 14. 혼돈의 도가니 24.09.01 922 16 12쪽
13 13. 한국 덕후 타카시 24.08.31 961 17 12쪽
12 12. 아공간 마을 이장 하태우 24.08.30 993 18 12쪽
11 11. 떡락 24.08.29 1,004 17 12쪽
10 10. 20톤 배달이요! +1 24.08.28 1,030 17 12쪽
9 09. 백악관 같은 마을 회관 24.08.27 1,048 20 12쪽
8 08. 회사를 때려치워버렸어요! 24.08.26 1,089 19 11쪽
7 07. 사직서를 던졌어요! 24.08.25 1,129 21 12쪽
6 06. 아공간에 주민이 나타났어요! 24.08.24 1,163 23 12쪽
5 05. 내 이름은 곽춘봉 24.08.23 1,214 2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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