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들의 블랙홀이 나의 아공간으로 연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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뚱이둥둥
작품등록일 :
2024.08.20 17:31
최근연재일 :
2024.09.17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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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6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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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08. 회사를 때려치워버렸어요!

DUMMY

사무실에는 무거운 침묵이 감돈다. 성의 없는 사직서를 받아든 사장은 조심스레 안경을 벗어 책상 위로 올린다.


“요즘 사원들은 왜 이렇게들 위아래가 없을까? 자네는 지금 이게 상식적으로 맞다고 생각하나?”


지난 몇 년간의 가스라이팅과 조련 때문이었는지, 파블로프의 개라도 된 듯이 몸이 움츠러들었다. 하지만 이내에 차오르는 자신감. 오늘의 나는 뒤가 없다.


“더러워서 못 해먹겠습니다. 월급은 두 달씩 밀리고, 잔업에는 수당도 없고. 때려치렵니다!”


자신 있게 내지른 퇴사 통보. 그러자 사장은 가소롭다는 듯이 웃음을 터뜨렸다.


“하태우 사원. 맞나? 대충 보아하니 어디 이직이라도 붙은 모양인데, 이 바닥은 자네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좁아. 어디인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말 몇 마디만 하면 자네 합격은 곧장 취소야!”


역시나 등장하는 래퍼토리. 고작 이것 때문에 다른 사원들도 번번이 이직을 포기하고, 이 더러운 회사에 붙어있었더랬지.


“예, 맘대로 하시죠. 소문을 내던, 블랙리스트를 만들던. 저는 더 이상 당신 같은 악덕 업주 밑에서는 1초도 일 못하겠습니다.”

“하! 악덕 업주? 악덕 업주가 뭔지 모르는 모양인데, 진짜 악덕이 뭔지 보여줘?!”


사장놈의 목소리가 높아진다. 주도권이 넘어왔다. 이대로 조용히 나가기는 억울하니, 성질 조금 긁는 것 정도는 괜찮겠지.


“보여줘 봐! 여기 사원들 전부 나랑 똑같이 생각해! 세상에 다른 건 몰라도 월급은 밀리지 말아야지! 이번이 처음도 아니고, 1년에 한두번씩은 꼬박꼬박 밀리더만!”

“뭐라고? 야 이 새끼야! 그래서 내가 안 줬어?! 준다잖아! 고작 몇 달을 못 기다려서 그렇게 안달이야!”


그간 가슴속에 묵혀왔던 말을 내뱉자, 가슴이 뻥 뚫리는 듯한 쾌감이 밀려왔다. 그와 동시에 붉어지는 사장의 얼굴. 활짝 열린 사장실의 고함소리가 쩌렁쩌렁 사무실까지 울려 퍼진다.


“그래, 몇 달! 그 몇 달이 사원들한테는 얼마나 긴 시간인지 알기나 해?!”


분위기가 험악해지자, 눈치를 보던 팀장이 후다닥 달려와 사장을 붙잡았다.


“아이고, 사장님! 제가 잘 타이르겠습니다! 조금만 진정하십쇼! 요즘 애들이 다 그렇지 않습니까!”

“나가! 나가, 이 새끼야! 밀린 월급도, 퇴직금도 한 푼도 못 받을 줄 알아!”


팀장의 중재와 함께 더욱 커지는 고함소리. 사장은 약이 바짝 오르기라도 한 듯이 나의 뒤통수를 향해 온갖 육두문자를 뱉어댔다.


퇴장은 역시 분위기가 가장 고조되었을 때지. 싱긋 웃으며 뒤로 돌고는, 마지막 말을 던졌다.


“예, 나갑니다요! 어디 나 없이 잘해보쇼! 그리고, 나 돈 많습니다! 더러운 싸움은 언제든 환영이니 그리 아쇼!”


두근거리는 심장을 간신히 억누르며 최대한 위풍당당한 걸음으로 사무실을 박차고 나왔다.


띵-!


마침 도착한 엘리베이터. 1층을 누르려 손을 가져가니, 손이 달달달 떨린다. 문이 닫히고 엘리베이터가 내려가는 것을 확인한 후에야, 안도의 한숨이 내쉬어진다.


“퓨우! 진짜 떨려 죽는 줄 알았네!”


그리고 새어 나오는 상쾌한 웃음. 과다분비된 도파민 때문이었을까, 10개 층을 내려가는 동안 웃음이 멈추지 않았다. 누군가 이 모습을 본다면 미친 사람이라고 생각하겠지.


그렇게 건물 밖으로 걸어 나오자 보이는 푸른 하늘. 하늘이 이토록 푸르고 아름다웠던가! 아니, 이 세상이 이토록 눈부시게 아름다웠던가!


마지막으로 하늘을 올려본 것이 언제인지 기억조차 나지 않았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다. 지난 몇 년 동안 진정으로 바란 것을 마침내 이뤘으니!


이제 어제 주워둔 아다만트 원석을 팔러 갈 차례다.


#


자원유통사업단 서울지점의 VIP 라운지. 이곳의 지점장 전영준은 일생일대의 기회를 마주하고 있다. 바로, 자신이 아다만트 원석 50kg을 가졌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눈앞에 앉아있는 것.


다른 헌터가 찾아와 그렇게 말했다면 콧방귀도 뀌지 않았겠지만, 이미 이 헌터는 어제 1.2kg을 팔고 갔다. 아마도 이 1.2kg은 사업단이 50kg 규모의 아다만트 원석을 감당할 능력이 있는지에 대한 시험이었겠지.


덕분에 사업단 단장과 긴밀해졌고, 진급길 또한 마침내 뚫렸다. 단장이 지저분한 계획을 꾸미기는 하지만, 수틀리면 단장을 고발한 용기 있는 지점장이 되면 그만.


계획이 성공하면, 그것은 그것대로 큰돈을 버는 것이니 어느 쪽이든 손해 볼 일은 없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오늘따라 최성일 헌터의 표정이 몹시 구겨져 있다.


“안녕하십니까! 지난번에 인사드린 지점장 전영준입니다! 오늘은 어쩐 일로 이렇게...”

“오늘은 마정석이나 조금 팔러 왔습니다.”


대답과 함께 테이블에 올리는 마정석 조각들. 비교적 높은 순도의 마정석이었지만, 지점장 전영준은 영 성에 차지 않았다.


‘그럼 그렇지. 벌써 아다만트 원석을 팔아버릴 리가.’


아쉬운 생각과 함께 튀어나오는 친절한 응대.


“마정석이요! 알겠습니다! 신속하게 처리해드리겠습니다! 조금만 기다려주십쇼!”

“...네.”


전영준은 곧장 태블릿을 두들겼다. 그와 동시에 울리는 최성일의 핸드폰.


“잠깐 전화 좀 받겠습니다.”

“아유, 그럼요! 길게 하셔도 아무 상관 없습니다!”


최성일은 대답도 없이 전화를 받았다.


“어, 태우야. 나 지금 협회.”

- 나 방금 퇴사했다! 원석 조금만 더 팔아주라!

“얼마나?”

- 지금 있는 건 1.6kg. 반만 팔아도 상관없어.

“지금 협회로 올 수 있어?”

- 지금 협회 앞이야.

“자원유통사업단 영업장 앞으로 와.”


툭.


전화를 끊은 최성일은 곧장 핸드폰을 내려놓으며 전영준에게 물었다.


“친구가 들린다는데, 여기에 데려와도 되겠습니까?”

“아유, 당연하죠! 원하시는 만큼 이곳에서 푹 쉬시다 가셔도 됩니다!”

“그럼 잠시...”


#


협회 건물은 언제 봐도 웅장함이 느껴졌다. 자원유통사업단의 영업장으로 가자, 성일은 마중이라도 나온 듯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성일아!”


이름을 부르자 곧장 다가오는 성일. 무슨 일인지 표정이 어둡다.


“무슨 일 있어? 표정이 왜 그래?”

“와, 이놈들이 썩은 건 알았다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네.”

“갑자기? 무슨 일인데?”

“아다만트 원석 있다고 블러핑했잖아. 설마했는데, 역시나 내 신상을 다 털어뒀어. 직원 컴퓨터에 내 사진이 붙어있더라.”


아다만트 원석 팔러 왔다가 들려온 뜻밖의 소식. 이제야 원석을 대신 팔아주겠다는 성일의 말이 이해되었다.


꽤 오랫동안 활동한 A급 헌터이니 다량의 원석을 파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 하지만 만약 내가 그 원석들을 팔았다면? 신입 헌터가 아다만트를 다량으로 판다고 난리가 났겠지. 운이 나쁘면 어디서 구했는지 수사가 들어올 수도 있는 것이고.


“쟤들이 헌터 신상을 어떻게 털어? 너 등록명으로 판 거 아니야?”

“당연히 등록명으로 팔았지. 철저히 익명 판매를 보장하는 게 정책이자 원칙이고. 근데 말했잖아. 쟤들 썩었다고.”


한숨을 내쉬는 성일. 나 또한 오늘 아다만트 원석 판매를 계획했다만, 이런 상황에서 성일에게 원석을 팔아달라는 것은 신상이 털리는 것을 부추기는 일밖에 되지 않았다.


그러던 중 든 한 가지 생각.


“나 아다만트 원석 많아.”

“알아. 근데 여기선 팔지 마. 신상 털려.”

“다른 곳도 마찬가지 아니야?”

“그렇긴 한데, 에휴. 차라리 좀 망하고 싹 갈아엎으면 좋을 텐데!”

“그럼 갈아엎자.”

“뭐?”


알 수 없다는 표정으로 성일은 나를 바라봤다. 나는 곧장 목소리를 낮추며 말을 이어갔다.


“자원유통사업단이라며? 자원유통에 실패하면 망하는 거 아니야?”

“그건 그렇지만, 어떡하려고?”

“일단 한 100kg 팔아. 그럼 몇조는 나올 거 아니야? 그때 아다만트 원석 수십 톤을 덤핑해버리면 손해는 손해대로 나고, 그럼 줄줄이 모가지 잘리겠지.”

“그 수십 톤은 있고?”

“...있어.”


가장 중요한 물량이 있다는 소식에 성일의 눈빛이 반짝였다. 성일도 평소에 이 사업단을 탐탁지 않게 여겼던 모양.


“진짜 있어? 정말로? 지금?”

“산에 마을이 생겼어. 지금은 주민들이 채굴 중이고.”

“마을? 주민? 도대체 무슨 스킬이 그래?”

“아무튼. 할 거야?”


잠깐 생각을 하는 듯 머리를 짚은 성일은, 이내에 고개를 끄덕였다.


“아는 브로커가 있어. 보수만 제대로 주면 일은 확실히 하는 양반이야. 일단, 오늘 그 1.6kg 팔면서 운을 띄워보자.”


그리곤 다시 영업장으로 들어가는 성일. 나도 그를 따라 VIP 라운지 안으로 들어갔다. 성일이 라운지에 들어서자, 앉아있던 직원이 급히 몸을 일으키며 고개를 숙였다.


“안녕하십니까! 서울지점장 전영준입니다! 그리고, 헌터님! 마정석 매입은 완료되었습니다! 입금 내역 확인해보시면...”

“아다만트 원석 좀 팝시다.”


곧장 말을 끊어버리는 성일. 직원은 자신의 말이 끊겼음에도, 입꼬리가 환히 올라갔다.


“아유, 곧장 처리해드리겠습니다! 혹시 무게는 어느 정도인지...”


성일이 인벤토리에서 미리 받은 아다만트 원석 1.6kg을 꺼냈다. 바로 옆 모니터에 그려진 시세는 21,250,000원. 어제보다 백만원이나 오른 가격이었다. 대충 계산해도 300억이 넘는 금액.


물건을 살펴보는 직원의 입꼬리는 이미 귀에 걸릴 정도로 밝았다.


“정확히 1,623g입니다! 금액이 워낙에 커서, 입금에는 10분 정도 소요될 것 같습니다!”


지점장의 말을 듣고는 고개를 끄덕이는 성일. 그리곤 곧장 다리를 꼬며 물었다.


“혹시, 아다만트 원석 100kg 매입도 가능합니까?”


성일의 말을 들은 지점장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럼요! 가능합니다! 언제든 가능합니다!”

“그럼 내일이나 모레쯤에 오겠습니다. 미리 준비 좀 해주세요.”


말을 마친 성일은 곧장 몸을 일으켰다. 그리곤 라운지를 나서자, 뒤통수를 향해 날아오는 힘찬 배웅.


“안녕히 가십시오! 준비해놓겠습니다!”


#


다급한 발소리. 라운지에는 방금 매입한 아다만트 원석 1.6키로가 그대로 남아있다. 평소였더라면 애지중지하며 옮겼을 귀한 물건이지만, 지금 중요한 것은 그것이 아니었으니까.


전영준은 개인 사무실의 문을 박차고, 유선 전화를 집어들었다.


“단장님 연결해! 빨리!”


활짝 열렸던 문은 주변을 지나가던 직원에 의해 슬며시 닫혔다. 그와 동시에 연결되는 사업단의 단장.


“지점장? 무슨 일이야? 50kg짜리 헌터 소식?”

“단장님, 큰일났습니다! 당장 100kg를 팔겠답니다! 내일이나 내일 모레 찾아온다는데, 어떡할까요?!”

“어떡하긴 뭘 어떡해! 당장 매입한다고 해!”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

선호작과 추천은 정말 큰 힘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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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18. 채권 인수 24.09.05 578 1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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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16. 협회장의 제안 24.09.03 589 13 12쪽
15 15. 곽춘봉 24.09.02 581 12 12쪽
14 14. 혼돈의 도가니 24.09.01 612 13 12쪽
13 13. 한국 덕후 타카시 24.08.31 643 1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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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11. 떡락 24.08.29 671 13 12쪽
10 10. 20톤 배달이요! 24.08.28 689 13 12쪽
9 09. 백악관 같은 마을 회관 24.08.27 700 15 12쪽
» 08. 회사를 때려치워버렸어요! 24.08.26 728 13 11쪽
7 07. 사직서를 던졌어요! 24.08.25 750 14 12쪽
6 06. 아공간에 주민이 나타났어요! 24.08.24 782 16 12쪽
5 05. 내 이름은 곽춘봉 24.08.23 819 14 12쪽
4 04. 거래소 24.08.22 841 17 12쪽
3 03. 으리으리한 협회 24.08.21 881 15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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