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들의 블랙홀이 나의 아공간으로 연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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뚱이둥둥
작품등록일 :
2024.08.20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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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7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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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1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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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24. 삼척 레이드 (2)

DUMMY

“예? 뭘 해요?”


당황한 듯한 곽춘봉의 목소리.


“들어보게. 자네가 또 우리 협회의 공식 헌터가 아닌가! 그러다보니 대외적으로 홍보할만한 이미지나 촬영물이 있었으면 하네. 마침 C등급이니, 별로 부담도 없을 것이 아닌가!”


전화기 너머로는 어떤 말도 들려오지 않았다. 괜히 기분을 거스른 것은 아닌지, 불안한 기분이 박정환의 머리를 스멀스멀 덮는다.


“아, 물론 신상은 무슨 일이 있어도 우리가 보호해주겠네! 그건 처음부터 계약 조건에 포함된 것이었으니까! 게다가, 대중들도 한국적인 멋을 부리는 헌터가 압도적인 힘으로 게이트를 해결하는 것을 보고 싶어 하지 않겠나!”


두피가 촉촉해지는 박정환. 여전히 전화기 너머로는 아무런 말도 들려오지 않았다. 누군가의 앞에서 긴장이나 당황을 한 것이 얼마 만이던가.


“우리가 강제하는 것은 아닐세! 자네가 일정이 있거나 별로 가고 싶지 않다면 당연히 가지 않아도 되는 일이야! 원하면 촬영하겠다는 말도 철회하겠네! 우리가 어떻게 자유를 가진 헌터에게...”


그리곤 다시 들려오는 곽춘봉의 목소리.


“...예? 신호가 약해서 그런지 말씀하신 게 잘 안 들렸습니다! 촬영물까지는 들었는데, 그다음에 뭐라고 하셨는지 다시 한번만 말씀해주시겠습니까?”


짧은 한마디에 풀려버리는 묘한 긴장감.


“싸우는 걸 찍어도 되겠나?”

“얼굴만 가려지면 괜찮습니다. 어차피 C등급 게이트라고 하셨으니, 오히려 촬영이 편할 수도 있겠네요.”


생각보다 허무하게 들려온 곽춘봉의 허락. 박정환은 잠깐이나마 땀 흘렸던 자신의 모습이 조금 민망했다.


“그래, 게이트 진압과 촬영 계획은 만나서 이야기하는 것으로 하지. 편한 시간에 찾아와주게.”


#


“너도 연락을 받았다고?”

“당연하지. 원래 게이트가 나타나면, B급 이상부터는 다 알림이 와. 일단 전부 보내고, 그 다음에 올 수 있다고 하는 사람을 추리는 거지.”

“그럼 갈거야?”

“고민 중이지. C등급 게이트라면 굳이 내가 안 가도 되는데.”


피식 웃으며 자신의 앞에 놓인 라면을 들이키는 성일. 어찌나 맛깔나게 먹는지, 나 또한 라면을 먹고 있음에도 라면을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가려고.”

“강원도 삼척으로?”

“협회장이 오래. 와서 뭐 찍자고 하더라고.”


내 말을 들으면서도, 성일은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뜨거운 국물을 들이켰다. 추운 날씨 때문인지 흰 김이 성일의 얼굴을 뒤덮었다.


“너 간판이라며? 협회장이 무진장 아끼는 모양이네. 야, 두 개만 더 끓이자.”

“벌써 4개째야. 내가 먹은 건 많이 쳐봐야 1봉지일 거다.”

“야, 차 트렁크에 열 봉지는 더 있어. 걱정하지 말고 뜯어.”


어느새 주변에 내려앉은 어둠. 숲이라서 그런 것인지, 해가 짧다. 우리는 지금 캠핑장에서, 텐트도 없이 라면을 끓여 먹고 있다. 기온은 영하 2도.


최성일 이 녀석이 갑자기 끝내주는 라면을 먹고 싶다면서 찾아와서는, 나를 데리고 캠핑장으로 와버렸다.


투둑-!


생수 한 병과 라면스프 하나를 뜯어 반합에 부었다. 붉은색으로 변한 물은 금세 끓어올랐다. 거품이 올라올 때쯤 조심스레 밀어 넣는 라면 사리 두 개.


도저히 참을 수 없는 냄새가 주변으로 퍼졌다. 라면 냄새를 들이마시며 감탄을 내뱉는 성일.


“이제 낭만이지. 진짜 죽이지 않냐?”

“맛은 있는데, 이거 먹자고 여기까지 온 거야?”

“자고 갈 수는 없잖아. 텐트도 안 쳤는데.”

“그건 그렇지. 그럼 난 공간도약으로 집에 가야겠다.”

“와, 내가 여기까지 모셔 왔잖아! 갈 때 정도는 같이 있어 주라!”


주고받는 가벼운 농담 속에, 면이 풀어지며 미리 설정해두었던 알람이 울렸다. 4봉지 중 3개를 혼자 먹어버린 성일 덕분에, 이젠 내가 본격적으로 먹을 차례.


조심스레 반합의 뚜껑에 면을 덜어내고, 흰 김이 올라오는 면을 향해 큰 숨을 불었다. 마침내 극악무도한 이 맛을 느끼려고 하는 찰나, 고개를 드는 성일.


“태우야, 잠깐만.”

“안 줄거야. 이제 내 차례야.”

“아니, 주변에 누가 있어.”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성일.


“캠핑장이니까. 주변에서 다들 고기 구워 먹고 있는 거 몰랐어?”

“아니, 살기 말이야. 살기가 느껴졌어.”


진중한 표정으로 대답을 마친 성일은, 조용히 검 한 자루를 꺼냈다. 두꺼운 옷에 밀어 넣어 잘 보이진 않았지만, 그는 언제든 검을 뽑을 준비를 했다.


“구워지고 있는 고기가 한이 많은가 보지. 이제 진짜 먹을 거니까 말 걸지 마.”


성일의 행동이 괜한 장난으로 느껴졌다. 성일을 무시하고 면이 들린 젓가락을 입으로 가져가자, 어디선가 날아오는 단검.


쨍-!


단검은 내가 들고 있던 반합의 뚜껑과 젓가락을 쪼갰다. 반합에 담겨있던 라면은 철푸덕 소리를 내며 바닥으로 떨어졌다.


“어?”


단검이 날아온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니, 검은 옷을 입은 남자 하나가 서 있었다. 주변이 어두워 그의 실루엣만이 보였지만, 그의 시선이 날 향하고 있다는 것은 분명하게 느껴졌다.


“태우야, 방어구 꺼내.”


성일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다시 나를 향해 날아오는 단검 한 자루.


팅-!


성일은 검을 꺼내 나를 향하던 단검을 튕겨냈다. 급히 인벤토리에서 무기를 꺼내려 하자, 검은 옷을 입은 사내가 움직였다.


그는 빠르고 날렵한 몸짓으로 순식간에 우리의 앞까지 다가왔다. 성일이 반사적으로 검을 겨누자, 그에게서 들려오는 목소리.


“하태우, 최성일. 맞습니까?”


어딘가 어색한 발음의 한국말이었다.


“뭐야, 우리를 어떻게 알아?”


당황한 성일은 검을 겨누며 그에게 물었다. 성일의 말을 들은, 사내는 낮춘 자세를 풀며 얼굴을 가리던 마스크를 벗었다.


그리곤 다가와 악수를 건넸다.


“초면에 무례했던 것은 사과드리겠습니다. 마이클 하퍼입니다. CIA 소속입니다.”


스스로를 CIA 소속이라고 소개하는 사내. 얼굴을 보면 서양인이 분명했지만, 그런 말 몇 마디로 신원이 증명될 리가 없다. 더군다나 이 마이클 하퍼라는 남자는 내 입으로 들어갈 음식을 바닥에 내팽개친 극악무도한 일을 저지른 상태.


“지금 장난합니까? 갑자기 남 밥그릇 엎어놓고 와서 무례가 어쩌고? 그리곤 와서 그 말도 안 되는 신원을 믿으라고?”


나도 모르게 높아지는 목소리. 마이클 하퍼는 내가 꽤나 화가 났다는 것을 알아챈 모양인지, 두 손을 들어 보이며 진정의 제스쳐를 취했다.


“워, 워! 진정하세요! 화나게 할 생각은 없었어요! 앞에 음식이 쏟아진 것은 사과드리겠습니다! 헌터가 맞는지 확인을 하기 위해...”

“하! 두 번 확인했다가는 아주 대가리에 칼을 박아버리겠네! 이거 밥 어쩔 거야! 내 밥 어떡할거냐고!”


좀처럼 고성이 가라앉지 않자, 조심스레 가방을 내려놓는 마이클 하퍼. 그는 가방의 지퍼를 열고는, 몇 개의 묵직해 보이는 비닐봉지를 꺼냈다.


“뭐야, 이건?”

“조금만 진정하세요. 사실은 캠핑장이라고 하길래, 저도 심심치 않게 먹을 것을 챙겨왔습니다.”


마이클 하퍼는 재빠르게 비닐봉지를 열었다. 비닐 안에서 나온 것은 다름이 아닌 고기.


“아니, 지금 이깟 고기가지고...”


부시럭거리며 이어서 나타난 것은 한 병의 와인.


“이것으로 마음이 풀리실지는 모르겠지만, 우선 사과의 뜻으로 제가 한 끼 대접하겠습니다.”


사실 캠핑장 안에서 고기를 구워 먹던 사람들이 신경 쓰이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드넓은 캠핑장이었고, 사람들은 한참이나 멀리 떨어져 있었다. 덕분에 이 작은 소란도 들키지 않은 모양.


하지만 멀리서부터 풍겨오는 바비큐의 냄새는 어찌할 방법이 없었다.


고개를 슬쩍 돌리자, 성일도 슬그머니 고개를 끄덕였다. 성일 또한 눈앞의 고기를 마다하고 싶지는 않았던 모양. 마이클 하퍼는 이것을 눈치채기라도 한 듯이 가방에서 몇 가지 장비를 꺼내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만들어지는 불판. 간소하지만, 필요한 것은 전부 있었다.


“함께 식사하며 대화를 나누는 것만큼이나 친해지기에 좋은 것은 없죠. 고기와 술에 뭘 타지는 않았으니,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마이클 하퍼는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 작은 생고기 조각 하나를 입에 넣고 씹기 시작했다. 그리곤 마시는 와인 한 모금.


“캬-! 역시 고기에는 와인이 제격 아니겠습니까?”


감탄과 함께 마이클 하퍼는 불판 위에 고기를 올렸다. 고기에서는 자극적이기 짝이 없는 소리가 들려왔다.


고기를 굽는 마이클 하퍼를 지켜보며, 성일은 목소리를 낮춰 나에게 말했다.


“하는 행동을 보니까, 제정신이 아니거나 진짜 요원이거나 둘 중 하나야.”

“너는 저 사람이 하는 말을 믿는 거야? 갑자기 칼을 집어던진 저 사람의 말을?”

“글쎄. 근데 헌터인 것도 분명하고, 우리를 공격하려는 것 같지도 않아. 일단 말이나 좀 들어보자.”

“언제부터 그렇게 성인군자가 됐어? 그리고 공격성이 없다니, 방금 내가 먹으려는 접시 엎은 거 못 봤어?”

“그래서 고기 구워주겠다잖아. 술도 주고. 게다가, 엎어진 건 니 밥그릇이잖아. 난 상관없거든.”


순식간에 태도가 바뀐 성일. 이 녀석이 뭔가를 잘 못 먹었나 싶을 때쯤, 묘한 포도향이 코를 찔렀다.


불쾌하지 않고, 부담스럽지도 않은. 하지만 결코 약하지 않은 향기. 고개를 돌려 향기의 근원지를 찾아보니, 가장 유력해 보이는 것은 마이클 하퍼가 들고 있는 와인병.


“프랑스에서 가져온 와인인데, 한 가격 하는 놈입니다. 한번 드셔보시겠습니까?”


와인병을 향하는 나의 시선을 눈치챈 것인지, 와인을 건네는 마이클 하퍼. 어느새 주변은 와인의 향기가 가득했다.


“와인이 향이 무척이나 강하네요?”

“좋은 와인은 향부터 다른 법이지요. 맛은 더 좋습니다.”


와인병이 가까워지자, 와인의 향기는 더욱 강해졌다. 그리곤 드는 묘한 기분. 조금 전까지 마이클 하퍼를 향하던 경계심이 조금씩 무너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럼 어디 한번...”


마이클 하퍼가 내민 와인병을 집어 드는 성일. 그는 곧장 병의 입구를 입으로 가져갔다. 그리곤 들려오는 와인이 흐르는 소리.


쿵-!


와인을 한 모금 마신 성일이 그대로 고꾸라졌다. 쓰러진 성일은 입가에 웃음을 머금고는, 마치 취한 듯 알아들을 수 없는 헛소리를 지껄였다.


그제야 느껴지는 위기감. 와인의 향기를 맡고, 성일과 나는 경계심이 무너졌다. 와인을 한 모금 마신 성일은 그대로 쓰러졌다. 그렇다면 저것은 평범한 와인이 아니라는 뜻.


“잠깐, 그 와인 설마...”


말을 끝내기도 전에, 나의 시야가 흐려졌다. 기분 좋은 피로감에 눈이 스스로 감겼다. 초점이 도저히 맞지 않는 시야로 흐릿하게 보이는 것은 미소를 짓는 마이클 하퍼.


“아이고, 엄청 마셨네! 얼마나 취한 거야! 얘들아, 이리 와서 좀 도와줘!”


마이클 하퍼의 말에 어느새 주변으로 도착한 큼직한 자동차. 자동차에서 내린 운동복을 입은 사내들은 몸조차 겨누지 못하는 나와 성일을 차에 태웠다. 그것이 마지막 기억이었다.


작가의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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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4. 삼척 레이드 (2) 24.09.11 460 7 12쪽
23 23. 삼척 레이드 (1) 24.09.10 476 1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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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21. 계약 24.09.08 509 1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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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19. 아공간의 사탑 +1 24.09.06 548 12 12쪽
18 18. 채권 인수 24.09.05 578 12 12쪽
17 17. 새로운 주민 24.09.04 581 11 12쪽
16 16. 협회장의 제안 24.09.03 589 13 12쪽
15 15. 곽춘봉 24.09.02 581 12 12쪽
14 14. 혼돈의 도가니 24.09.01 612 13 12쪽
13 13. 한국 덕후 타카시 24.08.31 643 13 12쪽
12 12. 아공간 마을 이장 하태우 24.08.30 661 14 12쪽
11 11. 떡락 24.08.29 671 13 12쪽
10 10. 20톤 배달이요! 24.08.28 689 13 12쪽
9 09. 백악관 같은 마을 회관 24.08.27 701 15 12쪽
8 08. 회사를 때려치워버렸어요! 24.08.26 728 13 11쪽
7 07. 사직서를 던졌어요! 24.08.25 751 14 12쪽
6 06. 아공간에 주민이 나타났어요! 24.08.24 782 16 12쪽
5 05. 내 이름은 곽춘봉 24.08.23 820 14 12쪽
4 04. 거래소 24.08.22 841 17 12쪽
3 03. 으리으리한 협회 24.08.21 881 15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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