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들의 블랙홀이 나의 아공간으로 연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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뚱이둥둥
작품등록일 :
2024.08.20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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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7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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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3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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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 내 이름은 곽춘봉

DUMMY

“그래서 등록명은 뭘로 하게?”

“게임에서 쓰던 아이디 쓰는 건 좀 그래?”

“이 바닥 좁다. 가능하면 특정될 수 없는 이름으로 해.”


펜을 잡은 지 벌써 20분째. 등록 서류에 써야 할 것은 전부 썼다. 등록명만 빼고.


상위 등급의 헌터들은 딱 두 부류로 나뉜다. 유명세를 누리며 스타로 활동하는 헌터와, 일반인과 똑같은 생활을 하며 숨어서 활동하는 익명 헌터.


당연히 익명 헌터가 공개적으로 활동하는 헌터보다 안전한 편. 공략해야 할 게이트가 나타나면, 정부는 곧장 주변을 통제한다. 기자, 리포터, 아나운서. 심지어 협회의 직원들까지도.


통제된 게이트 반경 500미터 안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은 관계자와 헌터 뿐. 덕분에 헌터의 익명성은 잘 보장되는 편이다.


초기에는 끈질기게 따라붙으며 망원카메라로 사진을 찍는 파파라치들도 있었지만, 이것이 문제가 되자 정부는 파파라치들을 전담하는 헌터 부대를 만들어버렸다. 죄목은 보통 기밀 유출과 산업 스파이에 관한 것.


덕분에 어지간한 파파라치들은 종적을 감췄고, 가끔 헌터를 스카웃 하려는 타국의 스파이가 검거되긴 하지만 그마저도 큰 문제는 되지는 않는 수준.


“아, 진짜 뭘로 하지? 특정할 수 없으면서 개성 있고, 화려하진 않으면서 멋있는 그런 등록명 없나?”

“아이돌 그룹 이름 짓냐? 대충 해. 나중에 바꾸면 되잖아.”

“그래도 기왕 하는 거...”

“20분째야. 이리 줘봐.”


성일은 답답하다는 듯 펜과 서류를 뺏었다. 그리곤 적은 세 글자.


[곽춘봉]


“야, 이게 뭐야? 이건 진짜 아니지!”

“활동도 안 할 놈이 이거 고민해서 뭐하게! 나중에 바꿔!”

“자, 잠깐만...!”


빈칸이 모두 채워진 서류를, 성일은 곧장 등록기에 집어넣었다.


[등록이 완료되었습니다. ‘곽춘봉’ 헌터님. 앞으로의 건승을 기원합니다.]


화면에는 등록 완료에 대한 안내가 나타났다. 화면 속 나의 등록명은 ‘곽춘봉’. 상상치도 못한 등록명에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


“아니, 진짜로 이렇게 등록을 하면 어떡해! 특정될 수 없는 이름으로 하라며!”

“활동 안 하면 아무도 관심 없어. 정 마음에 안 들면 지금 바꾸던가!”

“안 그래도 바꿀 거야!”


빠르게 화면을 두들겨 등록명 변경 옵션을 찾았다. 하지만 화면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 기능. 고개를 돌려 성일에게 물으니,


“야! 이거 어디서 바꾸냐? 바꾸는 버튼이 없는데?”

“어휴, 답답한 놈. 비켜봐. 이래서 키오스크 주문은 어떻게 하냐?”


성일 또한 몇 번이고 화면을 두들겼지만, 등록명을 바꾸는 버튼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리고 뒤늦게 보이는 기계 옆 안내문.


[등록명 변경 절차 안내문]

[서버 확충 및 전산 안정화를 위해 한동안 등록명 변경이 불가능합니다.]

[기간 – 미정]


“이런 씨-”


#


타닥-!


키보드를 두들기는 소리가 빈 사무실에 울려 퍼진다. 모니터에서 나오는 그래프들은 여전히 우상향 중. 사무실에 홀로 앉아 모니터를 보는 사내의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이 정도면 완벽한 은퇴 준비야. 그 50kg만 내 손에 들어오면, 이 지긋지긋한 나라도 안녕이다!”


자원유통사업단 단장 조은상. 7년 전 게이트가 처음 나타나고, 큰 활약을 펼치던 그는 1세대 A급 헌터 중 하나였다. 하지만 스타로 떠오른 지 1년 만에 큰 부상을 입고 은퇴, 곧장 헌터 경험을 살려 신설된 자원유통사업단의 단장으로 부임했다.


똑-! 똑-!


사무실의 문에서 들려오는 노크 소리. 문이 열리며 자원유통사업단 서울지점장 전영준이 들어왔다.


“단장님, 말씀하신 대로 곧장 원석 1.2kg 가져왔습니다.”

“그래, 전산에는 이미 올라간 물건인가?”

“판매자가 반발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었습니다.”


조은상은 테이블 위에 올라온 아다만트 원석을 조심스럽게 들어 올렸다. 손에 들린 원석은 반짝거리며 은은한 빛을 냈다.


“안타깝기는.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지. 아다만트 50kg이면 은퇴 계획을 10년이나 앞당길 수 있는데 말이야, 이깟 200억 원이 문제겠나! 판매자 신상은 메모해뒀겠지?”

“하핫, 당연한 말씀 아니겠습니까! 대충만 계산해도 9000억이니까요. 그런데 정말 그 50kg을 현금화하실 수 있으신 겁니까?”

“당연하지! 그동안은 한 번에 많은 양이 유통된 적이 없었으니 어려웠다만, 이번에 50kg이 넘어오면 충분히 가능해!”


위풍당당하게 말을 내뱉은 조은상은 곧장 핸드폰으로, 한 회사의 홈페이지를 보여주었다.


“자네가 물량을 말하자마자 브로커에게 연락을 해두었지. 페이퍼 컴퍼니도 내일이면 완성될거야!”

“페이퍼 컴퍼니까지 필요한 겁니까?”

“선물을 하려면 어쩔 수 없네. 50kg이 확보되는 즉시, 사업단에 있는 자본으로 원석 가격을 올리고, 그대로 이익만 챙기면 돼!”

“중간에 걸리진 않겠죠...?”

“걱정하지 말게. 자네가 이틀 정도만 시간을 끌어주면 될 일이 아닌가. 물건 받고, 서버 내리고, 지급 대기 중인 대금으로 페이퍼 컴퍼니에서 거래권 사고, 이틀 동안 거래권 팔고, 차액은 우리가 먹고, 서버 올라오면 대금 지급하면 끝.”

“그럼 표면적으로는 그 50kg를 곧장 해외에 팔아버린 모양새가 되겠군요. 하긴, 거래소도 제각각이고, 추적도 안 되는 자원이니 걸릴 일도 없을 겁니다!”


전영준은 이해라도 했다는 듯이 손가락을 튕겼다.


#


자동차의 창밖으로 도시의 풍경들이 지나간다. 운전대를 잡은 성일은 기분 좋은 일이라도 있는 듯 콧노래를 흥얼거린다. A등급이 뜬 기념으로 한 턱 쏜다는 말을 들었으니 그럴 수밖에.


원하는 음식은 뭐든 사준다는 말에 곧장 자동차로 달려가 시동을 걸어버린 성일을 보며, 그동안 참 많이도 얻어먹긴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세를 갚는 것이든, 호의를 베푸는 것이든. 오늘은 나에게 있어 기념비적인 날이니까. A등급도 뜨고, 무기도 팔았고.


“아, 아다만트 원석은 팔았어?”

“팔았지. 그것 때문에 거기서 그렇게 싸운 건데.”


돌아온 의외의 대답.


“싸우다니? 누가 배웅까지 해줬잖아?”

“액수가 크다고 지급이 밀린다잖아. 바로바로 주는 거 하나 보고 손해보면서 파는 건데.”

“인터넷에서는 손해 봐도 거기서 팔라는데? 거기서 팔아야 익명성이 보장된다고...”

“다 옛말이야. 50kg 있다고 하니까 10분 만에 쏴주더라. 이미 그 양반들은 내 이름까지 적어뒀을걸? 이미 썩을 대로 썩은 곳이야.”

“너 50kg 꽁쳐뒀어?”

“그럴 리가. 블러핑이지.”


어느새 가까워진 주차장. 자동차의 시동이 꺼지고, 가장 먼저 보인 건물은 꽤나 화려해 보이는 주점이었다.


문을 열자 은은한 조명이 짙게 깔린 고급스러워 보이는 실내가 눈에 들어왔다. 벽면에는 어디선가 봤다 싶은 그림들이 걸려있었고, 바텐더가 서 있는 곳의 뒤로는 수많은 양주가 주황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성일이 앉은 곳은 바텐더의 바로 앞. 자리에 앉자, 잔을 닦던 바텐더는 익숙한 듯 다가와 인사를 건넸다.


“오랜만에 오셨네요! 지난번에 키핑하신 걸로 준비해드릴까요?”

“여기는 오늘도 조용하네요. 오늘은 축하할 일이 있어서 이 친구가 고를 겁니다.”


성일은 대답과 함께 나를 가리켰다. 덕분에 바텐더의 시선도 나를 향했다. 평소에 이런 곳은 와본 적이 없던 터라, 나는 곧장 앞에 있던 메뉴판을 열었다.


메뉴판에 적힌 양주들은 몇백만원을 호가하는, 인터넷으로나 가끔 구경해보던 희귀한 양주들이었다.


나는 곧장 성일의 귀에 대고 조용히 물었다.


“야, 이건 선 넘었잖아. 오늘 무기 팔아서 겨우 2천만원 벌었는데, 여기에 다 쓰라고?”


그러자 성일은 입꼬리를 올리며 대답했다.


“물주님, 아다만트 원석 대금 받으셔야죠.”

“얼마 나왔는데?”


나의 물음에 성일은 조용히 손가락 두 개를 세웠다.


“2천?”


고개를 젓는 성일.


“2억?”


성일은 여전히 고개를 저었다.


“...20억?”


아직도 아무 말 없이 그저 고개만 도리도리.


“설마... 200억...?”


그제서야 고개를 끄덕이는 성일. 세상에 맙소사, 그깟 돌멩이 20개 팔아서 번 돈이 200억이라니. 나도 모르게 입이 벌어졌다.


순식간에 붕 떠오르는 듯한 기분이 몸을 감쌌다. 도파민 샤워라는 단어가 이토록 공감된 적이 있던가. 마침내 그 말의 참된 뜻을 이해한 것만 같았다.


“야, 최성일! 먹고 싶은 거, 먹고 싶었던 거 모조리 다 시켜! 바텐더! 여기서 제일 비싼 양주로 부탁합니다!”


간만에 매출을 올릴 주문이 들어오자, 바텐더는 뒤로 돌아 자물쇠가 걸려있는 장을 열었다. 그리곤 등장하는 묵직한 유리병.


“이걸 팔아보는 날이 오나 했는데, 마침 가장 비싼 걸 주문하시니 꺼내겠습니다. 야마자카 55년산입니다.”


야마자카 55년산. 위스키를 모르는 사람도 한 번쯤은 들어봤다는 전설의 양주. 이곳에서 그런 양주를 마주칠 줄이야. 옆에 앉아있던 성일 또한 적잖이 놀랐던 모양이었다.


잔을 건넨 바텐더는 곧장 분주히 움직이며 무언가를 만들었다. 그와 동시에, 성일 또한 핸드폰을 꺼내 술병의 사진을 분주히 찍었다. 그래, 이걸 찍지 않으면 무엇을 찍겠는가.


조금의 시간이 지나자, 바텐더는 여러 음식이 담긴 큰 접시를 올렸다.


“사실, 이 술은 저도 맛본 적이 없어 어울리는 안주를 찾지 못했습니다. 혹시 생각나는 것이 있거든 바로 말씀해주십시오. 곧장 준비해드리겠습니다.”


바텐더 또한 기대감이 가득한 표정으로 봉인된 술병을 바라보았다. 마침내 개봉의 시간.


조심스레 묶여있던 끈을 풀어내고, 코르크를 열었다.


퐁-!


기분 좋은 소리와 함께 향이 사방으로 퍼졌다. 지금까지 맡아본 어떤 술과도 비교가 되지 않는 강인한 향. 그러면서도 부담스럽지 않은, 정말 기분 좋은 향이라고 밖에 설명할 수 없는 것이 바 전체에 퍼졌다.


“세상에... 역시 20억짜리는 달라도 뭔가가 다르네요...”


조용히 지켜보던 바텐더 또한 감탄을 내뱉었다.


예상은 했지만, 20억이라니. 고작 1리터도 되지 않는 이 술 한 병이 서울의 아파트와 비슷한 값이다. 그런 술을 열어놓고 맛보지도 않는 것은, 그야말로 죄악에 가까울 터.


나는 곧장 병을 들어 나와 성일의 잔을 채웠다.


“넌 어떻게 돈을 벌자마자 술에 다 쓰냐...?”


성일은 향에 황홀해하면서도, 걱정된다는 듯한 말을 내뱉었다.


하긴, 200억을 벌자마자 20억을 술 한 병에 써버렸으니. 하지만 상관없다. 나의 아공간에는 광산이 있다.


그렇게 한 모금. 감탄을 뱉으며 두 모금. 그리곤 부담스러운 눈빛을 보내는 바텐더를 향해.


“바텐더님도 한 잔 마셔보시겠습니까?”

“저... 정말 그래도 되겠습니까?”


안 될 것도 없지. 앞으로 이런 건 원 없이 마실 수 있으니까.


작가의말

선호작과 추천은 정말 큰 도움이 됩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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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23. 삼척 레이드 (1) 24.09.10 476 1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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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18. 채권 인수 24.09.05 578 12 12쪽
17 17. 새로운 주민 24.09.04 581 11 12쪽
16 16. 협회장의 제안 24.09.03 589 13 12쪽
15 15. 곽춘봉 24.09.02 581 12 12쪽
14 14. 혼돈의 도가니 24.09.01 612 13 12쪽
13 13. 한국 덕후 타카시 24.08.31 643 13 12쪽
12 12. 아공간 마을 이장 하태우 24.08.30 661 14 12쪽
11 11. 떡락 24.08.29 671 13 12쪽
10 10. 20톤 배달이요! 24.08.28 689 13 12쪽
9 09. 백악관 같은 마을 회관 24.08.27 700 15 12쪽
8 08. 회사를 때려치워버렸어요! 24.08.26 728 13 11쪽
7 07. 사직서를 던졌어요! 24.08.25 750 14 12쪽
6 06. 아공간에 주민이 나타났어요! 24.08.24 782 16 12쪽
» 05. 내 이름은 곽춘봉 24.08.23 820 14 12쪽
4 04. 거래소 24.08.22 841 17 12쪽
3 03. 으리으리한 협회 24.08.21 881 15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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