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들의 블랙홀이 나의 아공간으로 연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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뚱이둥둥
작품등록일 :
2024.08.20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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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5 1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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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 사직서를 던졌어요!

DUMMY

정중한 태도로 묻는 그녀에게 나는 몇 개의 기사가 띄워진 핸드폰을 건넸다.


“이런 말이 충격적으로 들리시겠지만, 지금 밖은 4년이라는 시간이 흘러있는 상태입니다. 여러분은 모두 사망자로 처리되어 있구요.”


기사와 중국의 공식 발표 영상을 보던 여자의 표정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아마도 자신들의 희생을 망신으로 여긴 탓이겠지.


“이런 젠장! 샤오룽의 블랙홀이 망신이었다고?! 우리가 어떤 각오로 함께 블랙홀에 빨려들어 갔는데!”


앉아있던 헌터 중 하나가 분에 찬 듯 목소리를 높였다. 이곳에 앉아있던 헌터들은 그 말에 동의라도 하듯 한 마디씩 내뱉었다.


“샤오룽의 블랙홀이 아니었더라면 상하이가 아니라 다른 도시까지 망가졌을 거야!”

“우리의 희생은 전혀 기리지 않고, 망신이 어떻다고 운운하다니! 다짜고짜 우리를 상하이에 던져넣을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는데!”

“예상은 했지만, 정말로 그런 성명을 내보낼 줄이야...”


분위기는 점점 암울하게 변해갔다. 덕분에 은은하게 남아있던 취기도 모두 날아갔다.


“자, 여러분! 일단 진정하세요! 여기서 화를 내봐야 해결되는 것은 없습니다! 당장 여기서 생존하는 방법부터 찾아야지요!”


핸드폰을 받아들었던 여자가 분위기를 진정시키며, 나에게 다가왔다.


“그러고 보니 통성명을 못 했군요. 저는 레이첼이라고 합니다. 독일 소속으로, 중국에 파견을 나왔다가 이렇게 휩쓸렸습니다.”


레이첼의 말을 듣고 나서야, 서구적인 외모의 그녀가 왜 이곳에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풀렸다. 그제서야 보이는 그녀의 팔에 붙은 작은 독일 국기.


“하태우입니다. 상하이 희생자 중에 독일 헌터가 있다는 이야기는 못 들었습니다만...”

“비공식적으로 투입된 것이라 그렇습니다. 샤오룽의 블랙홀은 여러 국가에서 조사의 대상이었으니까요.”


예상했던 것과는 달리, 이곳에 떨어진 헌터들은 이성적인 상태를 잘 유지했다. 이미 시간이 많이 지났다는 소식과 나갈 수 없다는 사실에 절망할 법도 한데, 역시나 최상급 헌터들이었다.


그리고 든 생각은, 이 헌터들을 잘 먹여 살리면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호기심. 이래뵈도 나름 회사에서는 경영 담당 부서의 사원이었으니, 어느 쪽이 도움이 될지 가늠하는 것은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크흠, 우선 여러분! 이곳에는 음식이 없으니 음식은 제가 보급해드리겠습니다! 다만 그러려면 돈이 필요한지라...”


짤그닥-!


“이 작은 돌멩이가 아다만트 원석이라는 것인데 외부에서 값이 좀 나갑니다. 이걸 좀 모아주실 수 있겠습니까?”


나의 말에 모든 헌터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곤 슬쩍 손을 드는 한 명.


“저는 건설에 특화된 헌터입니다. 상하이에서도 포탑같은 방어시설을 만들었죠. 아무래도 이곳에 꽤 오래 체류할 모양인데, 숙소라도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재료만 수급해주신다면 숙소는 제가 만들겠습니다.”


한 명이 자신의 분야를 살리자, 다른 헌터들도 하나둘씩 앞으로 걸어나왔다.


“전 전투계지만... 낮은 레벨의 채석 스킬이 하나 있습니다. 말씀하신 아다만트 원석은 제가 만들어보죠.”

“식량 보급에 돈이 든다고 하셨으니, 저는 여기 있는 자원으로 돈이 될만한 것들을 만들어보겠습니다.”


그렇게 모였던 헌터들은 순식간에 흩어지며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기 시작했다. 고작 10명 남짓한 인원이었지만, 높은 등급의 헌터들이었기에 꽤나 듬직했다.


그렇게 헌터들이 흩어지자, 가만히 서 있던 레이첼이 다가왔다.


“태우, 미안하지만 나는 도움이 될만한 스킬이 없습니다. 대신, 전투에는 자신이 있으니 배우고 싶은 것이 있다면 기꺼이 가르쳐드리겠습니다. 필요한 게 있다면 뭐든 말해주세요.”

“필요한 것이 생기면 바로 말할게요.”


나의 대답을 들은 레이첼은, 곧장 채굴 스킬이 있는 헌터에게 다가가 곡괭이를 넘겨받았다.


그렇게 아공간에 주민들이 생기자, 왠지 모를 안정감이 들었다.


“그럼 전 내일 아침에 다시 오겠습니다!”


#


혼자 살아가는 집을 보면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몇 가지 특징이 있다. 그중 하나는 유통기한이 끝나가는 통조림과 냉동식품이 몇 개씩 쌓여있다는 것.


원래는 아공간 속 주민들에게 어제와 같이 배달 음식을 전달해줄 생각이었다. 하지만 배달 어플을 켜보니, 어지간한 것은 전부 영업 종료. 그나마 열려있는 곳은 해장국 집뿐이었는데, 안타깝게도 아공간 주민들에게는 꽤나 다양한 국적이 섞여있었다. 언뜻 보인 서양인만 3명.


덕분에 당장 생각났던 것은 집에서 먼지만 쌓여가던 통조림과 냉동식품들.


큰 산 두 개만 우두커니 서 있던 나의 아공간에는 하룻밤 사이에 작은 마을이 나타났다. 물론 집 몇 채가 전부였지만, 그것도 나름대로 볼만한 편.


하룻밤 사이에 지어진 마을을 둘러보며 통조림과 냉동식품을 전달하자, 헌터들은 연신 고맙다는 말을 이어갔다.


“말씀하신 아다만트 원석은 창고를 따로 만들어 모아두었습니다! 바쁘지 않으시면 지금 한번 둘러보고 가시죠!”


어제 채굴 스킬을 소개했던 헌터가 꽤 큼직한 창고를 가리켰다. 창고의 문을 여니, 아침부터 일을 하고 있는 레이첼이 보였다.


어제와 달리 갑옷을 벗고 있던 그녀는, 아다만트 원석이 가득 담긴 상자들을 옮기고 있었다.


“태우? 마침 잘 왔어요! 어제 모아둔 아다만트 원석이에요! 필요한 만큼 가져가요!”


레이첼이 가리키는 창고의 한구석에는 대충봐도 몇백키로는 되어 보이는 아다만트 원석이 가득 쌓여있었다.


“세상에, 이걸 한번에 풀면 가격이 박살이 나버리겠어.”


조용히 혼잣말을 내뱉자, 등 뒤에서 다른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건설을 맡았던 헌터였다.


“하태우 헌터님이라고 하셨죠? 어제 건설을 담당하기로 했던 웨이첸입니다. 우선 식량을 보급해주신 것에 대해 감사드립니다. 그런데 집을 짓다 보니 지구의 재료가 좀 필요할 것 같아 이렇게 말씀드립니다.”


웨이첸은 곧장 여러 자재들을 나열했다. 의외로 유리창과 같은 구하기 쉬운 것들이었다. 하지만 그것들을 전부 외울 자신은 없던 터라, 나는 챙겨온 노트를 한 권 꺼냈다.


“여기에 필요한 것들을 적어주시면, 제가 돌아올 때 사오겠습니다. 그리고, 가능하면 여러분의 이름과 국적도 적어주십쇼. 그래도 나름 같은 마을 주민이 되었는데, 이름도 몰라서야 되겠습니까?”


그러자 끄덕이는 주민들.


“그럼 전 일이 있어서 가보겠습니다.”


짧은 인사와 함께 아공간을 빠져나왔다. 그리곤 옷장에 숨겨둔, 아껴두었던 청바지를 꺼내 입었다. 오늘은 중요한 일정이 있으니까. 그토록 고대하고 고대하던, 자유와 해방의 퇴사가 그것이다.


시계를 보니 어느덧 시간은 8시 30분. 평소였다면 지각이라며 난리를 쳤겠지만, 오늘의 나는 다르다.


오늘 나는, 아주 여유롭게 회사를 지각하고는, 곧장 사장에게 말할 것이다. 오늘부로, 이 회사를 때려치겠노라고. 그동안 밀린 두 달치 월급도, 퇴직금도 주지 말라고. 이깟 회사에서 주는 돈 따위는 필요 없다고.


상상만으로도 가슴이 벅차오르기 시작했다. 외출 준비가 끝나자, 갈색 가죽 자켓을 걸치고 마침내 문을 열었다. 시계는 이미 9시 5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


자원유통사업단의 월요일 아침은 언제나 분주하다. 주말에 멈췄던 몇 가지의 업무를 몰아서 처리하는 시간이자, 가장 자원 거래가 활발히 일어나는 시간대이기 때문.


해외의 자원 거래소는 주말에 영업하지 않기에, 주말 동안 올라온 매물을 사려는 외인은 언제나 월요일 아침에 몰린다.


“아다만트 원석 1.2kg 매도 주문 처리했습니다! 가격은 7퍼센트 상승했습니다!”


특히, 아다만트라는 자원은 매물이 올라오는 경우가 거의 없기에 물건이 올라오기만 하면 가격이 고공행진을 이어갔다. 현재 시장에 나와 있는 물건도 10kg가 채 되지 않는 상황.


“자, 잘 들었지? 최성일이라는 헌터가 영업장에 들어오면, 무조건 VIP 라운지로 넘겨. 지점장님한테도 바로 콜하고.”

“네!”


회의실에 울려 퍼지는 무수한 대답들. 심지어는 최성일의 사진까지도 보란 듯이 창구 직원들의 모니터에 붙어있다.


어제 최성일을 직접 담당했던 직원 이한솔은 한숨을 내쉬며 창구 업무를 시작했다.


‘이건 정말 선명한 정책 위반인데... 까라면 까야지.’


창구에 있는 직원들은 이것이 부당한 지시임을 알면서도, 함부로 입을 열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용기 있게 내부 고발을 내지르던 직원들은 이미 전부 잘려 나가고 없었으니까.


이한솔 또한 내부 고발을 고민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다. 입이 싼 지점장이 종종 사무실 정리를 시켰고, 회식에서도 가끔 오묘한 말을 내뱉었으니까.


띵-동!


지겨운 업무의 시작이었다. 찾아오는 헌터들은 돌멩이 몇 조각에 수천만원씩 벌어가는데, 여기서 자신은 한 달에 200만원이 채 되지 않는 돈을 받으며 일을 하고 있으니 종종 자괴감이 밀려왔다.


‘나도 헌터가 되면 저렇게 벌 수 있으려나?’


“네, 고객님.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헌터가 된 자신을 상상하며 기계처럼 업무 처리를 이어갔다. 그러던 중 옆 창구 직원의 신호. 고개를 들어 창구 앞에 선 남자를 보니, 사진 속 그 헌터, 최성일이었다.


조용히 사내 메신저를 보내니, 그 느릿느릿하던 지점장이 헐레벌떡 뛰쳐나온다.


‘젠장, 저놈만 없으면 일이 훨씬 편할 텐데.’


지점장은 곧장 최성일이라는 이름의 헌터를 모시고, VIP 라운지로 이동했다. 최성일의 시선이 VIP 라운지로 걸어가면서도 시선이 이한솔에게 머물자, 이한솔은 슬쩍 모니터의 화면이 보이게 돌렸다.


‘이 정도면 내부 고발은 아니잖아. 우연히 최성일 헌터가 이걸 보고 반발하면, 지점장이 바뀔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그녀는 작은 행동에 은근한 기대를 심었다.


#


당당한 걸음으로 회사의 문을 여니, 시선이 집중된다. 기둥 옆 세 번째 칸. 저곳이 나의 자리였더랬지.


나와 시선이 마주친 팀장은 눈을 희번득거리며 소리쳤다.


“하태우! 이 새끼야, 지금 시간이 몇 시인 줄이나 알아?! 복장은 그게 뭐...”


팀장을 가볍게 무시하며 지나갔다. 무시를 당한 것이 썩 기분이 좋지 않은 모양인지, 곧장 나의 뒤통수를 향해 사자후를 내질렀다.


“야! 이게 지금 뭐하는 짓이야!”


평소 같았으면 클립보드로 머리를 툭툭 맞으며 죄송합니다만 반복하고 있었겠지. 팀장의 목소리가 높아질수록, 느껴지는 해방감도 커졌다.


발걸음이 사장실 문 앞에 다다르자, 심장 박동은 어느 때보다도 빠르고 강하게 울렸다.


머릿 속으로만 수 백번은 상상했던 바로 그것. 그것을 해야 할 때가 왔다.


덜컹-!


사장실의 문을 열자, 대발노발 소리를 지르던 팀장의 목소리가 끊겼다. 그리곤 사무실에 감도는 무거운 침묵.


나를 잡아먹기라고 할 듯이 노려보는 사장의 책상 위에, 나는 과감히 사직서를 내려찍듯 올렸다.


쾅-!


사직서의 사유에는 성의 없이 휘갈긴 한 문장이 크고 선명하게 사장의 시선을 빼앗았다.


[사직서]

[더러워서 모ㅗᅟᅩᆺ 해먹겠습니다.]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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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16. 협회장의 제안 24.09.03 590 13 12쪽
15 15. 곽춘봉 24.09.02 581 12 12쪽
14 14. 혼돈의 도가니 24.09.01 614 13 12쪽
13 13. 한국 덕후 타카시 24.08.31 645 13 12쪽
12 12. 아공간 마을 이장 하태우 24.08.30 663 14 12쪽
11 11. 떡락 24.08.29 672 13 12쪽
10 10. 20톤 배달이요! 24.08.28 692 13 12쪽
9 09. 백악관 같은 마을 회관 24.08.27 702 15 12쪽
8 08. 회사를 때려치워버렸어요! 24.08.26 729 13 11쪽
» 07. 사직서를 던졌어요! 24.08.25 752 14 12쪽
6 06. 아공간에 주민이 나타났어요! 24.08.24 783 16 12쪽
5 05. 내 이름은 곽춘봉 24.08.23 821 14 12쪽
4 04. 거래소 24.08.22 842 17 12쪽
3 03. 으리으리한 협회 24.08.21 882 15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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