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문을 열었다.
바로 문을 닫고 말았다.
다시 한번 문을 열어 봤지만 달라지는 건 없었다.
언제부터 내방 문 앞이 숲이 된 거지?
***
“후우, 후우.”
침착하자.
당황해도 달라질 건 없으니까.
잠시 숨을 고른 나는 스마트폰을 열어 뉴스를 확인해봤다.
메인에 떠 있는 기사는 음, 정치인들 싸우는 얘기구나.
정상이야.
아무리 스마트폰을 뒤져봐도 집 앞이 숲이 되었다는 얘기 따위는 보이지 않았다.
‘내가 어제 뭘 잘못 먹었나?’
어제 먹은 거라고는 컵라면에 편의점 삼각김밥 두 개가 다였다.
날짜는 하루가 지나 폐기되는 것이었지만 폐기되고 단 몇 시간 만에 못 먹을 음식이 되는 것은 당연히 아니다.
사실 편의점에서 알바를 뛰는 이유 중에 하나가 폐기 음식을 노린 거였는데.
여태까지 잘 먹고 잘 살아남아 왔다.
그럼 뭐지?
내가 아파서 환각을 보고 있다는 건가?
“아씨 교대 시간도 얼마 안 남았는데 어떻게 하지?”
조급한 마음에 어쩔 줄 몰라 하고 있는데 배달 오토바이가 지나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
나도 모르게 고개를 돌려 창밖을 쳐다보니 언제나 보이던 답답한 빌라촌의 모습이 내 눈에 비추고 있었다.
“하하하하. 그럼 그렇지 갑자기 숲이 웬 말이냐고.”
난 완전히 안심해서 여유롭게 내 방문을 열어젖혔는데, 그대로다.
내 눈앞에 보이는 숲은.
“뭐냐고 진짜!!”
우리 원룸 건물 사장이 미쳐가지고 내 집 앞에만 숲을 조성했을 리는 없잖아.
그리고 이 숲은 뭔가 이상하다.
아니 이상하다는 정도를 넘어서 있다.
숲인데 천장이 있다.
이런 건 내가 하던 게임 같은 곳에서나 볼법한 광경이었다.
‘그래 던전, 아니면 뭐 미궁이 이런 거.’
난 문을 닫고 현관에 풀썩 주저앉고 말았다.
“도대체 나한테 무슨 일이 생긴거냐구 진짜······.”
아직도 내 코끝을 스치는 신선한 피톤치드 향이 내게 일어난 일이 그냥 환상 같은 것이 아니라고 말해주고 있었다.
“그래!! 창문으로 나가면 되는 거였어!”
난 재빨리 몸을 일으켜 창문을 열었다.
그리고 내 눈앞에는 반 지하 방의 동반자 방범창이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아무리 잘 못 먹어서 말랐다고는 하지만 저런 방범창을 지나갈 수 있을 정도는 아니다.
그렇다고 내 힘으로 철창을 떼어 낼 수 있을 리도 없다.
‘이시간에 업자 같은 사람들을 부를 수도 없고, 진짜 어떡해야 하지? 119라도 불러봐야 하나? 근데 뭐라고 하면서 119를 불러. 내 방문 앞이 숲이 돼서 나갈 수 없으니까 창문 좀 떼어내 달라고 해야 하나?’
띠리리리리링 띠리리리링
사장님의 전화였다.
시간을 확인하니 알바교대 시간 5분이 지나 있었다.
난 일단 전화를 받기로 했다.
“여보세요.”
“야, 정시현 너 왜 아직도 안 와? 지각 한 번 안 하던 놈이 갑자기 안 하던 짓을 하냐.”
“아, 저, 그게 말이죠.”
“목소리 들어보니까 아픈 것도 아닌 것 같은데 무슨 일이야.”
사장님에게라도 도움을 청해야 하나?
그런데 누가 들어도 헛소리일게 분명한 얘기를 어떻게 꺼낸단 말인가.
그리고 사장님이 우리집에 들어올 수 있다는 보장도 없으니···.
난 혹시 모른다는 생각에 그냥 솔직히 말해보기로 했다.
“저 사장님.”
“어 뭔데?”
“제 방문 앞에 숲이 생겨나서요.”
“······.”
“저, 제가 말하는 거지만 말도 안 되는 헛소리라는 건 아는데, 진짜거든요.”
“시현아.”
“네.”
“너 약하냐?”
아니, 사람을 갑자기 약쟁이로 만드시는 건 너무 나간 거 아닌가?
“아니 사장님 진짜예요. 진짜 현관문 앞에 숲이 생겼다니까요!! 진짜예요. 그리고 저 약 같은 건 구경해본 적도 없어요.”
“시현아······. 오늘은 일단 내가 땜방 서줄 테니까 내일 맨정신에 좀 일찍 보도록 하자. 형이 할 얘기가 좀 있을 것 같다. 알겠지?”
- 띡
“네? 사장님, 사장님!!”
하아
졸지에 약쟁이 아니면 정신 이상자로 몰리게 생겼네.
‘혹시 다른 사람이 문을 열어주면 안 되나?’
가능성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나한테는 해당 사항이 없는 일이었다.
‘지금 시간에 부를 수 있는 사람이 단 한 사람도 없네.’
잠시 스마트폰 연락처에서 내 인간관계의 협소함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다.
‘그냥 미친 척하고 나가 볼까?’
지금 이 상황에서는 저 숲이 유일한 해답일 수도 있다.
나는 이런 상황에 몰아넣은 저 숲을 조사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아무런 대책도 없이 무대포로 나가는 건 아니겠지.
난 집안에 무기로 쓸만한 것이 뭐가 있을지 떠올려 봤다.
‘전동드릴 정도면 무기로 쓸만하려나?’
난 예전에 이사 올 때 쓰고 거의 쓰지 않았던 전동드릴을 떠올리고는 방구석에 처박혀 있던 전동드릴을 꺼내 들었다.
위잉 ~ 이이
‘음, 배터리가 거의 없네. 충전을 좀 하는 게 좋겠지. 그리고 옷을 좀 두텁게 입는 게 좋겠지?’
예전 중세 시대에는 천방어구도 있었다는 것을 본 기억이 났다.
천방어구는 천을 두텁게 겹치는 시이었다니까 여러 겹 겹쳐 입는다면 의외로 방어력이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겹쳐 입을 수 있을 만큼 최대한 옷들을 겹쳐 입고 그 위에 큰맘 먹고구입했던 롱패딩을 그 위에 겹쳐 입었다.
‘덥네.’
옷 사이즈들이 그렇게 차이가 나지 않아서 많이 겹쳐 입지는 못했다.
그래도 이렇게라도 몸을 감싸니 조금은 안심이 되는 느낌이었다.
‘배터리 충전도 얼추 끝난 것 같고.’
난 충전이 끝난 전동드릴을 들고 날을 제일 길고 튼튼해 보이는 녀석으로 끼워 넣었다.
일단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준비는 다 끝낸 것 같았다.
“후우.”
난 심호흡을 하고 현관문을 열었다.
혹시나 하는 기대를 가지고 있었지만 역시나, 몇번을 봐도 적응되지 않는 울창한 숲이 내 눈앞에 다시 한번 펼쳐져 있었다.
난 긴장된 마음을 집어삼키며 이 이상한 숲에 첫발을 내디뎠다.
- 띠링
[ 이름 : 정시현 ] 07:59:59
힘 : 3
민첩 : 5
체력 : 3
지능 : 6
- 이 세계인 특전 !
와 이게 그 말로만 듣던 상태 창이구나.
내가 각성이라도 한 걸까 아니면 존나게 정신이 나간 걸까?
지구에 언제부터 각성자가 생긴 거지?
게이트가 열리지도 않았고 몬스터가 쳐들어온 적도 없는데.
갑자기 내 눈앞에 나타난 상태 창을 보고는 난 신기한 생각이 들었다.
진짜 어디 게임이나 웹소설에서 나 보던 일이 실제로 일어났으니 말이다.
‘근데 각성한 것 치고는 스탯이 너무 구린 거 아닌가? 그리고 스킬 같은 것도 안 보이네. 보통 각성하면 최소 S급 스킬부터 주고 시작하는 게 국룰아닌가?’
조금 특이한 것이라고 한다면 이 세계인 특전이라는 건데.
날 보고 이 세계인 이라고 하는 거겠지?
그리고 이름 옆에 있는 타이머는 또 뭘까?
아무래도 시간을 표시하고 있는 것 같은데 저 시간은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저 시간이 다 되면 어떻게 되는 거지? 왜 이런 상황이 된 건지 뭐라도 알아보려고 나왔더니 알 수 없는 것만 더 쌓여가는구나.’
이제 겨우 문밖으로 한 걸음 나왔을 뿐인데 다시 돌아가고 싶다.
“하아 그냥 다시 돌아갈까? 그리고 내일 119를 부르든 사람을 부르든 하면 될 것 같은데. 내가 뭔 객기로 여기를 돌아보겠다는 생각을 한 건지 모르겠네.”
조용히 혼잣말을 읊조리던 나는 무의식적으로 내가 나온 문이 있는 곳을 돌아보고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내가 나온 문이 반투명하게 변해있었기 때문이다.
“어? 어? 이러면 안 되는데···.”
난 허둥지둥 문을 향해 손을 뻗어 봤지만, 내 손에 잡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분명히 눈앞에 문은 보인다.
하지만 내 손에 닿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하하. 이것 참 난처하게 됐네.”
적당히 주위만 돌아보고 집으로 다시 돌아가려고 했는데 이제는 그게 불가능해졌다.
07:54:50
난 내 눈앞에 보이는 홀로그램 창에 있는 타이머에 주목했다.
‘저 시간이 뭔가 관계가 있는 거겠지? 아무 의미 없이 저런 타이머가 있을 리는 없겠지. 그렇다면 저 시간이 정확히 뭘 의미하는지를 알아내야 할 것 같은데. 타이머는 내가 이곳에 발을 디디는 순간부터 움직이기 시작했으니까 대략 8시간의 텀을 두고 뭔가 변화가 생긴다는 얘긴 것 같은데. 그 변화가 나한테 도움이 되는 변화 인지 아닌지가 관건인 건가?’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정보가 너무 없어서 지금 당장 판단할 수는 없어 보였다.
‘그리고 저 이 세계인 특전이라고 쓰여 있는 옆에 느낌표를 보면 저것도 뭔가 이유가 있을 것 같은데. 혹시?’
혹시나 하는 생각에 ‘이 세계인 특전’ 이라고 쓰여 있는 글자에 손을 얹자 팝업 형식의 창이 내 눈앞에 떠올랐다.
[이 세계인 특전]
혈계인자 계승
‘응?’
이건 뭘 말하는 걸까?
하긴 게임이 아니니 친절한 설명 같은걸 바랄 수는 없는 노릇이겠지.
혈계인자 계승이라.
뭔가 있어 보이기는 하는데 지금 당장 뭐 어떻게 할 수 있는 건 없어 보인다.
난 내 비루한 스탯을 곁눈질로 보고 나서 상태창을 닫기로 했다.
처음에는 좀 많이 신기하기는 했지만 아무리 둘러봐도 지금 당장 내게 도움이 될 정보는 없어 보였다.
도움이 될게 없다면 그저 시야만 가릴 뿐이었다.
근데 이건 어떻게 닫아야 하는 거지?
게임창처럼 X표 버튼 같은 게 있는 것도 아니고, 음성인식, 아니면 내 의지로 닫는 건가?
‘상태창 닫아’
“오!”
속으로 생각하는 것만으로 상태창이 닫혔다.
‘잠깐만, 그렇다면 혹시? 인벤토리 오픈!’
아무런 반응이 없다.
음 상태창도 있는데 인벤토리 같은 것도 주면 안 되는 건가?
이 세계인 한테 너무 짜구만.
아무튼 이제 어떻게 할지를 좀 생각해 봐야 할 것 같다.
8시간 정확히는 7시간 50 몇분인데···.
절대 짧은 게 아닌 이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결정해야 할 것 같다.
1번 뭔가 변화가 있을 때까지 문 주위에 남아 있는다.
2번 주위를 돌아본다.
3번은 없다.
지금 내 앞에 있는 건 이지선다 문제다.
1번을 고르면 조금 더 안전할 수 도 있겠다는 생각은 들지만, 불안과 싸워야겠지.
2번을 고른다면 위험부담은 많이 커지겠지만 난 왠지 모르게 2번이 끌린다.
어차피 겪어야 하는 일이라면 내 의지로 겪는 게 나을 것 같다.
그리고 솔직한 내 속마음을 말하자면···.
난 지금 두려움보다는 기대감이 큰 상태인 것 같다.
내게 이런 감정이 숨어 있을지는 정말 몰랐다.
뭘 하든 적당히, 남들 하는 만큼만 하고, 뭘 하든 적당히 남들 사는 만큼만 살려고 해왔다.
모험심 같은 건 중학교 때 이후로 모두 버렸다고 생각했었는데, 서른이 다 돼가는 지금에 와서 이런 감정을 느낄 수 있을 줄이야.
‘큭, 나쁘지 않아.’
무미건조한 일상에 이렇게까지 큰 변화를 바란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나쁘지 않은 기분이다.
아니 오히려 기쁜 것 같다.
내 감정을 직시하자 뭔가 정신적인 변화를 느꼈다.
여태까지 현대사회에 적응해왔던 정시현이 아닌, 이 세계의 정시현이 눈을 뜬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마음가짐이 달라진 것 만으로 조금 전까지의 나와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위이잉
“훗, 가볼까?”
쓸데없이 전동드릴을 한 번 눌러주고, 더 쓸데없는 중 2병 같은 대사를 날리며 난 내 눈앞의 숲을 향해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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