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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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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의 수도 평양 3

DUMMY

김정은 사망 당일, 2034년 3월 15일

오후 6시

평양 보통각구역 조선중앙통신사



검은색 렉서스 리무진을 선두로 열대가 넘는 군용차량이 조선중앙통신사 정문에 도착했다. 리무진이 멈추고, 차에서 단조로운 검은색 스커트를 입고 붉은 스카프를 맨 여인이 내렸다. 그녀의 이마엔 주름이 돋보였다.


바로 뒤 군용지프엔 빨간 바탕에 은색 별이 네개가 박혀 있었다. 청사를 지키던 병사들이 다급히 어디론가 무전을 쳤다.


"문을 당장 열어라."


조금 전 차에서 내린 여자가 대뜸 반말로 명령했다. 그녀의 눈엔 총기가 살아있었다. 이때, 정문 초소병 중 가장 용감한 병사가 앞으로 나아갔다.


"어디서 오셨습네까? 당의 허락없이는 안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여자가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당이라니. 내가 당인데."


이내 그녀를 따라온 군용 지프에선 조선인민군 장교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병사가 거의 없었다. 별이 하나, 둘 늘어나더니 별만 해도 삼십개는 족히 넘어 보였다. 정문을 지키던 병사들이 동요했다.


"문을 열어라. 김여정 동지의 명령 아닌가."


가장 늦게 나온 장교의 입에서 뜻밖의 이름이 튀어나왔다.


김여정, 그는 김정은의 여동생이다. 과거 김정은이 트럼프와 정상회담을 할 때도 동행했던 인물. 남한에서 동계올림픽을 했을 때에도 북한의 대표로 방문하여 온 세상을 떠들석하게 했던 인물이다. 그녀는 김주애가 떠오르던 2024년 종적을 감추더니, 어느샌가 북한 방송에선 나오지 않게 되었다. 인민들은 그녀가 죽었으리라, 아니면 해외로 쫓겨났으리라 추측해왔지만 아무도 확인한 사람은 없었다.


"우리끼리 총질해야 되갔어? 문 열라."


아까 그 장교는 중후한 목소리로 다시 한 번 명령했다. 그는 조선인민군 총정치국장 고경희였다. 병사들은 얼어붙었다. 분명 몇 시간 전, 자신을 제외한 아무도 허락없이 들이지 말라는 선글라스의 명령이 있었다. 그런데 그 ‘아무도’라 할 수 있는지 모를 총정치국장이 앞에서 문을 열라 했다.


"총정치국장 동지가 문을 열으랍니다. 어떻게 할까요?"


가장 용감한 병사는 수화기를 집어들더니 누군가에게 물었다. 전화기에선 아무 대답이 없었다. 약간의 시간이 흐르자 여정의 참을성이 바닥을 드러냈다. 그녀는 곧바로 권총을 꺼내들더니 허공에 세 발을 연달아 쏘았다.


"너희들의 충성심은 높이 사겠다. 이제 문을 열라."


곧바로 네 번째 총성이 울렸다. 여정의 권총이 아니었다.


'사살 대상은 총정치국장이다. 다시 한번 하달한다. 사살 대상은 총정치국장이다.'


수화기에서 새어나온 소리는 문을 열라는 지시가 아니라 사살 대상을 가리키고 있었다. 이내 총정치국장 고경희가 심장을 부여잡으며 쓰러졌다. 옥상의 저격병이 그를 한 번에 저격한 것이다. 정문의 병사들도, 대치하던 장교들도 혼비백산한 가운데 여정은 장성들의 호위를 받으며 리무진에 올랐다.


"동무들, 로동신문사로 갑시다."


여정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그녀의 리무진이 출발하자 뒤에서 누군가 소리치는 소리가 들렸다.


"다 죽여버려! 다 죽이라고!"


병사가 아닌 장교였다. 그가 계속해서 소리를 지르자 갑자기 사방에서 총격이 빗발쳤다. 조선중앙통신 건물 각 층에서 병사들이 여정과 그의 무리들을 향해 총을 쏘고 있었다. 여정의 리무진은 전속력으로 도로를 질주했다. 그녀가 뒤를 돌아보자 다행인지 그녀의 무리들도 모두 무사히 총격을 빠져나온 모습이 보였다.


'이거 방탄유리야 이 새끼들아...'


여정이 중얼거렸다. 운전병이 잠시 그녀를 봤다가 그녀의 벌개진 눈을 보고는 흠칫 놀라 다시 전방을 쳐다봤다.



2034년 3월 16일

김정은 사망 이튿날

평양 류경호텔


한편, 류경호텔 한식당에 안드로이가 도착했다.


"죄송합니다, 황장군님. 늦었습니다."


안드로이는 최대한 미안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자리에 앉았다.


"대사동지, 어디있다가 이제야 온 겁니까?"


황용호는 연신 담배 연기를 뿜었다. 그의 말투에 날이 서있진 않았다.


"평양 근교 드라이브를 좀 했습니다. 남포까지 내달렸는데, 기분이 아주 상쾌해지더군요."


안드로이가 황용호의 컵에 물을 따라주며 말했다. 황용호가 담배를 끄고는 물을 마시다 질문을 했다.


"그래, 본국에서는 귀국하라 합디까? 다른 서구 국가들 보니 외교관들을 귀국시키던데."


"글쎄요. 저희 러시아는 남을 듯합니다. 지금 우리 러시아보다 조선에게 중요한 나라가 있을까요."


안드로이는 이내 안심했다. 러시아 최고 고객이 화가 나지는 않은 모양이다.


"대사동지, 블라디보스토크의 당신네들 육군병력 말이오. 솔직히 말해보십시다. 그거 어떻게 할 작정입니까?"


안드로이는 내심 놀랐다. 북한 정보력이 상당했다. 러시아 육군은 크게 티나지 않게 병력을 모으고 있었다. 공군부대와 지하벙커에 그들을 숨겼는데 북한조차 그것을 알다니. 북한도 위성으로 지구를 훤히 내다보고 있었나보다.


"극동의 인구가 늘어나니 병력도 느는 건 당연한 거지요."


안드로이는 딱히 변명거리가 생각나지 않았다. 이들은 유사시 두만강 하구와 라선시를 점령할 정예부대였다.


"우리 공화국이 며칠 내로 망할거란 판단이었구만. 공화국은 잘 살아 있습니다."


"황장군님 리더십 덕분에 조선에 혼란이 하나도 없나 봅니다."


안드로이는 그를 추켜세웠다. 그는 능숙한 젓가락질로 잘 차려진 반찬들을 먹기 시작했다.


"러시아는 다 해봐야 육군 한두개 사단인데, 중국놈들은 아마 사령부째로 쳐들어올거요."


황용호는 중국 이야기를 꺼냈다. 안드로이는 이 상황을 예측하지 못했는지 눈을 크게 떴다.


"중국놈들 말이오, 처음부터 군대를 몰고 평양으로 쳐들어올 일은 없을 거요. 다른 방법을 쓰겠지."


황용호는 침착했다. 안드로이는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북한과 중국의 사이를 떨어뜨려 놓는 게 그의 최우선 임무이지만 이게 황용호의 테스트일 수도 있었다. 그는 양복 재킷을 벗었다. 그의 와이셔츠 주머니에 있는 초소형 마이크는 곧바로 크렘린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안드로이는 크렘린의 판단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조금 기다리자 그의 귀에 연결된 초소형 골전도 이어폰에서 크렘린의 입장이 전달되었다.


'황용호의 마음을 사로잡아라.'


그때 황용호가 말을 이엇다.


"러시아와 다르게 중국은 말입니다, 송유관 송전선만 수십개요. 그들은 그것만 몇 달 끊어도 우리 공화국이 망한다는 걸 너무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 조선과 대결한다면 굳이 피흘려가며 싸울 일이 없지요."


황용호는 이내 휴대폰을 집어들었다. 그는 곧장 지도 어플을 실행하더니 두만강 유역을 가리켰다. 북한과 러시아의 국경지대였다.


"우리 조선이 러시아와 송유관 송전선은 이미 있지요. 그런데 고용량 송전선은 없소. 당신네들 모은 그 군대로 송전선을 좀 많이, 고용량으로 깔아 주시오. 일주일 내로 부탁하오."


"조선이 중국과 대결을 할 때면 우리 러시아는 중립을 지켜야 합니다."


안드로이는 냉정을 되찾고는 정석적인 답을 내놓았다. 아마 크렘린의 누구라도 이렇게 대답했을 것이다.


"그 군대, 철수시키지 마시오. 중국 놈들을 몰아내주면, 러시아에 만주벌판을 선물로 드리지."


만주벌판이라니. 황용호는 무슨 계산을 하는 것인가. 그리고 이미 중국과의 대결을 기정 사실로 받아들이다니. 황용호가 본인한테 이렇게 말해놓고는 뒤에서 중국에게도 러시아가 쳐들어올테니 지원을 해달라는 이중전술일 수도 있었다. 단순한 경제적 지원이 아닌 군사적 지원이 되어 버리면 자칫 잘못하다 러중 양국이 전쟁을 할 수도 있는 일이었다.


"중국은 반드시 평양으로 쳐들어옵니다. 러시아는 반드시 이 기회를 놓치지 마시오."


황용호는 단호했다. 안드로이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목이 타는듯 하여 냉수를 마시며 크렘린의 대답을 기다려보았다.


'지원 약속을 하라.'


크렘린에서 이에 대한 답변이 도착했다. 안드로이는 곧장 일어서더니 황용호에게


"황장군님, 다음 주까지 살아계십시오. 러시아가 조선에 선물을 드릴 겁니다."라고 말하고는 허리를 숙여 인사하고 밖으로 나왔다.


안드로이는 호텔을 나오자마자 크렘린으로 전화를 걸었다.


"미국과 일본이 가만히 있을까?"




2034년 3월 16일 오후 늦은 시각

평양 순안공항



리우지허의 입북 요청을 받은 중국 외교부 직원들이 입국 수속을 밟고 있었다. 공항엔 평소보다 훨씬 많은 군인들이 보였다. 리우지허는 입국장에서 본국에서 오는 직원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왜 이리 안 나오는 거야?'


그는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그때, 그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저장되지 않은 북한 전화번호였다. 자신의 번호를 아는 북한사람은 거의 없었다.


"여보세요? 누구십니까?"


능숙한 한국말로 전화를 받았다.


"나입니다, 대사동지."


선글라스의 목소리 아닌가.


"당신네 중국 외교부 공무원들말인데, 위조여권이 있어서 입국을 취소시켜야겠습니다."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이다.


"무슨소리요? 우리 중화인민공화국의 외교관들이오. 어서 입국시키시오! 외교관들을 이렇게 무례하게 대할 수는 없어!"


리우지허가 소리쳤다. 리우지허는 이 전화를 끊는다면 어디에 연락할지 생각하고 있었다.


"당신, 신임장도 제출하지 않은 외교관인데 우리 조선에서 당신이 중국을 대표한다 할 수 있어? 어디서 큰 소리야?"


선글라스는 대뜸 반말로 응수했다. 리우지허는 놀랐다. 북한이 아무리 막나가기로서니, 그건 김씨왕조의 권위 때문 아니었나. 김씨왕조가 비어있는 지금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나. 그는 송유관을 일주일만 끊어도 죽는 소리를 할 나라가 대국에게 이렇게 막나오는 이유가 따로 있는지 고심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북한 군부가 이런 자살행위를 할 수는 없었다.


"신임장 말이오, 당신네들 외무성에 제출하려 했네. 아무도 출근을 안 했으니 접수를 어떻게 하겠나?"


리우지허는 오늘 오후 북한 외무성을 들렀다 오는 길이었다. 그는 외무성 본부에 도착했을 때 분명 평일인데도 개미 한 마리 없었다. 문은 굳게 닫혀 있었고, 항상 있어야 할 경비원조차 없었다. 그가 아는 외교관들에게 전화를 걸어봐도 전화를 받는 이가 없었다. 그러자 그는 국가비상사태인 김정은 사망 때문이라 생각하고는 일단 순안공항으로 향했던 것이다.


"당신 입으로 당신은 자격이 없다 말하고 있구만."


선글라스는 전화를 끊었다. 리우지허가 황급히 휴대전화의 연락처 목록을 뒤지는 중 뒤에서 건장한 남성 둘이 그의 팔을 부여잡았다.


"조선인민군 총참모부는 오늘부로 리우지허 당신을 외교관을 위시한 간첩혐의로 체포합니다."


리우지허의 입은 곧바로 테이프로 감아졌다. 건장한 남성 여럿이 추가로 오더니 그를 번쩍 들더니 어디론가 뛰어갔다. 공항 밖으로 나오자 그는 의문의 승합차에 던져졌다. 차 안에 있던 다른 군인들이 그의 눈을 가리고는 재빠르게 차를 출발시켰다. 그는 있는 힘껏 발버둥치다 손을 뻗었다. 차의 창문이 열려있었나 보다. 아직 차가운 겨울바람이 부는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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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혁명의 수도 평양 23 24.09.16 19 1 11쪽
22 혁명의 수도 평양 22 24.09.15 20 1 12쪽
21 혁명의 수도 평양 21 24.09.14 22 1 12쪽
20 혁명의 수도 평양 20 24.09.14 20 1 12쪽
19 혁명의 수도 평양 19 24.09.14 23 1 11쪽
18 혁명의 수도 평양 18 24.09.13 22 1 11쪽
17 혁명의 수도 평양 17 24.09.12 25 1 12쪽
16 혁명의 수도 평양 16 24.09.10 32 2 11쪽
15 혁명의 수도 평양 15 24.09.10 28 1 11쪽
14 혁명의 수도 평양 14 24.09.10 26 1 11쪽
13 혁명의 수도 평양 13 24.09.10 29 1 11쪽
12 혁명의 수도 평양 12 24.09.09 27 1 11쪽
11 혁명의 수도 평양 11 24.09.09 34 2 11쪽
10 혁명의 수도 평양 10 24.09.07 32 1 11쪽
9 혁명의 수도 평양 9 24.09.07 34 1 11쪽
8 혁명의 수도 평양 8 24.09.07 36 1 11쪽
7 혁명의 수도 평양 7 24.09.07 39 1 11쪽
6 혁명의 수도 평양 6 24.09.06 43 1 11쪽
5 혁명의 수도 평양 5 24.09.02 47 1 11쪽
4 혁명의 수도 평양 4 24.09.02 50 1 11쪽
» 혁명의 수도 평양 3 24.09.02 57 1 11쪽
2 혁명의 수도 평양 2 24.09.02 70 1 11쪽
1 혁명의 수도 평양 1 24.09.02 97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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