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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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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6 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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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의 수도 평양 23

DUMMY

2034년 3월 17일 오후

평양 만수대의사당



만수대의사당에선 곧 긴급하게 치러질 최고인민회의 임시총회, 바꿔말하면 황용호 총참모장의 수령 즉위식 준비로 공무원들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의사당 내부에는 10미터에 한 명씩 황용호의 경비병이 배치되었다. 대놓고 군복에 총을 차면 방송에 부적합했는지 경비병들은 양복을 입고 권총을 숨긴 채 서 있었다.


오전에 만수대의사당에 갇혀 황용호를 추대하는 추천서를 작성하라는 압박을 받았던 내각의 각 기관장들이 하나 둘 의사당 안으로 모여들었다. 워낙 많이 해봐서 수령 찬양글을 쓰는 데는 도가 튼 북한 공무원들이다. 몇 시간 주지 않아도 추천서는 알아서 잘 써오게 되어 있었다.


황용호가 위에서 이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분주하게 움직이는 사람들 뒤편으로 김일성과 김정일의 커다란 동상이 거슬렸다. 당장 오늘 치우기는 힘들겠다 싶었다. 그가 담배를 피우며 생각에 잠기고 있을 때쯤 부관 한 명이 긴급히 다가왔다.


“총참모장 동지, 최고사령관 동지래 시신 찾았습네다.”


“뭐? 어디있는데? 로씨야?”


황용호가 깜짝 놀라며 물었다.


“라선에 있는 로씨야 영사관에 있습네다. 보위성에서 사진까지 몰래 찍어왔습네다. 일단 사진으로만 보면 확실합네다.”


황용호가 부관이 건넨 사진을 보았다. 틀림없는 김정은이었다. 볼에 난 뾰루지까지 완벽했다.


“안드로이 이 간나새끼, 선물을 준다더니 이거였네?”


황용호가 벌떡 일어났다. 그는 전화로 다른 부관에게 전화를 걸었다.


“오늘 장례식은 없다. 취소야 취소. 선출식만 진행해. 아, 그리고 저 뒤에 수령님하고 장군님 동상 가리라. 가림막 커다란 거 준비해서 달아라.”


황용호는 원래 오늘 김정은의 시신도 없이 김정은의 장례를 치를 예정이었다. 그는 김정은의 시신이 리설주가 러시아로 들어갈 때 같이 들어갔다고 생각했다. 이때까지 러시아가 김정은 시신을 언급하거나 돌려주지 않은 걸 보고 마음에 걸렸던 그다. 하지만, 그가 먼저 장례식 이벤트를 통해 선수를 치면 러시아로서는 협력 대상인 그에게 김정은 시신을 넘길 수밖에 없었다. 러시아도 황용호와 사이가 멀어지면 득될 것이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었다.


“총참모장 동지, 근데 왜 안드로이 대사를 만났을 때 시신 얘기를 꺼내지 않은 겁네까? 로씨야라면 우리에게 협력하려고 시신을 돌려줬을텐데요.”


부관이 안드로이라는 이름이 나오자 궁금해 물었다.


“만에 하나 김정은 동지 시신이 여기 조선에 남아 있어 로씨야놈들도 어디있는지 모르는 상황에서 내가 시신 돌려달라 했으면, 이 로씨야놈들이 앞으로 나를 믿겠느냐 이말이야. 그냥 장례식을 저질러버리면 로씨야 놈들이 군말없이 시신을 돌려주든가 아니면 이제 위원장 동지래 세상에서 완전 잊혀지든가 했겠디. 일이 깔끔해질 거였어.”


황용호는 아까 놀란 것과 대비해서 굉장히 침착한 말투로 대답했다.


“시신을 지금 로씨야 영사관에 두었다는 걸 보니, 이건 완전히 외교적 카드로 쓰겠다는 말이야. 로씨야로 시신 가져갈 거였으면 진작에 가져갔어야디. 이거이 만약에 우리가 시신 어떻게 할라 치면은 군대를 몰고와서리 라선 장악해버리겠다는 계산 아이갔어? 아니 아예 함경도를 통째로 장악할 수도 있갔디. 또 만약에 우리가 오늘 장례식을 치러버렸는데, 나중에 이 로씨야 놈들이 ‘사실은 여기 김정은 위원장 동지 시신이 있다’ 밝히면서 나를 압박할 수도 있고 말이야.”


황용호의 해석에 부관의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다. 김정은의 시신은 이 상황에서 굉장히 유용한 외교적 카드였다. 오늘 김정은의 장례를 치러 시대가 바뀌었음을 온 인민들에게 알려주려던 황용호였다. 그런데 만약, 시신이 따로 있는 걸 인민들이 알게 된다면 황용호 정권은 그 존립이 위태로워질 수도 있는 일이다. 북한은 그 구조상 김씨 일가가 아니라면 숭배의 대상으로 세뇌시키기 어렵다. 그래서 황용호 입장에선 등장부터 확실히 그의 존재감을 각인시켜야 했다. 일단 김정은의 장례식으로 각인시키는 일은 물거품이 되어 버렸다.


황용호는 일단 상임위원장실로 향했다. 비어있는 그 방에서 홀로 TV를 틀었다. 조선중앙통신에서는 김여정의 잘못을 낱낱이 밝히는 방송이 나오고 있었다.


“만고의 불충 역적 김여정은, 나라의 곳간을 수시로 털어 온갖 사치와 향락을 일삼았고··· 2018년 평창올림픽 때는 남조선을 방문하여 괴뢰 무리들에게 우리 공화국의 기밀을 넘기기도 하였다··· 이에 오늘 우리 인민에 대한 충성심이 끓어 넘치는 조선인민군이 김여정 무리들을 처단하고 공화국의 존엄을 바로 세웠다.”


아나운서의 멘트와 함께 김여정이 모아왔던 유럽의 명품 가방들이 화면에 잡혔다. 저 가방 하나하나가 인민 한 명이 일 년을 일해도 사지 못할 것이리라. 다음 화면으로는 김여정의 사치스런 가구와 자가용이 비쳐졌다. 아나운서의 김여정에 대한 노골적인 비난 멘트는 계속되었다. 그렇게 방송이 계속되던 와중 장태식이 노크를 하고 들어와 경례를 했다.


“어 동지, 옆에 앉소. 비서관! 차 한 잔 내오라.”


황용호가 그를 옆 소파에 앉혔다.


“아 차는 괜찮습네다 총참모장 동지. 그보다도 김정은이 시신 소식은 들었습네다. 어떻게 하시갔습네까?”


“이미 장례식은 취소시켰지. 동지는 시신 걱정은 하지 말고, 평양에 집중하도록 하지.”


황용호가 물을 마시고 말을 이었다.


“이제 김여정이는 역적으로 만들어버렸는데, 김정은이가 문제야. 아직까지 인민들에게 ‘김정은 이놈이 인민의 적이었다’하고 발표할 수가 없어. 분위기를 잘 만들어야 할텐데.”


“일단 휘장부터 다 없애버리는 거이 어떻겠습네까? 오늘 식을 진행하면서 앞으로 휘장 안 쓰겠다고 발표 하시디요.”


장태식이 의견을 내었다. 북한에서 사람들이 김씨 일가의 얼굴이 박힌 휘장을 옷에 달지 않는다는 건 이제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불과 이틀 전까지 김정은의 우상화에 열을 올리던 북한 매체들이 하루아침에 김정은을 욕한다면, 사회적 혼란이 가중될 일이었다. 황용호와 그의 부하들은 언제, 어떻게 김정은에 대한 비판을 인민들에게 공개하면 좋을지 고심하고 있었다.


“오늘은 휘장 얘기를 하고, 내일은 초상화 얘기를 하고. 그렇게 하나하나 인민들한테 충격을 주면 언젠가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겠디. 좋은 생각이네 장 동지.”


황용호가 장태식의 의견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그 오늘 보도 있었지 않습네까. 김여정이가 사왔던 온갖 사치품들 화면에 아주 잘 담았던데, 그거이 임병해라고 조선중앙통신 보도국장이 기획했다 합네다. 그 일전에 총참모장동지래 장의위원장 발표 보도도 그 양반이 직접 했는데, 전달력이 아주 좋았습네다.”


“그래?”


“그 임병해 동무 앞으로 언론쪽에서 큰 일 맡기면 잘 할 거 같은데, 일단 조선중앙통신사 사장으로 앉히는 거이 어떻갔습네까?”


“그거이 좋은 생각이오. 방금 방송을 봤는데 내용이 아주 좋았어. 오늘 발표할 인사명단에 같이 넣도록 하지.”


장태식이 결국 임병해를 조선중앙통신사 사장으로 앉혔다. 일전에 사장 운운했던 허풍은 허풍이 아니게 되었다.


“그거이 인사 명단 말씀하셨길래 궁금해서 여쭤보는거인데··· 저는 어디 들어간 데가 있습네까?”


장태식이 조심스레 물었다. 오늘 황용호의 즉위식이 끝나고 어느 자리로 영전할지 알지 못하고 있던 그였다.


“동지는 우리 혁명의 아주 혁혁한 공을 세운 인물이디. 당연히 들어가있고말고. 고경희 놈이 죽어 지금 총정치국장이 없어. 동지는 그 후임자로 앉게 될기야.”


아, 장태식이 속으로 탄식했다. 그는 정보를 쥐고 싶었다. 그것도 나라 전체를 훤히 볼 수 있는 정보를. 그런데 총정치국은 군 내부의 정보를 얻을 수 있을지 몰라도 군 외부의 정보를 모으기는 쉽지 않았다. 그는 지금 있는 조직인 보위성의 우두머리, 국가보위상이 되고 싶었다.


“총참모장 동지, 저는 지금 있는 보위성이 좋습네다. 여기를 떠나고 싶지 않습네다. 이제 현근택이도 없으니까네 보위성이 정상적으로 돌아갈 겁네다.”


장태식이 간접적으로 자신의 의견을 말했다. 하지만 황용호는 의견을 굽히지 않았다.


“동지가 우리 군의 정치사상을 이끌어야, 나라가 바로 설 수 있어. 동지는 내일부터 별 네 개 달고 총정치국장으로 임명될거네.”


다른 사람이라면 황용호의 제안에 기뻐했을 것이다. 지금은 별이 하나인데, 하루아침에 네 개가 된다. 그가 가고 싶어했던 국가보위상 자리도 별이 세 개인지라 초고속 승진이긴 한데, 총정치국장은 그보다 별이 하나더 늘게 된다. 하지만 태식은 기쁘지 않았다. 그에게 별의 개수는 중요하지 않았다. 오로지 평양을 손바닥 보듯 보게 해줄 정보력이 필요했다.


“알갔습네다 총참모장 동지. 하지만 생각이 바뀌시면 꼭 저를 보위성으로 앉혀주시라요. 언제나 기다리고 있갔습네다.”


태식은 경례를 하고 일어나 나갔다. 그는 지난 이틀 간 온 평양을 휘젓고 다닌 것처럼, 지금의 이 상황도 뒤엎고 싶었다. 하지만 황용호는 호위사령부와 수많은 육군부대를 동원할 힘이 있었다. 자신이 아무리 정보가 많다고 한들 동원할 수 있는 병력의 차이가 막대해 황용호를 당해낼 수 없었다. 적을 거의 만들지 않은 그였기에, 군 내부의 반대없이 정점에 설 수 있는 황용호였다. 서로가 서로를 물어 죽이는 군 내부에서 그는 끝까지 살아남았던 인물이다.


“국장 동지, 어떻게 됐습네까? 오늘 보위상 자리에 오르갔지요?”


복도에서 기다리던 장태식의 부하 리효성이 태식이 나오는 모습을 보고 뛰어와 말을 걸었다.


“동무, 나는 아무래도 총정치국장이 되게 생겼다. 여간 실망스럽지가 않아.”


장태식은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그는 실망스런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국장 동지, 총정치국장이면 호위사령부를 제외하고는 군을 전부 다 뒤집어 엎을 수 있는 위치입네다. 이참에 그런 자리에 가 보는 것도 나쁘디 않디요.”


리효성은 긍정적인 인물이었다. 이렇게 옆에서 긍정의 에너지를 나눠주는 부하가 있어 장태식도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리 동무도 나 따라 올긴가?”


“예, 국장 동지 따라가야디요! 총정치국에서도 잘 해보자요.”


“좋구만 기래. 우리와 혁명을 같이 했던 보위성 식구들 있잖네. 반은 보위성에 남기고 반은 총정치국에 옮기도록 인사안을 동무가 짜보라. 나중에 기회되면 내가 총참모장 동지께 보고 올릴테니까.”


“알갔습네다, 국장 동지.”


장태식은 리효성을 보내고 만수대의사당 옥상으로 올라와 담배를 한 대 물었다. 시계를 보니 5시가 넘은 시각.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저 밑에선 인부들이 북한 국장이 새겨진 거대한 커튼을 의사당 안으로 옮기고 있었다. 곧 황용호의 즉위식이 거행될 참이었다. 그는 저 멀리 보이는 조선로동당 중앙청사를 바라보며, 황용호에게 합류하기로 결심했던 며칠 전을 떠올려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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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혁명의 수도 평양 22 24.09.15 20 1 12쪽
21 혁명의 수도 평양 21 24.09.14 21 1 12쪽
20 혁명의 수도 평양 20 24.09.14 20 1 12쪽
19 혁명의 수도 평양 19 24.09.14 23 1 11쪽
18 혁명의 수도 평양 18 24.09.13 22 1 11쪽
17 혁명의 수도 평양 17 24.09.12 25 1 12쪽
16 혁명의 수도 평양 16 24.09.10 31 2 11쪽
15 혁명의 수도 평양 15 24.09.10 28 1 11쪽
14 혁명의 수도 평양 14 24.09.10 26 1 11쪽
13 혁명의 수도 평양 13 24.09.10 29 1 11쪽
12 혁명의 수도 평양 12 24.09.09 27 1 11쪽
11 혁명의 수도 평양 11 24.09.09 33 2 11쪽
10 혁명의 수도 평양 10 24.09.07 32 1 11쪽
9 혁명의 수도 평양 9 24.09.07 34 1 11쪽
8 혁명의 수도 평양 8 24.09.07 36 1 11쪽
7 혁명의 수도 평양 7 24.09.07 39 1 11쪽
6 혁명의 수도 평양 6 24.09.06 43 1 11쪽
5 혁명의 수도 평양 5 24.09.02 47 1 11쪽
4 혁명의 수도 평양 4 24.09.02 50 1 11쪽
3 혁명의 수도 평양 3 24.09.02 56 1 11쪽
2 혁명의 수도 평양 2 24.09.02 70 1 11쪽
1 혁명의 수도 평양 1 24.09.02 97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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