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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J.
작품등록일 :
2024.09.01 2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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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8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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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2 2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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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의 수도 평양 4

DUMMY

2034년 3월 15일

김정은 사망 소식이 온 공화국을 울리던 날 밤

평양 로동신문사



"여기는 병사들이 없습네다. 들어갈까요?"


김여정의 운전병이 차를 세우고 물어봤다. 그녀는 벌개진 눈으로 운전병을 노려보더니


"가야지. 여기라도 가야지."


그녀는 결연한 의지로 대답했다. 차에 같이 타고 있던 병사들은 권총을 장전하고 있었다. 다행이 로동신문사에는 그녀 일행을 막아서는 군인들이 없었다. 그녀의 렉서스가 정문을 통과한 때는 오후 10시가 안 된 시각이었다.



로동신문사 직원들은 이제 막 내일자 신문을 찍어내려 분주했다. 1면은 온통 김정은의 전신사진으로 채워져 있었다. 한창 작업을 하던 도중 문을 벌컥 열렸다. 문이 열리고 여정이 모습을 드러내자 모든 직원들이 그대로 굳었다.


"1면만, 1면만 좀 바꿉시다."


그녀의 목소리가 떨렸다. 직원들은 뒤따라온 장교들을 보고는 곧바로 일어나 일렬로 정렬했다.


"그럴 것 없습니다. 내 사진이나 하나 찍어주고 1면에 올려주면 됩니다."


"저... 그게..."


그녀의 떨리는 말에 직원 중 한 명이 어렵게 입을 열었다. 그때, 바깥의 소란스런 소리를 들은 여성이 가림막을 거두며 김여정 앞으로 다가갔다. 아주 고급스런 차림의 20대 여성이었다. 그 여성을 본 김여정과 총정치국장 고경희의 동공이 커졌다.


"고모..."


김주애였다. 김정은의 딸 김주애가 로동신문사에 있었다.


"주애야!"


여정 입에서는 탄식과 같은 목소리가 나왔다. 김주애가 왜 여기있는 것인가.


"순안공항은 이미 군인들로 꽉 찼어요. 공화국을 나갈 방법이 떠오르질 않아서... 일단 아는 사람들이 좀 있는 여기에 왔어요."


김주애는 도망치고 있었다. 몰락한 왕조의 마지막 공주라고. 주애가 권력다툼의 대상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자 여정은 안도했다. 여정은 집권을 위해 주애를 찾아 조선땅 밖으로 쫓아낼 계획을 세우고 있던 차였다.


"주애야 오마니는 어디갔니?"


여정이 냉정을 찾았다. 주애는 둘이서만 얘기하고 싶다고 하고는 김여정을 2층까지 끌고갔다.


"오마니 행방은 몰라요. 아바이와 같이 열차를 타고 가셨는데, 연락이 되지 않아요."


거짓말이다. 오늘 낮 주애의 어머니 리설주는 주애애게 전화를 걸었다.


---

2034년 3월 15일 새벽 2시

라선특별시


"여사님, 수령님께서...수령님께서 위급하십니다!"


김정은 호위병 중 한 명이 숨이차게 리설주의 열차칸으로 뛰어왔다. 함경북도 일대를 열차를 타고 시찰하던 김정은과 리설주였다. 이날은 라선특별시에 도착해 러시아 기업소를 둘러보기로 되어 있었다.


"얼른 가자! 수령님 어느 칸에 계시니!?"


설주가 급히 옷을 챙겨입고는 호위병과 함께 김정은 전용칸으로 달려갔다. 도착해보니 김정은은 알몸인 상태로 욕조에서 꺼내져 있었고 주치의들이 물기를 닦고 있었다. 육중한 몸을 옮기느라 주치의들이 지쳐있었다.


"여보!"


설주가 김정은을 부둥켜 안았다. 김정은은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이때 주치의가 리설주에게 잠시 비켜달라 했다.


"살리라. 살리면 너희에게 공화국의 반을 주겠다."


설주의 눈이 붉어졌다. 이미 며칠 전 김정은이 몇 주를 버티지 못하리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심혈관계 분야 최고 수준의 프랑스 의사들이 찾아와서 여러 검사를 해보고는 가망이 없다 하였다.


김정은은 그런 몸을 이끌고도 전국 일주를 쉬지 않았다. 인민에게서 멀어지면 자신의 정권도 곧 끝나리라는 것을 직감했던 걸까. 김정은의 눈이 서서히 풀려가고 있었다. 주치의들은 다급히 심장박동기를 준비하고는 호위병에게 설주를 열차 바깥으로 모시라 손짓했다. 호위병들이 어렵게 설득하여 설주를 옆칸으로 데려갔다. 리설주는 흐르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하고 있었다.


몇 분이 지났을까. 주치의 중 한 명이 문을 벌컥 열고 설주에게 다가왔다.


"2034년 3월 15일 새벽 2시 30분, 위대한 태양 김정은 최고사령관 동지께서 서거하시었습니다."


설주는 주치의를 부여잡고 통곡했다. 아무도 그녀를 다독이는 이가 없었다. 열차도 멈추지 않았다. 그렇게 그녀는 동이 틀 때까지 울고 있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병사들이 김정은의 시신을 옮기고 있었다. 그의 침실칸으로 옮기는 것 같았다. 설주는 이를 쳐다보다 아직은 온기가 남아 있는 김정은의 손을 쥐고는 병사들과 함께 침실칸으로 향했다.


병사들이 흰색 천을 김정은 시신위로 덮었다. 그의 얼굴이 가려지자 온전히 해가 뜨며, 열차는 두만강 역에 도착했다. 오늘 김정은의 시찰이 있을 지역이었다. 열차가 멈추자 설주는 외투를 걸치고 털모자를 쓰고는 열차 밖으로 나왔다. 그녀의 수행원들이 동행했다. 아직은 뼈가 시릴 듯한 찬바람이 그녀의 뺨을 스쳤다. 그녀는 정처없이 앞으로 걸었다. 저 멀리서 두만강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녀의 걸음은 멈추지 않았다. 수행원 누구도 그녀를 막지는 못하였다. 그렇게 새로운 조선이 시작되고 있었다.


“날이 춥습니다. 여사 동지, 들어가시지요.”


두 시간여쯤 지났을까, 수행원 한 명이 조심스레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그녀의 시선은 두만강 저편 중국땅에 닿아 있었다. 굳게 다문 입술이 떨렸다. 그녀는 그의 말에 잠시 고민하다 다시 열차로 돌아갔다. 수행원들이 따뜻한 밀크티를 만들어 건내었다. 그녀는 밀크티를 받아들고는 다시 차창밖을 보며 생각에 잠겼다.


“평양으로 가자꾸나.”


설주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문을 열었다.


"평양으로 가시면 안 될 거 같습니다."


조금 전 두만강변에서 그녀에게 말을 걸었던 수행원이 어렵게 그녀의 말을 받아쳤다. 설주의 눈이 커졌다.


"평양이 위험할 거 같습니다. 수령님이 없는 이 때, 반동 무리들이 가장 노리는 표적이 여사 동지일 겁니다. 이미··· 수령 동지의 사망 소식은 총참모부에 올라갔을 겁니다. 로씨야가 멀지 않으니, 열차로 그대로 국경을 건너시지요."


설주는 장교의 눈을 빤히 쳐다보았다. 더 이상 눈물이 나지 않았다. 그의 말이 맞았다. 김정은이 없는 자신은, 후계가 없는 그의 아내인 본인은 평양에서 더 이상 여왕대접을 받지 못할 수도 있는 일이었다. 어쩌면 프랑스 혁명 때의 마리 앙투아네트 꼴이 날 수도 있지 않은가. 그녀는 입술을 굳게 다물고는 다시 차창밖을 쳐다 보았다. 그러다 문득 한 명이 머리속을 빠르게 스쳐지나갔다.


"우리 주애는, 주애는 어찌하고. 주애는 반드시 데리고 나가야 한다."


김주애부터 걱정이 되는 설주였다. 하지만 장교는 그녀의 평양행을 결사 반대했다.


"평양에 발을 들이는 순간 어떻게 될지 모릅니다. 여사 동지께서 평양에 가는 건 절대 안 됩니다.”


“그럼 관저에 연락해서 주애가 따로 빠져나오도록 해라. 얼른!"


그녀가 소리치자 장교는 휴대폰을 가져다달라 하고는 곧바로 주애에게 전화를 걸었다. 김주애는 받지 않았다.


"관저에 있는 다른 장교에게 연락을 해보겠습니다."


수행원이이 어디론가 전화를 하더니 수화기를 건넸다. 주애였다.


"오마니, 무슨 일 급한 일이라도 있습네까?"


주애는 아직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설주는 침착했다.


"주애야, 아바이가 돌아가셨다. 놀라거나 슬픔에 빠지지 말고, 오늘 안으로 공화국을 빠져나오라."


설주는 울음을 참았다. 주애의 대답을 기다렸지만 주애는 대답하지 않았다.


"주애야, 듣고 있니?"


설주는 속이 타들어갔다. 그때 주애가 대답했다.


"어머니는 어디 가시게요. 나도 따라 갈게요."


주애는 울지 않았다.


"로씨야로 간다. 모스크바에서 보자꾸나."


설주도 침착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예 어머니."


주애가 전화를 끊자, 설주는 참았던 울음이 터졌다. 그렇게 그녀의 조선은 끝났다.

---



"고모, 나는 조선을 떠날 생각인데, 방법이 없어요. 고모가 좀 도와주셔요."


여정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모든 일이 순조롭게 풀리고 있었다.


"주애야. 나랑 같이 온 사람들 중엔 우리 조선인민군 공군사령관도 있어. 그이에게 부탁하여 널 원산까지 데려다 달라 할게. 원산은 아직 안전하지."


"안전이라니, 그럼 이미 평양은 안전하지 않다는 말인가요?"


주애의 목소리가 떨렸다.


"글쎄 내일이 되어 봐야 알겠지. 일단 넌 원산으로 가라. 원산에서 수송기를 타고 어디든 외국으로 가면 안전할 거야."


여정의 목소리가 흥분으로 가득 찼다.


"알겠어요, 고모."


여정은 뒤따라온 무리 누군가에게 지시하더니 주애를 곧장 차에 태웠다.


"조금만 나가면 헬기장이다. 헬기를 타면 바로 원산까지 갈 수 있어."


"고모, 나중에 꼭 봐요!"


"그러자."


여정의 목소리가 떨렸다.



주애를 배웅한 여정은 위엄있는 포즈로 사진을 찍었다. 그녀의 눈에 다시 총기가 돌아왔다. 몇 분 후 특실에서 가장 잘 나온 사진을 고르고 있었다. 그녀는 오랜만의 환한 웃음을 지으며 사진 한 장을 가리켰다.


"이걸로 하지요."


여정은 사진 하나가 마음에 들었다. 인민들이 우러러볼만큼 위풍당당한 모습이었다. 이때, 멀리서 헬기소리가 들렸다. 주애가 탄 헬리콥터가 출발하는 소리였다. 이제 이땅의 백두혈통은 자신과 김정철 둘 밖에 남지 않았다. 그녀는 이미 승리감에 취해 있었다.


"특별담화문은 그럴듯하게, 동지가 잘 완성해주세요. 1면에는 사진만, 담화문은 2면에 싣으면 좋겠네요."


여정은 그녀의 무리들 중 누군가에게 지시하고는 2층의 인쇄실로 향했다.


'여기가 우리 조선의 눈과 귀렸다...'


여정이 과거를 회상했다. 과거 이 로동신문은 그녀의 담화문을 대문짝만하게 싣고는 인민들에게 그녀의 카리스마를 각인시켜주던 고마운 도구였다. 그런 과거가 현재와 대비되었다. 미국 대통령이며 일본 총리도 따끔하게 혼내던 그때를 생각하며 현재는 비참해진 자신의 모습이 사무실 한 켠 거울에 비쳤다. 화장기 없이 푸석해진 자신의 모습에 그녀는 더 서글퍼졌다. 그때 밖에서 웬 소란스런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대장동지! 밖에 웬 병사들이..."


그녀의 비서가 인쇄실 문을 벌컥 열고 들어왔다. 그는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뒤에서 날아온 총탄에 맞고 쓰러졌다.


"누구냐! 누가 이런 짓을 벌이는 것이냐!"


여정이 소리쳤다. 그때 검은 군복의 사내들이 인쇄실로 쏟아져 들어왔다.


"이놈들, 누구냐!"


여정이 울부짖었다. 분명 조선중앙통신에서 총정치국장을 사살한 이들과 한패일 것이다. 김정철의 똘마니들일까? 아니다. 김정철은 아무 세력도 없다. 이제 김씨조선은 끝났다는 말인가.


"여정동무, 같이 가셔야겠습니다."


북한에선 좀처럼 윗사람을 동무라 부르는 일이 없다. 김여정을 동무라 부른다면 이는 그녀를 능멸하는 것이다.


"동무라니... 이놈들!! 밖에 누구 없냐!"


여정의 외침에도 대답하는 이가 없었다. 검은 군복의 사내들은 그녀의 팔에 수갑을 채우고는 차에 태우더니 곧장 출발했다. 그녀가 로동신문사를 나오면서 본 건, 수십의 시체였다. 그것도 조선인민군의 수뇌부들. 김씨일가 곁에 있으면 목숨은 부지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던 이들이다. 불과 하루도 채 안 되어 세상은 변했다. 그렇게 그녀의 조선도 막을 내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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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혁명의 수도 평양 23 24.09.16 19 1 11쪽
22 혁명의 수도 평양 22 24.09.15 20 1 12쪽
21 혁명의 수도 평양 21 24.09.14 22 1 12쪽
20 혁명의 수도 평양 20 24.09.14 20 1 12쪽
19 혁명의 수도 평양 19 24.09.14 23 1 11쪽
18 혁명의 수도 평양 18 24.09.13 23 1 11쪽
17 혁명의 수도 평양 17 24.09.12 25 1 12쪽
16 혁명의 수도 평양 16 24.09.10 32 2 11쪽
15 혁명의 수도 평양 15 24.09.10 28 1 11쪽
14 혁명의 수도 평양 14 24.09.10 27 1 11쪽
13 혁명의 수도 평양 13 24.09.10 29 1 11쪽
12 혁명의 수도 평양 12 24.09.09 27 1 11쪽
11 혁명의 수도 평양 11 24.09.09 34 2 11쪽
10 혁명의 수도 평양 10 24.09.07 32 1 11쪽
9 혁명의 수도 평양 9 24.09.07 34 1 11쪽
8 혁명의 수도 평양 8 24.09.07 37 1 11쪽
7 혁명의 수도 평양 7 24.09.07 39 1 11쪽
6 혁명의 수도 평양 6 24.09.06 43 1 11쪽
5 혁명의 수도 평양 5 24.09.02 47 1 11쪽
» 혁명의 수도 평양 4 24.09.02 51 1 11쪽
3 혁명의 수도 평양 3 24.09.02 57 1 11쪽
2 혁명의 수도 평양 2 24.09.02 70 1 11쪽
1 혁명의 수도 평양 1 24.09.02 97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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