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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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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의 수도 평양 14

DUMMY

2034년 3월 16일 오전

러시아 모스크바 외교부 본부


김주애와 통화한 리설주는 남한에 도착한 주애의 목소리를 듣고 안도했다. 남편 김정은은 잠들기 전이면 침대에 누워 군부를 경계해야 한다고 그녀와 주애에게 자주 말하곤 했다. 가끔씩 농담 아닌 농담으로 자기가 죽는다면 얼른 도망가야 한다고 말하던 그였다. 말도 안 되는 농담 하지 말라며 그에게 핀잔 주었던 그때가 지금 그녀에게는 계속 생각이 났다. 그가 없는 평양은 절대로 돌아가서는 안 될, 그녀의 묫자리가 된 셈이었다.


주애와의 전화를 끊고는 곧 옷매무새를 만졌다. 그녀는 투박하게 차려진 접객실에서 곧 찾아올 러시아 외교부 차관이라는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다. 어제 그녀의 안전을 우려한 러시아 외교부가 그녀를 본부청사의 비밀 객실을 만들고는 그녀에게 하룻밤을 재운 것이다. 낯선 러시아에서의 잠자리가 힘들었던지 그녀가 미간을 찌푸렸다.


외교부 직원들이 그녀에게 밀크티를 내왔다. 어제 아침에는 맛이 잘 느껴지지 않던 밀크티가 지금은 달디달다. 러시아어로 어떻게 인사하는 게 나은지 생각하던 찰나 러시아 외교부 차관 스치라노프가 그녀가 있던 접견실에 도착했다.


“바··· 반갑습니다.”


설주가 어눌한 러시아어로 인사했다. 스치라노프는 그녀에게 두 손으로 악수하고는 자리에 앉으라는 제스쳐를 했다. 그는 앉자마자 말을 꺼냈다. 설주는 그의 말이 끝나길 기다리고는 통역으로 보이는 직원을 쳐다보았다.


“차관님께서 지금 여사님의 안전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모스크바 근교에 안가를 마련했으니 그리 가시자고 합니다.”


설주는 스치라노프에게 미소로 화답하고는 다시 통역을 바라보며 말했다.


“말씀은 고맙지만··· 제 안가는 남조선에 있다고 전해주세요. 저를 남조선에 데려다 달라고 전해주세요.”


설주의 말에 통역이 놀랐다. 바로 어제까지 북한의 국모였던 사람이 오늘은 남조선이 안전하다니. 통역이 말을 옮기자 스치라노프가 잠시 나갔다오겠다며 자리를 비웠다. 러시아 정부로서도 쉽게 응할 문제는 아니었다. 설주의 손이 떨리고 있었다.


러시아 외교부 본부에서는 스치라노프가 비밀 접견실을 나오는 걸 지켜보는 어느 아시아인 외교관이 있었다. 그는 설주와 그의 대화가 끝나기를 기다렸다가, 스치라노프가 엘리베이터를 타고 다른 층으로 이동하자 재빨리 접견실에 들어왔다. 그와 눈이 마주친 설주가 그에게 러시아어로 누구냐 물었다. 그는 숨을 헐떡이더니 옆에 있던 물을 한 컵 마시고는 한국말로 대답했다.


“주러시아 대한민국 대사관 3등 서기관, 홍영태입니다.”


대한민국이라는 말에 설주의 눈이 커다랗게 떠졌다. 홍영태가 이어 말했다.


“사실, 앞전에 여사님께서 방에 들어오는 걸 우연히 보았습니다. 사실 여기는 다른 일 때문에 온 거거든요. 아, 물론 우리 외교부 본부를 통해 여사님께서 러시아에 들어왔다는 건 들었는데 마침 여기 계실 줄이야.”


영태는 스치라노프가 앉던 소파에 앉았다. 설주는 옅은 미소만 지을 뿐이었다.


“단도직입적으로 묻겠습니다. 리설주 여사님, 우리 대한민국에 귀순할 의향이 있습니까?”


영태의 물음에 설주가 잠시 창밖을 바라보고 고민했다. 조선의 국모가 이게 맞는 것인가. 설주는 영태를 바라보기가 너무 부담스러웠다. 그때 스치라노프가 접견실로 다시 들어왔다.


“남한행은 아무래도 협조하기 어렵습니다.”


스치라노프가 설주를 보고 얘기하다가 시선이 영태에게로 향했다. 이 자가 왜 여기 와있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정중히 나가달라 했다. 그때 영태가 다시 설주에게 물었다.


“여사님, 지금 대답하지 않으시면 주애를 보기 힘들 수도 있습니다. 여사님의 안전도 장담할 수는 없습니다. 여사님, 여사님을 지켜드릴 우리 대한민국에 귀순하시겠습니까?”


영태는 설주를 똑바로 쳐다보고 말했다. 설주는 스치라노프와 영태를 번갈아가며 쳐다보다가 이내 대답했다.


“네, 귀순하겠습니다.”


영태가 무릎을 탁 쳤다. 스치라노프는 붉어진 얼굴로 영태에게 나가라고 재촉했다. 영태는 벌떡 일어서더니, 아주 정확한 러시아어 발음으로 대답했다.


“저는 대한민국 외교관입니다. 대한민국 외교관으로서, 우리 국민을 본국까지 안전히 송환하기 위해 이곳에 왔습니다. 러시아 외교부에 그 송환에 대한 협조를 정중히 요청드립니다.”


스치라노프가 코웃음을 쳤다.


“여기 계신 숙녀분은 북한에서 온 리설주 여사입니다. 대한민국 국민이 아니예요. 우리 러시아에서 안전하게 보호해드리기로 했으니 걱정 마시고 당신 대사관으로 돌아가세요.”


스치라노프는 설주에게 잡고 일어나라며 손을 건넸다.


“북한 주민은, 대한민국에 귀순하기로 결정한 순간부터 대한민국 국민입니다. 우리나라 헌법 제3조에는 ‘대한민국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설주 여사는 우리 영토에 살던 우리 국민입니다.”


영태가 우렁찬 목소리로 대답했다. 스치라노프는 설주를 쳐다보았다. 설주가 고개를 끄덕이며 어설픈 러시아어 발음으로 작게 말했다.


“그렇습니다.”


영태는 설주에게 손을 건넸다. 설주는 영태의 손을 덥석 잡고 일어섰다. 영태의 손을 잡은 설주는 환하게 웃고 있었다. 그녀는 스치라노프를 잠시 쳐다보더니 자신의 캐리어를 끌고 빠르게 접견실을 나왔다. 그 모습을 뒤에서 지켜보던 스치라노프가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그의 얼굴은 더 붉어져 있었다.


건물 1층에 도착한 그들 앞에 검은색 양복을 입고 선글라스를 쓴 남성 넷이 나타났다. 설주는 무의식적으로 영태의 어깨 뒤에 숨었다. 그녀는 그의 어깨를 꼭 쥐었다.


“비키시오. 대한민국 외교관의 공무수행입니다.”


남성들은 영태의 말에도 요지부동이었다. 그를 위협하지는 않았지만 절대 길을 비켜주지는 않았다. 영태는 대사관에 연락할까 생각하다가 불현듯 며칠 전 같이 술자리를 가졌던 프랑스 르 몽드지의 한 기자가 생각났다. 그는 곧장 휴대전화를 들어 설주와 사진을 찍고는, 설주를 벽에 기대어놓고 사진 한 장을 더 찍었다. 검은 양복의 남성들은 아직도 아무런 움직임이 없었다. 영태는 곧바로 전화를 걸었다.


“지금 사진 보냈습니다. 다른 코리아의 영부인이 우리 코리아로 귀순하려 합니다. 러시아 정부는 이걸 방해해선 안 되겠지요.”


그는 짤막하게 영어로 말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그는 앞에 서 있는 남자들에게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이제 설주의 대한민국행은 몇 분 뒤면 온 세계가 알게 될 것이다.


정말로 몇 분이 지나자 러시아의 반응이 나왔다. 엘리베이터에서 스치라노프가 내리더니 한층 더 붉어진 얼굴로 영태에게 고함을 질렀다.


“대체 어떻게 된 겁니까! 한국은 외교를 이딴식으로 하는 겁니까!”


전쟁 중에도 화를 내지 않는 외교관이, 전쟁도 아닌 이 상황에서 화를 내다니. 영태는 코웃음을 쳤다.


“세상 모두가 알게되었나보군요. 이제 우리 대한민국 국민이 본국으로 잘 돌아갈 수 있도록 협조해주시면 됩니다.”


스치라노프는 검은 양복의 남성들에게 옆으로 비키라는 손짓을 했다. 그는 평정심을 찾더니 영태를 노려보고는 말을 꺼냈다.


“치기어린 3등 서기관의 미숙한 외교 덕분에, 한국은 많이 후회하게 될 겁니다.”


스치라노프는 한 마디를 하고는 가라고 손짓했다. 영태가 가볍게 목례를 하고 설주의 손을 잡고 외교부 청사를 나왔다. 주차된 차에 탈 때까지 설주의 손을 놓지 않았다. 차에 타자 설주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홍영태라고 했지요. 구해줘서 고맙습니다. 호칭은 뭐라 하면 될까요?”


설주가 그를 보고 웃으며 물었다.


“그냥 홍 서기관이라 부르면 됩니다.”


영태는 대답과 함께 얼른 시동을 켜더니 곧장 출발했다.


“내가 그 접견실에 있는 건 어떻게 알고 왔나요? 내가 여기 러시아에 온 건 알고 있었나요?”


설주가 궁금했던 질문들을 꺼내기 시작했다.


“여사님이 러시아에 있는 건 알고 있었지만, 외교부 청사에 있는 줄은 몰랐습니다. 오늘 다른 일때문에 들렀다가 우연히 여사님 이야기를 직원들이 하더군요. 흥미가 생겨 그들 말을 엿들으러 따라갔다가 직감했습니다. 저 직원들이 지금 여사님이 계신 방으로 가고 있다는 걸.”


설주가 박수를 쳤다. 이렇게나 운이 좋았을 수가.


“스치라노프가 들어가더니 금방 나오자 이게 내 인생 다시없을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뒤도 안 돌아보고 뛰어들어갔지요. 문 닫히면 어떡하나 하고 엄청 뛰었습니다.”


영태가 생수를 벌컥 들이키며 말했다. 설주는 그를 향해 엄지를 추켜세웠다.


“아마, 러시아 안가로 갔으면 안전하긴 했을 겁니다. 하지만 날 정치적으로 이용했겠지요. 우리 공화국과 거래를 하기 위해 내 신원을 넘겼을 수도 있고, 남조선하고 거래를 하기 위해 주애를 못 만나게 했을 수도 있어요. 아까 영태씨가 말한 것처럼요.”


설주는 다시금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녀가 아는 러시아 정부라면 절대 그녀가 러시아에 있다는 사실을 외부에 공개하지 않았을 것이다. 각종 외교적 협상에 카드로 이용당하거나, 북한 기밀을 실토하라 협박당했을 것이다. 그래도 평양보다는 안전해서 주애를 모스크바로 불렀건만, 주애가 지금 한국에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그녀도 지금 한국으로 귀순하는 게 백 번 나았다.


그들의 차는 주러시아 한국대사관으로 들어왔다. 연락을 받은 김주황 대사가 그들을 1층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여사님, 반갑습니다. 어서오시지요.”


김 대사가 설주를 반기며 두 손을 꼭 잡고 악수했다. 설주는 간단히 목례를 했다.


“지금 여사님이 러시아 외교부에 갇혀있다는 이야기가 인터넷에 올라와서 전 세계 사람들이 다 주목하고 있었습니다. 이제 러시아도 여사님을 어떻게 하지는 못할 겁니다.”


대사관 직원 한 명이 그녀에게 꽃을 주며 말했다. 설주는 뒤를 돌아 영태를 보았다.


“홍 서기관님이죠? 아까.”


설주가 흥분한 목소리로 묻자 영태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대사는 대화를 마치고 설주를 데리고선 대사관 접견실로 안내했다.


“이제 제가 어떻게 남조선에 가면 될까요?”


설주가 물었다.


“여사님을 안전하게 모시기 위해 밤에 대한항공 여객기가 긴급 편성될 겁니다. 시간 맞춰 세레메티예보 공항으로 가면 됩니다.”


“중국 상공은 절대 통과하면 안 됩니다, 대사님.”


설주는 중국에 납치되어 평양으로 끌려갈까 두려웠다.


“걱정 마십시오. 중국 상공을 통과하지 않고, 사할린을 거쳐 일본 상공에 진입할 겁니다. 후쿠오카쯤까지 내려가서 대한해협을 건널 겁니다. 중국이나 북한 영공은 통과하지 않습니다.”


김주황 대사가 그녀를 달랬다. 접객실 밖에서 영태가 직원들과 웃으며 수다를 떨고 있었다.


“대사님, 저기 저 홍 서기관님하고 꼭 같이 갔으면 하는데요.”


설주가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김 대사를 쳐다보았다. 김 대사는 밖에 있는 영태를 슬쩍 보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아, 그래요. 어차피 저 친구, 그렇게 한국에 두고 온 와이프 보고싶다 했는데 잘 됐네요. 같이 가시죠.”


설주의 표정이 살짝 굳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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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혁명의 수도 평양 15 24.09.10 28 1 11쪽
» 혁명의 수도 평양 14 24.09.10 27 1 11쪽
13 혁명의 수도 평양 13 24.09.10 29 1 11쪽
12 혁명의 수도 평양 12 24.09.09 27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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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혁명의 수도 평양 10 24.09.07 32 1 11쪽
9 혁명의 수도 평양 9 24.09.07 34 1 11쪽
8 혁명의 수도 평양 8 24.09.07 36 1 11쪽
7 혁명의 수도 평양 7 24.09.07 39 1 11쪽
6 혁명의 수도 평양 6 24.09.06 43 1 11쪽
5 혁명의 수도 평양 5 24.09.02 47 1 11쪽
4 혁명의 수도 평양 4 24.09.02 50 1 11쪽
3 혁명의 수도 평양 3 24.09.02 57 1 11쪽
2 혁명의 수도 평양 2 24.09.02 70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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