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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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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의 수도 평양 13

DUMMY

2034년 3월 16일 새벽

남포특별시 서해갑문 남단


“전체 차렷! 앞에 총!”


강문환이 소리치자 일렬로 도열한 삼십여명의 조선인민군 장병들히 일제히 총을 들고는 차렷자세를 취했다. 그들의 목은 꼿꼿히 뒤로 젖혀져 있었고, 시선은 총칼의 끝을 향했다. 김정은이 군부대를 방문할 때면 늘 하던 사열이었다.


김정철이 보트에서 내리자 신소평 중좌가 그를 강문환이 서 있는 곳까지 안내했다. 정철은 무릎이 아팠는지 어정쩡하게 걷다가 넘어질 뻔했다. 뒤에선 김정철의 아내가 걱정스런 눈빛으로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김정철이 갑문 도로위로 올라오자 강문환이 그에게 절도있는 동작으로 다가갔다. 바닥엔 레드카펫이 깔려 있고, 병사들이 앞에 총 자세로 정철만 쳐다보고 있었다. 어디선가 많이 본 듯한 장면이다. 문환은 정철 앞에 서더니 은색 날빛이 강하게 비치는 검을 뽑아들어 수직으로 세웠다.


“김정철 위원장 동지! 저희 조선인민군 명예위병대는 위원장 동지를 영접하기 위하여 정렬하였습니다. 조선인민군 육군소장 강!문!환!”


문환이 말을 끝내고 뒤로 돌아 정철을 기다리자 정철이 앞으로 걸어갔다. 도열한 병사들은 정철이 지나가자 시선을 그가 걸어가는 쪽으로 향했다. 모두가 칼 같은 각도였다. 문환이 옆에서 레드카펫이 끝나는 지점까지 에스코트를 하고 있었다.


“위원장이라니, 큰일날 소리들 하네.”


정철을 떨떠름한 표정으로 강문환을 바라보고 있었다. 저 앞에선 정찰총국장 조해평이 기다리고 있었다.


“위원장 동지, 잘 오셨습네다. 저희가 평양까지 최선을 다해 함께하겠습네다.”


조해평은 활짝 웃고 있었다.


“당신은 누군지 알겠고만. 정찰총국장 동지 아닙니까? 왜 나를 위원장이라 부르는 겁니까?”


원래는 존댓말이 입에 배어있는 김정철이었다. 그는 웬만해선 거리가 먼 사람에게 반말을 하지 않았다.


“어제 김정은 원수님이 사망하신 뒤로는, 우리 조선인민군은 구국위원회를 설립했습네다. 위원장에는 당연히 김정일 장군님의 아드님이신 위원장 동지께서 맡게 되는 겁네다.”


정철은 아무 예고없이 다가온 이 권력의 기회가 달갑지만은 않았다. 이미 남조선물이 들 대로 들어버린 평양사람들이 자신을 보노라면 비웃기만 할 뿐이라고 생각했다. 김정은이 죽고 나서는 어떤 김씨가 나오더라도 더 이상 왕노릇은 힘들다고 생각한 그였다.


“나는 이 자리 수락한 적 없습니다. 당신들이 그냥 날 납치했을 뿐이지요. 평양까지 간다고 했지요? 룡성구역 깊은 곳에 내 원래 집이 있습니다. 나와 우리 가족을 그쪽으로 안내해 주시지요.”


정철이 어깨를 으쓱 하며 말했다. 하지만 조해평은 이런 반응을 예상이라도 한 듯 놀라지 않고 대화를 이었다.


“위원장 동지, 김여정 동지가 평양 호위사령부 놈들한테 포위당했습네다. 저 호위사령부 놈들이 우리 공화국 존엄에 반기를 든 셈입네다. 김정은 원수님도 저들이 어떻게 했을지도 모를 일이구요. 그런 반동분자들의 오만방자한 책동으로부터 공화국 최고 존엄을 지킬 수 있는 건 우리 구국위원회 뿐입네다.”


조해평은 정철에게 차분히 설명했다. 구국위원회는 몇 시간 전 평양 과기대를 나오면서 강문환과 조해평이 급하게 붙인, 그들 세력의 이름인 것이다. 급조한 것 치고 꽤 어울리는 이름이었다.


“그럼 우리는 지금 어딜 가는겁니까?”


정철은 여정이 위험하다는 이야기에도 딱히 놀라지 않았다. 이제 본인들의 행선지만 궁금했을 뿐이다.


“우리 구국위원회는 일단 평양과기대에 본부를 차렸습네다. 근데 평양 시내와 너무 가까워 공격받을 여지가 높아 본부를 사리원으로 옮기려 합네다. 일단 그쪽으로 가시디요.”


평양과기대는 조선로동당 본부로부터 직선거리로는 8km밖에 떨어져 있지 않았다. 호위사령부나 구국위원회나 서로 포격하기로 마음만 먹는다면 충분히 사정거리 안에 들어오는 위치였다. 황용호의 총참모부-호위사령부 세력은 전방부대와의 전면전으로 확대될까 두려워 포격하지 않았던 것이고, 구국위원회는 평양의 민간인들이 포격을 맞아 정권 탈환에 대한 민심이 이반될까 두려워 포격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도 거리가 너무 가까운 게 마음에 걸렸던지 강문환과 조해평은 결국 평양에서 먼 사리원으로 본부를 옮기기로 합의했다.


“하아···”


정철은 고개를 저으며 조해평이 마련한 리무진에 올랐다. 그의 가족들이 곧 같이 탔다.


“주애는 어디갔답니까?”


정철은 김정은의 딸이 불현듯 생각났다. 김정은이 죽고 김여정이 위험하다면, 김정은의 딸도 안전할 수는 없었다. 정철은 조해평이 보조석에 앉아마자 질문을 한 것이다.


“주애공주님, 아니 김주애 동지는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갔습네다. 오늘 낮부터 평양 시내에는 우리 소식통이 남아있지 않습네다. 지금은 다른 일은 말고, 위원장 동지 안전만 생각하시라요.”


이들은 꿈에도 몰랐지만 지금 대화를 나누고 있는 이 시점, 김주애는 남한의 강릉 공군기지에 도착해 있었다. 정철은 속으로 어쩌면 남조선이 더 안전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두 시간쯤 달렸을까, 정철 일행은 사리원교원대학에 도착했다. 이제 이들 구국위원회의 본부로 쓰일 곳이다.


“대학에는 왜 온 겁니까? 여기보단 군부대가 더 안전하지.”


정철이 졸린 눈을 감았다 뜨며 말했다.


“우리는 군인이지만 위원장 동지는 아닙네다. 당과 국가, 인민을 대표하게 될 것인 만큼 군부대가 아닌 곳에서 업무를 보셔야 합네다. 그래야 인민들이 자신들의 대표가 왔다고 여길 겁네다. 그리고 여기가 가장 잘 지어진 건축물들이 있기도 하구요.”


그가 차에서 내리자 교원대학 본관 앞에는 백여 명의 병사들이 정렬해있었다. 그들 중 한 명이 힘차게 정철 앞으로 걸어나왔다. 아까 했던 사열을 또 하려는 건가. 정철은 이들이 오밤중에 잠도 못자고 고생이라 생각했다.


“전체 차렷! 위원장 동지에 대하여 경례!”


“충!성!”


병사 무리는 정철에게 일제히 칼같은 경례를 했다. 정철이 가벼운 경례로 화답했다.


“구국위원장을 중심으로 하는- 구국위원회를 목숨으로 사수하자- 김!정!철! 결사옹위!”


본관 앞 병사들 뿐만 아니라 어디서 튀어나왔는지 모를 수백명의 병사들이 일제히 정철에 대한 충성을 맹세했다. 결사옹위만 세번을 외쳤다. 결사옹위라는 단어는 열병식때나 듣던 단어다. 정철은 온 몸에 전율이 돋았지만, 어떤 표정도 짓지 않고 본관으로 걸어들어갔다. 조해평과 강문환이 뒤를 따랐다. 곧이어 본관 건물의 불이 환하게 켜졌다.


조해평은 정철을 본관 총장실로 안내했다. 그 옆에는 이미 정철의 가족들을 위한 침실을 이미 마련해놓았다. 정철은 가족들에게 먼저 자라고 하고는 총장실을 나와 강문환과 조해평을 따로 비어있는 강의실로 불렀다.


“동지들, 지금 우리 병력은 얼마고, 저들 병력은 얼마입니까?”


정철은 졸린 와중에도 위원장으로서의 임무를 시작하고 있었다. 그의 어투는 단호했다.


“여기 2군단을 포섭했습네다. 명수로 치면 한 6, 7만은 될 겁네다. 저들도 아마 숫자는 비슷할 겁네다.”


조해평은 대부분을 포섭했다 대답했지만, 사실 아직 2군단의 반도 포섭하지 못하였다. 다만 군단장을 설득해 그를 포섭한 상태였다. 군단장은 내일 이곳 구국위원회 본부에 정철을 만나러 오기로 하였다.


“음··· 정말 7만이 된다구요? 그럼 왜 평양을 포위하지 않구요.”


정철은 조해평의 능청스런 말 속의 거짓을 파악했다. 지난 수십년 간 김정은 정권에게 고초를 겪으며 누구도 믿지 않는 성격이 되어 있었다. 그에게 허풍은 절대 통할 수 없었다.


“내일 내로··· 포섭할 예정입네다.”


“지금 있는 그대로의 사실만 말해보세요.”


정철이 쏘아붙였다. 조해평이 머뭇거리자 옆에 있던 강문환이 나서 대답했다.


“위원장 동지, 일단 두 개 사단은 확보했습네다. 우리네 병력까지 합하면 한 3만 정도 될겁네다. 내일 여기 황해도의 나머지 부대를 포섭하고 전방까지 장악하면 적어도 10만은 넘게 될겁네다.”


강문환의 대답에 정철은 고개를 저었다.


“호위사령부는 막강합니다. 일반적인 보병사단은 상대할 수 없을 텐데요. 그리고 그들이 우리에게 충성하리라는 보장은 어디 있습니까?”


납치되어 정신없던 와중에도 정철의 의식은 날카로웠다. 당장 오늘밤 가족들의 안위가 그에게는 최우선이었다.


“위원장 동지래 너무 걱정하시 마십시오··· 다 잘 될깁니다.”


정철이 쏘아붙이자 조해평과 강문환은 당황했다. 그들이 알고있던 유약한 왕자는 더이상 없었다. 어쩌면 이 위원장은 얼굴마담이 아닌 진정한 위원장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정철을 선택한 그들의 판단이 어쩌면 가장 최고의 정답이었으리라.


“그럼 내일 당장 사단장들을 여기 소집하면 되겠습니다. 아침에 날이 밖는 대로 모두 모이라 하세요.”


정철이 단호하게 말했다. 조해평은 강인한 정신력의 위원장이 마음에 들었다.


“저희 소식통이 평양에 잠입해 확인한 결과, 지금 부대를 비우고 김여정 동지에게 충성을 맹세하러 간 사단장들이 대부분 사망했습네다.”


“사망이라니, 벌써 호위사령부가 숙청했단 겁니까?”


“예. 어젯밤 로동신문사에서 떼죽음을 당했습네다. 황가 이놈이 벌인 일일 겁네다.”


“그럼 여정이는, 내 동생 여정이는 어디있습니까?”


정철이 흥분하며 물었다. 떼죽음을 당했다면 여정도 무사할 리가 없었다.


“여정동지는 아직 확인하지 못했습네다. 아마 죽지는 않고 끌려갔을 겁네다. 어쨌든 자기네 두목이 없어진 부대들은 우리쪽으로 붙게 되어 있습네다. 게다가 실권이 딱히 없다고는 해도 어쨌든 직속상관인 군단장까지 우리쪽 사람이 된다면 더 고민할 필요가 없겠디요.”


정철은 아무 말이 없었다. 결국 여정은 죽었으리라 판단했다. 지금은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오히려 마음이 편했다. 이제는 남은 자신의 가족들만 생각할 일이다. 일단 자신에게는 적어도 오늘을 버틸 병력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 밤만 지나면 황해도 전역, 아니 평양을 제외한 전 공화국을 내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정철은 속으로 다짐했다.


“이만 가보세요. 모두들 수고 많았습니다.”


“푹 쉬십시오 위원장 동지. 충!성!”


정철은 둘을 보내고는 잠자리에 누웠다. 퀴퀴한 침대의 냄새가 코를 강하게 찔렀다. 천장은 벗겨진 페인트 사이로 콘크리트가 드러나 있었다. 불과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온통 오스트리아제 가구가 가득한 안락한 특각에서 지내던 그가 병원 침대 비슷한 곳에 누워있다. 하루아침에 김씨 일가의 수난 아닌 수난이 계속되고 있었다.


잠이 오지 않던 정철은 바깥을 바라보려고 창문에 다가갔다. 창밖을 바라보니 마당에 수십대의 전차가 도열해 있었다. 그 바깥으론 수많은 병사들이 경계근무를 서고 있었다. 그는 전차를 하나 둘 세어보았다. 안심이 되었는지 고개를 몇 번 끄덕였다. 그때 뒤에서 그의 부인이 그를 불렀다.


“여보,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요. 그만 자요···”


정철은 침대로 돌아와 잠을 청했다. 눈을 감자 깊은 잠 속으로 빨려들어갔다. 마침내 그의 조선은 그렇게 시작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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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혁명의 수도 평양 20 24.09.14 20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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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혁명의 수도 평양 18 24.09.13 22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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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혁명의 수도 평양 16 24.09.10 31 2 11쪽
15 혁명의 수도 평양 15 24.09.10 28 1 11쪽
14 혁명의 수도 평양 14 24.09.10 26 1 11쪽
» 혁명의 수도 평양 13 24.09.10 29 1 11쪽
12 혁명의 수도 평양 12 24.09.09 27 1 11쪽
11 혁명의 수도 평양 11 24.09.09 33 2 11쪽
10 혁명의 수도 평양 10 24.09.07 32 1 11쪽
9 혁명의 수도 평양 9 24.09.07 34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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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혁명의 수도 평양 7 24.09.07 39 1 11쪽
6 혁명의 수도 평양 6 24.09.06 42 1 11쪽
5 혁명의 수도 평양 5 24.09.02 47 1 11쪽
4 혁명의 수도 평양 4 24.09.02 50 1 11쪽
3 혁명의 수도 평양 3 24.09.02 56 1 11쪽
2 혁명의 수도 평양 2 24.09.02 69 1 11쪽
1 혁명의 수도 평양 1 24.09.02 96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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