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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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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의 수도 평양 12

DUMMY

2034년 3월 17일 아침

평양 금수산태양궁전 지하실



김여정은 넋을 놓고 장식장에 진열된 물건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각종 도자기며, 그림이며 값비싼 물건들이 가득 채워져있었다. 그 옆의 찬장 안은 술병으로 가득했다. 찬장 대부분이 프랑스산 에네시 코냑 병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녀의 아버지 김정일이 그토록 사랑하던 술이었다. 그녀는 벌떡 일어나더니 찬장에서 병들을 들었다 놨다 하더니 아직 술이 남아있는 병을 찾았다.


“옳거니!”


그녀는 벌컥벌컥 술을 들이켰다. 곧바로 볼이 빨개지고 이마에 열이 올랐다. 이 술을 보니 김정일 시대가 그리워졌다. 아버지의 묘향산 특각에서 수영을 하던 일이며, 백두산 별장에서 승마를 하던 일들··· 공화국 로열패밀리의 일상이 술 한 잔에 담겨 있었다. 그렇게 술에 취해버린 그때 그녀의 방문이 벌컥 열렸다.


“어이, 나와.”


“어이 나와? 이놈이 미쳤구나!”


김여정은 자신에게 기분나쁜 반말을 하는 저 무지랭이 인민을 혼내줘야겠다 생각했다. 취기가 목까지 올라온 그녀는 흥분하여여 뚜벅뚜벅 걸어가서는 대뜸 뺨을 갈겼다. 한 번으로는 안 풀렸는지 연달아 세 번씩이나 병사의 뺨을 갈겼다. 이제 좀 만족스러워질 찰나, 그 병사가 입가에 미소를 짓고는 나직이 말했다.


“아마, 미친건 네년이렸다.”


병사는 순식간에 여정의 머리채를 잡고 그녀가 쥐고있던 술병을 발로 차버렸다. 술병이 떨어지며 둔탁한 소리가 났다.


“이거··· 이거 놓으라! 이거 놓지 못할까!”


김여정이 놀라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이제 그녀를 도와줄 이는 아무도 없었다. 병사는 머리채를 쥔 채로 그녀를 질질 끌고 방을 나왔다. 드넓은 복도에 그녀의 울음소리가 가득 차고 있었다.


병사들이 그녀를 끌고 오다 어느 문 밖으로 집어던졌다. 너무 컴컴해 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눈을 감자 손에 바닥의 촉감이 느껴졌다. 바닥이 카페트인 걸 보니 아직은 실내인 듯했다. 이번엔 냄새를 맡아 보았다. 그곳엔 기분나쁜 향냄새가 가득했다.


“이제오네? 제사는 이미 다 지내버렸는데.”


어둠속에서 누군가의 음성이 들리자 은은한 실내조명이 켜졌다. 누군가가 커다란 유리관 안에 누워있었다. 이건 어디서 많이 본 장면···


“아, 아니!”


여기는 금수산태양궁전의 김정일 시신안치실이었다. 김정일의 시신는 미라의 상태로 그 모습이 완벽히 보존되어 있었다. 그 시신 옆으로 인민군 육군장교 정복을 입은 이가 그녀 앞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그녀의 시선은 뿌얘서 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 목소리로만 보면 나잇대가 좀 있는 목소리였다.


“누··· 누구요. 날 왜 여기 데려온 거요?”


여정의 말투가 한 층 공손해졌다.


“대장동지래 한 96년도 쯤엔가 몇살이었소?”


장교가 대뜸 나이에 대한 얘기를 꺼냈다. 김여정은 머리가 잘 돌지 않았다.


“한···소학교 쯤인가···”


여정이 기어다니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붉은 스카프를 매고 등교하던 모습이 떠올랐다.


“우리 대장동지는 그때 열살배기도 안 되었디. 그땐 어려서 뭘 몰랐을 땐가.”


1996년. 김일성이 죽고 2년 뒤인 당시는 김정일이 유훈통치라며 막후에서 정권을 휘둘렀던 때다. 그때 여정은 만으로는 8세의 어린이였다. 한여름과 한겨울엔 전국 각지에 세워진 김정일의 특각에 가서 호화생활을 즐겼고, 봄가을이 되면 평양에서 신분을 숨긴 채 소학교를 다니던 때였다. 특각 지하층에 설치된, 그녀와 김정은을 위해 만들어진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로 잘 꾸며진 오락실에서 오빠와 뛰놀던 때가 어렴풋이 생각났다. 행복했던 어린시절이었다.


“옛날 일은 왜 묻는 건가···”


대답하는 그녀의 눈꺼풀이 떨리고 있었다.


“동무래 나는 그때 평안북도에 있었어. 우리마을은 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중국을 바라보는 국경마을이었디. 평양만큼은 못해도 배급도 있었고 중국 오가던 보따리상들도 좀 있어서 굶는 사람은 없었더랬디.”


장교가 담배를 꺼내물고는 불을 붙이며 말을 이었다.


“근데말이야, 96년 어느날이었나. 보따리상 하나가 중국에서 온 그릇들을 신문지로 쌌는데 하필이면 김일성 수령 동지 얼굴이 나온 신문지로 싸버린 거이야. 그걸 본 보안원들이 보따리상을 끌고가서는 다음날 소학교 운동장에 묶어놓았더랬지. 그리고는 인민들 보는 가운데서 총을 갈겨버렸어. 수령님 얼굴을 구기지 말라고.”


장교의 말을 듣던 여정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날부터 이 동네 보따리상을 단속한다고 군인들이 설치고다녔으니, 이제 물건 팔겠다는 사람 코빼기도 안 보이데. 그렇게 먹을 것도 입을 것도 구할 수 없는 인민들이 산속에 들어가 나물도 캐고 나무껍질도 씹어먹으면서 하루하루를 버텼어. 그렇게 우리 마을 인민들은 삼년을 더 버텼어.”


여정은 성인이 되어서 알게 되었다. 자신이 소학교를 다녔을 무렵, 평양 밖은 살아있는 지옥이었다는 걸. 모든 것이 풍족했던 그녀에게는 굶어 죽는 다는건 열대의 어느 불쌍한 나라에나 있었다고 생각했다.


“전 공화국이 다 그랬더랬디. 배급만 기다리던 인민들은 먹을 것이 없어 산속을 헤맸어. 십만··· 아니 수십만이 그렇게 굶어죽었어!”


장교가 소리쳤다. 여정은 소리없이 울었다.


“동무들, 준비하라.”


장교가 병사들에게 지시하자 병사들이 김정일 시신을 둘러싸고 있던 유리관을 들어 옆으로 치워 놓았다. 병사들의 발밑에는 떨어진 김정일화가 밟혀있었다.


“대장동지, 혹시 우리 조선인민군 표어가 뭔지 아네?”


“에···?”


김여정의 입에서 쉰소리가 새어나왔다. 대답을 하려 했다기 보단 감탄사에 가까웠다. 장교는 그녀를 보고 씩 웃고는 뒤돌아서서 담배꽁초를 바닥에 버리고는 병사가 들고있던 도끼를 잡아들었다.


“조국의 무궁한 번영과···”


그는 말을 멈추더니 김정일 시신으로 뚜벅뚜벅 걸어갔다. 김정일의 얼굴을 뚫어져라 바라보고선 몇 초를 가만히 있다가 갑자기 소리쳤다.


“인민의··· 인민의 안녕을 위하여!”


그는 고함과 함께 도끼로 김정일 시신의 목을 찍었다. 여정이 두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장교는 두 번, 세 번 도끼로 힘껏 김정일의 목을 찍었다. 그도 울고 있었다. 김정일의 머리가 바닥에 굴렀다.


“조선인민군 호위사령관 차수력이 혁명의 배신자를 처단하였습네다.”


울먹이던 그 장교는 바로 호위사령관 차수력이었다. 그는 잡고있던 도끼를 바닥에 내동댕이 치고는 병사들에게 손짓했다. 병사들이 휘발유통을 가져와 김정일 시신 위에 기름을 끼얹었다. 그는 라이터에 불을 붙이고는 김정일 시신 위에 던져버렸다. 화염이 불을 뿜자 그는 눈물을 그치더니 뒤돌아 나갔다.


김여정의 눈물은 멈출 줄을 몰랐다. 그녀는 숨이 넘어가듯 꺼이꺼이 울었다. 그녀는 커다란 불꽃이 사그라들 때까지 자리를 지켰다. 불이 꺼지고 얼마 간이 지나자 병사들이 그녀의 양팔을 붙잡고 건물 바깥으로 끌고 나왔다. 저 멀리 햇볕에 그녀의 눈이 시렸다. 시선을 아래로 내리자 황량하도록 넓은 마당에 지프차 한 대만 덩그러니 서 있었다.


“날··· 또 어디 데려가는 거냐···”


여정의 말에는 아무런 기운도 남아있지 않았다. 병사들은 아무 말 없이 그녀의 팔에 수갑을 채우고 차에 태우고는 출발시켰다. 바깥을 바라보니 9시는 넘은 듯 보였다. 평양의 아침 거리는 한산했다. 그녀는 잠시 눈을 감았다. 술기운이 그녀의 머릿속을 돌아다녔다.


“거의 도착 했습네다.”


보조석에 앉은 장교가 무전으로 어디엔가 연락하고 있었다. 그 소리에 눈을 뜬 여정이 밖을 바라보았다. 그녀가 수십 번도 더 와본, 너무도 익숙한 광장이 눈에 들어왔다. 그곳은 늘 북한이 열병식을 하던 대동강변의 김일성 광장이었다. 광장에는 수천명의 군중이 질서도 없이 운집해 있었다.


“내리시지요.”


보조석의 장교는 그녀에게 존댓말을 했다. 여정은 그를 빤히 쳐다보다 차문을 열었다. 그녀는 왜 이렇게 많은 군중이 왜 있는지 의아해했다. 방금 전 보조석의 장교가 병사들을 시켜 그녀의 몸을 포승줄로 둘둘 감았다. 그리고는 군중 사이로 천천히 지나갔다. 앞서 가던 군인들이 길을 트며 앞으로 나아갔다. 그녀의 시선은 군인들 앞으로 향했다. 저 멀리 단상이 보였다.


“아니 왜···”


그녀가 옆을 돌아봤다. 사람들은 쌀쌀맞은 얼굴로 그녀를 쳐다볼 뿐이었다.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그녀의 시선이 닿으면 어쩔줄 몰라하며 눈을 내리깔던 인민들이다. 오래전 아버지와 있을 때면 꽃을 흔들고 눈물을 흘리던 인민들이다. 하지만 이제 그런 인민은 없었다.


“올려놓고 무릎을 꿇려라.”


차수력의 목소리가 들렸다. 김여정은 단상 위로 끌려올라가서는 병사들에게 무릎을 채였다. 아파도 더 이상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 그녀의 시선은 군중 맨 앞줄로 향했다. 차수력, 황용호··· 모두 오빠 김정은의 졸개들로, 며칠 전까지만 해도 김정은 앞에서 무릎꿇고 보고하던 자들이다. 그런 저들이 득의양양하고 거만하게 상석에 앉아 있는 꼴이라니.


“준비 되었습네다!”


단상 위에서 병사가 소리치자 십여명의 병사들이 단상 밑으로 도열했다. 은색 도금이 된 AK소총을 들고 있었다. 오빠 김정은이 가장 총애하던 부대였으리라. 병사들이 모이자 장태식이 단상 옆에 마련된 마이크를 잡고 군중에게 말하였다.


“우리 공화국과 조선인민군은, 조국 통일의 대업과 인민의 자유와 행복을 그 첫째가는 사명으로 하고 있습네다. 그리고 우리 공화국의 사회주의 헌법은 제1조에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전체 조선인민으 리익을 대표하는 자주적인 사회주의국가이다’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네다. 그런데 우리 인민의 자유와, 우리 인민의 행복과, 우리 인민의 리익을 해친 자들이 있었습네다.”


태식이 말을 끊고 군중을 바라보았다. 황용호를 비롯한 모두가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 오로지 김여정만이 바닥을 바라보고 있었다. 태식은 다시 준비해온 종이를 보고 말을 이었다.


“인민의 자유를 짓밟고, 인민의 행복을 내다버리고, 인민의 재산을 강탈한 무리들이 있었습네다. 인민을 위해 복무해야할 우리 군을 머슴처럼 부린 이들이 있었습네다. 우리 조선인민군은 그 첫째가는 사명과 우리 공화국 헌법에 따라서 그 무리들을 처단해야 하는 의무가 있습네다.”


태식이 단상 앞에 도열한 병사들을 바라보았다.


“우리 조선인민군은 오늘 바로 이 자리에서, 그 의무를 실현할 것입네다··· 목표 전방의 표적, 서서 쏴!”


태식이 갑자기 소리치자 병사들이 총구를 일제히 여정에게 겨누었다. 광장에 누구 하나 놀라는 이가 없었다. 그들의 눈빛은 얼어붙은 대동강보다 차가웠다.


“오늘 우리는, 김여정 조선로동당 중앙위원을 혁명의 이름으로 처단합네다. 실탄 열발 사격 개시!”


태식의 말이 끝나자 병사들의 총구가 불을 뿜었다. 열 명이 열 발, 총 백 발의 총알이 여정을 향해 날아왔다. 대동강녘 매화잎이 지며 바닥에 붉게 물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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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혁명의 수도 평양 16 24.09.10 32 2 11쪽
15 혁명의 수도 평양 15 24.09.10 28 1 11쪽
14 혁명의 수도 평양 14 24.09.10 27 1 11쪽
13 혁명의 수도 평양 13 24.09.10 29 1 11쪽
» 혁명의 수도 평양 12 24.09.09 28 1 11쪽
11 혁명의 수도 평양 11 24.09.09 34 2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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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혁명의 수도 평양 8 24.09.07 37 1 11쪽
7 혁명의 수도 평양 7 24.09.07 40 1 11쪽
6 혁명의 수도 평양 6 24.09.06 43 1 11쪽
5 혁명의 수도 평양 5 24.09.02 48 1 11쪽
4 혁명의 수도 평양 4 24.09.02 51 1 11쪽
3 혁명의 수도 평양 3 24.09.02 57 1 11쪽
2 혁명의 수도 평양 2 24.09.02 70 1 11쪽
1 혁명의 수도 평양 1 24.09.02 97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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