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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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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2 2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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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의 수도 평양 5

DUMMY

2034년 3월 16일 자정이 가까운 시각

고려호텔 특실



리우지허는 감옥에 갇히는 줄 알았다. 선글라스의 말투로 보아하니 자신이 고문을 당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이 원래도 캄캄했지만 더 캄캄해졌다. 그런데 그의 입과 눈을 막은 병사들이 그를 데려다 놓은 곳을 고려호텔 특실이었다. 눈을 뜨자 잠시 어안이 벙벙하였다. 그의 옆에는 휴대전화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조선놈들..."


리우지허는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 그때 휴대전화가 울렸다. 아까 그 번호다.


"장태식이 이놈! 대국을 대표하는 나에게 이런 모멸감을 주었으니, 공화국이 없어질 각오는 해야한다!"


리우지허는 소리쳤다. 장태식은 선글라스의 본명이다.


"동지, 우리 보위성은 말입니다. 신사적으로 행동했습니다."


장태식의 목소리는 지쳐있었다.


"푹 쉬시오 대사동지. 신임장은 아마 평생 못 낼거요. 중국으로 갈 마음이 생기면 그땐 잘 배웅해드리리다."


장태식은 전화를 끊었다. 리우지허는 곧바로 전화를 걸려다 이내 전화기를 침대에 던져 놓았다.


'분명 도청이 있겠지. 본국과의 연락은 나중에 하지.'


그러다 문득, 장태식이 자신을 보위성 소속이라 말한 것이 생각났다. 보위성은 총참모부와는 전혀 별개의 기관이다. 조직도상 황용호와 장태식이는 한 패일 수 없다. 무언가 김정은 밑에서 반란 세력이 싹트고 있었던 것인가. 지친 리우지허는 생각을 멈추고 깊은 잠에 들었다.


2034년 3월 15일 자정이 가까운 시각

원산갈마국제비행장

비가 그친 하늘


주애는 헬리콥터 조종사들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헬기에서 내렸다.


"고맙습니다. 여러분이 공화국의 영웅이어요."


주애가 그녀를 데려다준 조종사들과 인사했다. 그들은 평소 주애를 선망의 대상으로 여겼던지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주애의 눈에도 눈물이 고였다.


"잘 가시라요. 나중에 다시 공화국에 돌아오십시오."


조종사 중 한 명이 주애와 악수하며 말을 건넸다. 그러자 주애가 갑자기 그의 볼에 입을 맞추고선 씩 웃으며 말했다.


"다시 평양땅을 밟겠어요. 그때까지 다들 건강하세요."


주애는 곧장 수송기에 올랐다. 어쩌면 마지막일 조국이지만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수송기에 오르자 기장과 부기장, 그리고 그녀 셋 밖에 남지 않았다. 기장은 공군사령관에게 주애를 외국으로 모시라는 명령을 받았다 했다. 그는 얼른 수송기의 문을 닫았다. 주애는 닫히는 수송기의 문을 멍하니 쳐다보고 있었다. 그렇게 그녀의 조선도 닫히고 있었다.


"대장동지, 우리 수송기는 이제 블라디보스토크 공항으로 이륙합네다. 안전벨트 매시라요."


"네 어서 가셔요!"


주애의 목소리는 힘이 넘쳤다. 휴대전화를 보니 이미 12시가 넘은 시각이었다.



2034년 3월 15일

김주애가 평양을 떠난 지 얼마 안 된 시각

평양 로동신문사


장태식은 내일자 신문이 나올 인쇄실을 둘러보고 있었다. 그의 앞에는 김여정을 따라온 장성들의 시체가 밟히고 있었다.


"시체 다 치우라!"


치워도 치워도 인민군 장성들의 시체가 계속 나오고 있었다. 그는 시체를 피해 걷다 발에 밟힌 내일자 신문을 집어들었다. 신문엔 커다랗게 인쇄된 김여정의 모습이 보였다. 누가 봐도 자신만만한 표정이었다. 그 옆에는 볼드체로 대문짝만한 문구가 시선을 사로잡았다.


'백두의 손녀 김여정 장군 만세'


1면에는 김여정 찬양 문구와 사진으로 도배되어 있었다.


"조선이란..."


언젠가 로동신문에 인쇄된 김일성의 사진을 모르고 구겼다가 보위부 요원들에 끌려간 사람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자신은 그런식의 체포를 한 적이 없었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면 이 신문쪼가리가 뭐길래 그렇게들 호들갑이었을까 싶었다. 인민들은 그런 사소한 실수도 용서받지 못 하였다. 이 나라에서 인민들이 단 한 번이라도 평등하고 행복한 적이 있었나. 저 많은 시체들의 어깨 위에는 수많은 별들이 박혀 있었다. 그는 그 별들을 보며 이를 갈았다. 그때, 부관이 그에게 다가왔다.


"동지, 아까 말씀하신 중국 대사놈은 어떻게 할까요?"


"내일 외교성 문을 죄다 잠가버려라. 출근도 시키지 말고. 외교부 직원 전원 어떤 연락도 받지 말고 집에서 대기하라 해."


"예?"


"글쎄, 시키는 대로 해. 그리고 아까 이륙했던 헬리콥터, 어디로 갔나 알아보라."


"예 국장동지!"


장태식은 담배를 한 대 물더니, 이내 불을 붙이지 않고 기름통을 들었다. 인쇄기 전체에 기름을 흩뿌리더니 담배에 불을 붙였다. 담배연기를 내뱉었다. 피냄새가 좀 가시는 느낌이었다. 그는 얼마간 담배를 피우더니 담배꽁초를 던지고는 아주 나지막이 북한의 애국가를 읊조렸다.


아침은 빛나라 이강산

은금에 자원도 가득한

삼천리 아름다운 내 조국

반만년 오랜 력사에

찬란한 문화로 자라난

슬기론 인민의 이 영광

몸과 맘 다 바쳐 이 조선

길이 받드세


그의 앞에서 인쇄기들이 하나 둘 불타기 시작했다. 그의 애국가를 들은 부하들이 2절을 따라 불렀다.


백두산 기상을 다 안고

근로의 정신은 깃들어

진리로 뭉쳐진 억센 뜻

온 세계 앞서나가리

솟는 힘 노도노 내밀어

인민의 뜻으로 선 나라

한없이 부강하는 이 조선

길이 빛내세


그의 부하들은 씩씩하게 북한의 애국가를 불렀다. 2절이 끝나자 인쇄실 전체가 활활 불타고 있었다. 저 벌리 벽에 걸린 김일성의 초상화가 불에 사그라들고 있었다.



2034년 3월 15일 정오

평양 룡성 관저(55호 관저)


설주의 전화를 끊은 주애는 얼른 몸을 씻었다. 그녀의 시녀들에게 자신의 옷가지 중 최대한 가벼운 것들을 챙기라 하고는 밀착경호를 담당하는 호위장교를 불렀다. 그녀는 이 상황에서 누구를 믿을 수 있고, 누구를 믿을 수 없는지 생각하고 있었다. 그녀는 그 호위장교를 믿어보기로 했다.


"경호원 동무! 나 오늘 평양을, 아니 공화국을 빠져나가야겠어. 어떻게 하면 좋겠어?"


그녀는 늘 그렇듯 호위장교를 '경호원 동무'라 반말로 칭했다. 경호원 동무는 이미 무슨 상황인지 아는 눈치였다.


"대장동지, 공항으로 가서 외국국적기를 타시라요. 아마 아직은 동지께서 출국수속같은 걸 안 하셔도 될겁니다."


마침 김정은의 전용기는 수리중이어서 운행이 불가능했다. 다른 고려항공 비행기들은 언제 군부의 다른 세력 손에 넘어갈지 모르는 일이었다. 그녀의 경호원 동무는 재빠르게 외국국적기를 제안했고, 주애는 이에 동의했다. 그들은 짐을 싸고선 순안공항으로 향했다. 차창밖으로 보이는 평양의 모습은 여느때와 다르지 않았다. 수령님이 죽었다고 해서 세상이 망하진 않는구나.


그들이 2시가 거의 다 되어서야 순안공항에 도착했다. 출발 게시판을 보니 전부 중국국적기들만 빼곡했다. 북중관계가 소원해진지도 10여년. 러시아로 가려던 주애는 중국을 거쳐 가야하나 걱정하고 있었다. 자신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중국 공산당 수뇌부들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베이징 공항에서 체포된다면 자신을 지켜줄 이는 더이상 없었다.


그녀가 공항에 들어서자 커다란 전광판에서 조선중앙통신의 김정은 사망 소식이 전해지고 있었다. 공항에서 대기하던 손님들이 손으로 입을 막으며, 또는 입을 벌리며 그 방송을 지켜보고 있었다. 주애는 멈칫하더니 공항 이쪽 저쪽을 두리번거렸다. 러시아 국적기가 있는지 확인해보려 했다. 러시아의 아에로플로트 창구를 발견한 그녀는 재빠르게 창구 앞으로 다가갔다. 창구 앞에 서서는 조심스레 오늘 항공편이 있는지 물었다. 앞에 서 있던 직원은 아직 우리말이 익숙하지 않았는지 당황하며 눈을 깜빡였다. 이에 주애가 서툰 러시아어로 오늘 항공편이 있는지 다시 물었다. 직원들은 고개를 저으며 내일 오후에 떠나는 비행기가 있다고 했다. 오늘 출발할 거면 중국 항공사들밖에 없으니 그쪽 창구에 알아보라 안내했다.


주애는 두려움에 떨었다. 자신의 앞에서 눈짓으로 주고받는 이 러시아인들의 표정에서 혹시 자신의 정체가 들킨 것은 아닐까, 혹시 자신이 이 자리에서 체포당하는 것은 아닐까하는 공포감이 엄습했다. 주애가 경호원 동무를 빤히 쳐다봤다. 그는 얼른 그녀를 데리고 공항 밖으로 빠져나왔다. 주애의 휴대전화에서 진동이 울렸다. 모르는 번호이지만 아래 알림으로 ‘러시아 대사관’이라 써 있었다. 그녀는 곧바로 전화를 받았다. 그는 몇 번을 끄덕이고는는 알겠다 말한 뒤 경호원에게게 상황을 설명했다.


“로씨야 대사관에서 외교관용 차량을 공항으로 보내주기로 했다는데.. 어머니가 내 번호를 대사관에 알려줬나봐. 일단 대사관으로 오라는데, 어떻게 할까?”


경호원은 대답이 없었다.


"대사관이면 러시아 영토와 마찬가지겠지?"


경호원 동무는 그녀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너무 위험한 도박이 될 수 있었다. 그는 그녀의 손을 꼭 잡았다. 주애는 놀랐지만 지금 자신에게 힘이 되어주는 그가 있어 안심이었다. 그녀도 그의 손을 꼭 잡았다.


"러시아 대사관으로 가자. 러시아 외교관들하고 동행하면 오늘이 아니어도 안전하게 공화국을 빠져나갈 수 있어."


주애는 러시아가 제공해준 차를 타고 다시 평양 시내로 향했다. 러시아 대사관 안에만 들어가면, 어머니를 만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한 시간을 채 달리지 않아 그들은 대사관에 도착했다. 정문의 경호원은 차를 세우고, 군인이나 수행행원은 절대 들어갈 수 없다고 주애의 일행을 막아섰다. 주애는 하는 수 없이 차에서 내렸다. 그녀를 본 러시아 경호원은 따뜻한 눈빛으로 그녀를 쳐다보며 문을 열어주었다다. 그리고는 그녀만 대사관 안으로 안내하고 그녀의 일행을 모두 대사관 밖에 대기시켰다.


"대사를 만나게 해 주십시오."


주애가 아주 유창한 러시아어로 말을 꺼냈다. 대사관 직원들이 어디론가 전화하더니, 안드로이 대사가 1층에 내려와 그녀를 맞이했다. 주애가 아주 반가웠던지 대뜸 포옹을 했다.


"주애양, 반갑습니다. 주조선 러시아대사 안드로이입니다."


주애는 감히 자신에게 포옹하는 이 러시아놈이 어이가 없었다. 기분이 그렇게 나쁘진 않았지만 세상이 바뀌어서 그런가 적응이 도무지 되지 않았다.


"오늘 로씨야로 바로 가는 항공편이 없어요. 좀 빠르게 로씨야로 가고 싶은데 도움을 얻고자 합니다."


굉장히 격조있는 말투와 발음의 러시아어였다. 안드로이는 주애의 발음에 감격했다.


"저희도 소식은 들었습니다. 안타깝게도 순안공항 외에는 러시아로 가는 방법이 지금 딱히 없군요. 여기서 좀 쉬시다가 내일 돌아가는 게 어떠신지요? 마침 저희 직원 중 내일 러시아로 복귀하는 직원이 있습니다."


안드로이가 그녀를 안심시키고자 했다. 그는 대사관의 접객실로 그녀를 안내하더니 원하시는 대로 편히 쓰시라 하고는 사무실로 돌아갔다. 그녀는 책꽂이의 러시아 책을 잠시 살펴보았다. 수많은 책들 중 <국가와 혁명>이라는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저자에는 레닌이라 쓰여 있었다. 그는 포근한 소파에 앉아서 몇 페이지를 읽더니 금방 잠이 들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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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혁명의 수도 평양 23 24.09.16 19 1 11쪽
22 혁명의 수도 평양 22 24.09.15 20 1 12쪽
21 혁명의 수도 평양 21 24.09.14 22 1 12쪽
20 혁명의 수도 평양 20 24.09.14 20 1 12쪽
19 혁명의 수도 평양 19 24.09.14 23 1 11쪽
18 혁명의 수도 평양 18 24.09.13 23 1 11쪽
17 혁명의 수도 평양 17 24.09.12 25 1 12쪽
16 혁명의 수도 평양 16 24.09.10 32 2 11쪽
15 혁명의 수도 평양 15 24.09.10 28 1 11쪽
14 혁명의 수도 평양 14 24.09.10 27 1 11쪽
13 혁명의 수도 평양 13 24.09.10 29 1 11쪽
12 혁명의 수도 평양 12 24.09.09 27 1 11쪽
11 혁명의 수도 평양 11 24.09.09 34 2 11쪽
10 혁명의 수도 평양 10 24.09.07 32 1 11쪽
9 혁명의 수도 평양 9 24.09.07 34 1 11쪽
8 혁명의 수도 평양 8 24.09.07 37 1 11쪽
7 혁명의 수도 평양 7 24.09.07 40 1 11쪽
6 혁명의 수도 평양 6 24.09.06 43 1 11쪽
» 혁명의 수도 평양 5 24.09.02 48 1 11쪽
4 혁명의 수도 평양 4 24.09.02 51 1 11쪽
3 혁명의 수도 평양 3 24.09.02 57 1 11쪽
2 혁명의 수도 평양 2 24.09.02 70 1 11쪽
1 혁명의 수도 평양 1 24.09.02 97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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