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마단, 성력 그리고 내공
테츠는 며칠째 두문불출인 상황이다. 마테니는 이때를 빌미로 제자를 가르칠 수 있었다.
마테니는 부르스와 오웬, 델리안의 태청과 매화를 시험했고 그들이 어느 정도 펼쳐 낼 수 있게 되자 더욱더 다그쳤다. 마테니는 그들이 좀 더 완벽하게 검법을 펼쳐 낼 수 있도록 지도했다.
로미오는 이미 2성의 내공을 받고 특수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아는 동기들은 자고 먹는 시간을 빼고는 연습에 몰두했다. 마테니가 부족한 부분을 교정해 주니 금세 이해하고 수정했다. 그것은 그만큼 오랫동안 검을 휘둘러 검법이 완전히 몸에 붙었다는 증거다.
"이제 천마행공과 복마기공의 요령도 몸에 익힐 때가 됐다. 특히 복마기공을 익히면 내공을 쌓을 수 있으니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부르스가 말했다.
"다른 사람이 말하기를 성녀에게 힘을 받지 않아도 복마기공만 계속 연습하면 언젠가는 그에 따르는 힘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 사실입니까?"
"당연하다 내공은 원래 그렇게 수련하는 것이 정상적인 방법이다. 성녀의 힘이란 뭐랄까 변칙 같은 선물이지. 성녀가 없더라도 복마기공을 꾸준히 연마하면 내공을 차근차근 쌓아 갈 수 있다. 세월이 지나면 지날수록 점점 내공이 단단해지고 커지지. 그에 따라 검법의 위력도 증가하게 된다. 마나를 모으는 것과 같은 이치다."
"하지만 성녀의 힘을 받는다면 그 과정을 건너뛴다는 거군요."
"그렇다. 따지고 보면 무서운 시간을 건너뛰는 것이다. 무려 120년의 세월 동안 단련할 힘을 얻게 되는 것이다."
"120년! 그것 살아서 달성할 힘이 아닌데요?"
"후후, 나도 처음에는 이해할 수 없었지. 내공이란 것은 오묘한 것이고 일성의 내공은 60년이란 세월 동안 충전된 힘이라 할 수 있는데 그것은 자연적으로 이루어질 때의 계산법이고 복마기공 같은 기술로 내공을 연마하면 그 시간을 대폭 줄일 수 있지. 복마기공은 내공을 연성하는 무공이다. 세월의 흐름에 비축되는 것이 아닌 개개인의 능력으로 연성하는 것이다. 능력과 체질에 따라 60년 동안 쌓을 일성 내공을 단 몇 년 만에 연성해 낼 수도 있는 것이다."
"그렇군요. 이거 용기가 납니다."
"특히 너희같이 육체적 단련을 게을리하지 않았으니 복마기공의 진척도는 훨씬 빠를 것이다."
"후, 그래도 천재는 따라가기 벅찹니다. 아델리오는 우리보다 늦게 합류했는데 로미오를 제쳐 버릴 경지까지 올랐으니 말입니다."
"음, 가끔 그런 무서운 인간이 있기 마련이다. 그런 만큼 그런 녀석에게는 시련과 책임이 뒤따르지 능력은 그만한 대가를 지불하게 마련이다. 너희들은 너희들이 할 수 있는 만큼의 선에서 최선을 다하면 된다."
마테니는 오랜만에 제자들에 푹 빠져 있을 수 있었다. 세 사람에게 천마행공과 복마기공을 가르쳤고 훈련에 매진하는 제자들을 보며 흐뭇한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그런 한편으로는 그날 아수라의 형체가 자꾸 머릿속에 떠올랐다. 신의 힘을 사용하는 마스터는 진정 어떠한 사람인가? 황태자로서의 신분을 버리고 왜 이런 시골구석에서 마교란 단체를 만들었을까?
자신이 황태자라면 소위 말해 말 한마디면 안 되는 것이 없을 것인데 이런 시골구석에서 고생할 이유는 단 일 푼도 없는 것이다. 시몰레이크 후작 따위와 힘겨루기를 하는 것조차 우스운 생각이 들 정도다.
며칠 전 보여 주었던 그런 위력이라면 시몰레이크와 그의 성을 통째로 증발시키고도 남는다. 당장 포탈로 이동해 시몰레이크 후작이 있는 곳에 한 방 떨어트리면 이 전쟁은 끝나는 것이다.
마테니로서는 테츠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그가 모시고 있는 사람은 이제 평범한 황태자가 아닌 신의 힘을 가진 신이라는 사실이 더 첨가 되었을 뿐.
그러나 한편으로는 대단한 자긍심을 가질 수 있었다. 칠무신이 아무리 대단해도 황태자 앞이라면 언제든 무릎을 꿇는 존재였고 자신은 그런 황태자를 모시는 가장 가까운 자이니 그 자존감이 상당했다.
롱홀드와 잔버크를 무대로 작은 암살자 집단인 카르마의 형제들을 만들고 하위 귀족의 푼돈을 먹으려 입지를 다지고 엠버스피어 쿠센 영주의 의뢰를 받았을 때는 드디어 고위 귀족의 귀에도 카르마의 형제들이 알려졌다고 얼마나 기뻐했던가?
쿠센 영주의 의뢰는 무조건 성공시켜 카르마의 형제들을 더욱 빛나게 하려고 독하게 마음먹었다. 상대는 그렇고 그런 모험가 집단이었다. 그러나 그 모험가 집단이 마테니의 인생 자체를 송두리째 바꿔 버릴 줄 어떻게 알 수 있었을까?
모험가들은 스스로를 호라이즌 오브 윈터라고 불렀다. 그런 모험가들은 종종 있다. 마음 맞는 사람끼리 모여 모험가 단체를 결성하고 그럴싸하게 팀명을 만든다.
이 마을 저 마을 떠돌며 의뢰를 받고 해결해주고 여행 경비를 번다. 그런 모험가들은 제국에 널렸고 널렸다. 그러나 그들은 특별한 존재들이었고 감히 어떻게 해 볼만한 모험가 단체가 아니었다.
결국, 카르마의 형제들은 거의 죽었고 자신이 애써 만들었던 단체는 와해하고 말았다. 마테니는 복수심에 미쳐 있었고 어떻게 하든 이 모험가들을 한 명이라도 죽이고 죽겠다는 심정으로 덤벼들었다.
그리고 테츠에게 사로잡혔고 그는 자신을 죽이지 않고 오히려 제자로 거둬들였다. 자신은 암살 기술을 따로 배운 적이 없으며 순전히 눈썰미로 터득한 거였다. 순전히 몸이 그것을 스스로 깨우친 것이었다. 그것은 특별한 자질을 타고났다는 것이고 테츠는 그것을 알아본 것이다.
그 이후로 테츠에게 진정한 검을 배우고 마테니는 테츠를 마스터로 여기고 진심으로 존경해 왔다. 나중에 그가 황태자란 사실을 알고부터는 머릿속이 혼란했다. 더욱이 야생왕으로부터 자신의 처지가 가장 막중하다는 것과 황태자를 지켜 드리기 위해서는 목숨조차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을 강요당했다.
황태자란 세상에서 단 하나의 유일무이한 사람이란 뜻이다. 제국의 차기 황제며 주신 제국의 황제가 되실 분이라 이야기다.
그런 어마어마한 사람을 모시게 되었으니 만감이 교차했다. 그가 하는 일에는 절대 이의를 제기 할 수 없으며 그가 하는 말은 곧 법과 같았다.
황태자는 그 화려한 지위와 꿈같은 황궁 생활을 내팽개쳐두고 이런 솔라리스 깡시골에서 무엇을 하는 것일까? 마교라는 단체는 왜 이렇게 어렵게 세웠을까? 자신이 황태자란 것을 밝히고 제국 전체에서 유능한 인재를 모으면 벌 때와 같이 모일 텐데 말이다.
그들을 가르치고 마교로 만들면 지상 최강의 군대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왜 이렇게 귀찮고 험한 길을 자처하는지 마테니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그것에는 아주 간단한 이치가 숨어 있다. 천마 혁련광은 성격상 황제의 권력을 가장 싫어했다. 한시라도 중원 무림을 삼키려는 황제의 세력과 싸워온 혁련광이다. 황제가 직접 파견한 고수를 수없이 때려죽인 장본인이다.
그는 황제의 권력을 뼈에 사무치도록 싫어했으니 그가 황궁을 벗어나고픈 이유가 설명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구속된 삶은 그의 성격과 맞지 않았다. 자유로운 생활, 구주팔황을 쏘다니며 주유천하 하는 것이 그의 삶의 방식이었다.
그런 삶을 위해 황궁을 떠나왔다. 자연스레 인연과 인연이 묶이듯 테드버드 일행을 만났고 그 여행이 시발점이 되어 오늘날 마교의 탄생을 가져온 것이다.
주신 제국에서 최강이라는 단체를 만드는 것이 목표였고 더 나아가 주신 제국 자체를 무림화 시키려는 원대한 계획을 꿈꾸게 되었다.
그는 황태자란 신분은 아예 생각도 없었다. 단지 천마로 되돌아가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주신 제국을 무림화 시키고 자신이 천마로써 다시 무림 세계에 군림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그러나 자신의 신분인 황태자를 망각하는 삶을 살 수는 없었다. 그에 따라 얽힌 인연의 고리가 생각보다 강했기 때문이다.
성황 잉그람의 하나밖에 없는 핏줄에다가 그 핏줄이 성력을 사용할 수 있는 브레니아스 가문이었다. 브레니아스 가문의 힘은 생각보다 어마어마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
처음 이 땅 위 무사인 기사들을 볼 때 마나와 무공은 어느 정도 경쟁성이 충분히 있다고 생각했다. 펠링턴 기사대회를 치르면 마나를 사용하는 기사들은 내공으로서 완벽히 억누를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내공을 사용하는 무공을 이 땅에 뿌리내리기에는 이상적인 환경이라고 생각했고 그것은 곧 마교의 창설로 이어졌다. 황태자의 권력이 아닌 순수한 천마 개인으로서 자신의 힘으로 마교라는 단체를 주신 제국에 세운 것이다.
운명의 끈은 그를 쉽게 놓아주지 않았다. 마교가 번성해가면 갈수록 묘하게 황태자의 권위도 올라갔다. 황태자의 권력에서 벗어나고 싶어 황궁을 뛰쳐나왔지만 결국 황태자의 모습으로 되돌아가고 있었다.
거대한 운명이 입을 벌렸고 빠져나가려 아무리 몸부림쳐도 헤어나지 못함을 깨닫고 테츠는 그 운명에 순응하기로 했다.
테츠가 두문불출하고 주위에 사람을 아무도 두지 않는 것은 오롯이 내공을 다시 추슬러는 것과 테드의 성격을 가라앉히기 위해서다.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는 테드의 성격과 힘겹게 힘겨루기를 하는 중이었다.
그리고 아수라멸천검을 사용한 덕분에 완전히 빨려 나간 내공을 회복하는 것도 중요 했다. 물론 아르펜을 사용하면 부족한 내공은 금세 회복할 수 있지만 테츠는 지금 한 가지를 테스트하고 있었다.
라마단의 정수가 내공을 받아들이기 시작하면서 뭔가 몸 안에서 큰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테츠는 그것이 무엇인지 모른다. 라마단의 정수는 일대 네크로맨서였던 라마단이 창안한 것이다.
라마단은 네크로맨서의 최고 경지에 오른 신화적 인물과 같은데 그는 자신이 죽기 전 자신의 모든 것이 담긴 결정체를 연성해 냈고 그것이 라마단의 정수다. 그는 라마단의 정수를 첫 번째 제자에게 넘겨 주었고 그다음부터 사제 간에 대를 이어오며 수천 년간 전수해온 네크로맨서의 결정체나 마찬가지다.
라마단은 내공을 끊임없이 흡수했지만, 또한 사용하고자 할 때는 반대로 힘차게 뿜어냈다. 테츠는 이제 일성이니 이성이니 내공의 단계는 무의하게 되어 버렸다. 내공이 생기는 족족 라마단이 흡수해 버렸기 때문이다.
며칠 틀어박혀 있는 동안 라마단과 내공을 융합시키던 테츠는 새로운 세계로 도약하는 진통을 겪고 있었다.
***
세렌은 천마수라검의 경지를 끌어 올리기 위해 잠시도 쉬지 않았다. 그녀가 베어온 오크의 시체가 길바닥에 길게 늘어져 있었다.
제럴드 일행은 오늘도 들판을 뛰어다녔다. 그녀를 위해 오크 배달부 노릇을 자처한 것이다. 해가 저물어 갈 때쯤 되어서야 그녀의 검이 멈추었다.
제럴드와 일행은 초주검이 되어 벌판에 들어 누었다. 쉬지 않고 뛰어다닌 덕에 온몸이 노곤하고 삭신이 다 쑤는 터였다.
그나마 평정심을 유지하고 있는 사람은 세렌과 저녁을 담당하는 바실뿐이었다. 바실은 잡아 온 토끼를 옆구리에 가득 꿰차고 말했다.
"오늘 저녁은 자네들이 가장 좋아하는 토끼스튜를 끓여 줄 테니 힘들 내라고···."
"우리가 이 짓을 하는 걸 알면 샤를 경은 기절할 거야 아마도."
브라이트의 볼멘소리에 제럴드는 드러누워 하늘만 바라봤다.
샤를 남작은 자신들을 엠버스피어로 파견한 상관이다. 그는 일군단 내에서 인커전 능력이 있는 기사를 뽑아 지금 이 팀을 만들었다.
팀은 엠버스피어로 숨어들어 제시어스 왕자의 흔적을 조사하는 것이 주 임무다. 만약 가능하다면 왕자와 함께 탈출 부대로 귀환하는 것이다.
그러다 시몰레이크가 보낸 인커전에 들켜서 죽을 위기를 당했고 그들을 구해낸 것이 저 검에 미친 여자 세렌이다.
원래는 계획대로 엠버스피어로 숨어들어야 했으나 그녀는 마교의 인물이었고 이미 자신의 정체는 완벽히 탄로 난 상태였다. 그래서 엠버스피어에 숨어 가는 대신 그녀를 뒤를 쫓아다녔다.
생명의 은인에다가 그녀는 제시어스 왕자의 위치도 알고 있은 듯했다. 그녀만 따라 다닌다면 분명히 제시어스 왕자와 닿을 것 같다는 생각에서다. 그녀는 완전히 검에 미쳐 있었다. 그리고 그 검도 흔한 기사의 검이 아닌 엄청난 위력을 자랑하는 소드 마스터의 검이었다.
제럴드는 그녀가 마교 내에서 상당한 위치에 있는 검사라는 것을 눈치챌 수 있었다. 이 정도 검술을 펼치는 이는 솔라리스 전 기사를 통틀어 두 손가락 안에 든다고 자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제럴드가 1순위로 꼽는 사람은 최강 검신, 오크의 사신이라 불리는 사람이다. 제럴드가 일군에 있을 때 오크와 홀로 싸우는 그의 검술을 본 적이 있다. 그의 위용은 솔라리스 군 전체를 뒤엎을 만큼 위대한 것이며 세대가 흘러가도 그 무용담은 입과 입을 통해 전해질 것이다.
바로 5군단장인 제이미 백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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