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슈타인
랭스 시가지 공세가 얼마 남지 않은 급박한 상황에서 독일산 LK II 경전차 26대와 다른 전투에서 노획했다가 재생 공장에서 수리를 마친 르노 FT 전차 7대가 도착했다. 새로 들어온 정비병이 뿌듯한 얼굴로 외쳤다.
“파이퍼 전차 부대를 위해서 최상의 것들을 준비했습니다!”
프란츠가 수근거렸다.
“기왕이면 30대 보내주지 26대는 뭐야 26대가..”
플로리안이 중얼거렸다.
“30대 준비했는데 4대는 오다가 기동 불가 되었다고 들었습니다.”
새로 들어온 LK II 경전차 내부를 살펴본 정비병 빌이 중얼거렸다.
“갈수록 상태가 안 좋아지냐···”
이번에 도착한 LK II 경전차는 냉각 계통이 개선되었다는 장점은 있었지만, 페인트칠이나 마무리도 대충하고 급하게 보내졌다는 것이 눈에 띄었다. 심지어 바깥 쪽에 식별용으로 그려진 철십자기도 삐뚤삐뚤하게 그려져 있었다. 한스가 속으로 생각했다.
‘페인트칠 따위야 됐고 시가전에선 경전차가 많을수록 유리하니 다행이다..’
르노 FT 전차 같은 경우에는 트럭으로도 옮길 수 있었기 때문에 노획 공장에서 빠른 수리 이후에 옮겨올 수 있었던 것 이다. 에밋이 중얼거렸다.
“보급 받은건 좋긴 한데 프랑스 군과 일본 군은 우리보다 훨씬 빨리 르노 FT 전차가 보충되겠죠? 우리가 33대 보충 받을 때 놈들은 70대 80대 이렇게..악!!”
자신이 탑승하던 전차가 기동불가가 된 전차병들은, 전부 LK II 경전차가 아니라 르노 FT 전차에 타고 싶어했다. 그 이유는, 르노 FT 전차는 중기형부터는 리벳 제조 방식이 아니라 주조 방식으로 포탑이 만들어져있었다. 기존에 리벳 제조 방식의 전차를 탑승한 승무원들은, 전차에 충격이 가해지면 리벳이 튕겨져 나와서 부상을 입는 일이 흔했다. 하지만 주조 방식으로 포탑을 제조한 르노 FT 전차의 경우에는 그럴 위험이 적었고, 당연히 전차병들은 르노 FT 전차에 탑승하고 싶어했던 것 이다.
한스가 새로 들어온 최신형 르노 FT 전차의 내부를 살펴보며 생각했다.
‘프랑스 놈들 이젠 포탑 뿐 아니라 차체에도 점점 주조 방식을 쓰는군..전차를 제작할 때 리벳 방식은 승무원한테 위험이 크다는 것을 놈들도 아는 거야..’
결국 전차병들은 제비뽑기에 의해서 르노 FT와 LK II 전차로 나뉘어서 배치되었고, 르노 FT에 들어간 전차병들은 안도한 표정, LK II 전차로 들어간 전차병들은 우울한 표정이 되었다. 바그너가 말했다.
“여름 전까지는 전쟁이 끝나야 할 텐데 말입니다.”
한스가 말했다.
“가을이 되면 전쟁을 계속할 여력이 없습니다. 이번 달 안에 모든 것을 끝내는 것이 독일을 위한 최상의 시나리오입니다.”
그 때, 익숙한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전선 기자 크라우제였다. 한스가 속으로 욕설을 내뱉었다.
‘왜 저 새끼는 내가 가는 곳마다 따라오는 거야!!’
크라우제가 말했다.
“파이퍼 백작님! 자랑스러운 독일의 LK II 전차 앞에서 포즈를 취해 주십시오!”
그렇게 한스는 크라우제의 부탁대로, LK II 전차들 앞에서 사진을 촬영했다. 크라우제가 물었다.
“죽음의 전차 부대, 파이퍼 전차 대대에 관해 한 말씀 해주십시오!”
“제 대대원들은 휴가도 못 가고 있습니다. 싸우는 것은 좋은데 지원과 휴식이 필요합니다.”
한스의 말에 에밋, 거너 등 전차병들은 감동 받았다.
“저런 말 하면 위에 찍힐텐데..”
“대대장님은 우리를 생각해주고 계셨던 거야!”
한편 크라우제는 자신의 수첩에 이렇게 적었다.
[파이퍼 기갑 사단의 전진은 끝이 없다!]
크라우제는 수첩을 보며 자신이 정한 헤드라인을 무척이나 마음에 들어했다. 크라우제의 선전 기사는 꽤나 인기가 있었고 크라우제는 짭짤한 보너스를 받고 싶었던 것 이다. 한편 크라우제의 등 뒤에서 수첩을 훔쳐 본 에밋, 거너는 잔뜩 열이 받아서 롤스로이스의 기름을 닦던 수건을 크라우제의 등 뒤에 던질까 말까 고민하고 있었다.
‘이 망할 놈의 전선 기자가!’
바그너가 외쳤다.
“에밋!”
한편 이번에 LK II와 르노 전차들을 가져온 한 기술자가 한스에게 좋은 소식을 말해 주었다.
“새로운 전차가 설계되고 있습니다!”
“새..새로운 전차?”
한스는 그로스캄프바겐에 대한 보고를 올렸고 위에서도 그로스캄프바겐은 완전히 실패작이라는 사실을 인정했다. 하지만 베를린에서 그로스캄프바겐 시제품의 껍데기로 독일군의 위용과 파이퍼 전차 부대를 홍보하는 등 홍보용으로는 잘 써먹고 있었다. 한스는 잔뜩 기대감에 부풀어오르기 시작했다.
‘과..과연 어떤 전차일까?’
기술자가 말했다.
“르노 FT 전차의 장점을 극대화시킨 전차입니다!”
“르노의 장점? 그렇다면 포탑이 있는?”
“그렇습니다!”
‘좋았어!!’
기술자는 목소리를 낮추며 씨익 웃고는 말했다.
“무려 포탑이 세 개 입니다!”
“에..에에?? 포탑이 세 개나 있으면 무거워서 속도가 떨어지지 않나?”
“믿어 주십시오! 독일의 과학 기술은 세계 최고입니다!”
한스는 떨떠름하고 불길한 예감이 들었지만 믿어보기로 했다.
“그래도 LK II는 쓸만했으니까..”
한편 파이퍼 전차 부대는 휴가는 전혀 못 가고 있었지만 다른 부대보다 좋은 보급품을 받고 있었다.
“새 군화가 두 켤레씩 왔어!”
한스 또한 자신의 부대에 좋은 보급품이 들어오자 의기양양하기 시작했다.
‘이제 녀석들도 나를 존경하겠지?’
에밋, 헤이든, 거너, 프란츠, 플로리안도 새로 보급받은 군화를 신어보며 기뻐했다. 브레데마이어 보병 대대 보병들이 전차병들을 멀리서 바라 보고 있었다. 거너가 수근거렸다.
“저 녀석들 우리가 부러운가봐!”
전차병들은 의기양양하게 새 군화를 신고 걸어다녔다. 브레데마이어 보병 대대의 병사들이 수근거렸다.
“재네 휴가도 계속 못 가고 있다며?”
“아무리 보급 잘 받아도 하나도 안 부러워.”
“재넨 이번 전투 끝나도 다른 곳 가서 싸워야 할걸?”
“지난 번 전투 때 내가 수류탄 떨어져서 몇 개 달라고 전차 해치 두드렸거든? 해치가 열렸는데 안 쪽에 열기가 어우 그냥 찜통이 따로 없더라.”
“이제 여름인데 지옥이 따로 없겠네.”
한 병사가 외쳤다.
“그래!! 새 군화 받아서 좋겠다!!! 부럽다아!!”
한편 한스는 만슈타인이라는 이름의 30대 초반 대위가 이끄는 보병 중대에게 앞으로의 작전을 설명하고 있었다.
“시가지에서 전차를 운용할 때에는 보병의 도움이 필수적이니, 전차 신호기 색상을 보병들이 모두 암기하도록 해주십시오. 수류탄이나 총기가 부족할 경우 전차 해치를 두드리면 해치를 통해서 우리 쪽 전차병들이 보급해줄 수 있습니다. 이번 전투의 목표는 랭스의 북동부 점령이지만 상황에 따라서 베슬강을 도하해서 남서쪽까지 점령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한스가 속으로 생각했다.
‘남서쪽까지 점령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적 저항 또한 강할 테니 거의는 불가능하겠지..’
만슈타인이 지도를 보고는 말했다.
“저는 이렇게 하는 것이 더 좋다고 생각합니다.”
만슈타인은 현재 한스보다는 직급이 낮았지만, 나이도 많았고 무엇보다도 뭐라 말로 표현하기 힘든 위압감이 있었다. 한스 또한 속으로 만슈타인의 의견에 동의했다.
‘맞는 말이다..하지만 실패할 경우..’
솔직히 여태까지 한스는 전술을 의논할만한 상대가 없었기에 혼자 고민했지만 만슈타인이라는 이름의 이 대위는 왠지 모르게 말이 통했다. 한스는 만슈타인과 함께 지도를 보면서 의논했다. 한스가 속으로 생각했다.
‘지난번에 받은 그것들이 꽤나 쓸모 있을 것 같군..’
전술 의논이 끝나고, 만슈타인이 말했다.
“저는 앞으로 전차가 지상전을 지배하게 될 것 이라고 생각합니다.”
한스가 말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머리가 엄청 좋잖아?’
한스는 만슈타인이 점점 마음에 들기 시작했다. 여태까지 한스가 전쟁에서 만났던 인물 중에서 히틀러 다음으로 마음에 들었다.
“앞으로는 어떤 무기가 지상전에서 활약할거라 생각합니까?”
“강력한 장갑으로 보호받는 자주포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전차 부대처럼 밀집되어서 전투하고, 공격하는 것이 아닌, 적 기관총 진지를 격파하고 보병의 전진을 지원할 수 있는 무기가 필요하고, 저는 이 무기를 돌격포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이 말을 듣고 한스가 속으로 생각했다.
‘따로 기갑 부대를 창설하되, 보병 사단에는 자주포로 지원하면 되겠군..’
한편 독일군은 일본군 포로 중에 심한 부상자들을 응급 처치 이후에 넘겨주었다. 식량과 의약품을 아끼려고 부상자들을 넘겨준 것 이었지만, 독일은 이에 대해 대대적으로 선전했다.
“독일군은 인종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부상자들을 치료해주었다! 독일군은 전세계에서 가장 인간적인 군대이다!”
다다즈미 소대의 한 소대원은 지로, 젠, 렌쿠를 보고는 눈물을 흘렸다.
“망할 독일 놈들!!”
다다즈미는 이 상황이 자신의 책임인 것을 알고 있었다.
“꼭 자네들의 복수를 해 주겠네.”
촤르륵
다다즈미는 자신의 군도를 꺼내들고는 외쳤다.
“이번 전투에서 반드시 승리해서 내 소대원들의 복수를 하겠다! 만약, 이번 전투에서 진다면!!”
다다즈미는 자신의 소대원들을 하나, 하나 바라보며 말했다.
“할복하겠다! 그리고 자네들도 나를 따라 할복해도 좋다!!”
다다즈미의 말에 소대원들은 모두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이..이게 무슨 소리야..’
‘왜 우리가 할복해야..’
‘소대장은 완전히 미쳤어!!’
그 때, 랭스 곳곳을 돌아다니며 매복하기 좋은 곳을 알아보고 전술을 짜던 쿠리바야시가 돌아와서 이 광경을 보고는 외쳤다.
“내 중대에서 할복은 금지한다!! 다다즈미! 당장 진정하게!”
“넵!”
한편 이 광경을 보고 있던 프랑스 병사들이 수군거렸다.
“재네 왜 저러냐?”
“낸들 알겠냐?”
“빠가야로가 도대체 뭔 말이냐? 재네 맨날 빠가야로!! 이러던데?”
프랑스 소대장 또한 그 말을 듣고 빠가야로가 무슨 말인지 궁금해졌다. 그래서 샴페인 병을 내밀며 다다즈미에게 다가갔다. 다다즈미는 프랑스 소대장이 내민 샴페인 병을 마시며 속으로 생각했다.
‘이 허옇게 생긴 놈이 무슨 꿍꿍이지?’
그 프랑스 소대장은 불어로 다다즈미에게 물어보았다.
“이보게! 자네 맨날 빠가야로!! 이러던데 그게 무슨 말인가? 빠가야로!!”
다다즈미는 그 말을 듣고 얼굴이 울그락 불그락해졌다.
“네 이놈!! 빠가야로!!”
그 말을 듣고 프랑스 소대장도 다다즈미의 말을 따라했다.
“그래! 그 빠가야로!! 이거 무슨 말인가! 빠가야로!!!”
“이 놈이!!”
쿠리바야시가 외쳤다.
“다다즈미!!”
“넵! 죄송합니다!”
지로, 젠, 렌쿠는 그렇게 프랑스의 병원으로 보내져서 치료를 받았고, 몇 달 뒤 일본으로 돌아가서 여러 지원을 받으며 사무직 일을 얻게 되어서 남은 여생을 편안하게 보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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