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광신호기
사다오의 소대는 분대별로 나뉘어 빠른 속도로 랭스를 탈출하기 시작했다. 2분대장이 어두운 골목길로 고개를 내밀어 독일군이 없는지 확인하고는 분대원들에게 손짓했고, 2분대원들은 모두 2분대장을 따라 빠른 속도로 달렸다.
근처에서 한 민가가 활활 불타오르고 있었고, 시커먼 연기는 이 쪽까지 날라와서 일본 병사들의 코를 찔렀다.
“켁..켁..”
찢겨진 프랑스의 국기가 땅바닥에 널부러져 있었고, 민간인들은 불타오르는 집에서 탈출하며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사방에서 딱딱거리는 총알 소리가 들려왔다. 골목에 있던 프랑스의 르노 FT 전차는 불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고, 그 안에서 반쯤 나오다 만 프랑스 전차병의 시체 또한 불타고 있었다. 한 일본군이 속으로 생각했다.
‘전차가 무덤이 되었군..’
‘우리 나라가 이 꼴 안 나서 다행이다!!’
한 프랑스 민간인이 피투성이가 된 자신의 아이를 안고 일본 병사들을 보고 달려와서 불어로 도와달라고 외쳤지만, 사다오의 소대는 외면하고 미친듯이 달아났다.
“냅둬!! 우리 동포도 아냐!!”
대일본제국 육군이라는 허황된 망상과 자부심에 빠져있던 가장 멍청한 소대원들조차도 정신이 명료해지며 프랑스에 온 것을 후회하며 자신의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미친듯이 달아나고 있었다.
‘인종도 다른 새끼들 싸움에 말려들어서 뒤지다니!!’
‘무슨 일이 있어도 여기선 못 죽어!!’
‘돌아가야 해···돌아가야 해···’
사방에서 들려오는 땅땅거리는 총소리, 폭발 소리, 헉헉거리는 숨소리 속에서도 모든 신경 세포는 자그마한 신호조차도 잽싸게 받아들이기 위해 집중하고 있었다. 예민해진 시신경은 어둠 속에서 약간의 움직임조차도 바로 포착했고 팔은 바로 그 쪽으로 충구를 겨누고는 했다. 그 순간, 어둠 속에서 무언가가 움직였고 분대를 맨 뒤에서 따라가던 료타는 그 쪽을 향해 소총을 발사했다.
따앙!
무언가가 툭하고 쓰러졌다. 료타는 사격 실력이 그닥 좋지 못했고 여태까지 단 한번도 적을 맞춰본 적이 없었기에 스스로도 놀랐다.
‘어어?’
쓰러진 것은 독일군도 일본군도 프랑스군도 아닌, 얼마 전 사다오가 자전거를 고쳐주었던 미사카라는 이름의 혼혈 여인이었다. 그 여인은 자신의 다리를 보며 울부짖고 있었다.
“꺄악!!”
료타는 더 이상 뒤돌아보지 않고 눈썹을 휘날려가며 미친듯이 자신의 분대를 따라갔다.
한편 사다오는 자신이 이끄는 1분대와 함께 골목 뒤에 숨어 있었다.
끼긱 끼끼긱 끼기기긱
골목 밖에는 독일군의 LK II 전차가 구석구석 돌아다니며 프랑스군과 일본군에게 기관총을 퍼붓고 있었다. 1분대장이 속으로 생각했다.
‘호..혹시 소대장님이 지난번처럼 군도를 들고 달려들고 그 틈을 타 우리를 탈출하게 해주실 수도?’
사다오가 명령했다.
“로스케, 타이세이, 테츠야 자네들은 저 쪽 골목으로 우회해서 몸을 내밀지 말고 총소리를 낸다! 놈들의 전차가 그 쪽으로 시선이 쏠렸을 때 우리가 탈출해서 엄호사격을 해줄 테니 그 때 자네들도 우회해서 퇴각한다!!”
그렇게 로스케, 타이세이, 테츠야가 반대편에서 독일군 LK II 전차의 시선을 끌기 위해 사격을 하였다.
탕! 타앙! 탕!
LK II 전차가 그 쪽 방향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끼긱 끼기긱 끼긱
사다오가 외쳤다.
“됐어!! 앞으로 달려!!”
사다오의 명령에, 1분대원들은 숨도 쉬지 못하고 앞으로 달렸다.
“헉..허억···헉..”
딱콩 딱콩 딱콩하는 총알소리가 사방에서 메아리쳤다.
따닥 딱 따악
한 건물 옥상에서 불꽃이 번쩍이며 딱총 같은 기관총 소리가 들렸다.
따다다다다다닥
어쩌면 독일군일수도 있고 프랑스군이나 일본군일 수도 있었지만 아군 오사에 맞아 뒤지던 적군한테 맞아 뒤지던 결과는 똑같았기에 일본군은 눈썹이 휘날리도록 달렸다. 사다오는 맨 뒤에서 따라가면서 독일군이 밀려오는 골목으로 노획한 MP18을 긁었다.
츠킁 츠킁 츠킁
그렇게 사다오의 1,2,3분대는 무사히 집결지에 모였다. 사다오는 지도를 보며 남쪽으로 곧장 퇴각할지, 아니면 남서쪽으로 우회해서 퇴각할지 고민하였다. 독일군이 어디까지 진격했는지 알 수가 없었고, 만약 독일군이 많이 진격했는데 남쪽으로 곧장 퇴각하다가는 포로로 잡히거나 최악의 경우 기관총에 전멸할 수도 있었다.
‘독일 놈들도 전차 연료가 떨어졌을 테니 그렇게 많이는 진격하지 못했을 거다..굳이 남서쪽으로 돌아가지 말고 곧장 남쪽으로 달리자!’
"남쪽으로 퇴각한다!살아서 보자!"
그렇게 사다오의 소대는 다시 분대별로 나뉘어 좁은 골목을 틈타 앞으로 질주했다. 2분대의 료타 또한 자신의 분대를 따라 골목을 달렸다. 그때, 오른쪽에서 무언가가 튀어나왔다.
타앙!
료타의 소총에서 총알이 발사되었다. 앞서가던 분대장과 분대원이 외쳤다.
"무슨 일이야!"
료타가 외쳤다.
"적군 사살! 이상 무!"
그렇게 2분대는 다시 골목을 질주했고, 료타의 총을 맞고 쓰러진 프랑스 병사의 파란 군복이 피로 물들고 있었다.
1분대와 달려가던 사다오는 아직까지는 별다른 교전없이 무사히 퇴각하고 있었다.
'아직 여기까진 독일놈들 전차부대가 오지 못했군!'
그 때, 근처에서 포탄이 발사되는 소리가 들렸다.
퍼엉! 쉬잇! 쿠광!!콰과광!!
“으아악!!”
“저 쪽 건물로 들어가!!”
그렇게 사다오 소대는 주변에 있는 커다란 5층짜리 건물 내부로 들어갔다. 조심스럽게 건물 안에서 총을 들고 올라가보니, 프랑스 병사들이 자신을 향해 소총을 겨누고 있었다. 서로 아군임을 확인하고 총구를 내려놓자, 프랑스 장교가 급박한 목소리로 뭐라뭐라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젠장!! 뭐라는 거야!!'
프랑스 장교가 사다오에게 잠망경을 건네주었고, 사다오는 창문 밑에 앉아서 잠망경으로 창 밖을 바라보았다. 이리 저리 잠망경을 움직이던 사다오는, 철십자기가 그려진 르노 FT 전차 3대를 목격했다.
‘어..언제 이 곳에!!’
사다오의 이마에서는 식은 땀이 흘러내렸다. 자신의 잘못된 판단으로 소대가 모두 위험에 처한 것 이었다.
독일군의 건트럭, 장갑차는 전차부대에 연료를 보급해주고 있었고, 예비 부품과 정비도구, 정비병 또한 갖추고 있어서 자잘한 고장은 빠르게 정비하고 계속 전진할 수 있었다.
그렇게 독일군은 스스로 예상했던 것 보다 빠른 속도로 랭스를 포위하고 있었다.
또한 독일군 건트럭, 장갑차에는 들것이 있었고, 담가병들이 아군 부상병을 이송하여 구조하기도 하였고, 통신선을 가설하기도 하였다. 그렇게 전차부대는 독일군 사령부와 실시간으로 연락이 가능해졌다.
사령부 쪽에서는 계속 포위하되 측면을 경계하라는 명령했다. 다시 티거에 탑승한 한스에게 플로리안이 이 명령을 전달했다.
한스가 속으로 생각했다.
'프랑스 전차부대가 야간에 숲을 뚫고 올 수 있을리가 없다. 성공이 눈 앞에 보이는데 측면 경계 따위...'
"플로리안!2중대 3중대에 계속 전진하라 전달한다!"
"네...넵?"
"측면 경계는 1중대가 할거다!"
그렇게 플로리안이 떠난 이후 한스는 헤이든의 등에 발을 갖다대며 외쳤다.
"사냥감이 눈 앞에 보인다! 전진!"
한편, 건물 안에 숨어 있던 사다오의 소대원이 외쳤다.
“저 쪽에 아군 전차 부대가 오고 있습니다!”
스기야마의 전차 부대가 뒤늦게 랭스 남부로 내려오고 있었던 것 이다.
“살았어!!!”
“독일놈들 전차를 날려 버려!!”
사다오는 자신의 소대원들에게 외쳤다.
“우리가 아군 전차 부대를 엄호해주어야 한다! 옥상에 자리잡고 독일 보병을 저격한다!! 특히 독일 전차장이 해치 위로 머리를 내밀면 바로 저격해서 사살한다!!"
“하이!!”
사다오는 식은 땀을 흘리며 잠망경으로 스기야마 전차 부대를 주시했다.
‘저..저렇게 몰려다니면 안될텐데..’
르노 FT 전차 8대가 일렬로 쭈욱 커다란 길을 통해 가고 있었다.
‘저러다가 들키면!’
하늘에는 조명탄이 계속해서 쏘아올려져서 밤인데도 불구하고 대낮처럼 밝았다. 사다오는 잠망경으로 다른 건물 옥상을 관찰했다.
‘우리 소대 중에 한 분대는 다른 건물로 옮기면..’
그런데, 근처에 있던 건물 옥상으로 독일군이 올라오고 있었다. 사다오는 자신의 소대원에게 말했다.
“3시 방향 옥상에 독일 보병있다!! 저격해!!”
일본 병사들은 그 쪽을 향해 소총을 겨냥하고 발사했다.
탕! 타앙! 탕!
하지만 독일군이 위치했던 3시 방향에 있는 건물 옥상에서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한 일본 병사가 중얼거렸다.
“마..맞췄나?”
그 때, 건물 3층 창문에서 무언가가 번쩍이며 총알이 날라왔다.
탕!
총알은 옥상 난간을 정확히 맞췄고, 일본 병사들은 몸을 납작하게 해서 엄폐했다.
“어..어떻게 할까요!!”
“놈들이 이 쪽으로 올까요?”
사다오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야!! 놈들이 아군 전차 부대의 위치를 독일군에게 알리면!!”
하지만 이미 독일군 전차 부대는 스기야마의 전차 부대가 몰려오는 것을 전령으로부터 전달받고 여러 갈래를 통해 포위하고 있었다. 사다오가 외쳤다.
“안돼!!!”
독일군의 르노 전차의 포신에서 불을 뿜었다.
퍼엉!
쉬잇 쿠광!!콰과광!!!
일본군의 르노 FT 전차가 기동불가가 되었고 급하게 전차장이 탈출했다. 이를 엿보던 일본 보병이 중얼거렸다.
“저기 두 명 타지 않아? 왜 한 명만 탈출하는 거야??”
잠시 뒤, 그 기동불가가 된 르노 FT 전차는 폭발을 일으키며 불타올랐다. 스기야마 중대의 다른 르노 전차들은 모두 독일군 전차의 위치를 파악하고 포탑을 회전하면서 엄폐하기 좋은 위치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한 일본군의 르노 전차의 포에서 불을 뿜었다.
퍼엉!
쿠과광!!콰광!!
르노 전차의 철갑탄은 독일군 르노 전차가 엄폐하고 있는 코너의 건물 외벽에 커다란 포탄 자국을 남겼다. 하지만 독일군의 르노 전차는 멀쩡했고, 후진하기 시작했다.
“뭐지? 왜 후진하지?”
일본군 르노 FT 전차의 전차장은 이마에 핏대를 세우며 포를 조준했다.
“도망가는거냐!! 빨리 나와라!!”
프랑스 병사들도 건물 안에서 이 광경을 보며 식은 땀을 흘리고 있었다. 그 때, 사다오는 독일군의 거대한 마크 V 전차를 발견했다.
“저..저 전차는!!!”
한편 한스는 프란츠에게 발광 신호기로 아군 전차부대에 신호를 보내라고 했다.
‘그..그걸 여기서 시도한다고??’
벤 또한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그게 과연 될까?’
한편 사다오 또한 티거가 발광 신호기로 다른 독일군 전차에게 신호를 보내는 것을 목격했다. 한 일본 병사가 중얼거렸다
“저..저거 무슨 뜻일까요?”
사다오가 외쳤다.
“저거 깨트려!! 지금 당장!!”
타앙! 탕! 타앙!
하지만 일본군의 저격에도 불구하고 티거의 발광신호기는 박살나지 않았고 자기 할 몫을 다했다. 한스가 속으로 생각했다.
‘1시 방향 건물에 적 보병!! 어차피 이 쪽으로 수류탄을 던질 수는 없으니 아군 보병이 알아서 처리할거다..지금 문제는..’
Comment ' 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