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덕궁의 의적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대체역사, 퓨전

완결

해품글
작품등록일 :
2023.07.16 15:33
최근연재일 :
2023.11.17 20:57
연재수 :
124 회
조회수 :
17,605
추천수 :
720
글자수 :
671,647

작성
23.08.20 22:09
조회
128
추천
7
글자
12쪽

암행어사 노 상추

DUMMY

재에서 내려 보이는 길은 넓었지만, 아직 이른 시간인지 이 곳을 지나는 사람들이 많지는 않은 것 같았다.

저쯤에서 말 한 필에 이러저러한 짐을 실은 군졸이 터덜터덜 걸어 올라오는 모습이 보였다.


"저 인간인가?"


상추의 말에, 앉아 있던 바위에서 얼른 일어선 양순이가 뒤꿈치까지 들어가며 용을 쓰고 쳐다보았다.


"보급품도 올 거라면서요. 군졸인 거 보니, 궁에서 보낸 사람인가 봐요!

상추 어른은 얼른 저쪽으로 가서, 뒷짐 지고 얼굴이나 돌리고 계세요."


"그래, 그래. 주머니 잘 살피고, 돈은 들었나 반드시 확인하고.. 말은 너무 늙은 말은 아닌 지 또 확인하고, 힘도 못 쓸것 같으면 미리 바꿔 달라고 해야 해!

요래조래 잘 살펴봐야지. 몇 달치 우리 재산인데. 그리고 쌀은.. 벌레..."


"아이 참. 상추 어른, 내가 다 알아서 할 테니까, 얼른 저 쭉으로 가서 점잖이나 좀 빼고 계세요!

다 와 가는 구만."


"고것 참, 또 말버릇 하고는 ... 알았다!"


노 상추가 반대 길 쪽을 바라보며 수염을 간질일 동안,

어느새 다가온 군졸이 양순이에게 가볍게 목례를 건넸다.


"오늘 길 떠나시는 기러기가 맞으신지..."


상추사부가 일러 준 미리 약속 된 암호였다.


"그러 합니다. 오늘 기러기는 하늘길이 막혀 물길을 타고 가야 할 것 같습니다."


'누가 만든 암호인지, 참... 바보 같네. 원범 오라비인가...?'


양순이와 암호를 주고받은 군졸이 물품 목록 서찰을 꺼내어 임무를 시작했다.


"쌀 다섯 말. 콩 서되. 조 두되. 북어 스무 채. 무명 세필. 말린 육 고기 열장. 여비 두 냥. 말 세 마리 마패. 입니다.

확인이 다 되셨습니까?"


"여비가 두 냥 이에요? 이 걸로 돼요?"


"저는 물품만 전달하느라..."


"그렇겠지요...있는 놈들이 원래 더 짠 법이죠!"


"네?"


"아녜요. 다 맞는 것 같네요!"


"그럼 물품 교환 화폐. 환물전을 내어 주시면 됩니다."


"여기요!"


봉서에 들어있던 어사물품 교환 화폐였다.


"그럼 힘든 길 잘 다녀 오십시요!"


임무를 마친 군졸은 뒤로 돌아보지 않고, 왔던 길을 되돌아가고 있었다.


"확인은 잘 했느냐?"


"네, 상추 어른. 그런데 이걸로 우리 몇 달 동안을 어떻게 버텨요?

돈은 여비로 좀 더 챙겨 오셨겠죠?"


"내가 돈이 어딨느냐!"


"네? 어떻게 항상 보면, 돈이 있는 것도 같은데 없는 것도 같고. 돈 생기면 어디다 갖다 바치는 데라도 있는 거래요. 상추어른?

하여튼, 사람이 더 온다는데 우리 어떻게 먹고 살아요?

원범 오라비는 머리가 좋다면서, 돈 계산은 꽝이야 정말!"


양순이 보급 물품 주머니들을 보고 잔소리를 쏟아 붓고 있을 때였다.

저 아래에서 또다시 말 한마리가, 이번엔 사람을 태우고 하인의 손까지 빌어서 올라오고 있었다.


"저 인간인가?"


이번엔 뒤돌아서서 점잖을 빼고 있을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참 거들먹거린다. 좀 싸게 싸게 올라오지."


말위에 올라앉아 오는 모양이 마음에 영 들지 않는지, 노 상추가 투덜거렸다.


드디어 하인의 손에 들려진 말이 노 상추와 양순이의 앞으로 다가와 섰다.

말 위의 사내가 갓을 들어 올려 아래를 쳐다보았다.


"어라, 이 보라요. 여기서 또 만남 메다! 거 보자 ... 그라믄, 기가 기인 기요?"


" 황소 양반이 여긴 어쩐 일이요?"


"내래, 임금님이 부탁해서 왔디 않갓씀. 하믄, 기는 여기 어쩐 일이간디?"


"나도 임금님이 부탁해서 왔지."


"그라믄 임금님이 이번에 개나 소나 다 불러들이셨간? 어사단이 원래가 요래 줄줄이 엮어가는 기래?


"뭔 소린가, 어사 하나에 수행원이 한 둘이지."


구 만석이 주변을 휘 둘러 보았다.


"아, 그라믄 형씨가 어사또..인 갑구만! 거 참 갑갑구러, 뭘 그래 뺑뺑 돌리 간디.

준비 됐으믄, 고마 갑쑤다!"


"보아하니 아저씨는 수행원인데, 왜 이리 뻣뻣한 거래요! 궁에서 높은 일 하던 사람이래요?"


양순이의 눈에, 저 황소같이 우락부락한 인간 앞에서, 맥없이 얌전하기만 한 노 상추가 참 딱해 보이는 것 같았다.


"아저씨. 암행어사님한테 그렇게 버르장머리 없이 나오면 곤란하죠. 강상의 도도 모르는 거예요?"


"저 에미나이도 수행원이 간디? 차맣게 생기가지고 서리 건숭 맞기는.

내래 기딴거는 잘 모르니까느, 우리 기딴거는 첨부터 내삐리고 댕기야 서로가 편하디 않갔어?"


"그래도 저 아저씨가!"


"내래, 종 오품 창신교위라 하디만, 그라믄 그 쫙은 우째 되간?"


"우리 아부지는 오위 소속 정 사품 호군직 이라구요! "


어사로 임명되면서 곧바로 다시 승진 된 품계였다.


"종 오품하고 정 사품하고 차이가 얼마나 큰 건데. 그것도 모르면서 무슨 관리래요"


"아, 고조, 이 애기가 저 양반 딸래미 이었간디? 그라마 이렇게 하믄 어떻갔어?

대감이라는 말은 내래 데져도 열없어서 못하겠고, 기냥 내래 아우하고 그 쫙이 행님 하믄?"


노 상추가 잠시 뒷짐을 지고 생각에 빠져들었다.


"그래그래, 됐다. 양순아. 어차피 저 녀석도 돈이나 꽤 들여서 산 벼슬 같고, 나도 그냥 얹어준 자리 아니냐.

그냥 그렇게 하자. 우리끼리는."


간밤에 다녀간 원범이 부탁을 했었다.

상추 자신도 이 자 일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었지만, 배움은 짧아도 속이 맑고 깊어 보인다고 했다.

그래서 의리를 저버릴 인물은 아닌 것 같으니, 그의 고집을 조금은 받아주라고 했었다.


'네 생각이 틀렸다면, 원범이 너는 다녀와서 보자!'


"상추, 아 아니 아부지, 그러시면 아니 되옵니다! 그래도 대감 이라고..."


"내가 형님하면 됐어. 가자, 늦었다!"


"형님, 거 시원시원해서리 참 좋수다. 내 취향 아임메?

고조, 내래 요놈의 벼슬을 돈 주고 산 것은 또 우째 아셨슴메까! 고 참, 귀신 같디 않갔시요"


줄곧 말에서 내릴 줄 몰랐던 그가, 말에서 풀썩 뛰어 내려 상추에게 다가갔다.


"형님, 우리가 첫 만남은 쌈박질로 시작 했지만 서리,

인쟈 아우 동생 하기로 했다믄, 내래 형님을 제대로 모셔 볼끼니, 이 길 끝날 때 까지 염려는 붙들어 매시라요!

내래 이름 석 자는 구 만석이라 하지 않갓씀!

우리 아바이께서 천석이 보다는 만석이가 더 량이 많은 기라고 해서, 만석이라고 하게 됐다고 합데다.

그라믄 형님은 어찌 됨메까 이름이?


"노 상 추"


"고거이.. 고조, 풀떼기 이름 아임메까 형님?"


"아저씨, 또 그 버릇없는 말이에요? 풀떼기가 뭐예요. 인제 하지 마요. 우리 아부지한테요!"


"아, 이 에미나이 참 보드레하다가도 요래 또 발랑 뒤집기를 하기요?"


"에미나이 도 하지 마세요. 제가 아저씨 엄마라는 거 같잖아요. 양순이에요. 양순이. 이름을 부르시라구요."


"기래기래 알갔어. 성질 좀 녹이라우!"


웃음기가 차오른 그의 얼굴도 제법 귀염기가 가득해 보인다고 생각이든 양순이도, 이내 잠잠해진 것 같았다.


벌써 보급물품을 실은 말의 고삐를 잡고, 노 상추는 몇 걸음을 앞서 걸어가고 있었다.


"형님, 말은 안타고 가심메까?"


"물건이 잔뜩 실려 있지 않은가!"


"그거이, 가다가 누구 다 줘버리고 가볍게 가시기요.

일 끝날 때 까지 내래 밥은 안 굶도록 해 주갔시요!"


"일 없다!"


"아니믄, 이 말이라도 타고 가시라요.

아, 형님! 요레 널러리하게 댕기다가는, 늙어죽을 때 까지 집으로 돌아오기는 하갔시여?"




****




"숙부님, 부르셨사옵니까?"


"그래, 앉거라. 요즘 네가 그린 묘접도(描蝶圖) 가 참 대견하더구나.

모질의 털 치기가 내 난치기보다 더 사실적으로 드러나지 않았더냐... 하하!"


"과찬 이십니다! 소일 삼아 그려본 것을 동무들이 짓궂게 들고 나간 것뿐이옵니다."


"하전아, 어쩌면 그 그림이 너를 살게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많은 시간과 공을 들여 서화에 집념하는 것도, 지금의 세태를 벗어나는 좋은 방법이 아니겠느냐!"


"네, 숙부님. 하지만 너무 많이 움츠리는 모습은, 졸릴 만큼 평안하고 안정되게 보이기는 하겠지만,

저는 앞으로는 힘껏 뛰어올라 나비를 잡아내는 모습을 그리고 싶습니다!"


흥선군 또한 이 하전이 그림에 빗대어 하는 말이 무엇인지는 알 것 같았다.


"그래... 어쩌면 고양이는 칠십 세, 나비는 팔십 세를 의미하니.

젊은 녀석이 뛰 쳐 올라 나이 많은 것을 잡아챈들, 이상한 일도 아니지. 그렇지 그럼... 하하!"


"그렇습니다. 그림 또한 마음의 움직임으로 탄생하는 것으로 아옵니다."


"그래, 많이 컷 구나. 그런 말을 할 줄도 아는 걸보니.

요즘 대왕 대비마마께서 너를 많이 부르신다고 들었다. 마마께서는 강건 하신 게냐?"


"그러 하옵니다. 그저 한해 두해 지나는 시간이 요즘 들어 참 빠르게 느껴지신다고,

현기증이 나서 머리가 지끈거리신다고 하십니다."


"어의는 무엇하고?"


"어의는 침과 약을 주어 몸만 편안하도록 애를 쓰지만,

대왕 대비마마께서는 몸이 아니라, 마음과 머릿속이 복잡하다고 하십니다."


"그래, 그러시겠지. 공허 하실 테지."


"그래서 저를 부르시어, 가끔씩 말벗이 되어 드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이판 댁의 부인을 만났다고 하더구나?"


"네, 하지만 제가 알기로는 김 좌근 대감의 애첩일 뿐입니다.

정부인도 아닌데, 궁궐을 제집 드나들 듯이 드나 드는 건, 누가 허락을 해서 그렇게 된 것입니까!"


"실세가 무엇인지 아느냐?"


"임금이 살아계신 조선에, 실세라는 단어가 있다는 것조차가 역모의 마음을 품었다는 의미가 아니겠습니까!"


"그렇지, 하지만 논으로 향해야 할 물길이 완전히 틀려버렸구나.

어디쯤에서 잘못 되었는지, 무엇이 이 물길을 틀어 버렸는지, 찾아 보아야지.

찾고, 잘못된 이유를 확실히 빼내어 버려야, 다시 온전한 물길이 흘러 갈 것이다."


"지금 잘못 된 물길로 틀고 있는 것이 그들이라는 말씀이군요. 숙부님!"


"그래, 시간이 조금 더 걸릴 일이다.

그러니 대책 없이 자꾸 그들을 자극하는 일은 하지 말라는 것이야.

더구나 지금은 그 나합 부인 까지도, 어쩌면 이판 못지않게 거대한 실세가 되어가고 있는 중이다."


"숙부님, 도대체 이 나라가 이 씨의 나라입니까 김 씨의 나라입니까!"


흥선군이 말문을 잃고 이 홍안의 소년을 바라보았다.


"물길을 바꾸지 못한다면, 누구의 나라라는 것이 의미가 있겠느냐!

마음은 앞세우고 행동은 맞추어 따라가는 법이다.

경거 망동 하지 말고, 작은 것은 참고 큰 것을 기다리도록 해라. 알겠느냐!"


"네, 숙부님. 하지만,"


흥선군이 또 한 번 소년을 쳐다보았다.


"저는 숙부님의 그 방법이 별로 내키지 않습니다!"


소년을 바라보던 흥선군이 웃음기를 띠고 있었다.


"이 녀석아, 이미 이리 되어 버려서 지금은 바꿀 수도 없다.

해보면 꽤 재미있느니라!"


"그래도, 너무 ..."


"그래야, 가까이 다가간다.

그리고 시간이 나거든, 광통교 부근에 수입물품을 거래하는 '완위각' 이라는 상회가 있다.

시간이 나면 자주 들리 거라. 볼 것이 많은 곳 같다."


"네 숙부님. 그리 하도록 하겠습니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4

  • 작성자
    Lv.32 베르겐
    작성일
    23.09.29 23:03
    No. 1

    귀히 읽고 갑니다. 암행어사 활약이 정말 기대됩니다.
    작가님 행복한 한가위 되세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4 해품글
    작성일
    23.09.30 01:42
    No. 2

    명절 잘 보내셨나요. 베르겐님~
    저는 덕분에, 풍성한 보름달을 품은 듯 합니다..ㅋ.
    항상 감사합니다. 베르겐님~~^^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23 하윌라
    작성일
    24.01.02 10:11
    No. 3

    오오....... 3인칭의 장점들이 잘 나타나 있는 것 같아요.
    아주 자연스럽게 적으신 느낌입니다.
    좋아요 좋아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4 해품글
    작성일
    24.01.02 16:55
    No. 4

    윌라님의 칭찬글에, 어깨 으쓱거리며 하루를 시작하고 있습니다!
    윌라님의 댓글에서... 소설이 갖추어야 할 것들, 많이 배우고 있어요.
    항상 감사합니다. 하윌라님~^^

    찬성: 0 | 반대: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창덕궁의 의적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37 외숙 염 종수 +4 23.08.22 112 6 12쪽
36 왕의 길 +4 23.08.21 120 6 12쪽
» 암행어사 노 상추 +4 23.08.20 129 7 12쪽
34 의적 장가들다 +4 23.08.19 132 7 11쪽
33 거친 만남 +4 23.08.19 125 7 13쪽
32 노상추의 연인 +4 23.08.17 124 6 11쪽
31 북청 소장수 +4 23.08.16 122 6 11쪽
30 공륭이의 영입 +4 23.08.15 131 6 13쪽
29 사야가의 후손 +2 23.08.14 134 6 13쪽
28 미련둥이 호위무사 +4 23.08.13 137 6 11쪽
27 백성이 훔치다 +4 23.08.12 151 5 11쪽
26 검무 추는 흥선군 +4 23.08.11 137 6 12쪽
25 기억속의 여인 +4 23.08.09 137 6 12쪽
24 절실한 거래 +4 23.08.08 139 5 14쪽
23 무사 흥선군 +4 23.08.07 160 6 13쪽
22 대왕의 비밀통로 +4 23.08.06 148 6 12쪽
21 총의 신 만나다 +4 23.08.05 163 6 12쪽
20 원래, 있었던 것 +4 23.08.04 159 6 11쪽
19 분명. 그다! +4 23.08.03 153 6 13쪽
18 복면의 검객 +4 23.08.02 152 6 12쪽
17 음모 +4 23.08.01 157 6 12쪽
16 조선의 실세 +8 23.07.31 182 9 13쪽
15 시작된 의심 +6 23.07.30 204 9 14쪽
14 흔적 +6 23.07.29 226 10 13쪽
13 난(蘭)쟁이 흥선군 +6 23.07.28 227 10 13쪽
12 물색 +6 23.07.27 261 12 14쪽
11 신료들의 나라 +6 23.07.26 292 11 13쪽
10 사인검의 주인 +6 23.07.25 308 8 13쪽
9 강화도령 +7 23.07.24 323 9 14쪽
8 상감마마 행차시다. +6 23.07.23 351 7 13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