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 죽이면 그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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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기꿀호빵
작품등록일 :
2024.01.19 12:33
최근연재일 :
2024.07.24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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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1.23 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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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파극문

DUMMY

고요한 호수처럼 잔잔하던 노인의 얼굴이 분노로 처참하게 일그러졌고 두 눈은 금방이라도 우진의 심장을 꿰뚫어버릴 이글거리고 있었다.


“자네 지금 뭘 하는 건가?”

“저는 어르신이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남들과 다르다는 것 정도는 느끼고 있습니다.”

“자네는 지금 나에게 고개를 숙이고 있네. 자네는 지금 남자에게 있어 가장 소중한 것을 포기하고 있는 거야. 알고 있는가?”

“네.”


고통으로 어금니를 깨물면서도 우진은 고개를 들지 않았다.

무언가 다르다.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인간으로 태어났을 때부터 갖고 있던 본능이 노인과 여인은 지금까지 만났던 사람들과는 다르다고 말해주고 있었다.

우진이 고통스러워하면서도 고개를 숙이고 있자 조금은 관심이 생긴 걸까?

노인은 아까보다는 조금 누그러진 기색으로 차분하게 우진을 내려봤다.


“자네가 원하는 게 뭔가?”

“저도 어르신 같은 인간이 되고 싶습니다.”

“골치 아픈 젊은이로군.”


잠시 장내에 정적이 흘렀다.

눈을 감고 깊이 생각에 잠겨있던 노인은 차갑게 가라앉은 눈을 뜨며 아직 절을 하고 있는 우진을 내려봤다.


“방금 자네가 한 말이 얼마나 큰 의미를 갖고 있는지 아는가?”

“알고 있습니다.”


지구 온난화는 날이 갈수록 더 심해지고 있다.

이상 기후와 세계의 혼란이 심화된다면 돈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어쩌면 나중에는 돈이 아닌 무력이 가장 큰 의미를 갖게 될지도 모른다.

사실 우진의 가슴 속에는 남자로서 강해지고 싶다는 열망이 무의식적으로 남아있었다.

남자라면 누구나 가슴 속에 하나쯤 갖고 있을 염원.

숨어있던 열망이 우진의 마음을 뒤흔들고 있었다.

노인은 냉엄한 얼굴로 천천히 돌아서며 나지막이 말했다.


“정말로 자네는 우리들에 대해서 알고 싶은가?”

“네!”

“그렇다면 자네를 시험해보도록 하겠네. 몸이 다 나으면 시험을 치를 테니 그리 알도록.”


노인이 방을 나가자 우진은 바닥에 털썩 주저앉으며 가슴을 부여잡았다.


“크으으윽······!”

“정말 무모하군요! 어째서 갑자기 그런 무모한 행동을 한 거죠?”


금발의 여인이 황급히 우진을 침대에 눕혀주자 우진은 식은땀을 흘리며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후우우······ 특별한 이유는 없습니다. 그저 남자이기에 그랬을 뿐입니다.”


숨을 크게 몰아쉬며 우진은 금발의 여인과 통성명을 했다.

여인의 이름은 금단아. 꽤나 특이한 이름이라 쉽게 잊혀지지 않을 것 같은 이름이었다.

우진은 단아에게 어째서 죽염산에 온 건지 설명해줬다.


“캠핑을 하러 오셨다구요?”

“네. 전부터 꼭 죽염산에 오고 싶었습니다. 후우······.”

“저희들에 대해서는 깊이 알지 않는 게 좋을 거예요.”


짙은 속눈썹 아래 흑빛 눈을 반쯤 감고 있는 단아의 얼굴은 호수처럼 고요하고 차분해서 심중을 헤아리기 어려웠다.

어째서 그토록 정체를 숨기려고 하는지는 모르겠으나 필시 무언가 이유가 있으리라.

단아가 몸을 돌리자 싱그러운 초봄의 향기가 흩어졌다.


‘신기한 여자야.’


단아가 방을 나가자 우진은 방문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단아는 알 수 없는 분위기가 흐르고 있는 신비한 여자였다.






2036년. 1월 14일.

겨울이건만 날씨는 따듯한 봄 날씨와 다르지 않았다.

우진이 죽염산에 온 뒤로 어느덧 두 달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두 달 동안 단아의 정성스러운 간호 덕분에 우진의 몸은 혼자서도 거동이 가능할 정도로 회복되고 있었다.

그동안 단아와 함께 지내며 우진은 전에 봤던 노인의 이름이 금민석이라는 걸 알아낼 수 있었다.


“오늘부터 시험을 시작하겠다.”


벽에 등을 기대고 있던 금 노인은 천천히 눈을 뜨며 차가운 눈빛으로 우진을 바라봤다.


“하지만 스승님! 우진 씨의 몸은 아직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어요!”

“겨우 그 정도 상처로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면 차라리 처음부터 우리들과 함께하지 않는 게 낫다.”

“알겠습니다, 어르신.”


비록 몸이 완전히 회복되진 않았으나 지금이라도 찾아온 기회를 우진은 저버리고 싶지 않았다.


“따라와라.”



금 노인은 죽염산을 내려오자 손으로 산봉우리의 끝자락을 가리켰다.


“10분 안에 산의 정상까지 올라와라.”

“10분 안에 말입니까······?”


두 달 동안 최대한 회복에 전념하긴 했어도 우진의 몸은 아직 정상이 아니었다.

죽염산은 몹시 산세가 험한 산이다. 설사 우진의 몸 상태가 정상이었다고 하더라도 10분 안에 정상까지 올라가는 건 불가능했다.


“지금 포기해도 아직 늦지 않았다.”


서슬 퍼런 금 노인의 시선이 꽂히자 우진은 괜히 오기가 들었다.

두 달을 여기서 기다렸는데 이제 와서 망설이고 싶진 않았다.


“한 번 해보겠습니다.”


츠팟-!


우진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금 노인의 신형이 눈앞에서 사라졌다.


‘엇?’


빽빽하게 우거진 거목 사이를 누비며 금 노인은 어느새 산을 타고 있었다.

보면서도 실로 믿기지 않는 속도였다.

순식간에 시야에서 사라지는 금 노인의 등을 보며 우진은 험준한 산길을 달렸다.


“윽! 으윽-!”


뛸 때마다 가슴에서 격통이 밀려왔다.

어차피 전력으로 뛰어도 10분 안에는 절대 죽염산의 정상까지 올라갈 수 없다.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우진은 멈추지 않고 달렸다.

설령 최선을 다했음에도 불구하고 시험을 통과하지 못한다면 그건 어쩔 수 없으니 상관없다.

우진에게는 시험의 통과 여부를 떠나서 지금 최선을 다하지 않는다면 나중에 후회할지도 모른다는 사실이 가장 중요했다.


‘후! 씨발. 더럽게 아프네.’


가슴에서 느껴지는 고통이 심상치 않았다.

어쩌면 간신히 아물었던 상처가 터지며 피가 흘러나오고 있을지도 몰랐다.


“후욱! 후욱!”


성치 않은 몸으로 무리하게 뛰어서 그런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빨리 숨이 가빠오고 있었다.

입 안으로 단내가 느껴졌고 얼굴에서는 땀이 비처럼 흘러내리고 있었다.

아까 전보다 움직임이 확연히 느려졌음에도 우진은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달렸다.


짹! 째잭-!


정신없이 산길을 올라가던 우진은 요란한 소리에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

어린 새가 나무 아래에서 애처롭게 울고 있었다.

나무의 둥지에서 떨어진 걸까?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내서 시간을 확인하자 어느덧 시간은 1분이 남아있었다.


‘불쌍하지만 지금은 어쩔 수 없는 일이야.’


애써 무시하며 지나치려는 우진의 등 뒤로 시끄럽게 어린 새가 지저귀는 소리가 들렸다.


짹! 짹!


그냥 가려던 우진은 한숨을 쉬며 뛰던 걸음을 멈췄다.

우진이 나무로 걸어가자 아직 눈을 뜨지 못한 어린 새는 더욱 서럽게 울어댔다.

어린 새를 손에 든 우진은 천천히 나무 위로 올라갔다.



“허억······ 허억······.”


우진이 산의 정상에 올라오자 금 노인은 차가운 얼굴로 손목에 차고 있던 시계를 확인했다.


“1시간이나 늦었구나.”

“죄송합니다. 하산하겠습니다.”


주저 없이 우진은 등을 돌렸다.

금 노인의 옆에 서 있는 단아는 복잡한 눈빛으로 우진을 바라보고 있었다.

우진이 두어 걸음 떼자마자 금 노인의 차가운 목소리가 장내에 울려 퍼졌다.


“멈춰라.”


우진이 몸을 돌리자 금 노인의 표정은 한결 차분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어르신?”

“오늘부터 너는 파극문의 제자다.”


파극문.

우진에게는 생소한 이름이었다.


‘내 능력을 판별하는 시험이 아니었던 건가?’


어쩌면 금 노인은 우진을 한참 전부터 계속 지켜보고 있었던 게 아닐까?


“아직도 나를 어르신이라 부를 생각은 아니겠지? 제자라면 스승에게 그에 걸맞는 절을 올려라.”


우진이 절을 올리자 금민석은 몹시 무겁게 가라앉은 눈빛으로 내려보며 나지막이 읊조렸다.


“파극문의 57대 장문인으로서 지금부터 서우진이 사문의 제자가 되었음을 인정하겠다.”


금민석은 단아가 건네주는 차를 한 잔 마시며 아직 절을 하고 있는 우진을 내려봤다.


“언제까지 그러고 있을 셈이냐? 그만 일어나거라.”


몸을 일으키는 우진의 얼굴에서 굵은 땀방울이 후두둑 흘러내렸다.

성치 않은 몸으로 한계까지 달렸기에 우진은 머리가 어지러웠고 서 있는 것도 쉽지 않았다.


“묻고 싶은 게 있느냐?”


당장이라도 침대로 돌아가서 쉬고 싶었으나 그보다도 그동안 풀지 못했던 호기심이 앞섰다.

잠시 고민하던 우진은 결심을 굳히고 금 노인의 가라앉은 눈을 똑바로 바라봤다.


“스승님. 파극문이란 무엇입니까? 어떻게 스승님과 금 사저는 그렇게 움직일 수 있었죠?”


한 모금 차를 삼킨 금민석은 눈을 감고 차분히 입을 열었다.


“연개소문. 그 분이 파극문의 초대 장문인이다.”

“정말입니까?”

“그렇다.”


연개소문.

고구려 말기를 대표하는 장수인 연개소문이라면 우진 또한 알고 있었다.

천 년도 더 전에 살던 인물이었기에 우진은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으나 단아나 스승의 믿기 힘든 움직임이 떠오르자 어쩌면 정말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아야. 설명해주거라.”

“알았어요.”


복잡한 얼굴로 생각에 잠겨있는 우진에게 단아의 설명이 이어졌다.



과거. 영웅들이 날뛰던 전란의 시절.

수많은 무림인들이 있었다.

고대의 한반도에는 전쟁이 끊이지 않았고 적을 쓰러트리기 위해 재능이 뛰어난 무림인들이 문파를 만들며 신공과 절학을 창안했다.

고구려가 망하고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생기며 시간은 흐르고 흘러 과학은 발전했다.

과학과 더불어 총화기가 발전하자 가장 먼저 세계 곳곳에서 일어난 일은 무림인 사냥이었다.

무림인.

범인을 아득히 초월한 너무나도 압도적인 무력을 갖고 있는 무림인들은 평범한 인간들에게 너무나도 큰 위협이자 공포였다.

동양에서는 무림인 사냥이 기승을 부렸고 서양에서는 마력인 사냥이 활개쳤다.

각 문파의 절정고수들은 대항했으나 문파에 들어온 지 얼마 안 된 어린 제자들까지 지키기는 역부족이었다.

세계 각지의 사냥에 무림인과 마력인은 점차 줄어들었다.

단아는 짙은 속눈썹 아래 흑빛 눈을 반쯤 감으며 말을 이었다.


“사문의 위세는 과거에 정말 대단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아. 파극문에 남아있는 사람들은 우리들이 전부야.”

“그렇다고 해서 모든 무림인들의 명맥이 끊긴 것은 아니다. 다들 조용히 숨어서 기회를 기다리고 있을 뿐이지.”

“하지만 스승님. 저는 무림인이나 마력인에 대한 기사나 언론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습니다.”

“세계 각국의 정부는 무림인과 마력인에 대한 언론을 말소하고 은폐하고 있어.”


금민석은 차를 한 모금 삼키며 푸른 하늘을 올려봤다.


“우진아. 생각해 보거라. 이 세상에 만약 신공 절학과 마력이 존재한다는 것을 안다면 세계에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익혀보고 싶어 하지 않을 것이냐? 그렇게 된다면 한 개인이 갖게 되는 무력은 가히 상상을 초월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군요······.”


우진은 납득할 수 있었다.

총알보다 빠른 인간. 박격포보다 더 압도적인 주먹.

그런 초월적인 인간들에게 국가의 요인을 암살하거나 각종 범죄를 은밀하게 저지르는 건 굉장히 쉬운 일이었다.

만약 그런 초월적인 인간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게 된다면?

국가라는 테두리가 박살나며 법이 갖는 의미가 사라진다.

부, 권력, 명예.

무력 앞에서 모두 허물어지게 된다. 그런 천문학적인 위협을 정부에서 그냥 둘 리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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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아버지의 마음 24.03.20 119 1 12쪽
27 귀환 24.03.18 141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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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병장과 상병과 일병 24.03.16 144 2 12쪽
24 빛의 마법사 24.03.05 150 1 11쪽
23 늦은 밤의 기나긴 대화 24.02.27 168 1 12쪽
22 장왕 24.02.24 189 0 12쪽
21 감기약 24.02.22 216 2 11쪽
20 기억의 편린 24.02.17 232 3 12쪽
19 세 가지 부류의 인간 24.02.15 256 2 12쪽
18 폭우가 지나간 자리 24.02.09 296 2 12쪽
17 간발의 차이 24.02.08 311 2 12쪽
16 살아남은 인간 24.02.07 341 4 11쪽
15 소문 24.02.05 370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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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목숨을 건 비무 24.02.03 448 4 12쪽
12 약탈의 시대 +2 24.02.02 534 3 12쪽
11 상승의 경지 +2 24.02.01 611 5 12쪽
10 비울수록 버릴수록 채워진다 24.01.31 623 5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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