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 죽이면 그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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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기꿀호빵
작품등록일 :
2024.01.19 12:33
최근연재일 :
2024.07.24 21:10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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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2.17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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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기억의 편린

DUMMY

칠흑 같은 그림자의 영역 안에서 우진은 꿈을 꾸고 있었다.

눈에 보이는 것은 녹색으로 변한 신호등과 길게 이어져 있는 횡단보도. 그리고 웃으며 달려가고 있는 어린 여동생이었다.


‘여긴······.’


우진은 이 광경을 기억하고 있었다.

단순한 꿈이 아닌 과거의 기억으로 만들어낸 기억에 우진의 얼굴이 서서히 일그러졌다.

기억에 따라 우진의 몸은 8살의 어린 남자아이가 되어있었고 여동생은 5살이었다.


“오빠! 빨리 와!”


웃으며 여동생은 횡단보도를 달려간다. 조금 있으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기에 우진은 필사적으로 횡단보도에서 웃고 있는 여동생에게 달려갔다.


“민아야! 위험해! 돌아와!”


8살인 우진은 섬전처럼 빠르지도 섬광처럼 날렵하지도 않았다. 이것이 악몽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우진은 필사적으로 달렸다.


쾅!


달려오던 화물차에 치여 여동생의 몸은 날아갔다. 길에서 걸어가던 사람들의 비명 소리, 횡단보도에 고여가는 핏물. 모두 과거의 기억에서 변한 것은 없었다.

화물차가 직전에 브레이크를 밟았지만 여동생의 온몸은 피로 흠뻑 젖어있었으며 눈을 뜨지 않고 있었다.

우진은 죽은 여동생의 시신을 끌어안으며 고통과 슬픔으로 신음했다.

이 날은 유난히 날씨가 좋았던 날이었다. 그저 집 근처에 놀러 가려고 잠깐 나왔었을 뿐인데.

여동생이 죽은 뒤로 우진은 후회했다. 어린 나이에 후회가 사람을 피폐하게 만든다는 것을 알게 된 뒤부터는 우진은 여동생의 몫까지 더 최선을 다하여 살아가기 위해 애썼다.

그렇게 애써 이겨냈던 기억인데 악몽은 가차 없이 과거를 두드리고 있었다.

순식간에 눈 앞의 광경이 변했다.

여동생을 끌어안고 자책과 고통으로 신음하던 우진은 어느새 길에 있었고 여동생은 횡단보도를 달려가고 있었다.

마치 시간을 되감은 것처럼 아까 전과 똑같은 광경이었다.


“오빠! 빨리 와!”


이것이 어둠의 마법이 만들어낸 악몽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우진은 어금니를 부서져라 깨물며 주먹을 쥐고 전력을 다해서 달렸다.

악몽은 결국 꿈. 악몽에서 여동생을 구해봤자 달라지는 것은 없을 것이다. 그것을 알면서도 우진은 달렸다.

의미가 없다던지 가치가 없다던지 그딴 건 지금은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주먹을 쥔 손에 손톱이 파고들며 피가 흘러나왔고 어금니를 깨물고 있는 입에서는 단내가 나고 있었다.

필사적으로 전력을 다해서 달리고 있었으나 8살 남자 아이의 몸은 유약했고 이미 멀리 떨어져 있는 여동생에게 닿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쾅!


화물차는 여지없이 여동생을 치며 도로에서 멈춰 섰다.

우진은 주저앉아 죽은 여동생을 끌어안으며 고통과 슬픔으로 고개를 숙였다.

그토록 강해졌다고 생각했건만 지금만큼은 자신이 한없이 나약하게 느껴졌다.

작은 주먹으로 우진은 피로 얼룩진 도로를 후려쳤다. 주먹에서 살이 튿어지며 고통과 함께 뜨거운 피가 흘러나왔다.

순식간에 눈앞의 광경은 변했다.

우진은 아까처럼 길에 서 있었고 여동생은 이미 횡단보도에서 달려가고 있었다.


“오빠! 빨리 와!”


우진은 전력을 다하여 미친듯이 달렸다.

악몽은 계속해서 되감아 졌다. 몇 번이나 되풀이했던가? 계속해서 달려가며 우진은 잊어버렸다.

계속되는 악몽과 여동생의 죽음이 100번이 넘어가자 서서히 달려가는 우진의 몸에 변화가 일어났다.

8살이었던 우진의 몸은 조금씩 성장하고 있었다.

9살에서 10살로. 10살에서 11살로. 달려가는 우진의 몸이 조금씩 커지고 있었다.


“오빠! 빨리 와!”


여동생에게 달려오던 화물차의 앞을 가로막은 건 다름 아닌 청년이었다.


콰드득!


사람의 몸에 부딪쳤으나 오히려 차가 찌그러져 있었다.

어느새 청년으로 변한 우진은 놀란 눈을 크게 뜨고 있는 여동생을 슬픈 눈빛으로 내려보고 있었다. 우진의 눈가에 눈물이 고이자 여동생은 밝게 미소를 지었다.


“오빠. 강해졌구나.”


서서히 공간이 일그러지며 악몽에 균열이 가고 있었다.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기에 고개를 숙이고 있는 우진의 눈가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여동생 민아는 우진의 다리를 안아주며 미소를 지었다.


“내가 죽은 건 오빠 탓이 아니야. 그러니 오빠는 앞으로 더 열심히 살아가 줬으면 좋겠어.”

“그래.”


부서져 가는 꿈 속에서 민아는 순수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꾸륵! 꾸륵!


자리를 떠나던 미하일은 걸음을 멈추며 천천히 뒤를 돌아봤다.


“무슨······?”


조금씩 어두운 그림자 영역이 진흙처럼 흘러내리고 있었으며 일정했던 마력 유동이 흔들리고 있었다. 지금껏 단 한 번도 이런 적이 없었기에 미하일은 몹시 당황스러웠다.


꾸르륵!


점차 무너져가는 그림자 영역 사이로 눈을 감고 있는 우진이 드러나고 있었다.


“불가능해!”


고개를 가로저으며 미하일은 필사적으로 소리쳤다.

지금껏 그 누구도 깰 수 없었던 어둠의 마법이었다. 어둠의 본질에 근접했던 그림자 영역이 균열이 일어나며 무너지고 있었다.


‘설마!’


미하일은 문득 한 가지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만약 그림자 영역을 부수려는 게 아니라 그저 욕망과 집착을 버렸다면?

어둠의 마법은 욕망과 집착에서 비롯된 암흑의 마법이었다. 집착과 욕망이 없어진다면 그림자 영역이 파고들지 못하는 것도 불가능한 건 아니었다.


‘그것만으로는 깨트릴 수 없었을 텐데······.’


고민하던 미하일의 시야에 이글거리는 아지랑이가 들어왔다.


치이익!


우진의 몸에서 흘러나온 양강의 기운이 어두운 그림자 영역을 녹이고 있었다.

천천히 우진이 눈을 뜨자 미하일은 흠칫 놀라며 뒤로 물러났다.

우진의 눈빛은 더 이상 차갑지도 냉정하지도 않았다. 그저 남아 있는 것은 분노. 끝을 알 수 없을 정도로 뜨거운 분노가 눈에서 이글거리고 있었다.


츠팟!


어둠의 영역을 붕괴시킨 우진은 어느새 미하일의 코 앞에 접근해있었다.


“잠깐! 일단 말로······.”


콰직!


우진의 굳은살이 박힌 주먹이 가슴에 틀어박히자 미하일은 터질것처럼 눈을 부릅뜨며 고통으로 몸을 떨었다.


“컥!”


이어서 날아온 건 폭풍 같은 연타였다.


콰과과과!


지금껏 고통과 수치라고는 전혀 모르고 살았던 미하일은 몸을 파고드는 지독한 고통에 더는 냉정한 사고를 이어갈 수 없었다.

온몸에 두르고 있던 마력 방벽이 점차 무너져가고 있었다.


‘죽는다!’


서서히 공포가 정신을 지배해갔다. 이대로라면 죽음을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이 미하일을 더욱 필사적으로 만들었다.

마지막 남은 하나의 마력 방벽이 부서지기 직전 미하일의 발치에서 솟구친 어두운 그림자가 미하일을 휘감아버렸다.

그림자 속으로 들어가 버린 미하일이 나타난 건 우진으로부터 10m 넘게 떨어져 있는 아파트의 그늘이었다.

미하일이 만든 시간은 고작 해봐야 눈 한번 깜박하기도 힘든 찰나에 불과했으나 지금 미하일에게 있어서는 가장 중요한 시간이었다.

앞으로 손을 뻗고 있는 미하일은 온통 핏발이 서 있는 눈으로 필사적으로 소리쳤다.


“카오스 체인(chaos chain)! 카오스 체인(chaos chain)! 카오스 체이인!!”


카드드득!


우진의 그림자에서 솟구친 어둠의 사슬이 순식간에 우진의 온몸을 속박해버렸다.

미하일이 거친 숨을 헐떡이며 안도하는 것도 잠시 날카로운 소리가 사방에 울렸다.

우진이 안광을 번뜩이며 천천히 앞으로 걸어가자 어둠의 사슬이 점차 팽팽하게 당겨지고 있었다.


콰득!


핏줄이 돋아있는 팔을 우진이 강하게 움직이자 어둠의 사슬이 힘을 이기지 못하고 잘려나가며 거칠게 튕겨 나가버렸다.

금방이라도 찢겨나갈 것처럼 팽팽하게 당겨져 있는 수많은 카오스 체인을 보자 미하일은 당장 이 자리를 벗어나고 싶었다.

번뜩이는 우진의 두 눈은 설령 죽더라도 반드시 죽이고 가겠다는 강렬한 의지가 느껴지고 있었다.

식은땀을 흘리며 미하일이 허공에 손을 뻗자 어두운 균열이 일어나며 다른 공간으로 이어지는 암흑의 통로가 나타났다.

허공에 나타난 칠흑 같은 어둠으로 들어가기 직전 미하일은 차가운 눈빛으로 우진을 노려봤다.


“잊지 마라. 언젠가 너를 죽이는 건 나다.”


미하일이 암흑의 공간으로 들어가 버리며 허공에 있던 통로가 완전히 닫혀버리자 우진은 힘을 주어 크게 팔을 휘둘렀다.


콰드득!


온몸을 휘감고 있던 어둠의 사슬이 갈가리 찢겨나가며 사방으로 흩어지자 우진은 물끄러미 작열하고 있는 하늘의 태양을 바라봤다.

더 이상 미하일의 기척이 느껴지지 않고 있었다. 아무래도 상당히 먼 곳으로 텔레포트한 듯 했다.

어느덧 석양이 지고 있었다. 저물어가는 태양을 보며 우진은 민아의 말처럼 앞으로도 언제나 최선을 다하여 살아가리라고 다짐했다.



방주로 돌아오자 방에 들어간 우진은 의자에 앉으며 눈을 감았다.

스미로노프 미하일.

비록 거의 쓰러트릴 수 있었다지만 여러모로 굉장히 위험한 적이었다.

그림자 속에 들어가며 공간을 이동하는 마법은 특히나 성가셨다. 만약 도약할 수 있는 거리가 굉장히 길거나 별다른 제약이 없다면 알면서도 미리 대응하기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

만약 우진을 노리지 않더라도 미하일이 방주에 있는 다른 사람들을 노릴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갑자기 허공에서 나타나는 적을 막아낼 수 있는 사람은 방주에 많지 않았다.


철컥.


우진이 공간 이동 마법에 대한 대항 수단을 고민하는 사이 단아가 방으로 천천히 들어왔다.


“사제. 오늘도 별일 없었지?”


우진이 오늘 있었던 일들을 말해주자 단아가 짙은 속눈썹 아래 흑빛 눈을 동그랗게 뜨며 당황했다.


“그랬었구나. 마법사들은 위험한 존재들이야.”

“텔레포트에 대항할 만한 방법이 뭔가 없을까요?”

“내 생각엔 마법은 역시 다른 마법으로 막을 수밖에 없을 것 같아.”

“그렇군요.”


방주에는 무인들밖에 없으니 여러모로 곤란할 수밖에 없었다.


“참! 오늘 아침에 벙커에 특이한 사람들이 왔었어.”


우진이 밖에 나간 뒤에 아침에 찾아왔던 사람들은 스스로를 왕의 말을 전하기 위해 찾아온 사절단이라고 했었다고 단아는 말해줬다.


“지금 지휘작전실에서 사절단이 가져왔던 서신으로 한창 회의 중인데 같이 가볼래?”

“그러죠.”


우진이 단아와 함께 방을 나오자 길을 걸어가던 오퍼레이터가 웃으며 반갑게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아크 로드님!”


인사를 건네오는 사람들에게 가볍게 인사를 해주며 우진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 1층으로 올라갔다.

지휘작전실에 들어가자마자 은서와 학자들의 대화가 빠르게 오고 가고 있었다.


“아니. 가면 안 된다니까?”

“아뇨. 가야 돼요. 안 간다면 저쪽에서는 무시한다고 생각할 게 분명해요.”

“위험하잖아. 지금 우진 씨 없으면 여긴······.”


바쁘게 말을 이으려던 박사는 인기척에 뒤를 돌아보다가 우진과 눈이 마주치자 당황하며 황급히 옆에 있는 의자를 뒤로 빼줬다.


“아크 로드님. 오셨군요. 안 그래도 한창 아크 로드님 얘기 중이었습니다.”


우진이 자리에 앉자 은서는 우진의 앞에 하얀 쪽지를 내려놨다.


“오늘 사절단이 가져왔던 서신이에요. 저쪽은 남쪽에 있는 영월군에 벙커가 있는 것 같던데 오빠가 찾아오기를 원하고 있어요.”


「파극문의 제자 서우진. 찾아와라. 왕으로서 서로 왕에 걸맞는 조우를 해보자. -영월군의 장왕(張王)-」


“단아나 민석 아저씨까지 가버리면 방주의 방비가 너무 허술해져요. 그러니 가더라도 오빠 혼자 가야 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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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전쟁 24.04.27 63 1 12쪽
31 출진 24.04.21 61 1 12쪽
30 이면 24.04.15 66 1 11쪽
29 소나라의 왕녀 24.04.09 80 1 11쪽
28 아버지의 마음 24.03.20 118 1 12쪽
27 귀환 24.03.18 140 2 12쪽
26 다시 만난 처자 24.03.17 138 1 11쪽
25 병장과 상병과 일병 24.03.16 144 2 12쪽
24 빛의 마법사 24.03.05 149 1 11쪽
23 늦은 밤의 기나긴 대화 24.02.27 168 1 12쪽
22 장왕 24.02.24 188 0 12쪽
21 감기약 24.02.22 215 2 11쪽
» 기억의 편린 24.02.17 232 3 12쪽
19 세 가지 부류의 인간 24.02.15 256 2 12쪽
18 폭우가 지나간 자리 24.02.09 295 2 12쪽
17 간발의 차이 24.02.08 309 2 12쪽
16 살아남은 인간 24.02.07 339 4 11쪽
15 소문 24.02.05 370 2 12쪽
14 방주 점검 24.02.04 430 4 12쪽
13 목숨을 건 비무 24.02.03 448 4 12쪽
12 약탈의 시대 +2 24.02.02 533 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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