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 죽이면 그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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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기꿀호빵
작품등록일 :
2024.01.19 12:33
최근연재일 :
2024.07.24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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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22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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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사령관

DUMMY

벙커로 돌아간 우진은 지하 6층으로 내려갔다.

알현실로 들어가자 새로운 신하들이 황급히 고개를 조아린다. 신하들은 좌우에서 일렬로 쭉 늘어서 있었다.

붉은 융단을 밟고 위로 올라간 우진은 천천히 왕좌에 앉았다.


“주 나라의 가장 뛰어난 기계공학자가 누구인가?”

“실력이 가장 뛰어난 과학자라면 김역수로 사료됩니다.”

“여봐라! 당장 김역수를 알현실로 데려와라!”

“예!”


문 근처에서 대기하고 있던 병사는 황급히 밖으로 뛰쳐나갔다.

잠시 후 머리에 백발이 가득한 늙은 과학자가 황급히 알현실로 들어왔다. 박사는 오늘 하루 동안 엄청난 피 바람이 불었다는 것을 알면서도 초연했다.


“그대가 김역수인가?”

“그러하옵니다. 어째서 저처럼 볼품없는 늙은이를 이곳까지 부르셨는지요?”

“듣기로는 그대가 주 나라에서 가장 뛰어난 기계공학자라던데. 사실인가?”

“하하! 늙은이가 가진 재주라고는 그저 기계 조금 만지는 것밖에는 없습니다. 아무래도 사람들이 저를 과대평가했나 보군요.”

“김역수. 그대에게 재화와 물자, 나라의 가장 뛰어난 인재들을 아낌없이 지원해준다면 그대는 미래로 갈 수 있는 기계를 만들 수 있는가?”

“전하께서는 지금 타임머신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일렬로 줄지어 고개를 조아리고 있던 신하들이 수군거린다. 타임머신은 인류가 온전했던 과거에도 픽션에나 등장하던 상상의 기계였다. 대재앙으로 인류가 거의 멸망한 지금 그런 상상의 기계를 만든다니. 신하들에게는 왕의 말이 터무니없게 들렸다.


“나는 과거에 염제라고 불렸네. 주 나라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과거 내가 살던 방주라 불리던 벙커가 있지. 방주의 재상이자 가장 뛰어난 군사였던 김은서는 내게 미래로 갔다는 편지를 남겼네.”

“아! 그러셨군요! 저도 몇 달 전에 방주에 갔었습니다. 사람은 없었지만 신기하더군요. 지하 3층의 거대한 방에서 엄청난 마찰이 있었던 흔적을 발견했었습니다. 원형의 둥근 흔적이었죠. 마치 그곳에 있던 거대한 기계가 순식간에 사라진 것처럼 흔적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래. 나도 그 흔적을 보았었네.”

“어쩌면 김은서라는 군사는 정말로 미래로 가는 기계를 만드는 데 성공했을지도 모르겠군요. 물론 어디까지나 가정입니다. 평생을 노력해도 그런 것을 실현하기란 한없이 불가능에 가까우니까요.”

“김역수. 가능하겠는가?”


김역수는 팔짱을 끼고 눈을 감으며 고민에 빠졌다. 왕의 앞에서 김역수의 태도는 무척이나 불경하다고 할 수 있으나 우진은 실력이 뛰어나다면 그 정도는 신경 쓰지 않았다.


“가능할지는 모르겠으나 최대한 해보겠습니다. 늙은이가 죽기 전에 기이한 도전을 해보는군요. 하하!”

“기계의 개발에 필요한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을 테니 필요한 것이 있으면 언제든 바로 말하도록 하게.”

“아무렴요.”


김역수가 하얀 가운 주머니에 손을 넣고 터덜거리며 알현실을 나가자 우진은 아래에서 고개를 조아리고 있는 신하들을 내려봤다.


“그대들은 모두 물러가라. 본래의 업무로 돌아가서 나라를 위해 최선을 다해라.”


고개를 숙이고 신하들은 황급히 알현실을 떠났다. 왕좌에 등을 기대고 눈을 감던 우진은 불현듯 떠오른 생각에 크게 소리쳤다.


“잠깐! 나라의 국호를 새로 짓겠다.”


밖을 나가려던 신하들이 당황하며 우진을 돌아봤다.


“저, 전하. 그렇다면 새로운 국호는 무엇으로 하시겠습니까?”

“흐음······.”


주왕이 죽고 새로운 왕이 되며 나라가 바뀌었으니 나라의 이름도 바꿀 필요가 있다. 좋은 이름을 떠올리며 고심하던 우진은 천천히 눈을 떴다.


“방주. 이 나라의 새로운 국호는 지금부터 방주다.”


우진이 딱히 방주라는 이름을 좋아해서가 아니었다. 새롭게 부를만한 나라의 이름이 방주 말고는 그다지 떠오르지 않았다. 방주가 그나마 발음도 느낌도 무난했기에 국호로 정하기 적당했다.


“알겠습니다, 전하.”


신하들이 황급히 알현실을 떠나자 우진은 눈을 감으며 왕좌에 등을 기댔다. 급한 불은 이제 꺼졌다. 커다란 나라의 업무를 처리하고 나니 속이 후련하다.

조금 잠을 자려던 우진의 머리에 술집의 김 할배가 떠올랐다. 주왕의 병사들이 쏜 총에 김 할배의 가게는 벌집이 됐었다. 김 할배가 잘 있는지 걱정이 돼서 좀처럼 잠이 오지 않았다.


‘어쩔 수 없지.’


왕좌에서 일어난 우진은 지상으로 올라가서 벙커를 나갔다.

우진이 길을 걷자 근처를 지나가던 백성들이 황급히 머리를 조아렸다. 우진은 제대로 먹지도 씻지도 못해 마른 장작처럼 몸이 마른 백성들에게 손을 흔들어 제지했다.


“사적인 용무로 벙커에서 나왔을 뿐이다. 지금은 굳이 내게 번거롭게 고개 숙일 필요 없다.”


황급히 고개를 숙이는 백성들을 돌려보내며 우진은 김 할배의 가게로 걸어갔다. 나무로 덧대어진 김 할배의 가게는 곳곳에 총알이 뚫려있었다.


‘나중에 보상을 해줘야겠군.’


걸레짝이 되어 위태롭게 흔들리는 문을 열고 우진은 가게로 들어갔다.


“뭐야! 이 나라에는 깡패 새끼들 밖에 없나? 시시하군! 주먹으로 사는 새끼들이 겨우 이 정도인가?”


퍼억!


가게에서 오른쪽 눈에 검은 안대를 차고 있는 남자가 덩치 큰 거한을 주먹으로 후려패고 있었다.


“커억!”

“이봐. 설마 이 정도는 아니겠지? 겨우 이 정도로 시비를 걸었다면 실망인데?”


우진은 정신없이 주먹으로 거한을 후려패고 있는 남자의 어깨를 가볍게 손으로 붙잡았다.


“뭐야. 어떤 새끼가 감히 내 어깨에 손을······.”


술에 취하여 험악하게 인상을 쓰고 뒤로 고개를 돌리던 애꾸눈 사내의 얼굴이 서서히 경악으로 물들었다. 우진의 얼굴을 본 사내의 눈동자가 좌우로 세차게 흔들렸고 숨은 금방이라도 넘어갈 것처럼 거칠어졌다.


“그, 그럴 리가······ 어떻게 자네가 아직 살아있는 거지? 불가능해. 자네는 분명 그날 죽었어. 그 절벽에서 수많은 적들에게 둘러싸여 분명 죽었는데. 대체 어떻게?”

“얘기하자면 길어. 강윤. 그동안 잘 지냈나?”


애꾸눈 사내. 그는 다름 아닌 영월군의 김강윤이었다. 하나밖에 남지 않은 김강윤의 왼쪽 눈에 서서히 눈물이 고였다.


“크윽······ 흐흐! 그래. 나는 그동안 어떻게든 이렇게 살아남았네.”


본래 장왕이라 불렸던 사내의 몰골은 초라했다. 신하들과 부하들에게 둘러싸여 피라미드와 흡사한 벙커에서 호화로운 식사를 했던 강윤은 몰라볼 만큼 초췌해져 있었다.


“아무래도 그동안 쌓여있는 얘기가 꽤 많은 것 같군. 앉게. 내가 한 잔 사겠네.”

“친구가 술을 사준다는데 안 마실 수 없지!”


김강윤은 손에 들고 있는 정신을 잃은 거한을 가볍게 가게의 구석으로 던져버렸다.


“저 사람이 무언가 잘못을 저질렀나?”

“아니. 가게에 들어오자마자 저 놈이 거지는 여기에 들어올 수 없다며 시비를 걸잖아. 저런 놈은 당연히 패줘야지 어쩌겠어.”

“하하! 잘했네. 자네는 여전하군.”


김 할배와 손자는 카운터에서 우진의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주인장. 무사했군요.”

“총격전이 벌어졌을 때 카운터 뒤에 숨어서 살았습니다. 세상이 흉흉하다 보니 카운터는 처음부터 방탄으로 제작해놨죠. 그나저나 염제 님. 아니. 저, 전하.”

“주인장. 사소한 호칭은 그만 됐소. 가장 비싼 술로 줘요. 돈은 나중에 가게에 보상할 때 한꺼번에 지불하겠소.”

“예에······.”

“전하라니. 자네 언제 이 나라를 먹은 건가?”

“얼마 안 됐네. 아침에 들어와서 소동이 일어났으니 왕이 된 것은 점심 근처겠군.”

“자네. 변했군.”

“사람은 살아가며 누구나 변하지. 변한 것은 자네도 마찬가지 아닌가?”

“하하하! 그래. 맞아. 시원시원해서 예전보다 지금이 훨씬 보기 좋군.”


우진은 강윤과 술을 주고받았다. 오랜만에 친우와 마시는 술은 달콤씁쓰름했다.


“자네가 죽고 나서 다음으로 수많은 국가들의 표적이 된 것은 나였네. 자네 덕분에 제 나라 연합은 무너졌지만 연 나라 연합이 새롭게 등장했지.”


안 좋은 과거를 떠올린 김강윤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허리를 숙이는 그의 눈은 분노한 짐승처럼 예리하게 빛나고 있었다. 우진은 묵묵히 강윤의 술잔에 술을 따라줬다.


“고맙네. 역시 전부 다 잃고 나니 친구 말고는 남는 게 없군.”


단숨에 술잔을 비운 강윤은 입가에 묻은 술을 손등으로 훔쳤다.


“벙커에서 부하들과 필사적으로 싸웠지만 결국 이 꼴이야. 크흐흐! 목숨만 간신히 부지하고 도망쳤지.”


강윤은 검은 안대를 차고 있는 오른쪽 눈을 손으로 어루만졌다. 눈은 벙커가 부숴지기 전에 잃었다. 배가 갈라지며 내장이 흘러나오면서도 필사적으로 마지막까지 저항했던 결사대가 잃어버린 그의 눈에 아른거렸다.


“강윤. 자네가 나를 도와주지 않겠나?”

“내가 자네를? 하하! 내가 거들어줄 만한 일이 있을지 모르겠군.”


김강윤은 뚜렷하지 않으나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경지가 상승했군.’


우진이 정확히 과거보다 얼마나 더 강해졌는지는 모른다. 우진이 과거에는 호수처럼 잔잔한 존재였다면 이제는 바다처럼 깊어 함부로 가늠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강윤. 이 나라에는 제대로 벙커를 지켜줄 수 있는 병사들이 없네. 그러니 자네가 벙커의 모든 병력을 총괄하는 총사령관이 되어주게.”


우진의 눈을 뚫어져라 바라보던 강윤은 그의 손을 꽉 붙잡으며 강하게 악수를 주고받았다.


“만약 다른 사람이 부탁했다면 지금 당장 머리를 날려버렸겠지만. 자네의 부탁이니 어쩔 수 없군. 알았네! 비록 부족하나마 당분간 자네의 힘이 되어주겠네.”

“고맙네, 친구.”


김 할배의 가게를 나온 우진과 강윤은 벙커로 걸어가며 그동안 쌓여있던 얘기들을 나눴다.


“자네는 어떻게 살아있는 건가? 내가 듣기로는 분명 죽었다고 들었는데.”

“지옥에 갔었네. 그곳에는 13명의 악마들이 있지.”


우진은 신비로웠던 어둠의 초월자와 지옥 같은 곳에서 만났던 13명의 악마에 대하여 김강윤에게 말해줬다.


“악마들을 죽이고 부활했다고?”

“그래.”

“그거 참. 스펙터클하군.”


벙커로 들어간 우진은 지하 6층으로 내려갔다. 알현실로 우진과 강윤이 들어가자 문 근처에서 대기하고 있던 병사들이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여봐라! 신하들에게 왕이 말할 것이 있으니 알현실로 오라고 전해라!”

“예!”


우진이 왕좌에 앉자 강윤은 옆에 서며 어두운 알현실을 둘러봤다.


“벽이고 천장이고 전부 다 흑빛이군.”

“그래. 주왕의 취향이지.”

“나중에 푸른색이나 흰색으로 벽을 바꾸는 게 어때? 바닥도 대리석 같은 걸로 좀 더 깔끔하게 깔고.”

“자네 말대로 나중에 바꿔야겠어.”


잠시 후 신하들이 황급히 알현실로 달려 들어왔다. 왕과 나라가 바뀐 것이 오늘이다 보니 신하들은 혹시라도 자신에게 불똥이 튀길까봐 다급히 우진의 눈치를 살폈다.


“모두 듣거라! 여기 있는 김강윤은 지고하신 선조 척준경의 무공을 익힌 무인이다. 오늘부터 김강윤은 이 나라의 총사령관이니 모두 나를 대하듯 총사령관을 깍듯하게 대우해라.”

“예! 명심하여 받들겠습니다!”

“모두 알현실까지 오느라 수고 많았소. 이제 돌아가서 볼일 보시오. 그대들도 굳이 눈치 볼 필요 없소.”

“예! 예에······ 그, 그럼 저희는 이만 물러가 보겠습니다. 전하.”


신하들이 황급히 알현실을 떠나자 김강윤은 고개를 뒤로 젖히며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 신하들이 아주 군기가 바짝 들었군! 다들 자네 눈치 보느라 아주 정신이 없어!”

“시간이 흐르면 차츰 괜찮아지겠지. 저래 보여도 이 나라의 주축들이니 앞으로 더욱 대우해줘야 돼.”

“그렇군! 그럼 나는 이 벙커가 얼마나 쓸모가 있는지 둘러보러가겠네! 제대로 된 병사들이 얼마나 있는지도 확인할 겸 말이야.”

“알았네, 강윤. 자네가 오니 정말이지 든든하군.”


김강윤은 머리 위로 가볍게 손을 흔들며 알현실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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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수라왕의 전령 24.07.24 23 0 12쪽
» 총사령관 24.07.22 37 0 12쪽
37 나라의 새로운 변화 24.07.21 48 1 12쪽
36 복수 24.07.17 50 1 12쪽
35 남녀에게 평등한 주먹 24.07.15 59 1 12쪽
34 13번의 시험 24.07.03 58 1 12쪽
33 전쟁이 지나간 자리 24.05.13 62 1 12쪽
32 전쟁 24.04.27 62 1 12쪽
31 출진 24.04.21 60 1 12쪽
30 이면 24.04.15 66 1 11쪽
29 소나라의 왕녀 24.04.09 80 1 11쪽
28 아버지의 마음 24.03.20 118 1 12쪽
27 귀환 24.03.18 139 2 12쪽
26 다시 만난 처자 24.03.17 137 1 11쪽
25 병장과 상병과 일병 24.03.16 144 2 12쪽
24 빛의 마법사 24.03.05 148 1 11쪽
23 늦은 밤의 기나긴 대화 24.02.27 168 1 12쪽
22 장왕 24.02.24 188 0 12쪽
21 감기약 24.02.22 214 2 11쪽
20 기억의 편린 24.02.17 231 3 12쪽
19 세 가지 부류의 인간 24.02.15 256 2 12쪽
18 폭우가 지나간 자리 24.02.09 295 2 12쪽
17 간발의 차이 24.02.08 309 2 12쪽
16 살아남은 인간 24.02.07 339 4 11쪽
15 소문 24.02.05 370 2 12쪽
14 방주 점검 24.02.04 429 4 12쪽
13 목숨을 건 비무 24.02.03 448 4 12쪽
12 약탈의 시대 +2 24.02.02 533 3 12쪽
11 상승의 경지 +2 24.02.01 610 5 12쪽
10 비울수록 버릴수록 채워진다 24.01.31 622 5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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