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 죽이면 그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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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기꿀호빵
작품등록일 :
2024.01.19 12:33
최근연재일 :
2024.07.24 21:10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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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3.18 2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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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귀환

DUMMY

방금 전 했던 짓이 있기에 수아는 황급히 무너진 주택에서 뛰쳐나가며 도망쳤으나 건장한 군인 셋에게서 여자 한 명이 도망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었다.

결국 단우 일행에게 붙잡히자 수아는 울음을 터트리며 무릎을 꿇고 셋에게 손으로 빌었다.


“죄송해요! 제가 잘못했어요! 너무 무서워서 그랬어요! 으흐흑!”


수아가 울면서 서럽게 울었으나 더 이상 단우 일행은 수아의 반쯤 섞인 연기에 속지 않았다.


“하! 나 참.”


수아를 내려보는 단우의 눈빛 또한 더 이상 따듯하지 않았고 분노와 배신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이봐요. 김수아 씨!”

“네? 네. 네?”

“저희들한테 여동생 구해달라고 했잖아요. 그거 혹시 거짓말이었나요?”

“아, 아니에요! 정말이에요! 여동생은······ 여동생은 죽었어요. 아무래도 놈들한테 죽은 것 같아요. 으흐흐흑!!”


수아가 어깨를 들썩이며 서럽게 울자 이제야 조금은 연기가 아닌 진심 같았다.

사실 수아 또한 정말로 여동생의 죽음은 슬펐으니 지금은 진심이라고 할 수 있었다.

여자의 무기는 눈물이라는 말이 있지 않던가? 역시 괜히 그런 말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었다.

남자 셋이서 오히려 죽을 위기를 겪을 만큼 커다란 배신을 당했으나 구도가 이렇게 되자 오히려 남자 셋이서 여자 한 명을 울린 것처럼 되어가고 있었다.

전 같았으면 이쯤이면 그냥 가라고 했겠으나 방금 전 수아 때문에 참극을 겪고 무참히 살해당할 뻔 했었기에 셋은 아직 분노를 참을 수 없었다.


“이봐요. 김수아 씨. 뚝! 그만 뚝 그쳐요.”

“흑! 흑흑!”


수아가 서서히 울음을 그치자 이현은 분노로 눈을 빛내면서도 푹 한숨을 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좋습니다. 수아 씨. 그럼 제가 말하는 대로만 하면 용서해드릴게요. 자. 지금부터 제가 하는 말을 따라 하세요. 아셨죠?”

“네? 네······.”

“한국 남자는! 노예가 아니다! 복명 복창 실시!”

“하, 한국 남자는······ 노, 노예가 아니다······.”


복명 복창은 태어나서 처음 해보기에 기묘한 수치심에 얼굴을 붉히고 수아가 작은 목소리로 말을 따라 하자 이현이 인상을 쓰며 큰 목소리로 소리쳤다.


“목소리가 작다! 더 크게!”

“하, 한국 남자느은······!”

“작다! 더 크게!”

“하, 한국 남자는!!”

“실시!”

“노, 노예가 아니다!”

“더 크게!”

“한국 남자는!!!”


처음에는 수치심을 느끼던 수아는 어느새 얼굴을 붉히면서도 힘주어 크게 소리치고 있었다.


“노예가 아니다!!!”

“좋아요. 김수아 씨. 잘하셨습니다. 원래라면 이 정도로는 절대 끝나지 않겠지만 저희도 인생 기구한 수아 씨한테 더는 이래라 저래라 하기 싫습니다. 가셔도 좋아요.”


수아가 아직 분노가 다소 남아있는 셋을 힐끔힐끔 쳐다보며 천천히 자리를 떠나자 주호는 떠나는 수아에게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김수아 씨. 당신이 한국 남자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겠지만 이것 하나만은 명심하셔야 할 겁니다. 지금 이 나라에는 국가에 강제로 끌려갔던 수많은 군인들이 총기를 들고 전국을 돌아다니고 있습니다. 그동안 군인들은 국가라는 커다란 권력 앞에서 참아야 할 수밖에 없었기에 얌전하게 지냈지만 저마다 가슴속에 강제로 국가에 끌려갔던 지독한 분노를 품고 있다는 것을 앞으로 잊지 마셔야 할 겁니다.”


이현의 눈빛이 분노로 끓어오르자 수아는 다소 공포를 느끼며 고개를 끄덕이고 천천히 자리를 벗어났다.

더 이상 수아는 한국 남자가 노예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사실 한국 남자들은 국가의 노예도 여자들의 명령에 복종해야 하는 노예도 아니었던 것이다.


‘씨발 새끼들······.’


속으로 욕을 중얼거리며 수아가 무너진 주택을 떠나버리자 이현은 한숨을 푹 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하여간. 여자도 군대 갔어야 됐는데. 이 개 같은 나라! 잘 망했다, 잘 망했어.”


이현은 거칠게 군화로 반쯤 무너진 벽을 발로 차버리며 한숨을 쉬었다.


“어쩌겠냐. 원래 이런 나라였는데.”

“이제 어디 가지?”


순간 셋은 고민에 빠졌다.

셋 다 고향에 있던 가족은 재앙 이후 어딘가로 사라졌기에 셋은 더 이상 갈만한 곳이 없었다.


“우리끼리 여행이라도 해야 되나?”

“야. 그런 말 하지 마. 길 가다가 총 맞아 죽기 딱 좋겠네.”


파괴된 주택의 바닥에 앉아 앞으로 어찌할지 궁리하던 셋은 점차 가까워지고 있는 발소리에 눈빛을 교환하며 재빨리 총을 들고 일어섰다.


“뭐야. 형이었어요?”


사방을 경계하며 일어났는데 벽 너머로 걸어온 사람은 다름 아닌 우진과 칼리오페였다.

우진은 아까 전과는 다르게 많이 개운해진 셋의 얼굴을 보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잘 된 것 같구나.”

“방금 전에 수아 씨를 만났거든요. 대단한 일을 시키진 않았어요. 간단히 훈계만 해주고 보냈죠.”

“먹을래?”


우진이 배낭에서 통조림을 꺼내서 건네주자 단우 일행은 밝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우와! 형. 이거 어디서 났어요? 근처 마트는 이미 다른 놈들이 싹 다 쓸어갔던데.”

“전에 구했던 식량이야. 배고프면 더 줄게. 천천히 먹어라.”


단우 일행은 우진의 친절에 왈칵 눈물이 새어 나왔다.

나라가 대재앙으로 망하고 군대가 와해되며 지금껏 배신당하고 서러운 일들밖에 없었는데 우진은 상처받은 이들 셋에게 순수한 친절을 베풀고 있었다.

단우 일행에게는 군대에서 벗어난 뒤로 처음으로 받아보는 친절이었다.


“목마르면 물도 마셔라.”

“고마워요, 형.”


우진이 생수를 건네주자 셋은 허겁지겁 물을 마셨다.

이틀 만에 제대로 끼니를 때운 단우 일행은 벽에 등을 기대며 멍하니 푸른 하늘을 바라봤다. 날씨가 후덥지근하여 이마에서는 약간 땀이 흐르고 있었다.


“형! 그나저나 아까 그 놈들 어떻게 처리한 거예요? 형은 총도 쓰지 않는 것 같던데.”


궁금하기는 단우 뿐만이 아니라 이현과 주호도 마찬가지였다.

발포되던 총알을 피했던 그 움직임. 그것은 분명 인간의 범주를 아득히 뛰어넘은 초인이었다고 밖에는 설명할 길이 없었다.

우진은 온몸에 탄탄하게 잔근육이 이어져 있었고 어깨는 좌우로 넓게 뻗어있어 보고 있자니 흡사 커다란 철탑처럼 느껴졌다.


“나는 그동안 단련해왔거든. 그러니 그 정도는 어렵지 않지.”


단우 일행은 놀라면서도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반파된 빌라에서 칼리오페가 보여줬던 신비한 마법을 이미 보았었기에 단우 일행은 우진 또한 비슷한 어떤 모종의 힘을 익히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고 추측할 뿐이었다.


“입대통지서 날라와서 군대에 억지로 갔을 때에는 차라리 한국이 당장 망해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진짜 망해버리니까 할 게 별로 없네요.”


단우 일행은 아직 젊디 젊은 22살이었다. 단우 일행에게 있어서 아포칼립스가 되어버린 세계는 아직 받아들이기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

옆에 있던 칼리오페는 갈피를 잃은 단우 일행을 보고 고민하다가 조심스럽게 붉은 입술을 열었다.


“여행이라도 해보는 게 어때요? 도시는 다 부서지긴 했지만요.”

“안 그래도 해볼까 하긴 했는데 너무 위험할 것 같아서요. 아까 전에도 죽을 뻔 했는데 함부로 여행할 생각은 못 하겠어요.”


장내에 정적이 흐르며 단우 일행이 고민에 잠기자 우진은 입을 열며 굵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렇다면 나와 함께 벙커에 갈래?”

“벙커요?”

“마침 내가 사는 괜찮은 벙커가 하나 있거든. 거기에는 정상적인 사람들도 앞으로 계속 살아갈 수 있는 환경도 조성되어 있어.”

“정말 그런 곳이 있어요?”

“그래. 있지. 거긴 아직 사람이 살아갈 수 있는 곳이야.”


고민하던 단우 일행은 고개를 끄덕이며 눈을 빛냈다.


“갈게요.”

“어차피 다른데 가도 똑같은데 거기가 차라리 나을 것 같네요.”


단우 일행은 이미 전적으로 우진을 신뢰하고 있었다.

우진의 철탑 같은 몸과 무엇보다도 가라앉아있는 차가운 두 눈은 마주 보고 있다 보면 우진이라면 이런 냉혹하게 변해버린 세계에서도 결코 쓰러지지 않을 거라는 모종의 확신을 느낄 수 있었다.


“그래. 잘 생각했어.”






밤하늘에 어두운 구름이 짙게 깔린 늦은 밤.

일행을 데리고 폐허로 변해버린 수많은 도시를 지나 방주에 도착한 우진은 두꺼운 강철로 이루어진 외벽의 곳곳을 걸어 다니며 확인하고 있었다.

단우 일행과 칼리오페를 데리고 걸어오느라 시간이 8일이나 늦어버렸으나 다행히도 그동안 별다른 문제는 없었는지 방주는 매우 멀쩡했고 강철로 이루어진 외벽은 여전히 견고했다.


“와, 씨. 존나 크다!”


우진이 그저 벙커라고만 했었기에 그저 작은 창고 크기라고 생각했던 단우 일행은 흡사 잠실 야구장을 연상시키는 거대한 방주의 크기에 무척이나 당황하고 있었다.


“너무 놀랄 거 없어요. 벙커 중에는 피라미드랑 똑같은 것도 있어요.”

“그, 그게 정말인가요?”

“그럼요.”


그동안 특이한 벙커들을 많이 봤던 칼리오페는 우진의 위치나 입장을 생각하면 오히려 이 정도 규모의 벙커는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전체적인 점검이 끝났는지 방주의 외벽을 한 바퀴 둘러본 우진은 굳게 닫혀있는 입구로 천천히 걸어왔다.


“도아 씨. 게이트 오픈해줘.”


-네! 다행히 건강해 보이시네요!


쿠구구구......


게이트 안으로 들어가는 우진의 뒤를 따라서 벙커에 들어가는 단우 일행의 입에서 쉬지 않고 감탄이 흘러나왔다.

안내 데스크와 견고하며 고급스러운 바닥은 흡사 호텔의 로비를 연상시키게 했고 천장의 밝은 주광등은 낮이나 다름없게 느껴질 만큼 눈부셨다.


“아크 로드님! 무사하셨군요! 말씀하셨던 것보다 늦게 오셔서 다른 분들이 얼마나 걱정했는지 몰라요.”

“나 없는 동안 별 일 없었지?”

“그럼요. 단아 씨랑 은서 씨가 걱정 많이 했었으니까 빨리 가보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오퍼레이터가 우진을 깍듯하게 대하자 단우 일행은 몹시 당황스러웠다. 우진이 범상치 않은 사람이라는 건 전에 봐서 알고 있었으나 분위기가 심상치 않게 흐르자 셋은 지금에라도 우진을 대하는 자세를 바꿔야 하나 조금 고민하고 있었다.

아까 전과는 다르게 셋이 조금 불편해하고 있다는 것을 눈치 챈 우진은 엘리베이터에 타며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신경 쓸 거 없어. 너네는 그냥 편한 대로 해. 형이라고 부르든 말든 그건 너네 자유잖아.”

“형. 혹시 이 벙커가 형 거예요?”

“맞아. 나라가 망하기 전에 내가 건설한 거야.”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 3층으로 온 우진이 복도를 걸어 다니자 지나가는 오퍼레이터들과 방주의 주민들이 반갑게 인사를 건네왔다.


“이번엔 조금 늦으셨네요?”

“건강해 보이셔서 정말 다행이에요!”


뒤에서 따라오던 이현은 주호의 옆구리를 툭툭 치며 귀에 작게 속삭였다.


“야. 뭔가 이상해. 여기 예쁜 여자들이 너무 많아.”

“여긴 천국이야!”


군대에서 나온 지 얼마 안 된 단우 일행의 눈에는 대부분의 여자들이 예쁘게 보이기도 했지만 실제로 방주에 있는 오퍼레이터들의 외모는 대부분 아름답거나 이목구비가 뚜렷했다.

식당에 오자 우진은 뒤에서 따라오고 있던 단우 일행을 돌아봤다.


“식당은 여기고 앞으로 지내게 될 방은 오퍼레이터들에게 물어보면 적당한 방으로 안내해줄 거야. 지금부터는 자유롭게 여기서 살아가도록 해.”

“고마워요, 형!”


단우 일행이 감격하며 떠나가자 칼리오페는 싱긋 웃으며 식당 안을 둘러봤다.


“평화롭네요. 좋은 분위기예요.”

“슬슬 저희도 식사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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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이면 24.04.15 66 1 11쪽
29 소나라의 왕녀 24.04.09 80 1 11쪽
28 아버지의 마음 24.03.20 118 1 12쪽
» 귀환 24.03.18 140 2 12쪽
26 다시 만난 처자 24.03.17 137 1 11쪽
25 병장과 상병과 일병 24.03.16 144 2 12쪽
24 빛의 마법사 24.03.05 148 1 11쪽
23 늦은 밤의 기나긴 대화 24.02.27 168 1 12쪽
22 장왕 24.02.24 188 0 12쪽
21 감기약 24.02.22 215 2 11쪽
20 기억의 편린 24.02.17 231 3 12쪽
19 세 가지 부류의 인간 24.02.15 256 2 12쪽
18 폭우가 지나간 자리 24.02.09 295 2 12쪽
17 간발의 차이 24.02.08 309 2 12쪽
16 살아남은 인간 24.02.07 339 4 11쪽
15 소문 24.02.05 370 2 12쪽
14 방주 점검 24.02.04 430 4 12쪽
13 목숨을 건 비무 24.02.03 448 4 12쪽
12 약탈의 시대 +2 24.02.02 533 3 12쪽
11 상승의 경지 +2 24.02.01 610 5 12쪽
10 비울수록 버릴수록 채워진다 24.01.31 622 5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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