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 죽이면 그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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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기꿀호빵
작품등록일 :
2024.01.19 12:33
최근연재일 :
2024.07.24 21:10
연재수 :
39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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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5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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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2.03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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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목숨을 건 비무

DUMMY

10인승 밴에 있던 덩치들은 눈을 부릅뜨고 죽은 오태윤의 시신을 보고 몹시 당황했으나 고함을 지르며 각자 무기를 들고 우진에게 달려들었다.


“씨발! 개새끼가!”

“족쳐!”


날카로운 손도끼도 서슬 퍼런 회칼도 엽총도 소용없었다.

약탈자들의 날붙이는 우진의 몸에 닿지 못했고 굳은살이 박힌 주먹은 여지없이 고함과 욕설을 내뱉던 덩치들의 가슴을 꿰뚫어버렸다.


“크아아!”


가슴에 커다란 구멍이 뚫린 덩치들이 쓰러지고 새빨간 핏물이 웅덩이를 만들며 장내는 지옥으로 변해버렸다.

멍하니 지켜보고 있던 젊은 여인은 우진이 마지막 남은 약탈자를 쓰러트리자 퍼뜩 정신을 차리며 독기가 가득한 눈빛으로 우진을 노려봤다.

깊게 가라앉은 눈빛으로 노려보며 약탈자를 쓰러트린 우진은 미묘한 시선으로 자신을 노려보고 있는 젊은 여인을 바라봤다.


“가세요.”


혹시라도 특이한 요구를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젊은 여인은 우진이 순순히 가라고 하자 조금은 독기가 서렸던 눈빛이 누그러졌다.


“정말 그냥 가도 돼요?”

“네. 어디든 안전한 곳으로 가세요.”

“그러면 저기 있는 건물까지 저를 데려다줄 수 있어요? 이 주변에는 이런 놈들이 너무 많아요. 저 혼자서 저기까지 가는 건 너무 위험하다구요.”


여인이 350m 정도 떨어져 있는 상가를 손으로 가리키자 잠시 고민하던 우진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요. 같이 가죠.”


우진이 성큼 앞서서 걸어가자 젊은 여인은 황급히 우진의 뒤를 따라갔다.


“저는 최연희라고 해요. 당신은요?”

“서우진입니다.”


앞에서 걷고 있는 우진의 넓은 등을 보며 최연희는 수많은 의문이 들었다.

아까 전 우진이 보여 주였던 무예. 도저히 인간이라고는 믿기 힘들 정도로 막강한 무력이었다. 심지어 총알도 피하지 않았던가?


“당신 대체 정체가 뭐예요?”

“미안하지만 그건 알려드릴 수 없습니다.”

“치. 그게 뭐예요.”


입술을 삐죽이며 최연희는 우진의 널찍한 등을 바라봤다.

대재앙 이후로 세계는 너무나도 변해버렸다.

사람이 살아가기 어려운 이런 험난한 세계여도 저런 남자가 옆에 있으면 앞으로 어떻게든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최연희가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둘은 어느새 부서져 있는 상가에 도착했다.


“누나!”

“준우야! 잘 있었어?”


최연희는 달려오는 다섯 살 정도로 보이는 남자아이를 끌어안으며 밝게 미소를 지었다.

남자아이는 최연희에게 유일하게 남은 가족이자 친동생인 최준우였다. 비록 대재앙 이후로 너무나도 가혹해진 세상이지만 연희는 준우가 있기에 이런 험난한 세계에서도 어떻게든 더 독하게 살아갈 수 있었다.

준우는 동그란 눈을 깜빡이며 우진을 올려봤다. 잔근육으로 압축되어 있는 몸과 넓은 어깨는 굳건한 철탑처럼 보였다.


‘와!’


눈을 크게 뜨고 감탄하며 준우는 누나의 손을 잡아당겼다.


“누나! 이 형은 누구야?”

“오늘 누나를 구해준 사람이야.”

“정말? 고마워, 형!”


맑고 큰 눈을 동그랗게 뜨며 달려온 준우가 밝게 미소를 지었다.

아직 세상의 때가 묻지 않은 순수한 아이였다.

우진은 미소를 지으며 굳은살이 박힌 손으로 준우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어줬다.






방주의 남쪽으로부터 35km 떨어져 있는 황무지.

카게류의 문하생들이 얼굴을 찡그리며 방주를 노려보고 있었다.


“좋아! 놈이 없는 지금이 기회다!”


척후병의 말이 사실이라면 지금 벙커에는 놈이 없었다.

돔 형태를 이루고 있는 방주의 면적은 적어도 10만 평은 가뿐히 넘을 듯 했다.

저토록 큰 벙커에 식량이 없을 리가 없었다. 어쩌면 식량 뿐만 아니라 안에 공동체를 이루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을지도 모른다.


‘분명 안에 여자들도 있겠지. 크흐흐!’


2년 전 수많은 한류의 문물을 접했던 히카루는 한국의 여자들이 안에 있을 것을 생각하니 벌써부터 기분이 고조되며 좋아졌다.

무릇 기대하고 있는 건 히카루 뿐만이 아니었다. 다른 카게류의 문하생들도 한국 여자가 있을지도 모른다며 몹시 기대하고 있었다.

히카루는 방주의 두터운 철문 앞에 오자 고개를 쳐들며 큰 목소리로 소리쳤다.


“당장 문을 열고 우리 일본의 사무라이들을 손님으로 맞이해라!”


-여전히 태도가 불손하시군요.


스피커에서 젊은 여성의 미성이 들려오고 있었다.

괜히 더 들뜬 히카루는 코웃음을 치며 소리쳤다.


“흥! 한국의 무인들은 무예가 뛰어나며 자존심이 강하다던데 그것도 다 헛소문이었구나!”


벙커가 기계식 방어 모드로 전환되며 외벽에 수많은 게틀링 건과 포탑들이 나타나자 히카루는 크게 놀라며 식은땀을 흘리면서도 오히려 눈을 부라렸다.


‘만약 총을 쏘려고 했으면 진작에 쐈겠지.’


히카루가 보기에 방주에 있는 인간들은 함부로 사람을 죽이는 인간들이 아니었다.


쿠구구구구......


굳게 닫혀있던 두터운 철문이 서서히 열리자 하얀 도복을 입은 여인이 천천히 게이트 밖으로 나왔다.


“오!”

“오오!”


카게류 문하생들 사이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결이 좋은 금빛 머리는 부드럽게 바람에 흩날리고 있었으며 짙은 속눈썹 아래 흑빛 눈동자는 흔들림 없이 똑바로 히카루를 노려보고 있었다.

고고한 금발의 여인의 뒤로 다부진 체격의 하얀 도복을 입은 노인이 걸어 나오고 있었다.


“누가 감히 파극문을 욕보이려는 것인가?”


서슬 퍼런 노인의 시선에 히카루는 쭈뼛거리며 뒤로 물러섰다.


‘늙은이는 가볍게 볼 상대가 아닌 것 같은데······.’


짧은 순간 계산을 끝낸 히카루는 히죽 입꼬리를 올리며 소리쳤다.


“비무하자! 누가 더 강한지 확인해보자고! 카게류의 대표는 나 히카루다.”


히카루는 금 장문인이 반박을 할까 봐 재빨리 손으로 단아를 가리켰다.


“내 상대는 너야!”

“장난도 적당히 해라.”


금 장문인의 눈이 차갑게 번뜩이며 몸에서 칼날 같은 살기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차갑게 번뜩이는 안광은 흡사 사람을 꿰뚫어버릴 것처럼 흉흉하게 빛나고 있었다.

히카루가 비무의 상대로 단아를 지목한 이유는 간단했다. 여자이며 금 장문인보다 약해 보였고 만만해 보였기 때문이었다.

히카루의 의중을 눈치 챈 단아의 표정이 몹시 차가워졌다.

단아는 손을 들어 분노로 눈을 부릅뜨고 당장에라도 달려나갈 것만 같은 금 장문인을 제지했다.


“아버지. 진정하세요.”


차분한 눈빛으로 히카루를 바라보며 단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비무를 받아들이겠어요. 단, 만약 제가 이긴다면 다시는 이곳에 찾아오지 마세요.”

“좋아! 만약 내가 이긴다면 너희들은 벙커를 내놔라!”

“서로 공평한 조건이 아니군요. 그럼 비무는 없던 걸로······.”

“쳇! 까다롭게 굴기는. 그럼 내가 이긴다면 앞으로는 우리 카게류의 사무라이들이 벙커에 들어가는 것을 막지 마라!”


히카루의 요구는 얼핏 보면 공평해 보였지만 조금만 생각해봐도 불공평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카게류의 사무라이들이 벙커에 들어오는 것을 막을 수 없게 된다면 앞으로 사무라이들이 벙커에서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몰랐다.

방주에는 무인이 아닌 일반인도 많으니 힘으로 억압하여 끔찍한 범죄를 저지를지도 모른다.

히카루가 내건 요구가 타당하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단아는 차분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요.”


‘크흐흐! 멍청한 계집년이구나!’


히카루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앞으로 나온 단아는 차분하게 가라앉은 고요한 눈빛으로 히카루를 바라봤다.


“파극문의 57대 제자 금단아입니다.”


히카루는 청조하며 고고한 단아의 용모를 보자 더욱 자신의 여자로 만들고 싶다는 욕망에 들끓었다.


“카게류의 히카루다.”


챙!


검을 뽑은 히카루는 마치 뱀처럼 단아의 몸을 훑어보며 미간을 찡그렸다.


“뭐지? 설마 나를 맨손으로 상대하려는 거냐?”

“네. 딱히 당신을 무시하는 건 아닙니다.”


단아가 차분한 눈빛으로 바라보자 히카루는 얼굴을 찡그리며 빠르게 달려들었다.


‘일단 고집스러운 성격부터 고쳐놔야겠구나!’


카게류는 본래 선이 아닌 점에 모든 정신을 집중하여 전력을 다하여 일검에 적의 숨통을 끊어내는 것에 중점을 둔다.

카게류에는 복잡한 초식이나 심법은 존재하지 않지만 살기만큼은 굉장히 높은 검술이었다.

최강의 방어란 곧 참살이라는 것이 카게류의 본질이다.

허리를 숙이던 단아가 앞으로 순식간에 뛰쳐나왔다.

섬전무쌍을 펼치며 단아가 오히려 날아오는 칼에 더욱 거리를 좁히자 히카루가 눈을 부릅뜨며 치를 떨었다.


‘미쳤군!’


히카루의 검에는 이미 막강한 공력이 실려있었다. 이젠 검을 회수할 수도 발출된 공력을 무마할 수도 없었다.


츠팟!


믿을 수 없었다.

전력으로 달려오던 단아의 신형이 기묘하게 휘어지더니 어느새 우측으로 이동해있었다.

전력으로 달려가던 사람이 어떻게 아무런 제약도 없이 미끄러지듯 옆으로 이동한단 말인가? 본래라면 달려가던 속도를 견뎌내지 못하고 낭패를 당해야 하건만 단아는 너무나도 멀쩡했다.

섬전무쌍의 우로연마(右路連馬)로 순식간에 우측으로 이동한 단아가 당황한 히카루에게 하얀 장심을 내밀었다.


파파파파팟!


분명 가볍게 내미는 것처럼 보였던 장심은 순식간에 사방을 뒤덮으며 히카루에게 세찬 비가 되어 쏟아졌다.

장심이 사방을 뒤덮기까지는 눈 한 번 깜빡할 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파극이십사수(破極貳十四手).


여인들도 익히기 좋은 무공을 궁리했던 연개소문이 만들어냈던 신묘한 장법이었다.

파극이십사수는 처음엔 다른 무학에 비해 성취가 느리고 파괴력이 떨어지지만 나중엔 바위도 무너뜨릴 수 있을 만큼 오묘하며 깊은 이치가 담겨있는 절학이었다.


“크아아아!!”


쉬지 않고 공력이 실려있는 장심이 비처럼 쏟아지자 히카루의 몸이 폭풍에 쓸려가는 연처럼 이리저리 흔들렸다.

이해가 가지 않았다. 히카루에게 있어 여자는 남자를 절대로 이길 수 없는 약자에 불과했다. 고작 여인에게 손도 써보지 못하고 당하고 있다는 사실이 히카루는 도무지 믿을 수 없었다.

잠시 손을 거두며 단아는 차갑게 히카루를 바라봤다.

온몸에 피멍이 들고 뼈에 금이 간 히카루는 후배들이 보는 앞에서 여자에게 낭패를 당했다는 사실에 얼굴이 시뻘겋게 변하며 분노와 수치심으로 몸을 떨었다.


“제기랄! 죽여버리겠어!”


양손으로 검을 꽉 움켜쥐고 핏발 선 눈으로 거칠게 숨을 씩씩거리며 히카루는 단아를 노려봤다.

죽이지 않고 적당히 손을 보겠다는 생각은 이미 버린 지 오래였다. 이젠 곁에 두고 싶지도 계속 보고 싶지도 않았다. 아름답고 고고한 단아의 외모가 오히려 히카루를 더욱 화나게 만들었다.

히카루의 검에서 아까와는 사뭇 다른 서슬 퍼런 예기가 흘러나왔다.

지금까지와는 다르다는 걸 눈치 챈 단아는 짙은 속눈썹 아래 흑빛 눈을 반쯤 감으며 차분한 눈빛으로 히카루를 바라봤다.


“이쯤에서 그만하고 돌아가겠다면 그냥 보내드리겠습니다.”

“닥쳐라! 실로 오만한 년이로구나!”


분노와 광기로 눈이 돌아가 버린 히카루와 세찬 파도에도 조금도 흔들릴 것 같지 않은 단아.

서로를 바라보던 둘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를 향해 달려들었다.


콰아!


커다란 소리와 함께 척박한 대지에 떨어진 것은 다름 아닌 부러져나간 검이었다.

눈을 부릅뜨고 도무지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단아를 노려보고 있던 히카루가 천천히 앞으로 쓰러졌다.


“히카루 씨!”


뒤에서 지켜보고 있던 다이스케가 크게 놀라며 황급히 달려왔다.

눈을 부릅뜨고 경악과 공포에 가득 찬 얼굴로 히카루는 죽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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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출진 24.04.21 60 1 12쪽
30 이면 24.04.15 66 1 11쪽
29 소나라의 왕녀 24.04.09 80 1 11쪽
28 아버지의 마음 24.03.20 118 1 12쪽
27 귀환 24.03.18 139 2 12쪽
26 다시 만난 처자 24.03.17 137 1 11쪽
25 병장과 상병과 일병 24.03.16 144 2 12쪽
24 빛의 마법사 24.03.05 148 1 11쪽
23 늦은 밤의 기나긴 대화 24.02.27 168 1 12쪽
22 장왕 24.02.24 188 0 12쪽
21 감기약 24.02.22 214 2 11쪽
20 기억의 편린 24.02.17 231 3 12쪽
19 세 가지 부류의 인간 24.02.15 256 2 12쪽
18 폭우가 지나간 자리 24.02.09 295 2 12쪽
17 간발의 차이 24.02.08 309 2 12쪽
16 살아남은 인간 24.02.07 339 4 11쪽
15 소문 24.02.05 370 2 12쪽
14 방주 점검 24.02.04 429 4 12쪽
» 목숨을 건 비무 24.02.03 448 4 12쪽
12 약탈의 시대 +2 24.02.02 533 3 12쪽
11 상승의 경지 +2 24.02.01 610 5 12쪽
10 비울수록 버릴수록 채워진다 24.01.31 622 5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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