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 죽이면 그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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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기꿀호빵
작품등록일 :
2024.01.19 12:33
최근연재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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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1.31 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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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비울수록 버릴수록 채워진다

DUMMY

파극문의 위명은 중국에서도 유명했다.

전설처럼 들려오는 이야기로는 파극문의 무학은 너무나도 깊고 오묘해서 그 어떤 신공절학보다도 신비롭고 지고하다고 알려져 있었다.


“놈! 네가 어제 본문의 목후를 죽인 것을 잊지 않았겠지?”

“그 놈은 파극문의 무학을 훔치려고 했던 도둑이다. 나는 그저 파극문의 규율대로 놈을 처벌했을 뿐이다.”

“개소리 지껄이지 마라! 목후는 성심이 올곧고 상냥한 아이였다! 감히 나를 속이려 드는 것이냐?”


아무래도 흑의인은 단목후의 숨겨져 있는 이면에 대해서 모르고 있는 듯 했다.


“묘남천! 오늘 너를 죽일 사내의 이름이다!”


순간 묘남천의 신형이 뱀처럼 좌우로 미끄러지며 날카롭게 쇄도했다.

피할 시간은 없었다.

어느새 묘남천은 코 앞에 있었고 사방에서 막대한 공력이 실려있는 주먹이 폭풍처럼 쏟아지고 있었다.


콰콰콰콰콰!


황급히 팔을 들어 몸을 방어한 우진의 몸이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튕겨 나갔다.

양팔에서 참기 힘든 묵직한 고통이 밀려오고 있었다.

지금껏 수련을 하면서 제대로 된 고수와 사투를 벌여보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기에 당황스러운 마음을 숨길 수가 없었다.


“파극문의 제자라더니 과연 허언은 아니었나 보구나.”


거마혈권(巨魔血拳)의 거마난무(巨魔亂舞)로 순식간에 끝나버릴 거라고 생각했던 묘남천은 우진이 막아내자 안광을 번뜩이며 입꼬리를 올렸다.

팔짱을 끼고 웃고 있는 묘남천의 얼굴에는 여유가 가득했다.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지금 모든 것을 쏟아붓지 않으면 승산은 없다.’


무공에 입문한 시간도 내력도 경험도 모두 묘남천이 우위에 있었다.

승부를 보려면 기회는 지금밖에 없었다.

묘남천은 자신보다 어린 우진을 얕보는 건지 팔짱을 끼고 그저 얼굴이 일그러질 만큼 활짝 웃고 있었다.

방주에 있는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이 우진의 어깨 위에 있었다.

죽음을 각오한 우진은 목숨을 불태우듯 전력을 다하여 묘남천에게 뛰어들었다.


‘헛?’


잔뜩 여유를 부리며 기세등등하게 노려보고 있던 묘남천은 당황하며 헛숨을 들이켰다.

그저 직선으로 곧게 찔러 들어오던 우진의 몸이 가속하고 있었다. 우진의 등 뒤로 이어지는 양강의 기운이 일렁이는 불꽃이 되어 뻗어가고 있었다.

섬전무쌍(閃電無雙)의 파천무극섬(破天武極閃). 1000년이 넘는 세월을 뛰어넘어 비밀리에 내려오던 절세의 신공절학이 품고 있던 진정한 면모가 세상 밖으로 나오는 순간이었다.


콰아아-!


사방을 울리는 요란한 소리와 함께 번개 같은 주먹이 묘남천의 몸을 난타했다.


콰콰콰콰!


파천쌍룡에 이어 파천무쌍, 파극주야, 파극무월로 순식간에 초식이 이어지자 묘남천의 몸이 주르륵 뒤로 밀려나며 땅이 갈려 나갔다.

서서히 우진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갔다.

전력을 쏟아부어 부딪쳤건만 손에서 묵직한 느낌이 느껴지지 않았다.

휘몰아치던 흙먼지가 바람에 쓸려 사라지자 묘남천은 양팔을 교차하여 몸을 방어하고 있었다.

뒤에서 지켜보고 있던 금 장문인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좋지 않다.’


우진이 모든 공력을 끌어올려 전력으로 부딪쳤건만 묘남천은 별다른 내상도 피해도 입지 않은 듯 했다.

서서히 묘남천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자신보다 아직 한참이나 어려 보이는 애송이에게 기겁한 것으로도 모자라 결국 양팔을 올려 방어했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수치스러웠다.

얼굴을 일그러트리며 공력을 끌어올리는 묘남천의 몸 위로 유형의 기운이 일렁거렸다.


우우웅!


푸르스름한 유형의 기운은 점차 용오름으로 변해갔고 칼날 같은 바람이 되어 주변을 날카롭게 휩쓸어버렸다.

사방을 할퀴며 베어버리는 광풍(狂風)에 단아는 고운 미간을 찡그리며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


“사제!”


온몸을 할퀴고 지나가는 지독한 폭풍을 코앞에 두고도 우진은 오히려 조금씩 기분이 차분해졌다.

차가운 흉광을 번뜩이며 사방을 할퀴는 용오름 안에서 묘남천은 우진을 노려보고 있었다.


‘이 한 수로 끝난다.’


본능적으로 느껴졌다.

지금까지 여유를 부리던 묘남천은 진심으로 전력을 끌어올리고 있었다.

이 한 수를 주고받고 나면 이 자리에 남아 있는 건 반드시 둘이 아닌 한 명이 될 것이다.

전력으로 모든 공력을 끌어올리며 우진은 묘남천을 노려봤다.

순간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둘은 서로를 향해 달려들었다.


콰아아!!


사방을 울리는 거대한 소리와 함께 우진과 묘남천이 부딪치자 거친 흙먼지가 솟구치며 사방을 뒤덮었다.

장내에 있는 무인들은 숨을 죽이며 자욱하게 피어오른 흙먼지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서서히 어디선가 불어온 바람에 어지럽게 휘날리던 흙먼지가 가시자 지켜보고 있던 등상보는 당황하며 눈을 부릅떴다.

둘은 서로 지척 거리에 있었다.

우진의 오른 주먹이 묘남천의 가슴에 틀어박혀 있었고 묘남천의 커다란 주먹도 우진의 가슴에 틀어박혀 있었다.

서로 주먹이 한 치 정도 가슴에 파고 들어가 있었으나 둘 다 안색이 창백한 것으로 보아 양쪽 다 심각한 내상을 입은 게 분명했다.


‘저 놈의 내력이 저 정도였단 말인가?’


“커헉!”


우진의 입에서 검은 핏물이 왈칵 흘러나왔다.

자욱한 흙먼지가 휘몰아치고 있는 척박한 대지에 우진이 쓰러지자 묘남천은 식은땀을 흘리며 거칠게 숨을 헐떡였다.

묘남천이 이길 수 있었던 건 그저 공력이 더 높았기 때문이었다.

만약 묘남천이 어렸을 때부터 스승과 장로에게 꾸준히 영약을 하사받지 못했다면 서 있는 건 묘남천이 아니라 우진이 됐을 게 분명했다.


“대사형이 이겼다!”


우진은 허탈한 심경으로 푸른 하늘에 흘러가는 구름을 지켜보고 있었다.

내장이 진탕되며 기혈은 뒤틀려있었고 내력은 우진의 통제를 벗어나며 사방으로 날뛰고 있었다.

정신이 아득해져 오는 사이 백은문의 무인들이 환호하는 목소리와 방주에 있는 주민들이 비명을 지르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오고 있었다.


‘졌구나······.’


그토록 쉬지 않고 수련에 매진했건만 결국 패하였다는 사실에 가슴 속에서 슬픔이 사무쳤다.

창백한 얼굴로 내려보던 묘남천은 우진의 마혈을 제압하며 차가운 안광을 번뜩였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한 기분이 무엇인지 똑똑히 느껴라. 그것이 억울하게 죽어간 목후를 위해서 네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속죄다.”


백은문 무인들의 희열에 가득 찬 웃음소리와 방주의 주민들의 비명 소리가 교차하고 있었다.

내력의 역류로 제압당한 마혈을 풀 수 없게 된 우진은 고개도 돌리지 못하고 그저 구름이 흘러가는 푸른 하늘을 지켜봐야만 했다.

어금니를 부서져라 깨물고 마지막으로 목숨을 불태우며 묘남천에게 달려들고 싶었으나 마혈이 제압당한 몸은 움직이지 않았다.


‘스승님······.’


만년설삼까지 주면서 모든 기대를 쏟아부었던 스승에게 우진은 죄송스런 마음이 사무쳐 슬픔을 억누를 수가 없었다.

지옥 같은 현실과는 대조적으로 하얀 구름이 흘러가고 있는 푸른 하늘은 너무나도 평화로웠다.

동료들이 유린당하고 있는데도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자책감에 가슴이 사무치던 우진은 문득 파천무극신공의 구결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하얀 구름이 여유로이 하늘을 흘러가니(白雲餘天流)

인생은 덧없고 무상해라.(人生無無常)

가을의 햇살이 벼를 타고 흘러가며(秋景禾乘流)

황혼은 무르익어 날개를 펴는구나.(黃昏熟翼敍)

내가 가는 길을 바람이 이끌어주네······.(人之道風提)


‘설마······!’


순간 벼락같은 전율이 우진의 몸을 휩쓸었다.

이제야 우진은 알 수 있었다.

상승의 경지로 향할 수 없었던 이유와 더 높은 경지로 나아가며 파천무극신공이 품고 있던 진정한 무학의 본질을 깨달을 수 없었던 이유까지.

우진의 몸에서 서서히 이변이 일어나고 있었다.

단전에서 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생명의 활력이 모여들고 있었고 양강의 기운은 서서히 독맥을 따라 이동했다.

양강의 기운이 경맥을 따라 이동하자 뒤틀렸던 기혈이 서서히 정상으로 돌아갔으며 진탕된 내장이 점차 원래대로 돌아오고 있었다.


하얀 구름이 여유로이 하늘을 흘러가니(白雲餘天流)

인생은 덧없고 무상해라.(人生無無常)


파천무극신공은 오히려 상승의 경지로 가기 위해 집착하고 얽매일수록 더 높은 경지와 멀어지도록 되어있었기에 그동안 우진의 단계는 정체되어 있었던 것이다.


가을의 햇살이 벼를 타고 흘러가며(秋景禾乘流)

황혼은 무르익어 날개를 펴는구나.(黃昏熟翼敍)

내가 가는 길을 바람이 이끌어주네······.(人之道風提)


가을의 햇살은 양강의 기운을 뜻하며 벼는 기경팔맥을 의미한다.

황혼은 인생의 끝, 즉 죽음을 뜻한다. 죽음에 지척까지 직면하여 마음을 완전히 비우고 모든 것을 받아들이며 정신이 한없이 고요해지고 냉철해졌을 때 진정으로 파천무극신공이 품고 있는 무궁한 양강의 기운이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미련을 버린다. 집착을 버린다. 욕망을 버린다. 마음을 비운다······.’


강해지고 싶다는 미련. 더 높은 경지로 가고 싶다는 집착. 남들과 달라지고 싶다는 욕망.

우진이 마음을 비우면 비울수록 양강의 기운은 생명의 활력이 되어 우진의 몸을 휩쓸고 있었다.

막대한 양강의 기운은 마혈을 막고 있던 묘남천의 내력을 밀어버리며 기경팔맥으로 퍼져나갔다.


“....”


천천히 우진은 일어섰다.

겨우 찰나의 시간이 흘렀을 뿐이지만 우진의 눈빛은 기저를 가늠하기 어려울 만큼 깊게 가라앉아 있었고 내력은 더할 나위 없이 무겁고 정순하게 온몸을 활주하고 있었다.

방주에 침입하여 여인들을 희롱하려던 백은문의 무인들은 다 죽어가던 우진이 서 있자 얼굴을 험악하게 찡그렸다.


“뭐야? 아직 살아있었나?”

“흥! 시체나 다름없는 놈이 아직 숨이 붙어있었구나!”


덤벼드는 백은문의 무인을 쓰러트리며 우진을 바라보던 금 장문인은 크게 놀라며 눈을 치켜떴다.


‘다르다. 이전과는 달라.’


우진의 눈은 너무나도 깊게 가라앉아 있었고 공력은 가늠하기 어려웠다.

오퍼레이터를 붙잡으려던 묘남천은 우진을 돌아보며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분명 치명적인 내상을 입고 마혈을 제압당했을 터였다. 주화입마에 걸려도 이상하지 않을 부상이었건만 혼자서 마혈을 풀고 멀쩡하게 일어나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묘남천의 눈치를 보던 등상보는 허리에 차고 있던 칼을 뽑으며 우진에게 접근했다.


“멍청한 놈! 어차피 죽을 놈이 명을 재촉하는구나!”


지금 우진의 숨을 확실하게 끊어놓으면 묘남천이 특별한 상을 줄지도 모를 일이었다.


쐐액!


등상보의 날카로운 칼이 예광을 뿌리며 우진의 목으로 날아갔다.

분명 그대로 우진의 목이 잘려나가리라고 등상보 뿐만 아니라 장내에 있던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각했다.

입꼬리를 올리며 크게 웃고 있던 등상보의 얼굴이 서서히 처참하게 일그러졌다.


검지와 엄지.


날카로운 칼 끝을 우진은 검지와 엄지로 가볍게 잡고 있었다.


“윽! 이이익!”


등상보는 전력을 다하여 힘을 주고 식은땀을 흘리며 우진이 잡고 있는 칼을 뺏으려고 했으나 칼은 마치 자석에 붙어버린 것처럼 꿈쩍도 하지 않았다.


“왜 그러지?”


차가운 안광을 번뜩이며 우진은 식은땀을 줄줄 흘리고 있는 등상보를 바라봤다.


“방금 어차피 죽을 놈이라고 하지 않았나? 어차피 죽을 놈에게서 검조차 빼앗지 못하는 건가?”


수치와 분노로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오른 등상보는 양손으로 칼을 꽉 움켜쥐며 전력을 다하여 검을 뺏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검은 전혀 미동도 하지 않았다.


‘이럴 리 없다! 이럴 리가 없어!’


콰아아!!


순간 사방을 터트리는 엄청난 소리가 사방을 울렸다.

등상보의 복부에 커다란 구멍이 뚫려있었다.

횅하니 뚫려있는 구멍으로 우진의 주먹이 보이지 않았다면 장내에 있던 무인들은 우진이 등상보의 복부를 가격했다는 걸 눈치채지 못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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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전쟁 24.04.27 62 1 12쪽
31 출진 24.04.21 60 1 12쪽
30 이면 24.04.15 66 1 11쪽
29 소나라의 왕녀 24.04.09 79 1 11쪽
28 아버지의 마음 24.03.20 117 1 12쪽
27 귀환 24.03.18 139 2 12쪽
26 다시 만난 처자 24.03.17 137 1 11쪽
25 병장과 상병과 일병 24.03.16 143 2 12쪽
24 빛의 마법사 24.03.05 148 1 11쪽
23 늦은 밤의 기나긴 대화 24.02.27 167 1 12쪽
22 장왕 24.02.24 188 0 12쪽
21 감기약 24.02.22 214 2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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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세 가지 부류의 인간 24.02.15 256 2 12쪽
18 폭우가 지나간 자리 24.02.09 295 2 12쪽
17 간발의 차이 24.02.08 309 2 12쪽
16 살아남은 인간 24.02.07 339 4 11쪽
15 소문 24.02.05 370 2 12쪽
14 방주 점검 24.02.04 429 4 12쪽
13 목숨을 건 비무 24.02.03 447 4 12쪽
12 약탈의 시대 +2 24.02.02 533 3 12쪽
11 상승의 경지 +2 24.02.01 610 5 12쪽
» 비울수록 버릴수록 채워진다 24.01.31 622 5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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