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 죽이면 그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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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기꿀호빵
작품등록일 :
2024.01.19 12:33
최근연재일 :
2024.07.24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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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2.02 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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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약탈의 시대

DUMMY

“사제. 괜찮을까?”


걱정스럽게 짙은 속눈썹 아래 물기에 젖은 흑빛 눈을 깜빡이며 단아가 바라보자 우진은 눈을 감으며 침음했다.


“어쩔 수 없어요. 한 번 얕보이면 계속해서 저들은 훨씬 더 많은 요구를 할 거예요. 게다가 사무라이들은 방주를 처음부터 내놓으라고 했으니 강경하게 대응하지 않으면 나중에 오히려 더 큰 독이 되어 돌아올 겁니다.”

“오빠! 멋있었어요!”


은서가 싱긋 웃으며 엄지를 척 올리고 있었다.



여명이 트고 있는 이른 시각.

하얀 도복으로 갈아입은 우진은 밖에 나갈 채비를 하고 있었다.

묘남천과의 일전으로 실전 경험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었다. 특히 절정고수 이상의 고수들이 서로 부딪치는 경우 사소한 차이는 곧 심각한 부상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우진이 방을 나오자 복도에서 걸어오던 단아가 밝게 미소를 지으며 다가왔다.


“사제! 오늘도 나가려고?”

“네.”


아침부터 수련을 한 건지 단아의 하얀 이마에는 옅은 땀방울이 맺혀 있었다.


“괜찮으면 이거 마실래?”

“이게 뭔가요?”

“토마토랑 딸기를 넣고 갈아 만든 생과일 음료야.”


쑥스러운지 고개를 숙이고 있는 단아의 얼굴은 약간 불그스름했다.

텀블러를 집어 들고 우진이 힘차게 음료를 마시자 단아는 미묘한 눈빛으로 우진을 바라봤다.


“어때? 먹을 만 해?”

“시원하고 맛있네요.”

“사제. 만약 힘든 일이 있으면 언제나 내게 말해도 돼. 가능한 일이라면 언제든 내가 도와줄게.”

“알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를 떠나는 우진의 뒷모습을 단아는 복잡한 시선으로 바라봤다.

우진의 등은 과거와는 다르게 크고 넓어져 있었고 근육질인 온몸은 꾸준한 수련으로 탄탄해졌기에 무척이나 남자다웠다.


“단아야! 뭐해?”


뒤에서 걸어오던 은서는 멀어져가는 우진의 뒷모습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뭐야. 아침부터 우진 오빠 보는 거야?”

“아, 아뇨! 아까 사제랑 우연히 만났을 뿐이에요.”


올해로 27살인 은서보다 단아가 2살 더 어렸기에 둘은 언제나 편한 언니 동생으로 지내고 있었다.


“우진 오빠는 참 남자답지 않아? 최근 들어서 더욱 터프해진 것 같아.”

“네. 그렇죠······.”


단아는 자신의 감정에 무척이나 솔직한 은서가 한 편으로는 부러웠다.

우진이 나이가 6살 더 많은 사제이다 보니 단아는 우진을 대할 때마다 조금은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우진이 사라진 방향을 단아는 애틋한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방주의 게이트에 오자 우진은 천장에 있는 CCTV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도아 씨. 게이트 오픈 해줘.”


-알겠습니다.


쿠구구구구......


묵직한 소리와 함께 서서히 게이트가 열리자 우진은 천천히 밖으로 나갔다.

9월 초이건만 지구 온난화로 인하여 가을 아침의 날씨는 상당히 후덥지근했다.

온도는 나날이 조금씩 상승하고 있었다. 계속 이렇게 온도가 올라간다면 절반도 남지 않은 세계의 인류는 앞으로 더 줄어들게 될지도 몰랐다.

파극문의 파천무극신공(破天武極神功)은 본래 양강의 기공이기에 날이 상당히 뜨겁고 무더워도 우진은 오히려 기력이 높아지며 온몸에 활력이 넘쳤다.



방주로부터 남서쪽으로 2km 떨어져 있는 척박한 토지에서 민대머리인 덩치 큰 남자가 쌍안경으로 우진을 지켜보고 있었다.


“구철아. 저 새끼 방금 저기서 나오지 않았냐?”


뒤에 서 있던 무리의 우두머리, 김영호가 멀리 보이는 돔 형태의 거대한 건물을 손으로 가리키자 최구철은 빠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형님. 어떻게 할까요?”

“어떻게 하긴 뭘 어떻게 해. 빨리 조져.”


김영호의 뒤에 서 있던 모히칸의 덩치가 조심스럽게 손을 비비적거리며 다가왔다.


“형님. 저 새끼 복장이 어째 그 놈이랑 닮지 않았어요?”

“누구?”

“최근에 장두식단을 박살냈다는 놈 있잖아요. 최근에 아문왕까지 그 놈한테 당했다는 소문이 있던데요.”

“병신아! 그딴 헛소문을 믿냐?”


최구철은 군대에서 훔친 K3에 장착한 조준경으로 천천히 황톳빛 분지를 내려가고 있는 우진을 노려보며 찝찝한 기분을 떨쳐내기 어려웠다.

최구철이 기억하기로 아문왕은 총알을 피하며 인간의 허리를 장난처럼 꺾어버릴 수 있는 괴물이었다.

만약 하얀 도복의 사내가 정말로 아문왕을 쓰러트린 남자라면 절대로 건드리지도 마주치지도 않는 게 가장 현명했다.


“구철아. 뭐하냐? 빨리 쏴라. 저 건물 안에 뭐가 있는지 물어봐야 되니까 죽이지는 마. 적당히 다리에 두 발 정도 갈겨.”


김영호가 금방이라도 잡아먹을 것처럼 내려보자 하는 수 없이 최구철은 그대로 방아쇠를 당겼다.


탕! 타앙-!


뒤에서 흡족하게 웃음을 터트리던 김영호는 몹시 당황하며 두 눈을 끔뻑이고 하얀 도복인이 있던 자리를 노려봤다.


“뭐야? 아까 그 새끼 어디 갔어?”


다리를 부여잡으며 고통스럽게 비명을 질러야 될 놈이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한참을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김영호의 뒤에서 무겁게 가라앉은 차가운 목소리가 낮게 울려 퍼졌다.


“나를 찾고 있나?”


당황한 김영호와 부하들은 황급히 뒤를 돌아봤다.

하얀 도복을 입고 있는 우진이 차가운 안광을 번뜩이고 있었다.

무언가 잘못됐다는 것을 눈치 챈 김영호는 얼굴을 일그러트리며 황급히 소리쳤다.


“쏴! 쏴!”


타다다다당-!


서둘러 조정간을 연발로 바꾼 최구철은 하얀 도복인에게 사정없이 총알을 퍼부었다.

벌집이 되어버려야 될 하얀 도복인의 신형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대체 어디······.’


“크아악!”


처절한 비명 소리에 최구철은 황급히 뒤를 돌아봤다.

회칼을 들고 있던 덩치의 팔이 멀리 날아가 있었다.


“너희들은 두 가지 실수를 저질렀다.”


꿀꺽.


장내에 정적이 깔렸고 공포에 질려 안색이 창백하게 변한 모히칸이 마른침을 삼켰다.


“첫째. 타당한 이유 없이 너희들은 내게 총을 쐈다.”


우진은 검지 손가락에 이어 중지 손가락을 펴며 말을 이었다.


“둘째. 너희들은 내 목숨을 노렸다. 다른 사람의 숨통을 끊겠다면 너희들도 목숨을 걸어라! 무고한 사람에게 일방적인 위해를 끼치려 했으니 나도 그냥 지나칠 수 없구나.”


김영호는 공포와 긴장으로 핏발이 서 있는 두 눈을 치켜뜨며 고함을 질렀다.


“죽여!”


부웅!


민대머리의 거대한 덩치가 양손으로 쥐고 있던 슬레지 해머를 온 힘을 다하여 우진의 머리에 휘둘렀다.

키가 2m가 넘는 덩치의 해머가 금방이라도 우진의 머리를 박살 낼 것처럼 순식간에 곤두박질쳤다.


턱.


해머를 멈춘 건 다름 아닌 손가락이었다.

검지 손가락으로 엄청난 기세로 덮쳐오던 해머를 가볍게 막은 우진은 차가운 안광을 번뜩이며 덩치를 노려봤다.


콰아아!


허공을 터트리는 묵직한 소리가 장내를 휩쓸었다.

덩치의 가슴에는 주먹이 들어가고도 남을 정도로 커다란 구멍이 뚫려있었다.

비명도 지르지 못하며 눈을 부릅뜨고 거구가 뒤로 쓰러지자 주변에 있던 김영호와 부하들이 술렁거렸다.


“씨발! 쫄지 마! 다 같이 달려들어!”

“으아아!”


김영호와 민대머리의 덩치, 모히칸들은 공포가 뒤섞인 고함을 지르며 사방에서 우진에게 달려들었다.


콰아!


장내에 있던 약탈자들의 복부와 가슴에 커다란 구멍이 뚫리며 끈적이는 핏물이 쏟아지기까진 눈 한번 깜짝할 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우진은 복잡한 시선으로 눈을 부릅뜨고 절명해버린 시신들을 내려봤다.

어차피 지금 죽이지 않는다면 다른 곳에서 무고한 사람들을 괴롭히고 희롱했을 인간들이라는 걸 알면서도 기분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

방주가 있는 황톳빛 분지를 벗어난 우진은 근처에 있는 도심지로 향했다.

허리가 잘려있는 무너진 건물과 부서진 상가가 곳곳에 줄지어있는 도시에 들어오자 덩치 큰 약탈자들이 젊은 여인의 팔을 붙잡고 거칠게 잡아당기고 있었다.


“좋은 말로 할 때 빨리 와라.”

“싫어요! 당장 이거 놔요!”


젊은 여인이 독기가 가득한 눈빛으로 노려보자 민대머리인 덩치의 얼굴이 분노로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짜악!


거대한 덩치의 손바닥에 맞아 고개가 홱 돌아가자 여인은 불게 부어오른 볼을 부여잡으며 고통스러운 신음을 흘렸다.


“크으윽······!”

“그러게 순순히 따라왔으면 좋았잖아? 퉷! 괜히 귀찮게 애먹이고 있어.”


검은색 10인승 밴에 억지로 여인을 태우려는 덩치의 손목을 우진은 묵묵히 붙잡았다.


“뭐야? 이거 안 놔?”


눈.

차가운 한 쌍의 눈이 번뜩이고 있었다.

흠칫 놀라던 덩치는 험악하게 인상을 쓰더니 잔뜩 힘을 줘서 거칠게 붙잡힌 팔을 휘둘렀다.


“이 새끼가! 뒤질려고······ 크아아!”


우드득.


손목을 잡고 있던 손에 힘을 주자 덩치의 손목이 으스러지며 옆으로 휘었다.


“뭐야? 왜 이렇게 소란스러워?”


운전석에서 내린 남자는 거칠게 주황색 선글라스를 벗으며 으스러진 손목을 부여잡고 고통으로 몸을 떨고 있는 부하에게 걸어왔다.

차가운 안광을 번뜩이고 있는 우진을 유심히 바라보던 뱁새눈의 사내는 크게 당황하며 뒤로 물러났다.

하얀 도포와 잔근육으로 압축되어 있는 단련되어 있는 몸. 크게 넓은 등과 차갑게 번뜩이고 있는 한 쌍의 눈.

분명 최근에 들었던 특이한 소문과 하얀 도포를 입고 있는 사내의 인상은 굉장히 비슷했다.


‘혹시······ 장두식단과 아문왕을 박살 냈다는 놈인가?’


뱁새눈의 사내, 오태윤는 짧은 시간 동안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그동안 눈치 하나만으로 죽지 않고 살아남은 오태윤이었다.

대재앙 이후 세계 각국의 정부가 사라져버린 지금 오래 살아남으려면 언제나 눈치가 빨라야 했고 처신을 잘해야만 더 오랫동안 명줄을 이어갈 수 있었다.


“죄송합니다, 형님!”

“나는 당신의 형님이 아닙니다.”

“혹시라도 제 부하가 형님의 기분을 상하게 했나요? 제발 저희들을 그냥 못 본 척 해주셨으면 합니다.”

“어째서 이 여자를 억지로 잡아가려고 한 겁니까?”


우진이 붉게 부어오른 볼을 부여잡고 눈물을 글썽이고 있는 여인을 바라보자 오태윤은 식은땀을 흘리며 억지 웃음을 지었다.


“헤헤. 사실 저희는 근처에 있는 왕들에게 여자들을 받치고 있습니다.”

“왕?”

“예! 대재앙 이후로 한국 각지에 스스로를 왕이라고 칭하는 존재들이 나타났습니다. 모르셨습니까?”


우진은 어이가 없어 잠시 말없이 미간을 찡그렸다.

아무리 미쳐버린 세상이라지만 스스로를 왕이라고 칭하다니.

어쩌면 최근에 일전을 벌였던 묘남천도 수많은 왕들 중 하나라고 생각하는 사이 오태윤은 손을 싹싹 비비며 히죽거렸다.


“헤헤헤. 형님. 그냥 저희들을 보내주시면 나중에 형님에게도 적당한 미녀들을 뽑아서 보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너는 여자들을 납치하여 왕들에게 보내서 지금까지 살아남았다 이건가?”

“예, 형님. 이해가 참 빠르시군요. 히힛.”


서서히 우진의 눈이 뜨거운 분노로 이글거렸다.

짐승보다 못한 인간이라고 부를 수도 없는 사람이건만 오태윤은 무엇이 좋은지 히죽거리며 계속 웃고 있었다.


콰아!


“어? 어어어?”


순간 허전한 느낌에 오태윤은 고개를 숙여 자신의 어깨를 내려봤다.

왼팔이 있어야 할 자리는 어깨부터 잘려나가 있었고 새빨간 핏물이 쉬지 않고 폭포처럼 쏟아지고 있었다.


“으! 으으으! 크아아아!!”


뒤늦게 느껴지는 지독한 통증에 오태윤은 피가 쏟아지고 있는 어깨를 붙잡으며 주저앉았다.

오태윤은 식은땀을 줄줄 흘리며 핏발이 선 눈을 부릅뜨고 우진을 노려봤다.


“어째서냐! 왜 이러는 거냐! 너에게도 분명 좋은 조건이 아니냐? 왜 아무런 상관도 없는 여자 때문에 이런 쓸데없는 짓을 하냔 말이다! 개자식아!”


더는 인간 실격인 사람이 숨을 쉬며 소리치는 광경을 보고 싶지 않았기에 우진은 숨을 헐떡이고 있는 오태윤의 가슴에 파극주야(破極晝夜)를 날렸다.

지근거리에서 날아오는 주먹은 그대로 오태윤의 가슴을 터뜨려버리며 거대한 구멍을 만들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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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전쟁 24.04.27 63 1 12쪽
31 출진 24.04.21 61 1 12쪽
30 이면 24.04.15 66 1 11쪽
29 소나라의 왕녀 24.04.09 80 1 11쪽
28 아버지의 마음 24.03.20 118 1 12쪽
27 귀환 24.03.18 140 2 12쪽
26 다시 만난 처자 24.03.17 138 1 11쪽
25 병장과 상병과 일병 24.03.16 144 2 12쪽
24 빛의 마법사 24.03.05 149 1 11쪽
23 늦은 밤의 기나긴 대화 24.02.27 168 1 12쪽
22 장왕 24.02.24 189 0 12쪽
21 감기약 24.02.22 215 2 11쪽
20 기억의 편린 24.02.17 232 3 12쪽
19 세 가지 부류의 인간 24.02.15 256 2 12쪽
18 폭우가 지나간 자리 24.02.09 295 2 12쪽
17 간발의 차이 24.02.08 310 2 12쪽
16 살아남은 인간 24.02.07 339 4 11쪽
15 소문 24.02.05 370 2 12쪽
14 방주 점검 24.02.04 430 4 12쪽
13 목숨을 건 비무 24.02.03 448 4 12쪽
» 약탈의 시대 +2 24.02.02 534 3 12쪽
11 상승의 경지 +2 24.02.01 611 5 12쪽
10 비울수록 버릴수록 채워진다 24.01.31 622 5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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