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 죽이면 그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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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기꿀호빵
작품등록일 :
2024.01.19 12:33
최근연재일 :
2024.07.24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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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3.05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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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마법사

DUMMY

다음 날 아침 눈을 뜬 우진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시간은 이제 겨우 오전 6시를 넘기고 있었다. 잠에서 깨어나기에는 이른 시간이었으나 피로는 완전히 회복되었기에 일어나기에 전혀 무리가 없었다.

옆을 보자 허리까지 이불을 덮고 있는 하율이 천천히 숨을 고르며 자고 있었다.

하율의 어깨까지 이불을 덮어준 우진은 천천히 침대에서 내려왔다.

방을 나가자 복도에서 걷고 있던 병사가 우진을 보더니 힘차게 경례를 올렸다.


“충(忠)!”


꽤나 엄격하게 훈련을 시킨 건지 복도에서 마주치는 병사들은 하나같이 굉장히 기강이 잡혀있었다.

복도를 걷던 우진은 멀리서 느껴지는 강렬한 기운에 끝에 있는 방으로 걸어갔다.

자동으로 열리는 방문을 지나 안으로 들어가자 푸른 도복을 입고 있는 강윤이 느리게 초식을 펼치고 있었다.

대리석으로 이루어진 바닥은 커다란 충격을 받았던 건지 곳곳이 움푹 파여있었고 거미줄처럼 균열이 이어져 있었다.


“친구. 좋은 아침이군. 어젯밤은 잘 보냈어?”

“그래. 덕분에 편하게 보냈지.”

“하하하! 자네 마음에 들었다니 정말 다행이군. 하율이는 착하고 참한 아이야. 자네가 원한다면 데려가도 상관없네.”

“생각해보도록 하지.”


강윤이 펼치는 귀행연환권을 지켜보던 우진은 문득 전에 만났던 어둠의 마법사가 생각났다.

미하일은 여전히 살아있었고 마법사의 텔레포트는 아직 주변 사람들에게 커다란 위협으로 남아 있었다.


“이봐, 강윤. 혹시 마법사의 텔레포트를 막을 좋은 방법 있어?”

“마법사?”

“전에 어둠의 마법사와 부딪친 적이 있었어.”

“자네도 참 적이 많은 사람이군. 나도 남 말 할 처지는 아니지만. 마법사. 마법사라. 텔레포트 때문인가?”

“그래. 마법사가 텔레포트로 벙커에 숨어들어오면 나는 괜찮더라도 다른 사람들이 분명 위험해질 거야.”


턱을 손으로 쓰다듬으며 깊게 고민하던 강윤은 손가락을 튕기며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 보니 그 여자가 있었지! 마침 자네한테 소개시켜주면 좋겠군. 우진. 빛에 대항하기에 가장 좋은 수단이 뭐라고 생각해?”

“어둠인가?”

“그래. 어둠에는 빛으로 마법에는 마법으로 대적하는 게 가장 좋지.”


수건으로 얼굴에 묻어있는 땀을 닦은 강윤은 미소를 지으며 연무장을 나섰다.


“따라오게. 마법사를 만나러 가자고.”



자동으로 열리는 문을 지나 안으로 들어가자 감미로운 피아노 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넓은 홀의 구석에서 커다란 그랜드 피아노를 하얀 로브를 입은 여인이 연주하고 있었다.

여인의 얼굴은 로브의 후드에 가려 잘 보이지 않았으나 물결치는 결이 좋은 은발 머리가 하얀 손가락으로 건반을 두드릴 때마다 부드럽게 좌우로 흔들리고 있어 보고 있는 사람을 사뭇 경건하게 만들기 충분했다.

베토벤의 환희의 송가를 여인은 아주 익숙하게 연주하고 있었다.

잠시 후 연주가 끝나자 강윤은 밝게 웃으며 힘껏 박수를 쳤다.


“브라보!”


여인이 하얀 기다란 손가락을 천천히 건반에서 떼며 머리에 쓰고 있던 후드를 벗자 은발 머리가 물결치며 흘러내렸다.

맑고 푸른 파란 눈동자로 우진을 바라보는 여인의 이목구비는 코가 오뚝하며 전체적으로 뚜렷했으나 붉은 입술이 굳게 닫혀있어 한편으로는 고집스러워 보였다.


“누구죠? 아침은 제 개인적인 시간이라고 전에도 미리 말씀드렸을 텐데요?”


심기를 거스르는 말에 강윤의 눈가가 꿈틀거렸으나 아주 잠시뿐이었고 어느샌가 강윤은 밝게 미소를 짓고 있었다.


“칼리오페! 섭섭하게 왜 그래? 이 친구가 최근에 원주시 근처에 소문이 자자한 염제야. 너한테 소개시켜주고 싶어서 왔지.”


빛의 마법사인 칼리오페는 강윤의 수하가 아니었으며 그저 손님으로서 잠시 벙커에 살고 있을 뿐이었다.

마법사와 척을 지면 여러모로 피곤해지기 때문에 강윤은 내심 태도가 마음에 들진 않았으나 칼리오페와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고 있었다.

칼리오페는 짙은 속눈썹을 깜빡이며 맑고 푸른 호수 같은 눈으로 우진을 바라봤다.


“당신은 무엇을 위해 싸우죠? 단지 내게 얼굴이나 보여주려고 온 건 아닐 테죠? 당신이 어떻게 말하느냐에 따라서 나도 어떻게 할지 생각해보겠어요.”


맑고 푸른 칼리오페의 눈을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바라보며 우진은 언제나처럼 진심으로 대답했다.


“소중한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싸우고 있습니다.”


장내에 정적이 흘렀다. 마치 우진의 심중을 헤아려보듯 한참이나 정면에서 우진의 눈을 바라보던 칼리오페는 잠시 후 천천히 눈을 감았다.


“적어도 여기 있는 장왕보다는 당신이 더 낫군요.”

“이봐, 칼리오페. 말을 가려가면서 하라고. 적어도 그런 말은 나 없을 때 해.”

“제게 뭔가 부탁하고 싶은 게 있어서 찾아온 거죠? 부탁하고 싶은 게 뭔가요?”


우진은 최근에 만났던 스미로노프 미하일에 대해서 칼리오페에게 설명해줬다.

우진의 말을 들은 칼리오페는 고개를 숙이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스미로노프. 그 자라면 스승을 죽여 어둠의 마법의 근간을 탐닉한 존재로 마법사들 사이에서 유명해요. 설마 러시아가 아닌 한국에 있었다니······.”

“막을 방법은 있는 거겠지?”


강윤의 말에 칼리오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있어요. 어둠이 존재하는 곳에는 무릇 빛이 존재하죠. 설령 가장 깊은 칠흑의 어둠일지라도 빛의 마법을 막을 수는 없어요. 장왕. 당신과는 여기까지군요.”


칼리오페가 로브의 하얀 후드를 쓰자 강윤은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 섭섭한 소리 하지 말라고. 다음에 차 한잔하러 오라고.”


방에 돌아간 우진이 짐을 챙기며 떠날 준비를 하자 옆에 서서 무언가를 깊이 생각하던 하율이 이내 싱긋 미소를 지었다.


“염제님. 다음에 오시면 제가 벙커를 안내해드릴게요.”

“기대하고 있을게요.”



등에 커다란 배낭을 멘 우진이 칼리오페와 함께 벙커를 나가자 강윤은 웃으며 가볍게 손을 흔들었다.


“친구! 몸 건강하라고!”

“그래.”


하늘에선 뜨거운 뙤약볕이 내리쬐고 있었다. 불과 어제까지만 해도 거센 눈보라가 휘몰아쳤던 게 거짓말인 것처럼 날씨는 무척이나 후덥지근했다.


“텔레포트는 할 수 없는 겁니까?”

“미안하지만 저는 아직 그 정도 수준까지 오르지는 못했어요. 어서 가죠.”


경공을 펼치면 반나절 안에 방주까지 갈 수 있지만 그래서야 칼리오페가 따라올 수 없을 테니 천천히 이동할 수밖에 없었다.


“사실 저는 미국인이에요. 한국에는 여행하며 잠시 들렀던 건데 세상은 재앙으로 엉망이 돼버렸네요. 공항이 파괴됐으니 이젠 돌아갈 수도 없어요.”

“한국어 잘 하네요.”

“여기 오기 전부터 공부했거든요. 어때요? 현지인 같아요?”


강윤의 벙커를 나온 칼리오페는 아까 전과는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조금 더 장난기가 있고 말이 많아서 활력이 넘치고 있었다.


“그나저나 엄청 덥네요. 30도는 진작에 넘은 것 같던데. 어느 날은 엄청 덥고 어느 날은 엄청 춥고······ 이래서야 밖에서 사는 건 아무래도 무리겠어요.”


칼리오페는 하얀 로브를 벗고 배낭에 넣더니 이마에 묻은 땀을 손등으로 쓸어내며 차가운 생수를 들이켰다.

칼리오페는 검은 핫팬츠와 하얀 반팔 티를 입고 있었는데 상당히 여름에 어울리는 복장이었다.


“당신 벙커는 죽염산 근처에 있다고 했죠? 난 죽염산은 몰라도 원주시는 알아요. 원주시가 여기서 얼마나 멀죠?”

“아마 원주시에서 여기까지 20km 정도 될 겁니다.”

“이, 이십 키로요? 그럼 엄청나게 멀잖아요? 설마 거기서 여기까지 걸어서 온 거예요?”

“백야낙일홍으로 하루 안에 왔습니다.”

“그건 당신들이 이동하며 자주 쓴다는 경공인가요?”

“네.”

“무림인도 나름대로 좋네요. 마법사에게 텔레포트는 굉장히 어려운 경지인데. 당신들에게 경공은 어렵지 않잖아요.”


칼리오페가 더위에 약간 지쳐 풀이 죽자 우진은 무덤덤하게 대답했다.


“괜찮다면 업고 가드릴 수는 있습니다.”

“네? 아무리 그래도 그건 조금 그렇네요. 그냥 걸어가죠.”


낯빛을 붉히며 헛기침을 한 칼리오페는 뙤약볕이 내리쬐는 하늘을 올려보며 미간을 찡그렸다.


“엄청 덥네. 당신은 덥지도 않아요?”

“저는 양강의 심공을 익혀 괜찮습니다.”

“그거 참 편리해서 좋네요.”


거미줄처럼 균열이 이어져 있는 도로를 천천히 걸으며 우진은 주변을 둘러봤다.

무너져 있는 주택과 허리가 꺾여있는 빌라들. 지반이 무너져 커다란 구멍이 뚫려있는 국도.

차를 타고 가며 볼 수 있던 한가롭고 평화로웠던 풍경들은 파괴되어있어 뜨거운 햇볕만이 쏟아지고 있었다.

균열로 갈라진 도로를 걷던 우진은 손을 들어 걸어가던 칼리오페를 제지했다.


“무슨 일이죠?”

“오른쪽 주택에서 누군가가 우리들을 주시하고 있습니다.”


타앙-!


커다란 총성이 울린 건 순식간이었다.

길가의 무너진 휴게소에 숨어서 엽총의 방아쇠를 당긴 남자는 눈을 크게 뜨며 뚫어져라 도로를 노려봤다.


‘왜 없지?’


방금 전까지 길을 걷던 남녀가 둘 다 사라져 있었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남자는 등 뒤에 느껴지는 둔탁한 감촉에 화들짝 놀라며 뒤를 돌아봤다.


“총 내려놔.”


등에 주먹이 닿아있었다.

남자는 총을 들고 있었고 등에 닿아있는 건 주먹일 뿐이었으나 왠지 말대로 하지 않으면 죽을 것만 같은 극심한 위협을 느꼈다.

총을 집어 던진 남자는 우진의 발 아래 엎드리더니 눈물을 흘리며 울음을 터트렸다.


“죄송합니다! 딸 아이가 나흘이 넘도록 굶고 있어요.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굶어 죽을 것 같아서······ 흐윽······.”


울면서 슬퍼하는 남자의 옆에는 눈을 감고 바닥에 누워있는 여자아이가 있었다.

여자아이는 그동안 제대로 먹지도 마시지도 못했는지 상당히 야위어있었고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우진은 묵묵히 배낭을 열어 통조림 두 개와 생수 한 병을 꺼내어 남자에게 건넸다.

아마 식량을 주더라도 부녀는 살아남지 못할 확률이 높았다. 그것을 알면서도 우진은 조금이나마 남자에게 통조림을 건네줬다.

멀쩡했던 시민도 어느새 강도가 되어가고 있으니 세상은 점점 더 혼돈이 되어가고 있었다. 어쩌면 앞으로는 온정이나 인정이라는 말은 사람들에게 잊혀져 과거의 문헌이 될지도 모를 일이었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남자는 눈물을 글썽이며 땅에 머리가 닿을 정도로 깊이 여러 번 고개를 숙였다. 딸에게 생수를 먹여주는 남자를 뒤로하고 우진이 무너진 휴게소를 떠나자 칼리오페가 심란한 얼굴로 뒤를 따라왔다.


“큰일이네요. 지금도 이 정도인데 앞으로는 정말 얼마나 극심해질지 모르겠어요. 식량은 계속해서 줄어들 텐데······.”

“환경은 이미 너무 오염되고 지구는 심각하게 파괴되었어요.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죠.”


문득 칼리오페는 미국 LA에 있을 집이 떠올랐다.

칼리오페의 가족들은 모두 마법사였기에 재앙을 피했을 테지만 멀리 떨어져 있다 보니 심적으로 조금은 걱정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곳에도 분명 빛이 가득하겠지.’


분명 가족들에게도 찬란한 빛이 함께하리라고 생각하며 칼리오페는 무너진 휴게소를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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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전쟁이 지나간 자리 24.05.13 63 1 12쪽
32 전쟁 24.04.27 63 1 12쪽
31 출진 24.04.21 60 1 12쪽
30 이면 24.04.15 66 1 11쪽
29 소나라의 왕녀 24.04.09 80 1 11쪽
28 아버지의 마음 24.03.20 118 1 12쪽
27 귀환 24.03.18 140 2 12쪽
26 다시 만난 처자 24.03.17 137 1 11쪽
25 병장과 상병과 일병 24.03.16 144 2 12쪽
» 빛의 마법사 24.03.05 149 1 11쪽
23 늦은 밤의 기나긴 대화 24.02.27 168 1 12쪽
22 장왕 24.02.24 188 0 12쪽
21 감기약 24.02.22 215 2 11쪽
20 기억의 편린 24.02.17 231 3 12쪽
19 세 가지 부류의 인간 24.02.15 256 2 12쪽
18 폭우가 지나간 자리 24.02.09 295 2 12쪽
17 간발의 차이 24.02.08 309 2 12쪽
16 살아남은 인간 24.02.07 339 4 11쪽
15 소문 24.02.05 370 2 12쪽
14 방주 점검 24.02.04 430 4 12쪽
13 목숨을 건 비무 24.02.03 448 4 12쪽
12 약탈의 시대 +2 24.02.02 533 3 12쪽
11 상승의 경지 +2 24.02.01 610 5 12쪽
10 비울수록 버릴수록 채워진다 24.01.31 622 5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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