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 죽이면 그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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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기꿀호빵
작품등록일 :
2024.01.19 12:33
최근연재일 :
2024.07.24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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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3.20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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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아버지의 마음

DUMMY

“사제!”


익숙한 목소리에 옆을 보자 복도에서 빠르게 단아가 걸어오고 있었다.

우진을 위아래로 훑어본 단아는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다행이야. 무사했구나.”


방주를 떠났을 때와 변함없는 모습에 단아는 안심하며 우진의 옆에 있는 칼리오페를 바라봤다.


“여기 계시는 분은 누구야?”

“마법사입니다. 어둠의 마법에 대비하기 위해 데려왔습니다.”

“만나서 반가워요.”


우진이 열흘이 넘는 시간 동안 칼리오페와 함께 여행했을 것을 생각하니 단아는 괜히 마음 한편이 심란해졌다.

짙은 속눈썹, 새하얀 피부. 손이 닿으면 금방에라도 미끄러질 것처럼 아름다운 눈부신 은발 머리와 영롱한 푸른 벽안은 같은 여자가 보기에도 아름답다고 느껴질 만큼 신비하고 아름다웠다.


“오빠! 벙커에 왔으면 저부터 찾아와야죠! 늦어서 걱정했잖아요!”


뒤를 돌아보자 실험실에서나 입을 것 같은 하얀 가운에 손을 넣고 은서가 약간 토라진 얼굴을 하고 있었다.


“미안. 손님이 있어서 일단 식사부터 대접하려고 했지. 어서 들어가서 다 같이 저녁이나 먹자.”


우진이 일행과 함께 식당으로 들어가자 우진의 아버지 서상철이 웃으며 사람들에게 배식을 해주고 있었다.


“아버지. 쉬시지 왜 여기서 이러고 계세요.”

“매일 쉬기만 하니까 허리 아파서 안 되겠다. 나는 신경 쓸 거 없으니 밥이나 맛있게 먹어. 오늘 국은 내가 끓였다.”


주방에서 일하던 중년의 여인은 푹 한숨을 쉬며 지친 표정으로 서상철을 바라봤다.


“안 그래도 처음부터 제가 이러시지 말라고 했는데 말을 안 들어요. 아크 로드님 오셨으니 어서 좀 말려봐요.”

“아, 글쎄. 나는 괜찮다니까 그래. 배식 좀 하는 게 뭐가 어때서. 내 아들이 여기 벙커 주인이지 내가 주인이야? 다들 신경 쓰지 말라고.”


서상철이 신경 쓰지 말라고 해도 우진의 아버지다 보니 주방의 여인은 괜히 눈치가 보였다.

아버지가 한 번 마음을 굳히면 특별한 일이 없으면 결정을 바꾸지 않는다는 걸 알기에 우진은 그저 묵묵히 자리를 떠났다.

테이블에 앉아 일행과 함께 식사를 하면서 우진은 밝게 웃으며 식사를 하고 있는 수많은 방주의 주민들을 바라봤다.

우진에게 커다란 문제가 생긴다면 앞으로 방주에 있는 수많은 사람들의 신변도 위험해질 가능성이 있었다.

과거에는 회사에 다니며 독신으로 살았었기에 무언가를 책임질 일이 없던 우진은 요즘 들어 부쩍 무언가를 책임진다는 것이 갖는 말의 무게를 느끼고 있었다.

테이블에 앉아 일행과 함께 저녁을 먹으며 우진은 배식을 하고 있는 아버지를 바라봤다.

우진의 아버지 서상철은 본래 식당을 운영하던 남자였다.

손님은 그리 많지 않지만 서상철은 가족을 먹여 살려야 된다는 일념으로 가게 사정이 어려워져도 사업을 접지 않았고 해가 뜨기 전에 밖에 나가서 밤이 늦어서야 돌아오고는 했었다.

가족을 위해 평생을 헌신했던 아버지와 수많은 사람의 목숨을 책임지고 있는 우진. 비록 서로 같진 않아도 둘이 갖는 책임이 갖는 의미만큼은 크게 다르진 않을 것이다.


‘아버지. 이제야 당신의 마음을 조금은 알겠습니다.’


해가 뜨기 전 가족을 위해 집을 떠나며 새벽 하늘을 보던 아버지의 마음이 이랬을까?

식사가 끝나고 사람들이 떠나자 우진은 주방에서 식기를 정리하고 있는 아버지에게 걸어갔다.


“맛있게 먹었냐?”

“네. 맛있네요.”

“그래. 오늘 괜찮으면 술 한잔 어때?”

“그러죠.”



사람들이 모두 떠나자 서상철은 테이블 앞에 앉으며 힘차게 소주의 마개를 뜯었다.


꼴꼴꼴......


주변이 적막했으나 아버지가 술잔에 소주를 따라주는 소리는 부드럽고 듣기 좋았다.

우진은 자주는 아니더라도 가끔은 꼭 아버지와 식당에 단 둘이 남아 술을 마시고는 했었다.

특별한 의미가 있어서가 아니었다. 그저 아버지와 술을 마시면 막중한 책임이 걸려있는 위치가 조금은 부담이 덜어졌고 무거웠던 마음은 편해져서 좋았다.

이번엔 우진이 술잔에 술을 따라주자 서상철은 안주를 먹고 단숨에 술잔을 비우며 미소를 지었다.


“우진아. 요즘 힘든 일 없지? 힘든 일 있으면 바로 아버지한테 말해라. 내가 도와줄 수는 없어도 들어줄 수는 있잖냐.”


아버지는 평소에는 과묵해도 가끔은 자상한 사람이었다. 우진은 아버지와 대화할 때면 아크 로드가 아니라 평범하게 살았던 과거의 서우진으로 돌아가는 기분이 들었다.


“미하일의 전이 마법이 가장 큰 문제였는데 칼리오페가 왔으니 어떻게든 될 것 같아요.”

“그래? 마법사가 있고 무림인이 있었다니. 참 오래 살고 볼 일이야. 그치? 하하하!”


호탕하게 웃어젖히던 서상철은 서서히 웃음을 그쳤다. 아까 전과는 다르게 서상철의 얼굴은 다소 진지했다.


“극심해진 지구온난화에 따른 대재앙으로 절반이 넘는 인류가 사망하다니······ 하, 참. 기어코 말세가 온 건가?”


꼴꼴꼴......


“그럴지도 모르죠. 그래도 살아남은 사람들은 아직 포기하지 않았어요.”

“그래. 뭐, 비가 오다가도 다음날은 날씨가 맑아지기도 하고 눈이 오기도 하는 거 아니겠냐? 어쩌면 지구의 환경이 예전처럼 돌아올지도 모르고. 으음. 역시 그건 어려우려나?”


술잔을 비우고 안주를 먹으며 서상철은 사람이 없는 커다란 식당 내부를 둘러보며 감탄을 흘렸다.


“하, 참. 그나저나 언제 이런 걸 만들 생각을 한 거야?”

“사실 처음엔 은서가 벙커를 짓자고 했어요. 멸망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했을 때는 사실 믿기 힘들었지만요.”


아버지 앞에서 만큼은 방주의 주인으로서 체면을 차릴 필요가 없었기에 우진은 무척이나 마음이 편했다.


“우진 오빠!”


술을 마시던 우진은 익숙한 목소리에 뒤를 돌아봤다. 아직 옛 된 티가 남아있는 여자아이가 식당에 들어오고 있었다.


“소민아. 무사했구나.”

“그야 당연하죠! 여기까지 찾아오느라 얼마나 힘들었는지 몰라요.”


강윤을 만나러 가던 길에 폐허로 변해버린 도시에서 만났던 소민은 약간은 서글픈 미소를 지었다.


“할아버지는 비록 오빠가 떠난 뒤에 얼마 지나지 않아 돌아가셨지만 그래도 오빠 덕분에 마지막에 약을 드실 수 있었어요.”


소민은 서상철과 우진을 번갈아 보더니 미소를 지으며 문으로 걸어갔다.


“제가 두 분 술 마시는데 방해한 것 같네요. 나중에 봐요, 오빠!”


소민이 식당을 나가자 서상철은 헛기침을 하며 힘차게 술잔을 비웠다.


“그래. 장왕은 어땠어?”

“어쩌다 보니 서로 친구가 됐어요.”

“그래? 잘됐네. 원래 처음에는 싸우다가도 다 친구하고 그런 거지.”


빠른 걸음으로 식당으로 곱슬머리를 한 통통한 체구의 여인이 돌아오자 서상철은 반갑게 미소를 지었다.


“이봐! 이영숙 씨! 이리 와서 술 한잔 따라줘!”

“그냥 처먹지 뭘 따르라 마라야. 귀찮게.”


복스럽게 생긴 여인은 다름 아닌 우진의 어머니였다.

짜증을 내면서도 서상철의 옆에 앉아 소주를 따라주며 이영숙은 밝게 미소를 지었다.


“우진아. 너는 누가 가장 마음에 드니?”

“네?”

“아휴. 뭘 모르는 척을 하고 그래? 지금 니 주변에 젊고 예쁜 처자들이 넘칠 정도로 많잖아. 결혼까지는 아니더라도 연애는 해도 되잖니? 너는 누가 가장 마음에 들어?”

“아, 거. 사람 참. 왜 쓸데없는 걸 물어보고 그래?”

“아니. 물어볼 수도 있지. 뭘.”


사실 연애를 우진 또한 생각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연애를 하지 않고 있는 이유는 방주의 주인이 짊어지게 되는 위치 때문이었다.

대재앙 이후 우진은 수많은 위험들과 직면하고 있었다. 만약 연애를 하는 도중에 우진이 죽게 된다면 연인은 큰 슬픔에 잠기게 될 것이 분명했다.


“연애는 더 생각해볼게요.”

“그래. 세계가 붕괴되 버렸는데 급할 게 뭐가 있겠어. 이제 결혼 제도도 사라졌잖냐. 그냥 서로 사랑하면 만나고 헤어지면 안 만나는 거지.”

“우진아. 엄마는 단아 씨 아니면 은서 씨가 괜찮은 것 같은데. 단아 씨는 든든하고 은서 씨는 머리가 비상하며 좋잖니. 니 생각은 어떻니? 응?”

“아. 거 참! 그만해! 왜 애한테 부담을 주고 그래?”

“물어볼 수도 있지 왜 짜증을 내고 그래?”


술을 마시며 한숨을 쉬면서도 우진은 괜히 웃음이 새어 나왔다. 세계의 정부가 괴멸했으나 가족만큼은 변함없이 평소처럼 그대로였다.



방주의 지하 5층 끝에 있는 작은 방.

자정이 가까워진 늦은 밤이었으나 우진은 아직은 해야 할 일이 남아있기에 잠에 들 수는 없었다.

칼리오페는 두꺼운 콘크리트로 이루어져 있는 바닥에 거대한 원과 수많은 도형을 그린 뒤에 룬 문자를 적고 있었다.

어둠의 마법사의 침입을 봉쇄하는 건 너무나 중요한 일이었기에 금 장문인과 단아, 은서도 방에 모여 칼리오페가 그리고 있는 술진을 지켜보고 있었다.

어느덧 술진을 그리는 작업은 1시간을 넘기고 있었다.

본래라면 30분이면 끝날 일이었으나 혹시라도 문제가 생기면 안되기에 칼리오페는 이미 거의 다 그린 술진을 세세하고 꼼꼼하게 확인하고 있었다.


“다 끝났어요.”


가볍게 한숨을 쉬며 하얀 로브를 입고 있는 칼리오페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우진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복잡하네요.”

“제가 구현할 수 있는 방어 술식은 여기까지가 한계예요. 비록 완벽하진 않아도 이제 앞으로는 미하일이 전이 마법으로 벙커에 침입하는 건 불가능할 거예요.”

“신기하네요. 겉으로 보기에는 그저 조금 복잡한 도형과 문자로밖에는 안 보이는데. 이게 정말 전이 마법을 막아주는 건가요?”


지금껏 과학자로만 살아왔던 은서에게는 마법이나 무공은 그야말로 비과학적인 불가사의한 힘이었다.

우진에게 아까 전에 은서가 환경공학 분야 박사라는 것을 들었던 칼리오페는 어깨를 으쓱하며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그야 마법이니까요. 과학으로는 설명할 수 없죠.”

“참 신기하네요.”


은서는 내심 학자로서 언젠가 마법을 연구해보고 싶다고 생각하며 허리를 숙이고 방을 가득 채우고 있는 술식을 자세히 지켜봤다.


“혹시 나중에 마법 알려줄 수 있어요?”

“되겠어요? 마법은 아무한테나 알려줘도 되는 게 아니라구요.”


지나가듯 말하는 은서의 말을 딱 잘라내며 칼리오페는 우진을 바라봤다.


“이걸로 앞으로는 안전해졌으니 저는 내일 날이 밝는 대로 떠나겠어요.”

“고마워요, 칼리오페.”


칼리오페가 방을 떠나자 옆에 서 있던 금 장문인은 다소 긴장이 풀린 얼굴로 우진의 등을 가볍게 두드렸다.


“어떻게든 잘 풀린 것 같구나.”

“네. 앞으로는 밤에 걱정 없이 잠들 수 있을 것 같네요.”


장왕과도 좋게 끝났고 어둠의 마법사의 전이 마법도 막을 수 있게 됐으니 큰 문제는 어느 정도 해결됐다고 할 수 있었다.

깊으면서도 무겁게 가라앉아있는 우진의 검은 눈을 보자 금민석은 새삼 감회가 새로워졌다.

우진은 처음엔 그저 의욕만 앞서는 무모한 젊은이에 가까웠으나 지금은 방주의 주인으로서 100명에 가까운 사람들을 지휘하는 지휘관이었고 무학의 성취는 금 장문인이나 단아를 한참이나 앞서가고 있었다.


‘훌륭하게 성장했구나.’


“단아야. 파천무극신공 알려줄 수 있어?”

“미안하지만 본문의 신공은 함부로 알려줄 수 없어요.”

“농담이야, 농담.”


우진은 도형과 룬 문자가 빼곡하게 그려져 있는 술진을 전체적으로 둘러본 뒤에 일행과 함께 방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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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전쟁 24.04.27 62 1 12쪽
31 출진 24.04.21 60 1 12쪽
30 이면 24.04.15 66 1 11쪽
29 소나라의 왕녀 24.04.09 79 1 11쪽
» 아버지의 마음 24.03.20 118 1 12쪽
27 귀환 24.03.18 139 2 12쪽
26 다시 만난 처자 24.03.17 137 1 11쪽
25 병장과 상병과 일병 24.03.16 143 2 12쪽
24 빛의 마법사 24.03.05 148 1 11쪽
23 늦은 밤의 기나긴 대화 24.02.27 167 1 12쪽
22 장왕 24.02.24 188 0 12쪽
21 감기약 24.02.22 214 2 11쪽
20 기억의 편린 24.02.17 231 3 12쪽
19 세 가지 부류의 인간 24.02.15 256 2 12쪽
18 폭우가 지나간 자리 24.02.09 295 2 12쪽
17 간발의 차이 24.02.08 309 2 12쪽
16 살아남은 인간 24.02.07 339 4 11쪽
15 소문 24.02.05 370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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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목숨을 건 비무 24.02.03 447 4 12쪽
12 약탈의 시대 +2 24.02.02 533 3 12쪽
11 상승의 경지 +2 24.02.01 610 5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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