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 죽이면 그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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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기꿀호빵
작품등록일 :
2024.01.19 1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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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03 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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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번의 시험

DUMMY

아침의 태양이 떠오른 찬연한 아침.

방주의 전경이 한 눈에 들어오는 절벽에 한 남자가 있었다.

온몸을 아우르는 철탑 같은 근육과 우수에 젖은 눈빛. 절벽에서 방주를 내려보고 있는 남자는 다름 아닌 우진이었다.


‘때가 되었구나.’


멀리서 수많은 기척들이 다가오고 있었다. 일전에 은서가 일러줬던 마음을 준비해야 하는 시간이었다.

소나라를 쓰러트리고 나라를 흡수하며 방주의 영토는 더욱 넓어졌다. 영지가 넓어졌다는 것은 꼭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 영토가 넓어진 만큼 주변의 작은 나라들은 더욱 방주를 경계하며 연합했다. 그 결과 지금은 사방이 적이었다.


츠츠츳.


황폐한 언덕을 넘어 순식간에 수많은 인물들이 사방에서 모여들며 우진을 포위했다.


“당신들은 제나라 연합인가?”

“뭐야? 알고 있었나? 퉷!”


한쪽 눈이 애꾸인 사내는 바닥에 거칠게 침을 뱉으며 인상을 찡그렸다.

우진을 죽이기 위해 모여든 인물들은 다양했다. 화려한 붉은 궁장을 입은 미녀, 검은 기모노를 입은 남자, 한 자루의 검을 옆구리에 차고 있는 백발의 늙은 노인, 검은 무복을 입은 남자 아이.


‘고수.’


10명이 넘는 인물들은 각자 외모도 나이도 국적도 달랐으나 하나 같이 흘러나오는 기세가 범상치 않았다.

분명 그들은 거대한 산이었다. 이 산을 넘지 못하면 오늘 방주는 이곳에서 끝이다. 더는 살아남을 수 없으며 앞으로 살아가지 못하리라.

미리 얻었던 정보로 이들이 나타나리란 것은 이미 알고 있었다. 비장한 마음을 품고 아침에 방주를 나서며 우진은 따라오려는 자경단을 말리기 위해 무진 애를 써야만 했었다.


“그냥 조용히 돌아가 줬으면 하는데.”

“큭! 병신 같은 소리하지 마라.”

“듣기로는 연개소문의 무공을 익혔다던데. 요즘 세상에 고구려의 무공이라니. 실로 국뽕이 차오르는 무공이로군!”

“큭! 크흐흐! 연개소문이라니. 보나 마나 고이다 못해 썩어 빠진 무공이겠지.”

“사제. 방심하지 말게. 저래 보여도 염제는 묘남천을 쓰러트렸던 고수야.”


검은 죽립을 쓴 무인이 우진을 노려보며 경계하자 낫을 든 무인은 끝에 이어져 있는 사슬을 빙빙 돌리며 피식 미소를 지었다.


“걱정하실 거 없습니다. 여기 있는 사람들을 좀 보시죠. 저 놈은 이미 죽은 목숨입니다.”


몸에서 오묘한 색기가 흐르는 붉은 궁장의 여인은 혀로 붉은 입술을 핥으며 미묘한 눈빛으로 우진을 바라봤다.


“아까워. 내 발 아래 뒀으면 좋았을 텐데.”


제나라 연합은 시시한 농담이나 서로 지껄이는 것처럼 보여도 사실은 조금씩 우진과 거리를 좁히고 있었다.


‘합격진?’


사방의 풍수지리에 맞춰 자리를 선점하고 거리를 좁혀오는 제나라 연합에게서 미묘한 기운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기세를 보니 이미 예전부터 연합이 함께 모여 방주 함락을 계획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대로 기다리면 점차 밀리게 되리라고 판단한 우진은 자세를 낮추며 섬전처럼 앞으로 쏘아져 나갔다. 섬전무쌍의 파천무극섬(破天武極閃)으로 순식간에 거리를 좁힌 우진은 전력을 다하여 검은 무복인에게 파천쌍룡(破天雙龍)을 날렸다.


콰득!


분명 뼈를 부수는 감각이 주먹으로 느껴졌으나 그것이 전부였다. 적어도 처음부터 한 명을 줄여놓고 시작하려고 했건만 마음에 들지 않았다.


‘괴물 같은 새끼!’


우진에게 처음으로 일격을 맞은 이천기는 몹시 당황하여 눈을 큼지막하게 뜨며 부라리고 있었다. 연합이 그동안 염제를 상대하기 위해 고심했던 오행합격진은 공격을 포기하고 수비에 모든 힘을 쏟아부은 합격진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팔이 부러졌다는 사실이 이천기는 믿기지 않았다.


촤르륵!


백발이 무성한 노인이 번개처럼 앞으로 손을 휘두르자 들려있던 사슬이 뱀처럼 휘어지며 우진의 몸을 휘감았다.


‘됐다!’


사슬에 묶인 우진의 몸에 칼을 꽂아 넣으며 가장 큰 공을 세웠다고 기뻐하던 것도 잠시. 츠나메의 눈동자가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좌우로 정신없이 흔들렸다.


츠츠츠······.


사슬에 묶여있던 것은 실체가 아닌 잔상이었다.


‘어디? 대체 어디······.’


“커억!”


사방을 두리번거리던 츠나메의 허리가 앞으로 크게 꺾였다. 츠나메의 등에 우진의 단단한 주먹이 틀어박혀 있었다.


‘얕다.’


제나라 연합의 오행합격진의 방비는 실로 굉장했다. 적의 숨통을 끊어놓기 위해 전력을 다하고 있건만 신묘한 기운에 위력이 계속해서 반감됐다.


“개자식! 다들 달라붙어!”

“크아아!”


이천기가 죽음을 불사하고 우진에게 달려들며 팔에 매달리자 척주가 으그러진 츠나메도 비명에 가까운 기합을 지르며 우진의 왼팔에 매달렸다.

왼팔에 매달린 츠나메의 몸을 떼어내려고 했으나 흡사 거대한 산에 묶여버린 것처럼 왼팔이 움직이질 않았다.


‘철산천근추(鐵山千斤錘)인가!’


철산천근추는 일본의 에도 시대에 내려오던 무공으로 몸의 무게를 잠시나마 거대한 태산만큼 무겁게 만들 수 있었다.


“젊은이! 이제 그만 땅으로 돌아가게! 자네의 시대는 끝났어!”


백발이 무성한 노인은 연기처럼 신형이 흐려지더니 순식간에 코앞까지 거리를 좁혔다. 전력을 다하여 발검과 함께 내지른 노인의 검은 그야말로 번개와도 같아서 눈앞에 있는 모든 것을 그대로 갈라버렸다.


콰아!


옆구리에서 뜨거운 통증이 느껴진다. 철산천근추에 몸이 묶여있는 상태에서 노인의 전력을 다한 검을 피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아마 노인에게 있어서는 지금까지의 인생에 있어 가장 날카로운 검이었으리라. 옆구리를 뚫고 나간 검을 따라서 등 뒤로 광오한 기파가 뻗어 나갔다.

노인의 어깨를 양손으로 붙잡은 우진은 온힘을 다하여 머리를 부딪쳤다.


콰직!


머리뼈가 부서지며 함몰되는 처참한 느낌이 이마로 느껴졌다. 오른팔을 크게 움직여 이천기와 거리를 벌린 우진은 그대로 손을 날려 그의 복부를 관수로 뚫어버렸다.


“커억!”


코 끝을 스치는 것은 달콤한 목련 냄새였다.

화려한 붉은 궁장의 여인이 어느새 등 뒤에 있었다.


“염제. 이제 그만 편히 잠들어요.”


옥 구슬이 굴러가는 것처럼 영롱하고 달콤한 그녀의 목소리는 기묘했다. 그녀의 목소리는 흡사 자장가 같아서 정신은 혼미해졌다.


푸욱!


불에 그을린 것처럼 뜨거운 통증에 혼미했던 정신이 순식간에 돌아왔다. 옆구리에 짧은 비수가 삐죽 튀어나와있었다.

우진은 힘껏 뒤로 뒤통수를 부딪쳤다. 둔탁한 소리와 함께 그녀의 코가 부러지며 붉은 핏물이 튀어 올랐다.


“죽여! 놈은 지쳤어!”

“놈도 인간이야!”

“달려들어!”


츠나메의 머리를 주먹으로 으그러트린 우진의 시야가 점차 흔들렸다. 비틀거리며 우진은 사방에서 달려드는 고수들의 머리를 날려버렸다.


‘독인가.’


비수에 묻어있던 독은 지독한 극독이 분명했다. 파천무극신공의 양기로 밀어내며 몸에 침범한 음기를 누그러트려 보려고 했으나 독은 쉽사리 사라지지 않았다. 양기로 태워보려고 해도 불타지 않는 걸 보면 굉장히 희귀한 극독이리라.


“죽어라, 염제!”

“죽어!”


사방에서 달려드는 무인들을 보며 우진은 실소가 흘러나왔다. 제나라 연합은 지금은 힘을 합치며 함께하고 있지만 공통의 적이 사라진다면 연합은 금방 와해될 것이다. 나중에는 서로 물고 뜯으며 진흙탕의 혈투를 벌이는 것이 일시적인 동맹의 말로다.

온몸을 불사르며 죽이고자 달려오는 무인을 우진은 온힘을 다하여 한 명씩 처치했다. 목을 부러트리고 머리를 짓뭉개고 심장을 터트린다.



그곳에 한 남자가 서 있었다.

핏빛으로 물든 노을. 축축한 피에 젖은 절벽. 사방을 가득 채우고 있는 짙은 피 냄새.

과거에는 염제라고 불렸던 남자, 서우진의 온몸에는 수많은 무구들이 박혀있었다. 날카로운 검들은 가슴과 복부를 뚫고 튀어나와 있었고 창은 허리를 뚫고 땅에 박혀있었으며 외날의 도와 구부러진 낫이 다리를 뚫고 종아리로 나와 있었다.

제나라 연합의 마지막 남은 무인들은 수많은 시신들의 언덕에 서서 숨을 거둔 우진을 미심쩍은 눈빛으로 노려봤다.


“후우! 씨발! 더럽게 끈질긴 새끼!”

“정말 죽은 거 맞겠지?”


죽립을 쓴 사내가 조심스럽게 땅에 고정되어 있는 우진의 시신을 건드렸다. 우진이 움직이지 않자 그는 용기를 내어 우진의 손목과 목의 맥을 짚어보았다.


“확실히 죽었어.”


우진을 죽이는 것에 성공했으나 살아남은 사람들의 표정은 그리 좋지 않았다.

마지막에 미친 짐승처럼 달려들던 우진을 막기 위해서 그들은 몸의 일부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팔, 혹은 다리, 손목. 살아남은 무인들은 멀쩡한 자들이 없었고 하나같이 몸의 일부가 떨어져 나가 있었다.

100명이 넘는 고수들이 죽었다. 하나같이 모두 초절정을 넘어가던 고수였다.


“쳇. 뒷맛이 좆같군.”


살아남은 무인들은 피로 얼룩진 땅을 밟으며 발걸음을 뒤로 돌렸다. 오늘 곧바로 방주를 함락하여 주변의 영토를 서로 나눠 가지려 했었으나 지금은 벙커로 돌아가는 것이 먼저였다.


“흐흐흐. 이제 저건 내 거야.”

“잊지 말라고. 우리 모두의 것이지.”


중년의 무인은 절벽 아래로 보이는 방주를 손바닥 위로 올려보며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수많은 자원과 여자들. 젊고 파릇파릇한 병력들. 그것들을 손에 쥘 것을 생각하니 실로 달콤하기 그지없었다.



***



그것은 어렴풋한 기억이다.

정확히 기억나진 않는다. 그저 어둠이 보였고 우진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두운 길을 걸었다.

고요한 검은 바닥은 걸을 때마다 호수와도 같은 파문이 퍼져나간다.

문. 길이 이어지는 곳에는 언제나 문이 있었다.

그 문으로 들어가면 눈에 보이는 것은 거대한 악마였다.

그저 파괴하며 욕망을 채우는 것을 갈망하는 악마들과 우진은 전투를 벌였다. 동등한 전투라기 보다는 살아남기 위한 일방적인 전투에 더 가까웠다.

싸운다. 싸운다. 싸운다.

피가 튀고 뼈가 부러지고 정신이 흔들려도.

거대한 악마들을 죽여나가며 그는 계속해서 전진했다. 그런 우진이 마지막에 당도한 것은 13번째 문이었다.



***



눈을 뜨자 찬연한 아침의 햇살에 우진은 미간을 찡그렸다. 아주 오랫동안 태양을 보지 못했던 것 같은데 정확한 기억은 나지 않는다.


“어째서 내가 살아있지?”


우진은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알몸이었다. 몸을 둘러봤으나 온몸이 흉터 하나 없이 깨끗했다. 마치 새로 태어난 것처럼 온몸의 피부가 하얗고 부드러웠다.

발치에 녹슨 칼과 창들이 굴러다니는 걸 보면 제나라 연합과의 결전이 꿈이 아니었던 것만은 분명했다.


“축하해. 너는 13번의 시험을 통과했구나.”


옆을 보자 붉은 머리의 여자가 있었다. 허리까지 고운 머리를 길게 기르고 짙은 속눈썹 아래 보석 같은 붉은 눈을 깜빡이는 여인에게서 매우 기묘한 분위기가 흐르고 있었다. 여인은 마치 이 세상의 사람이 아닌 별개의 존재처럼 느껴졌다.


“시험이라니?”


절벽 아래를 내려보던 우진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돔 형태의 거대한 방주. 지진과 해일을 막아줬던 견고하고 두꺼운 강철의 벽은 곳곳이 무너져 뼈가 드러나 있었고 문은 완전히 파괴되어 있었다. 방주는 벙커가 아닌 폐허에 가까웠다.


“네가 죽고 나서 3년이 지났어. 이건 처음으로 13번의 시험에 통과한 인간에게만 알려주는 특급 정보야.”

“개소리.”


섬전무쌍으로 순식간에 거리를 좁힌 우진은 여인의 팔을 손으로 붙잡았다. 그러나 검은 로브를 입은 붉은 머리의 여인은 연기처럼 흩어지며 어느새 한참이나 멀어져 있었다.


“나에 대해서는 미안하지만 자세히는 말해줄 수 없어. 지금은 어둠의 초월자라는 것만 말해둘게.”

“기다려!”


안개처럼 여인의 신형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손을 뻗으며 여인을 붙잡으려는 우진의 귀에 감미로운 목소리가 바람에 실려 흘러갔다.


“네가 어떤 선택을 할지 기대하고 있을게. 서우진.”


어둠의 초월자가 자취를 감추자 우진은 고개를 돌려 폐허가 되어 버린 방주를 내려봤다. 어둠의 초월자가 누구인지 어떻게 살아난 것인지 모두 궁금했으나 지금은 방주가 먼저였다. 그녀의 말대로 정말로 3년이 지났는지 확인해볼 필요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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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전쟁 24.04.27 63 1 12쪽
31 출진 24.04.21 61 1 12쪽
30 이면 24.04.15 66 1 11쪽
29 소나라의 왕녀 24.04.09 80 1 11쪽
28 아버지의 마음 24.03.20 118 1 12쪽
27 귀환 24.03.18 140 2 12쪽
26 다시 만난 처자 24.03.17 138 1 11쪽
25 병장과 상병과 일병 24.03.16 144 2 12쪽
24 빛의 마법사 24.03.05 149 1 11쪽
23 늦은 밤의 기나긴 대화 24.02.27 168 1 12쪽
22 장왕 24.02.24 189 0 12쪽
21 감기약 24.02.22 215 2 11쪽
20 기억의 편린 24.02.17 232 3 12쪽
19 세 가지 부류의 인간 24.02.15 256 2 12쪽
18 폭우가 지나간 자리 24.02.09 295 2 12쪽
17 간발의 차이 24.02.08 309 2 12쪽
16 살아남은 인간 24.02.07 339 4 11쪽
15 소문 24.02.05 370 2 12쪽
14 방주 점검 24.02.04 430 4 12쪽
13 목숨을 건 비무 24.02.03 448 4 12쪽
12 약탈의 시대 +2 24.02.02 533 3 12쪽
11 상승의 경지 +2 24.02.01 610 5 12쪽
10 비울수록 버릴수록 채워진다 24.01.31 622 5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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