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 죽이면 그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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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기꿀호빵
작품등록일 :
2024.01.19 12:33
최근연재일 :
2024.07.24 21:10
연재수 :
39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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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6,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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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2.04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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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방주 점검

DUMMY

“너무해요! 죽일 필요 까지는 없었잖아요!”

“이기적이로군요. 죽이고자 각오한 사람들이 죽는 건 두려워하는 건가요?”


히카루가 죽기 전 보여줬던 검격은 무척이나 예리했으며 살기가 가득했기에 단아도 그에 걸맞는 절초로 응수할 수밖에 없었다.

죽이고 싶지 않았어도 이미 발출됐던 공력을 회수하는 건 불가능했기에 둘 중 한 명이 죽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히카루가 단아를 가볍게 제압하리라고 생각했던 카게류의 문하생들은 예상했던 것과 전혀 다른 결과에 당황하며 쭈뼛거리고 있었다.

금 장문인은 차가운 안광을 번뜩이며 서슬 퍼런 눈빛으로 물러나고 있는 사무라이들을 노려봤다.


“꺼져라. 다시는 이곳에 찾아오지 마라!”

“히익!”


공포에 질린 다이스케는 히카루의 시신을 내팽개치며 뒤도 돌아보지 않고 황급히 도망쳤다.

겁에 질린 카게류의 문하생들이 소란스럽게 다이스케의 뒤를 따랐다.






방주에 돌아오자 우진은 가볍게 샤워를 한 뒤에 정장을 입고 미용실로 향했다.

방주에는 미용실 뿐만 아니라 목욕탕, 의료실, 헬스장, 도서실 등등 생활에 필요한 필수적인 시설이 곳곳에 배치되어 있었다. 은서가 대재앙을 대비하여 제안했던 방주의 설계는 굉장히 큰 도움이 되고 있었다.

헤어 디자인실에 오자 젊은 미용사가 밝게 웃으며 우진을 반겨줬다.


“아크 로드님! 오랜만이네요! 오늘은 무슨 머리로 해드릴까요?”


방주를 총체적으로 관리하는 입장이다 보니 우진은 평소에 외모에 좀 더 신경을 쓸 수밖에 없었다.


“오늘은 소프트 투블럭 댄디컷에 6대 4로 가르마펌을 해줘요.”

“알겠습니다!”


방주의 미용사인 조태린은 힘차게 대답하며 천천히 우진의 머리를 가위로 다듬었다.


“아크 로드님은 참 피부가 좋으신 것 같아요.”

“그야 매일 운동하고 있으니까요.”


방주의 주민들에게 파극문에 대하여 자세하게 알려줄 수 없다 보니 매일 굉장히 강도 높은 헬스 루틴을 하고 있다고 적당히 둘러대고 있었다.

눈으로 제대로 보기 힘들 정도로 우진이 순식간에 움직이는 것을 봤던 사람들은 그다지 믿진 않는 듯 했지만 연개소문의 무공을 익혔다고 해도 대부분 납득하지 못할 것을 알기에 지금은 이것으로 충분했다.

머리 손질이 끝나자 우진은 거울로 자신의 얼굴을 바라봤다. 머리가 단정해서 그런지 인상이 한층 더 날카롭고 섬세해 보였다.

미용실을 나오자 시간은 오후 7시에 가까웠다. 우진은 복도를 걸어 다니며 방주의 주민들에게 혹시 필요한 것이 있는지 혹은 문제는 없는지 확인했다.

방주의 전체적인 확인은 지휘관으로서 매일 하고있는 일과였다.

우진이 한 걸음씩 걸을 때마다 구두가 바닥에 부딪치며 규칙적인 소리가 이어졌다. 정장은 움직이기 불편해서 그리 좋아하진 않았지만 지휘관으로서 체통을 지키기 위해선 어쩔 수 없었다.


철컥.


자동으로 문이 열리자 우진은 재배용 LED 불빛이 천장에서 쏟아지고 있는 넓은 방으로 들어갔다.

최대한 식물이 살기 좋은 환경으로 구성되어있는 식물 재배실엔 수많은 식물들이 황톳빛 토양에 심어져 있었다.

식물 재배실에서 한창 바쁘게 갖가지 채소와 과일을 수확하고 있던 젊은 여인들이 우진을 바라보며 밝게 미소를 지었다.


“안녕하세요! 아크 로드님!”

“안녕하세요.”


밭일을 하고 있는 여인들은 대부분 박사들의 자식이거나 기술자들의 여식이었다.


“오이가 참 싱싱한데 하나 드셔 보실래요?”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여인이 웃으며 껍질을 벗긴 오이를 내밀자 우진은 크게 한 입 베어 물었다. 오이는 싱싱해서 그런지 굉장히 상큼했으며 아삭했다.


“맛있네요.”

“후훗! 이것도 드셔 보세요!”


우진을 사방에서 둘러싸며 여인들은 웃으면서 껍질을 벗긴 채소와 과일을 건넸다. 방금 막 수확한 과일들은 굉장히 싱싱하며 달콤했다.


“어때요?”

“맛있습니다.”

“제가 준 과일이 제일 맛있죠?”


여기저기서 여인들이 웃음을 터트렸다.

우진이 식물 재배실을 나가자 참외를 줬던 여인이 싱긋 미소를 지었다.


“아크 로드님은 참 귀여우신 것 같아.”

“아까 봤어? 아크 로드님이 나를 한참이나 바라보셨잖아.”

“웃기고 있네. 니가 아니라 나를 본 거겠지.”



우진이 복도를 걷자 지나가던 사람들이 밝게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방주 전체를 둘러보기까지 매일 1시간 정도 걸리다 보니 처음엔 꽤나 귀찮았지만 이젠 적응이 돼서 그런지 요즘은 지나가는 사람들의 인사를 제법 익숙하게 받아줄 수 있었다.

엘리베이터에 타자 먼저 타고 있던 도아가 우진을 보며 밝게 미소를 지었다.


“안녕하세요, 아크 로드님!”

“일하러 가는 거야?”

“네!”


이도아. 올해로 23세인 도아는 지휘작전실의 오퍼레이터다.

교대로 파트 타임으로 일하고 있는 도아에게 전부터 우진은 쉬고 싶으면 언제든 좀 더 많이 쉬면서 일해도 된다고 했으나 도아는 자진하여 더 많은 시간을 오퍼레이터로 근무하고 있었다.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도아는 힐끔 우진을 바라봤다. 몸에 딱 맞는 정장을 입고 머리를 단정하게 손질하고 있어서 그런지 오늘따라 우진이 더욱 잘생겨 보였다.


“아크 로드님! 머리 하셨네요?”

“그래. 어때? 이상하진 않지?”

“잘 어울려요!”


띵.


지하 1층에 도착하자 힐끔거리며 우진을 보던 도아가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문이 닫히자 우진은 지하 15층을 눌렀다.

엘리베이터에 반사된 자신의 얼굴을 우진은 물끄러미 바라봤다.

6대 4 가르마 펌은 처음 해봤기에 괜찮은가 싶었는데 다행히 여자들의 반응은 제법 나쁘지 않았다.


‘나중에 태린 씨한테 또 해달라고 해도 되겠어.’


지하 15층에 오자 우진은 천천히 복도를 걸었다. 그다지 멀지 않은 곳에서 사람들의 기합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철컥.


자동문이 열리자 우진은 커다란 연무장으로 들어갔다.

금 장문인이 방주의 치안을 담당하고 있는 자경대에게 실전에서 쓸 수 있는 검로와 함께 삼재검법을 알려주고 있었다.


“합!”


기합을 지르며 초식을 펼치고 있는 무리의 가장 뒤에서 익숙한 여인이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여인의 이름은 최해나. 우진이 장두식단을 쓰러트렸을 때 데려왔던 여인이었다.

처음엔 남편을 여의고 실의에 빠졌던 해나는 금 장문인의 가르침에 따라 요즘은 부쩍 수련에 열성을 보이고 있었다.

땀을 흘리며 검을 휘두르던 여인은 우진을 보자 밝게 미소를 지었다.


“우진 씨!”

“오랜만이네요, 해나 씨. 그동안 잘 지내셨죠?”

“네. 우진 씨 덕분에 서아도 잘 지내고 있어요.”


서아는 해나가 방주에 왔을 때 데려왔던 딸이었다.

간단히 인사를 하고 넓은 연무장을 나온 우진은 엘리베이터로 걸어갔다.

시간은 어느덧 오후 8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식당이 있는 지하 3층에 오자 복도에서 걸어오던 단아가 우진을 보며 짙은 속눈썹 아래 흑빛 눈을 깜빡였다.


“사제! 머리 했구나.”

“네. 저녁 먹으러 가죠.”


단아는 미묘한 눈빛으로 우진을 바라봤다. 우진은 시간이 갈수록 더욱 남자다워지고 있었다.

커다란 식당에 들어가자 많은 사람들이 식사를 하고 있었다.


“아크 로드님!”

“안녕하세요, 아크 로드님!”


웃으며 인사를 건네는 사람들에게 우진은 한 명도 빠짐없이 인사를 해줬다.

우진과 함께 적당한 자리에 앉자 단아는 조금 가라앉은 눈빛으로 고개를 숙였다.


“사제. 오늘 낮에 카게류의 사무라이들이 찾아왔었어.”

“정말 지치지도 않는 놈들이군요.”


단아는 우진에게 비무를 했으며 카게류의 사무라이 한 명이 사망하게 됐다고 말해줬다.


“사저. 다치신 데는 없죠?”


단아가 결코 약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같은 동문이며 그동안 형제처럼 지냈기에 우진은 걱정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그야 당연하지.”

“다행이네요.”


단아는 왠지 모르게 아까보다 기분이 좋아 보였다.






반쯤 허리가 잘려나가 있는 허름한 고층 빌딩.

넓은 홀의 가장 높은 상석에 인상이 몹시 차갑고 험악한 노인이 앉아있었다.

시중을 드는 젊은 여인이 가져온 과일을 먹으며 노인은 미간을 찡그리고 무릎을 꿇고 있는 남자를 내려봤다.


“히카루가 고작 여인에게 당했다 이거냐?”

“예! 그, 그렇습니다.”


비밀스럽게 내려오던 카게류 도장의 사범인 이츠키는 과일을 먹으며 얼굴을 찌푸렸다.

히카루는 비록 인성이 돼먹지 못하고 여색에 빠져 주변을 둘러볼 줄 모르는 놈이었으나 실력까지 모자란 놈은 아니었다. 히카루가 여자에게 숨이 끊어졌다는 걸 이츠키는 믿기 어려웠다.

가볍게 바나나를 위로 던진 이츠키는 눈가를 찡그리며 검의 손잡이를 붙잡았다.


팟!


어느새 바나나는 스무 조각으로 썰려있었다.

장내에 있던 그 누구도 이츠키가 검을 뽑는 것을 보지 못했고 그저 잘려나간 바나나로 그가 검을 휘둘렀다는 것을 추측할 뿐이었다.


스르릉.


순식간에 발도했던 검을 검집에 집어넣으며 이츠키는 조각난 바나나를 천천히 먹었다.


‘벙커에 설마 그런 여인이 있었을 줄이야······.’


아문왕을 쓰러트렸던 놈만 주의하면 될 줄 알았는데 일은 틀어져 버렸다. 벙커의 전력이 정확히 어느 정도인지 모르니 앞으로는 함부로 문하생들을 보낼 수는 없었다.


“내일 나 이왕(異王)이 직접 놈들을 토벌하러 가겠다.”

“사, 사범님께서 직접 말입니까?”

“그래! 무슨 불만이라도 있느냐?”


이츠키가 눈을 부라리자 다이스케는 기겁하며 더욱 깊이 고개를 숙였다.


“아뇨!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사범님의 뜻이 곧 카게류의 뜻입니다.”


손을 쓱쓱 비비며 비굴하게 웃고 있는 다이스케를 내려보며 이츠키는 혐오가 가득한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


‘줏대도 없는 놈 같으니. 이 놈은 역시 크게 될 놈은 아니로구나.’


이츠키는 물끄러미 밤하늘에 흘러가는 구름을 올려봤다.

일본이 거의 침몰해버리며 중국이 대재앙의 여파로 파괴되고 북한이 백두산의 화산 폭발로 멸망해버린 지금 그나마 살아가기 가장 좋은 나라는 한국이었다.

‘머지않아 한국에 남아 있는 모든 인간이 모두 나 이왕의 발 아래에 머무르게 될 것이다.’

정상에 서 있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며 이츠키는 히죽이며 입꼬리를 올렸다.






이른 아침 하얀 도복으로 갈아입은 우진은 배낭을 챙기며 방주를 나가기 위한 준비를 끝냈다.

실전 경험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았고 수련은 쉬지 않고 꾸준히 하는 것이 가장 좋았다.

우진이 방을 나가자 복도에서 걸어오던 단아가 손에 들고 있던 텀블러를 내밀었다.


“사제. 방금 갈은 건데 한 잔 마실래?”


텀블러를 건네받고 힘차게 생과일 음료를 마시자 달콤하며 상큼한 맛이 입 안에 가득 퍼졌다.


“어때?”

“시원하고 맛있네요.”

“오늘도 나가려는 거야?”

“네.”


아문왕과의 결전 이후 우진은 아직 만족할 수 없었다.

어쩌면 어딘가에 아문왕과 비슷하거나 혹은 그보다 더 압도적인 존재가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방주에 있는 주민들을 지키기 위해서는 앞으로 더욱 강해질 필요가 있었다.


“사제. 수련을 하는 건 좋지만 너무 무리하진 않았으면 좋겠어.”

“명심하겠습니다.”


실험실 가운을 입고 방에서 나오던 은서는 눈을 감으며 늘어지게 하품을 했다.


“오빠. 또 나가려구요?”

“그래.”

“참 부지런하시네요. 둘 다.”


은서가 미묘한 눈빛으로 단아가 들고 있는 텀블러를 보자 단아의 얼굴이 약간 불그스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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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전쟁 24.04.27 63 1 12쪽
31 출진 24.04.21 60 1 12쪽
30 이면 24.04.15 66 1 11쪽
29 소나라의 왕녀 24.04.09 80 1 11쪽
28 아버지의 마음 24.03.20 118 1 12쪽
27 귀환 24.03.18 139 2 12쪽
26 다시 만난 처자 24.03.17 137 1 11쪽
25 병장과 상병과 일병 24.03.16 144 2 12쪽
24 빛의 마법사 24.03.05 148 1 11쪽
23 늦은 밤의 기나긴 대화 24.02.27 168 1 12쪽
22 장왕 24.02.24 188 0 12쪽
21 감기약 24.02.22 215 2 11쪽
20 기억의 편린 24.02.17 231 3 12쪽
19 세 가지 부류의 인간 24.02.15 256 2 12쪽
18 폭우가 지나간 자리 24.02.09 295 2 12쪽
17 간발의 차이 24.02.08 309 2 12쪽
16 살아남은 인간 24.02.07 339 4 11쪽
15 소문 24.02.05 370 2 12쪽
» 방주 점검 24.02.04 430 4 12쪽
13 목숨을 건 비무 24.02.03 448 4 12쪽
12 약탈의 시대 +2 24.02.02 533 3 12쪽
11 상승의 경지 +2 24.02.01 610 5 12쪽
10 비울수록 버릴수록 채워진다 24.01.31 622 5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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