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 죽이면 그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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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기꿀호빵
작품등록일 :
2024.01.19 12:33
최근연재일 :
2024.07.24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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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4.21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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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진

DUMMY

‘좋아. 아무도 없다.’


아버지 소왕의 계획은 실로 성공적이었다.

볼모로 위장하여 모모코가 염제의 벙커에 침입. 이후 소왕이 히카루를 엄중히 벌하여 방주의 사람들에게 신임을 얻는다.

일견 생각해보면 간단하게 보일지 모르는 계획이지만 한국인들은 거칠고 험해 보여도 사실은 단순한 면모가 많은 사람들이었다.

방주의 주민들이 처음에는 모모코를 꺼려하며 싫어했다는 사실이 가장 중요했다. 인간이란 본래 처음에 미워하고 기피했던 존재가 사실은 착하고 선한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되면 오히려 더욱 심하게 미안해지며 가책을 느끼는 법이다.

이미 방주에는 소나라의 첩자들이 숨어 들어있었다.

정부가 사라진 세계는 혼란과 전쟁의 세계라고 할 수 있었다.

첩자란 곧 전쟁에 있어 핵심이자 중추이니 이미 전쟁의 형상은 처음부터 소나라에 기울어져 있던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품에 손을 집어넣은 모모코는 천천히 기모노에서 안에 노란 물질이 꽉 차 있는 손바닥만한 용기를 꺼냈다.

TR-3201. 일대를 날려버리기에 충분한 소형 핵폭탄이다.

2030년이 지나며 나왔던 휴대용 핵폭탄은 반경 10km 안에 있는 생명체나 물질은 흔적도 없이 녹여버리며 씨를 말릴 수 있을 만큼 압도적인 파괴력이 응축되어 있었다.

이 계획에는 한가지 감수해야만 하는 것이 반드시 존재했는데 그건 모모코의 목숨이었다.

소형 핵폭탄을 기폭하는 순간 모모코는 반드시 죽는다. 핵폭탄의 걷잡을 수 없는 뜨거운 열기에 온몸이 순식간에 녹아버려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될 것이 분명했다.


‘아버님을 위해서라면 이 정도 쯤은 감내할 수 있어.’


모든 것은 대의를 위해서였다.

언젠가 아버지 소왕이 남한에 있는 모든 땅을 정복하여 패왕이 되기 위해서라면 모모코는 자신의 목숨 정도는 기꺼이 희생할 각오가 되어있었다.


“실망이야.”


기폭 버튼을 누르려던 모모코는 갑자기 뒤에서 들려오는 음성에 크게 당황하며 황급히 뒤를 돌아봤다.

우진이 뒤에 서 있었다.


‘대체 어느 틈에?’


방 문은 분명 열리지 않았다. 방 문이 열리는 소리나 낌새는 조금도 없었다.

방에 접근하는 낌새 또한 전혀 없었다. 마치 우진은 처음부터 뒤에 서 있던 것처럼 어느 순간에 갑자기 뒤에 나타나 있었다.


“언제부터 알고 있었죠?”

“네가 처음 여기에 왔을 때부터 알고 있었어. 사실은 소왕의 벙커에 우리 쪽 첩자가 숨어 들어가 있거든. 여기에는 상당히 머리가 좋은 책사가 있는데 그건 몰랐나 보구나.”

“다가오지 말아요. 만약 한 걸음이라도 접근한다면 당장 이 주변을 날려버리겠어요.”

“그건 내가 알기로 소형 핵폭탄 같은데. 맞지? 그걸 여기까지 갖고 온 걸 보니 죽을 각오를 했나보구나.”

“천하가 소왕 폐하에게 무릎 꿇게 되리라!”


모모코가 소형 핵폭탄의 기폭 버튼을 누르기 직전 우진의 신형이 순식간에 자취를 감췄다.


“엇-.”


한순간에 마혈을 제압당하자 모모코는 경악에 가득 찬 얼굴로 눈을 부릅뜨고 우진을 씹어먹을 기세로 노려봤다.

몸이 마비된 모모코는 겨우 한끗 차이로 기폭 버튼을 누르지 못하고 눈만 부릅뜨고 있었다.


“모모코. 실망이구나. 너는 내 믿음을 배신한 것으로도 모자라서 이곳에 존재하는 수많은 사람들을 학살하려고 했다. 그러니 나도 소왕의 벙커를 이제는 그냥 둘 수 없구나.”


모모코에게서 소형 핵폭탄을 빼앗는 우진의 뒤로 연구실 가운을 걸친 은서가 천천히 들어오고 있었다.


“염제님. 마음의 준비는 되셨습니까?”


세계는 변했다.

더 이상 과거와 같은 상식과 개념은 통하지 않았다.

소왕이 우진 뿐만 아니라 방주를 멸망시키려 했으니 이제 전쟁은 피할 수 없었다.


“그래. 네 말이 맞았어. 이젠 어쩔 수 없구나.”


마음을 굳힌 우진에게서 더는 일말의 고민이나 고심은 찾아볼 수 없었다.

방을 나온 우진은 순찰을 돌고 있던 자경대원을 불러세웠다.


“구현아. 전부 1층 로비로 모이라고 전해.”

“네? 지금요?”

“그래. 준비해. 출진이다!”



오퍼레이터의 방송으로 1층 플로어에 모인 40명의 자경대원들은 난데없는 호출에 대부분 어리둥절해 하고 있었다.


“아니. 새벽 1시가 넘었는데 대체 이게 무슨 일이야?”

“무슨 큰일이라도 낫나?”


방송으로 갑작스럽게 모인 건 여태껏 처음 있는 일이었기에 사람들은 하나같이 새벽부터 무언가 심상치 않다고 느끼고 있었다.


“어? 저기 봐! 누군가 모모코 씨를 끌고 오고 있어!”


마혈이 제압되어 있는 모모코가 온몸에 밧줄이 묶여 자경대원에게 끌려오고 있었고 뒤로 우진과 함께 가까운 일행들이 걸어오고 있었다.

아직도 영문을 모르고 의아해하고 있는 자경대원들의 앞에서 우진은 소형 핵폭탄 TR-3201를 손에 쥐고 위로 높이 들어 올려 모두에게 보여줬다.


“늦은 시각에 안타깝지만 슬픈 소식을 제군들에게 전해주겠다. 우리들이 그동안 믿고 친구라고 생각했던 모모코는 야심한 시각 TR-3201를 방에서 기폭하여 방주를 날려버리려고 했었다. 이 TR-3201은 반경 10km 일대를 모두 흔적도 없이 날려버릴 수 있는 지독한 핵무기다.”


모두 남자들로 이루어져 있는 자경대원들은 생각지도 못했던 충격적인 사실에 모두 크게 놀라며 당황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모모코 씨가?”

“우리들이 그동안 그렇게 잘해줬는데?”

“사실 우리를 속이고 있었다고?”


군중의 술렁이던 수군거림은 이윽고 점차 실망에서 슬픔으로 슬픔에서 분노로 변해갔다.


“우리들이 잘해준 은혜를 배신하다니!”

“역시 처음부터 일본 여자는 받아주지 말았어야 했어!”

“예쁜 얼굴로 우리들을 그동안 속였던 거야!”

“씨발!”


우진은 분노하는 자경대원들을 둘러보며 일부러 짐짓 슬픈 표정을 얼굴에서 감추지 않았다.

우진은 조용히 눈을 감으며 아까 전보다는 한층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


“제군들의 분노는 이해한다. 나는 그동안 스스로를 왕으로 칭하는 주변의 소국들과 사이좋게 지내보려고 했으나 어젯밤 모모코가 보여줬던 행동은 도가 너무 지나쳤다! 그러니 앞으로 나는 내 휘하의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전쟁을 불사하기로 마음먹었다.”


사실 우진은 전쟁을 원하지 않았다. 전쟁을 하겠다고 결정한 건 은서의 조언 때문이었다.

세계는 변했다. 강하지 않으면 짓밟힐 뿐이다. 참혹하게 변해버린 세계에서 평화를 원하더라도 주변의 나라들은 계속해서 침략해올 게 분명했다.

암투와 눈에 보이지 않는 계략의 난투에서 앞으로도 계속하여 살아남기 위해서는 강한 집단이 될 수밖에 없었다.

소국이 강대국을 건드리기 어려운 것처럼 집단이 강해질수록 휘하에 있는 사람들도 더욱 안전해질 테니 우진은 은서의 제안을 수락했다.

미쳐버린 세계에서는 평화를 원하는 인간이 오히려 별종이다. 세계가 정신이 나가버렸다면 인간도 그에 맞게 변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저······ 아크 로드님? 지금 전쟁이라고 하셨습니까?”

“그렇다. 물론 이해는 한다. 겨우 몇 달 전만 해도 현대인으로서 살아온 제군들에게 전쟁이란 무척 생소할 수밖에 없겠지. 하지만 내가 평화를 원하며 주장한다고 한들 앞으로 오늘 같은 사태가 앞으로 일어나지 않으리란 보장은 없다. 혹여 언젠가 내가 크나큰 재앙을 막지 못한다면 방주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크나큰 사고를 당하거나 혹은 타국의 노예가 될지도 모르지. 그러니 나는 전쟁을 하기로 결정했다.”


서로 수군거리며 고민하고 있는 자경대원들의 마음은 실로 심란하기만 했다. 그런 자경대원들의 심정을 눈치챈 우진은 앞으로 손을 뻗으며 큰 목소리로 소리쳤다.


“나는 오늘 새벽 스스로를 왕이라고 칭하는 소왕의 벙커를 습격하여 패도적인 무리들을 처단할 것이다. 만약 전쟁에 참여하고 싶지 않은 자가 있다면 누구든 상관없다! 주저하지 말고 플로어를 떠나 엘리베이터를 타고 방으로 돌아가라! 전쟁에 참여하지 않더라도 앞으로 어떠한 불이익이나 차별은 없을 것이다.”


서로 눈치를 살피던 자경대원은 하나 둘 조심스럽게 엘리베이터로 걸어가며 1층 플로어를 떠났다.

처음 두세 명이 불참하겠다는 뜻을 보이자 아까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플로어를 떠났다.

서로 눈치를 보며 떠난 사람들이 남은 자리에는 겨우 7명의 자경대원들만이 남아있었다.

모모코는 아까 전 저주의 말을 퍼붓던 자경대원들이 겨우 7명만 남았다는 사실에 속으로 조소를 퍼붓고 있었다.


‘큭! 멍청한 새끼들. 아까 전까지는 그렇게 기세등등하더니 결국 자기 목숨이 위험해지니 꼬리를 말고 도망치는구나!’


모모코는 결국 우진의 계획이 틀어졌다는 사실이 속으로 쾌재를 터트리며 힐끔 눈으로 우진과 은서의 얼굴을 살펴봤으나 예상과는 다른 반응에 기이한 기분을 감출 수 없었다.

우진의 얼굴은 이상하리만치 평온했다. 너무나도 차분하여 마치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은서는 우진보다도 표정이 더 특이했는데 오히려 약간 기분이 좋아 보였고 입꼬리는 살짝 올라가있기까지 했다.


‘뭐지? 계획이 아니었나?’


계획이 틀어졌을 텐데도 오히려 은서가 조금 웃고 있자 모모코는 기분이 오히려 찝찝해졌고 어느새 머릿속에선 이유가 무엇인지 끊이지 않고 유추하고 있었다.

우진은 남아있는 7명의 자경대원들을 하나 하나 힘주어 바라봤다.


“그대들은 정말 나를 따라올 자신이 있는가?”

“예!”

“걱정 마시죠. 죽기야 하겠습니까?”


해맑게 웃는 중년인을 보자 우진은 가슴 한편이 시큰하여 눈을 감으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다. 그럼 모두 돌아가서 장비를 챙기고 플로어로 집합해라. 30분 후에 출발하겠다.”

“예!”


엘리베이터로 일사불란하게 달려가는 7명의 자경대원들을 플로어에서 은서는 몹시 걱정스럽게 바라봤다.


“사제. 저 사람들 괜찮을까?”

“걱정하지 마세요. 모두 죽지 않도록 제가 최대한 지킬 겁니다.”

“전쟁이라니. 내 생각에는 너무 무모해 보여. 지금이라도 다시 생각해보는 게 어때?”

“아뇨. 반드시 출진해야 돼요.”


연구실 가운의 주머니에 손을 넣고 서 있던 은서는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다소 날카롭게 눈을 빛냈다.


“적의 확실한 허점은 놓치면 안 돼요. 지금 모모코를 용서해주고 오늘 있었던 일을 그저 조용히 지나가더라도 앞으로 이런 일들은 계속해서 일어날 거예요. 오히려 지금껏 오늘 같은 일들이 일어나지 않았던 게 운이 좋았던 거죠. 우리가 평화적으로 살아가려고 하더라도 다른 소국들이 계속 방주를 노릴 거예요. 여긴 식량도 자원도 풍부하고 설비도 유독 뛰어나니까요.”

“꼭 그래야겠어?”

“지금 소왕을 처단하지 않는다면 나중에는 몹시 큰 화가 되어 돌아올 수 있어요. 피를 보기를 원하지 않는 언니의 마음은 알지만 어쩔 수 없어요. 기회는 놓치면 돌아오지 않아요.”


고개를 숙이며 고민하는 단아의 어깨를 장문인 금민석은 부드럽게 붙잡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단아야. 은서의 말이 맞다.”

“하지만······.”

“언제나 너에게 인간으로서의 도리를 지키며 살라고 했으나 그건 사실 자식이 바르게 자라기를 바라는 아버지로서의 마음이기도 했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더 강해져야 해. 그러니 앞으로는 어쩔 수 없구나.”


마침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리며 자연스럽게 이어지던 대화는 끊어졌다.

k3 소총으로 무장한 7명의 자경대원들이 재빠르게 달려오자 우진은 감았던 눈을 뜨며 천천히 무거운 숨을 내뱉었다.


“시작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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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전쟁 24.04.27 63 1 12쪽
» 출진 24.04.21 61 1 12쪽
30 이면 24.04.15 66 1 11쪽
29 소나라의 왕녀 24.04.09 80 1 11쪽
28 아버지의 마음 24.03.20 118 1 12쪽
27 귀환 24.03.18 140 2 12쪽
26 다시 만난 처자 24.03.17 137 1 11쪽
25 병장과 상병과 일병 24.03.16 144 2 12쪽
24 빛의 마법사 24.03.05 149 1 11쪽
23 늦은 밤의 기나긴 대화 24.02.27 168 1 12쪽
22 장왕 24.02.24 188 0 12쪽
21 감기약 24.02.22 215 2 11쪽
20 기억의 편린 24.02.17 231 3 12쪽
19 세 가지 부류의 인간 24.02.15 256 2 12쪽
18 폭우가 지나간 자리 24.02.09 295 2 12쪽
17 간발의 차이 24.02.08 309 2 12쪽
16 살아남은 인간 24.02.07 339 4 11쪽
15 소문 24.02.05 370 2 12쪽
14 방주 점검 24.02.04 430 4 12쪽
13 목숨을 건 비무 24.02.03 448 4 12쪽
12 약탈의 시대 +2 24.02.02 533 3 12쪽
11 상승의 경지 +2 24.02.01 610 5 12쪽
10 비울수록 버릴수록 채워진다 24.01.31 622 5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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