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 죽이면 그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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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기꿀호빵
작품등록일 :
2024.01.19 12:33
최근연재일 :
2024.07.24 21:10
연재수 :
39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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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2.22 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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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감기약

DUMMY

옆자리에 있던 오대수 박사가 답답하다는 얼굴로 재빨리 대화에 끼어들었다.


“아니. 안된다니까. 딱 봐도 위험해 보이잖아. 그러다가 아크 로드님이 다치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그래?”

“하지만 오 박사님. 서신을 보면 알겠지만 장왕이라는 사람은 꽤 정중하게 부탁을 했어요. 그리고 제가 보기에 우진 오빠가 찾아가는 게 좋아요. 서신을 받았는데도 찾아가지 않는다면 무시한다고 생각하겠죠.”


지금껏 팔짱을 끼고 눈을 감고 있던 금 장문인은 천천히 눈을 뜨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은서의 말에 동의하네. 우진이가 가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아.”

“그렇죠?”


결국 회의는 투표가 이루어졌고 다수결의 원칙에 따라 근소한 차이로 우진이 장왕의 벙커에 가는 것으로 결정됐다.


“아. 정말 고집 한 번 세네.”


오대수 박사가 답답하다는 얼굴로 지휘작전실을 나가버리자 원탁 앞에 앉아있던 사람들은 하나둘씩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우진이 지휘작전실을 나가자 뒤따라오던 금 장문인이 나지막이 말했다.


“우진아. 따라오거라. 할 말이 있다.”

“네, 스승님.”


우진과 함께 방에 들어가자 의자에 앉은 금민석의 안색이 다소 어두워졌다.


“우진아. 너는 고려의 무장이셨던 척준경을 알고 있느냐?”

“그야 물론 알고 있습니다.”


척준경의 무력은 과거부터 굉장히 유명했다. 홀로 칼과 방패를 들고 적들이 가득한 성벽 위에 올라가 병사들을 뚫고 여진족 추장들의 숨통을 끊어놓은 일화만 보더라도 굉장히 압도적인 인물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최근에 밖에서 방주 주변을 조사했던 정보원의 말에 따르면 장왕은 천령문(天靈門)의 제자인 것 같구나.”


천령문은 척준경이 죽기 전에 만들었던 신비의 문파로 무인들 사이에 알려져 있었다.


“사실 마음 같아서는 네가 가지 않았으면 하지만 상황이 이러니 어쩔 수 없구나.”

“괜찮습니다, 스승님. 어쩌면 얼굴이나 한 번 보자고 부르는 것일지도 모르지 않습니까.”

“혹시라도 그와 부딪친다면 귀행연환권을 조심하거라.”


천령문의 귀행연환권(鬼行連環拳)에 대해서는 제대로 알려진 바가 없었다. 한 번 본 자는 반드시 죽기에 알려진 사실이 없다는 말들이 뜬소문처럼 전해져 올 뿐이었다.


“명심하겠습니다, 스승님.”


철컥.


우진이 방을 나오자 복도에서 벽에 등을 기대고 있던 은서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방금 전까지 고심하고 있었는지 은서의 얼굴에는 약간 근심이 서려 있었다.


“가고 싶지 않다면 갈 필요 없어요. 방주의 지휘관은 오빠잖아요? 오빠가 가지 않기로 결정한다면 다른 사람들도 별다른 불만 없이 수긍할 거예요.”

“아니. 이제 와서 결정을 바꿀 생각은 없어. 내가 생각하기에도 가는 게 좋을 것 같아.”


은서는 갈등하고 있었다.

방주의 책사로서는 우진이 장왕의 벙커에 가는 게 맞다고 생각했으나 상당히 위험할지도 모르기에 함부로 우진을 보내기가 쉽지 않았다.

은서가 내심 책사로서의 결정과 사적인 걱정 사이에서 갈등하고 있자 우진은 부드럽게 은서의 어깨를 붙잡아줬다.


“걱정할 필요 없어. 너의 예상은 지금껏 대부분 빗나간 적이 없잖아?”


우진의 좌우로 넓게 뻗어있는 어깨와 굳건한 의지가 가득한 두 눈을 보자 은서는 서서히 마음에 있던 불안이 사라졌다.


“제가 괜한 고민을 한 것 같네요.”


은서가 자리를 떠나자마자 방에 있던 단아가 밖으로 나왔다.

마치 방금 전까지 둘의 대화를 듣고 있었던 것처럼 단아가 복도에 나온 타이밍은 굉장히 절묘했으나 우진은 알면서도 모른 척을 했다.


“사제. 저녁 먹으러 가자.”

“그러시죠.”






다음 날 나갈 채비를 마친 우진은 도복의 검은 허리띠를 꽉 묶으며 등에 커다란 배낭을 메고 방을 나섰다.


철컥.


복도로 나오자 금 장문인과 단아, 은서, 오퍼레이터들과 수많은 학자들이 우진을 기다리고 있었다.

오 박사를 비롯한 여러 학자들은 우진에게 다가오며 사방에서 우진의 몸 상태를 확인했다.


“아크 로드님. 어디 불편하신 데는 없죠?”

“혹시 필요하신 거라도 있습니까?”


학자들은 두려워하고 있었다. 지금껏 우진이 있었기에 방주에서 끔찍한 참상이 일어나는 것 만큼은 막을 수 있었으나 우진이 자리를 오래 비운다면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최근에 방주 밖에 있었던 정보원이 가져온 정보에 따르면 장왕의 세력은 상당히 막강했다. 우진이 압도적인 무력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무의식적으로는 남아 있는 걱정을 지우기 어려웠다.


“문제없습니다. 너무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별다른 문제가 없다면 5일 안에 돌아올 생각입니다.”

“그렇군요!”

“저희가 괜한 걱정을 했군요! 하하!”


복잡한 얼굴로 서 있던 금 장문인이 천천히 우진에게 걸어오자 사방에 있던 학자들이 뒤로 물러섰다.


“우진아. 이것이 방주에서 하는 첫 번째 외교라는 것을 잊지 말거라.”

“네, 스승님.”


금 장문인이 물러나자 은서가 우진에게 웃으며 걸어왔다.


“저쪽에서도 분명 오빠의 소문을 들었을 거예요. 분명 함부로 대우하지 않을 테니까 괜찮을 거예요.”

“그래. 그렇겠지.”


은서가 옆으로 물러서자 짙은 속눈썹 아래 흑빛 눈을 반쯤 감고 생각에 잠겨있던 단아가 천천히 우진을 바라봤다.


“사제. 무사해야 돼.”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늦어도 5일 안에는 돌아오겠습니다.”


우진은 방주의 요인들과 오퍼레이터들을 뒤로하고 자리를 떠났다.

사실 장왕에게 우진이 굳이 직접 갈 필요는 없었다. 장왕이 그랬던 것처럼 사절단을 꾸려서 서신을 전달해도 딱히 문제 될 일은 없을지도 모른다.

직접 갈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우진이 직접 가는 이유는 장왕에게 흥미가 있어서였다.

초대 장문인인 척준경이 창안했던 천령문의 제자 장왕은 과연 어떤 사람일까. 또한 그가 익혔다는 귀행연환권의 위력은? 굉장히 패도적일까? 혹은 부드러우며 유순할까?

방주의 지휘관으로서 책임져야 할 사람들이 무척이나 많아졌으나 한편으로는 무인으로서 가슴 속에서 뜨거운 피가 흐르는 것 만큼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게이트 앞에 오자 우진은 굳건히 닫혀있는 두터운 철문을 바라봤다.


“도아 씨. 게이트 오픈해줘.”


-괜찮으시겠어요? 밖에 눈 엄청 많이 오는데······.


지금은 9월 17일. 과거 같았으면 지금쯤엔 더위가 가시고 날이 선선해지며 가을이 와야 맞았으나 심각해진 지구 온난화에 따른 이상 기후로 밖에서는 거센 눈보라가 쏟아지고 있었다.

밖에서 세찬 눈이 쏟아지고 있다는 건 아까 전에 복도에서 단아에게 들었기에 알고 있었으나 우진은 그다지 동요하지 않았다.


“괜찮아. 게이트 오픈해줘.”


-네!


쿠구구구구......


땅이 진동하며 두터운 철문이 좌우로 열리자 세찬 한기가 온몸을 부딪쳐왔다.

우진은 고작 해봐야 얇은 하얀 도복 하나만을 걸쳤을 뿐이었지만 파천무극신공은 본래 정순하며 심오한 양강의 심공이기에 그다지 추위는 느껴지지 않았다.

품에 있던 나침반을 꺼내어 방향을 본 우진은 쏟아지는 눈보라를 맞으며 천천히 남쪽으로 걸어갔다.

방주로부터 남쪽에 있는 영월군의 위치는 어제 지도로 확인했기에 찾기는 그리 어렵지 않을 듯 했다.

천천히 걷던 우진이 백야낙일홍을 펼치자 빠르게 신형이 앞으로 쏘아져 나갔다.

산을 하나 넘었으나 눈보라가 거세서 그런지 약탈자들은 보이지 않았다.

가파른 험지를 지나 도심지로 들어가던 우진은 멀리서 들려오는 구슬픈 목소리에 잠시 멈춰서며 허름한 건물을 바라봤다.

반파되어 있는 빌라에서 여자아이의 목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지나칠지 혹은 천장이 반쯤 무너져 있는 빌라에 갈지 잠시 고민한 우진은 빌라로 걸어갔다.

어차피 영월군까지 가는 데에는 하루 반나절도 걸리지 않기에 지나치게 서두를 필요는 없었다.

빌라는 벽의 곳곳에 거미줄처럼 균열이 이어져 있었고 반쯤 부서진 천장에선 눈이 떨어지고 있었다.

여자아이가 눈물을 흘리며 차가운 바닥에 누워 두꺼운 이불을 덮고 있는 노인의 품에 얼굴을 묻고 있었다.


“흐흑······ 어?”


눈을 감고 식은땀을 흘리며 앓고 있는 노인의 품에서 눈물을 흘리던 여자아이는 인기척에 화들짝 놀라며 우진을 돌아봤다.

여자아이가 겁에 질리자 우진은 배낭에서 참치 통조림을 꺼냈다.

우진이 묵묵히 통조림을 건네주자 여자아이는 긴가민가 하면서도 통조림을 받았다.


“이거 먹어도 돼요?”


변해버린 가혹한 세계에서 단순한 호의는 여자아이에게 있어서 너무나도 낯설게만 느껴졌다.

우진이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자 여자아이는 재빨리 통조림을 뜯으며 허겁지겁 먹었다.

그동안 꽤나 오랫동안 굶은 건지 고개 한 번 들지 못하고 여자아이가 통조림을 모두 먹자 우진은 생수를 건네줬다.


“후하! 고마워요. 대재앙 이후로 오빠 같은 사람은 처음 봤어요.”


허겁지겁 생수를 마신 여자아이는 입가에 묻은 물기를 손등으로 닦아내며 앓고 있는 노인을 걱정스럽게 내려봤다.


“왜 이렇게 돼버린 걸까요? 할아버지는 그저 감기에 걸렸을 뿐인데. 이젠 감기약조차 구하기 어려워졌어요.”


소민에게 있어서 가족이라곤 늙은 할아버지 한 명밖에 없었다. 유일한 가족인 할아버지가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소민은 눈앞이 막막하기만 했다.


“약국은?”

“네?”

“근처에 약국 있어?”

“있어요. 여기서 3블록 위로 가면 골목에 들어가기 전에 하나 있는데······.”


우진이 방을 나가려고 하자 소민은 당황하며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설마 지금 약국에 가려는 건 아니죠?”

“맞아.”

“안 돼요! 거긴 이미 무법자들이 점령하고 있어요! 지금 거기 가는 건 자살행위나 다름없어요!”

“할아버지를 살리고 싶은 거 아니었어?”

“약은 제가 어떻게든 구할 거예요. 무슨 수를 써서라도 반드시······.”


소민이 몸을 끌어안으며 고개를 숙이자 우진은 몸을 돌리며 부서져 있는 문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기다리고 있어.”

“방금 제가 한 말 못 들었어요? 거긴 이미 무법자들이······.”

“나라면 걱정할 필요 없어.”


참으로 이상했다.

근거도 논리도 없었으나 크고 넓은 우진의 등과 흔들리지 않는 두 눈을 보자 소민은 어쩌면 우진이라면 정말로 가능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진은 빌라를 나오자 눈이 쌓여있는 부서진 인도를 천천히 걸었다.

소민이 말했던 것처럼 3블록 위에서 골목으로 들어가자 부서진 간판이 금방이라도 떨어질 것처럼 벽에 매달려있는 약국이 있었다.

카운터에서 자줏빛 와인을 병째로 웃으며 들이키던 배 나온 덩치는 우진을 보더니 팍 인상을 쓰며 눈을 부라렸다.


“엉? 뭐야? 이봐! 김건! 오늘 누가 오기로 했었냐?”

“씨발. 지구가 맛이 가버렸는데 손님이 있겠냐?”


덩치는 손에 들고 있던 와인병을 거칠게 카운터에 내려놓으며 인상을 쓰고 험악하게 우진을 노려봤다.


“그렇다는데. 넌 어떻게 생각하냐?”


잔뜩 건들거리면서도 덩치는 카운터 아래로 엽총을 손에 쥐고 있었다.

덩치의 번들거리는 눈이 우진이 등에 메고 있는 커다란 배낭을 예리하게 훑고 지나갔다.


‘배낭이 아주 묵직해 보이는데. 보아하니 혼자 다니는 것 같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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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전쟁 24.04.27 63 1 12쪽
31 출진 24.04.21 60 1 12쪽
30 이면 24.04.15 66 1 11쪽
29 소나라의 왕녀 24.04.09 80 1 11쪽
28 아버지의 마음 24.03.20 118 1 12쪽
27 귀환 24.03.18 139 2 12쪽
26 다시 만난 처자 24.03.17 137 1 11쪽
25 병장과 상병과 일병 24.03.16 144 2 12쪽
24 빛의 마법사 24.03.05 148 1 11쪽
23 늦은 밤의 기나긴 대화 24.02.27 168 1 12쪽
22 장왕 24.02.24 188 0 12쪽
» 감기약 24.02.22 215 2 11쪽
20 기억의 편린 24.02.17 231 3 12쪽
19 세 가지 부류의 인간 24.02.15 256 2 12쪽
18 폭우가 지나간 자리 24.02.09 295 2 12쪽
17 간발의 차이 24.02.08 309 2 12쪽
16 살아남은 인간 24.02.07 339 4 11쪽
15 소문 24.02.05 370 2 12쪽
14 방주 점검 24.02.04 429 4 12쪽
13 목숨을 건 비무 24.02.03 448 4 12쪽
12 약탈의 시대 +2 24.02.02 533 3 12쪽
11 상승의 경지 +2 24.02.01 610 5 12쪽
10 비울수록 버릴수록 채워진다 24.01.31 622 5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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