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 죽이면 그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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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기꿀호빵
작품등록일 :
2024.01.19 12:33
최근연재일 :
2024.07.24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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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3.16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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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장과 상병과 일병

DUMMY

어깨에 총을 찬 군복을 입은 젊은 군인들은 갈라지며 움푹 파여있는 무너진 도심의 거리를 천천히 걸으며 주변을 경계하고 있었다.

병장, 상병, 일병으로 이루어진 이들 셋은 대재앙으로 정부가 사라지며 군대가 와해되자 자연스럽게 군에서 빠져나온 군인들이었다.


“와, 씨. 진짜로 다 부서져 버렸나 보네. 누가 보면 영화 찍는 줄 알겠어.”


계급이 다름에도 나이가 같아 평소에도 사이가 돈독했던 셋은 군대가 사라짐으로써 서로 존칭을 쓰지 않고 편하게 평어를 쓰고 있었다.


“차라리 잘되지 않았냐? 이런 개 같은 나라 차라리 진작에 멸망해버리는 게 더 나았어.”


군대에 강제로 끌려갔었기 때문에 이들 셋은 나라에 대하여 강렬한 분노를 갖고 있었다.

군대란 참으로 부조리한 곳이다.

돈 많고 뒤가 든든하며 빽있는 사람들은 어떻게든 면제받거나 빠져나갈 구석이 있는 반면 평범한 한국 남자들은 무조건 강제적으로 군대에 끌려갈 수밖에 없었다.

대의적인 명분은 언제나 딱 하나. 북한이 존재하니 한국에서 태어난 남자라면 나라를 지키기 위해 군대를 가야 한다는 거였다.

한국 남자들에게 선택권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저 한국에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대부분의 한국 남자들은 반드시 무조건 군대에 가야만 했었다.

대재앙이 일어나기 전에 여자들의 군대에 대한 인식은 더욱 확고해져서 한국에서 태어난 남자라면 그저 당연히 군대에 가는 것이며 그것은 세상이 망하기 전에는 절대로 변하지 않을 진리처럼 여겨졌었다.


“그래. 이현이 네 말이 맞지. 근데 우리 가족들도 사라졌으니 이거 어쩌냐.”


나라가 망해버리거나 폭파되는 건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군인이었던 이들 셋에게 있어서는 그다지 상관없었으나 고향에 있던 가족들이 사라져버렸고 집은 무너져 폐허가 돼버린 건 큰 문제였다.


“아, 씨. 존나 덥네. 무슨 날씨가 이리 더워?”

“아오. 진짜 세계가 망하려나 보다. 후우.”


극심해져 가는 지구온난화로 9월 말인데도 날씨는 찌는듯한 더위가 이어지고 있었다.

식량을 찾아서 가게들을 돌아다니며 터벅터벅 길을 걷던 단우 일행은 더위로 온몸에서 땀이 흐르자 하는 수 없이 폐허의 그늘 아래에 털썩 앉으며 이마에 흐르는 땀을 손등으로 훔쳤다.


“아. 덥다, 더워.”

“야. 단우야. 저기 봐. 누구 온다.”


김단우는 눈을 가늘게 뜨고 유심히 빠르게 걸어오고 있는 사람을 살펴봤다. 단우 일행에게 접근해오고 있는 사람은 다름 아닌 젊은 여인이었다.


“도와주세요! 제 여동생이 약탈자들에게 잡혀갔어요! 부탁이에요! 도와주세요!”


젊은 여인은 발을 동동 구르며 눈물을 글썽이고 어깨에 총을 차고 있는 단우 일행에게 울먹이며 슬픔으로 몸을 덜덜 떨었다.

상황이 심상치 않다고 느낀 셋은 서로 눈빛을 교환하며 젊은 여인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려줬다.


“알았어요. 알았으니까 좀 진정하고 차분하게 말해봐요.”


여인은 자신의 이름이 김수아라고 했다.

간신히 진정한 수아는 근처에서 약탈자들을 최대한 피해가며 여동생과 숨어 살았었는데 최근에 약탈자들에게 습격당했다는 사실을 셋에게 털어놓았다.

수아의 이야기를 모두 들은 주호는 굳은 얼굴로 고개를 크게 가로저었다.


“아. 안 돼, 안 돼. 너무 위험해요. 그 놈들. 다 총 갖고 있죠? 사정이 딱한 건 알겠는데 지금 같은 상황에서 사람 구하러 가는 게 쉬운 게 아니에요.”

“그럼 구해주지 않겠다는 거예요? 당신들은 군인이잖아요! 군인이면 나라를 위해서 국민들을 보호해야 되는 거잖아요! 내 여동생이 잡혀갔다니까요? 구해주지 못하겠다는 말이 나와요, 지금?”

“이봐요. 뭔가 착각하나 본데 나라는 망했고 정부는 사라졌어요. 우리가 군복 입고 있을 뿐이지 이젠 군인이 아니다 이거예요. 그리고 군인이 무슨 노예입니까? 뒤질 자리일 게 뻔한데 목숨 걸고 거기까지 구하러 가게? 군인이면 무조건 뒤질 거 알면서도 다 가서 뒤져야 되냐구요, 지금.”


한국에서는 2030년이 지나가자 여성의 인권은 그야말로 엄청난 전성기를 이루었고 너무나도 여성의 인권이 극심하게 높아지자 무의식적으로 군대에 끌려가는 한국 남자들을 노예처럼 생각하는 한국 여성들이 굉장히 많아져 버렸다.

좋은 영향이 있으면 좋으나 안 좋은 영향도 너무나도 많아졌기에 한국 남자들이 군대에 강제적으로 끌려가면서도 가슴에 품고 있는 분노는 시간이 흘러갈수록 더욱 높아질 수밖에 없었다.


“당연하지! 당신들은 군인이잖아요! 군인이면 위험하더라도 당연히 국민을 위해 헌신해야죠!”


안타깝게도 수아는 대의명분을 말하면서도 속으로는 한국 남자가 노예나 다름 없다고 생각하는 여자였다.


“나 군인 아니라니까? 내가 왜 당신 여동생을 목숨 걸고 구하러 가야 되는데? 거기 가다 내가 뒤지면 당신 책임 질 수 있어?”

“주호야. 그만해.”


단우는 씩씩거리며 분노하는 주호의 어깨를 붙잡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주호가 분노하는 이유와 그것이 타당하다는 사실을 단우는 충분히 알고 있었으나 총을 소지하고 있는 남자로서 힘이 약한 여자가 곤경에 처했다고 하니 그냥 내버려 두기는 영 마음이 시원치 않았다.


‘어떻게 할까.’


병장이었던 단우는 사실상 무리의 리더나 다름없었다.

이현과 주호의 말은 충분히 일리가 있었다. 약탈자들이 총을 소지하고 있다면 여인 한 명을 구하러 가는 것은 너무나도 무모한 짓이었다.


“흑······ 흐흑······ 으흐흑······.”


수아는 허리를 숙이더니 어깨를 들썩이며 서럽게 눈물을 흘렸다.

수아의 눈물은 사실은 어느 정도 감정을 쏟아 올린 연기였으나 군대에서 나온 지 얼마 안 되어 순진한 단우의 마음은 조금씩 흔들리고 있었다.

단우에게는 수아가 그저 서럽게 울고 있는 불쌍한 여자처럼 보였다.

깊게 고민하던 단우는 이윽고 한숨을 쉬며 주호와 이현을 한 명씩 바라봤다.


“그냥 도와주러 갈까?”

“미쳤어? 거기 가다 잘못하면 뒤져. 여기까지 오면서 폐허에 숨어있던 사람들 봤잖아. 다들 제정신이 아니라고.”

“으흑······ 으흐흑······.”


수아가 더욱 서럽게 울어대자 주호는 머리를 벅벅 긁으며 한숨을 쉬었다.


“아, 진짜. 돌아버리겠네.”

“수아 씨. 거기에 총을 소지한 놈들이 있었나요?”


눈물이 젖은 눈을 굴리며 약탈자들의 신상을 떠올리던 수아는 워낙 황급히 도망치던 바람에 놈들이 어떤 무기를 갖고 있었던 건지 잘 떠오르지 않았다.


‘상관없겠지? 그냥 적당히 둘러대자.’


“으흑······ 거기에 총을 든 놈은 없었어요.”

“한 명도 없었나요? 확실한가요?”

“네······ 정말이에요.”


사실 놈들이 어떤 도구를 갖고 있을지는 전혀 몰랐으나 수아는 눈물이 젖은 눈으로 더욱 애처롭게 셋을 바라보며 능청스럽게 거짓말을 했다.


“아, 씨. 어쩌지?”

“총 없으면 해볼 만도 하긴한데.”


수아의 말을 믿어도 되는지 서로 대화를 나누며 조금 고민하던 셋은 이윽고 결심을 한 표정으로 수아를 바라봤다.


“알겠어요. 그럼 놈들한테서 여동생을 구하는 것까지만 도와드릴게요. 그 이상은 저희들도 어려워서 안 돼요.”

“감사해요! 역시 당신들은 진정한 훌륭한 군인이시군요!”

“이봐요. 그딴 말은 절대로 하지 마요. 듣기 싫으니까. 퉷!”


수아의 말이 마치 진정한 노예라는 말처럼 들려서 속이 거북해진 주호는 인상을 쓰며 거칠게 바닥에 침을 갈겼다.


“시간 끌지 말고 후딱 갑시다.”


‘십새끼. 나라의 노예 주제에 존나 나대네.’


수아는 속으로 주호에게 차마 입에 담기 어려울 만큼 험한 욕설들을 쉬지 않고 생각하면서도 겉으로는 활짝 미소를 지으며 앞장섰다.


“따라오세요! 제가 거기로 데려다드릴게요.”



수아가 셋을 데려간 곳은 허리가 잘려나간 반파된 허름한 빌라가 잘 보이는 아파트였다.

아파트의 6층 방에서 벽 뒤에 숨어 베란다의 창문으로 힐끔힐끔 놈들을 확인한 수아는 심장이 벌렁거려 크게 숨을 몰아쉬었다.


“저기에요. 저 빌라에 있는 놈들이 제 여동생을 잡아갔어요.”


반파된 빌라의 입구는 덩치 큰 거한 두 명이 지키고 있었다.

유심히 보초들을 주시한 주호는 턱을 쓰다듬으며 눈을 깜빡였다.


“진짜 총은 없는 것 같은데?”

“총만 없으면 간단하지. 어쩌면 해볼 만 할지도 모르겠어.”


일반적인 현대의 인간에게 있어서 총이란 절대적인 무기였다. 먼저 쏘면 끝낼 수 있기에 총이 가지는 무력은 일반인들 사이에서 가히 절대적이었다.


“그럼 우리끼리 가서 수아 씨 여동생만 데려오자.”


지금 아파트에서 선제 사격을 하면 굉장히 유리한 위치를 선점할 수 있으나 그동안 현대인으로 살았던 셋에게 있어 정말로 사람을 총으로 쏜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셋이 소지하고 있는 소총은 실제 실탄이 들어있는 K3였으나 실제 쏘지는 않고 적당히 위협만 해서 여인을 구출할 생각이었다.


“수아 씨. 지금 수아 씨 여동생 얼굴을 아는 사람은 여기서 수아 씨 밖에 없으니까 수아 씨는 뒤에서 천천히 따라와요.”

“네!”


수아가 눈물을 글썽이며 크게 고개를 끄덕이자 셋은 서로 각오를 굳힌 눈빛을 교환한 뒤에 천천히 아파트 계단을 내려갔다.


“아, 씨. 이거 잘하는 짓인가 모르겠네.”

“진짜 여동생만 구해주고 가자. 우리가 이렇게 해서 얻는 게 뭐가 있다고 이렇게 하냐?”


그동안 돌아다니며 약탈자들이 여자나 노인처럼 무력이 약한 인간들에게 무슨 짓을 했는지 어느 정도 보았었기에 셋은 무의식적으로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근처에 무너진 주택의 벽 뒤에 숨어 서로 눈빛을 교환한 셋은 적을 위협하기 위해 총구를 앞으로 겨누며 빠르게 빌라로 튀어 나갔다.


“움직이지 마! 이 사람 여동생 지금 어딨어?”


단우 일행이 총구를 앞으로 세우며 보초들을 위협하자 뒤에서 눈치를 보고 기다리고 있던 수아가 굉장히 빠르게 달려오며 큰 목소리로 소리쳤다.


“씨발 새끼들아! 내 여동생 데려와! 당장!”


수아가 아까 전과는 다르게 입이 몹시 거칠고 사나워서 단우 일행은 내심 당황하고 있었다.

양손을 머리 위로 올리고 몹시 긴장한 보초들은 손가락으로 빌라의 문을 가리켰다.


“2층 끝방에 가면 있어. 아무 짓도 안 했으니까 데려갈 거면 빨리 데려가.”


서로 눈빛을 교환하며 고개를 끄덕인 단우 일행은 재빨리 빌라로 달려가며 계단을 올라갔다.

대재앙 이후 변해버린 한국은 이제 항상 전쟁 상태나 다름없었고 사람들은 굶주려 서로 죽이고 강탈하는 경우도 굉장히 흔해졌기에 단우 일행의 심장은 긴장으로 몹시 두근거리고 있었다.

빌라의 복도를 가로질러 끝방에 오자 친구들과 눈빛을 교환한 단우는 거칠게 문을 열어젖히며 앞으로 총구를 내밀었다.


“다들 손 위로 올려! 당장 이 사람 여동생······ 어?”


방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무언가 잘못됐다는 것을 눈치챈 이현이 재빨리 방을 튀어 나갔으나 때는 이미 늦은 뒤였다.


타앙!


“크아아아!”


날카로운 찢어지는 거대한 총성이 울리는 것과 동시에 이현이 허벅지를 붙잡으며 바닥을 뒹굴었다.

이현은 허벅지에 총을 맞은 건지 군복을 입고 있는 다리에서는 붉은 핏물이 쉬지 않고 쏟아져나오고 있었다.

어느새 복도에는 총을 든 놈들이 방의 입구를 완전히 틀어막고 있었다.


“씨발!”


낯빛이 하얗게 질려 몹시 긴장한 단우 일행이 총구를 앞으로 겨누며 놈들에게 총을 쏘려고 했으나 그때는 이미 늦어버린 뒤였다.


탕! 타앙-!


일반인의 기준에서 총이란 먼저 쏘면 끝나는 무기였다.


“크아악!”

“크으으윽!”


약탈자들은 이미 사람을 죽여본 적 있는 정신 나간 무리들이었고 단우 일행은 전까지 현대인으로 살았던 정상적인 남자들이었다.

사람에게 총을 쏴 본 적이 지금껏 단 한 번도 없었기에 단우 일행이 총을 쏘려는 행동은 약간 지체돼버렸고 그것이 엄청나게 극심한 차이를 만들어버렸다.

단우는 팔에 그리고 주호는 다리에 각자 총을 맞아버렸고 그동안 총에 맞아본 적이 없는 둘에게 있어 극심한 고통은 패닉에 빠지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아이구야. 아이구야. 어린 놈들이 어쩌다 총 들고 여기까지 왔어? 느그들 군인이었냐? 여적 군복을 입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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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출진 24.04.21 60 1 12쪽
30 이면 24.04.15 66 1 11쪽
29 소나라의 왕녀 24.04.09 80 1 11쪽
28 아버지의 마음 24.03.20 118 1 12쪽
27 귀환 24.03.18 139 2 12쪽
26 다시 만난 처자 24.03.17 137 1 11쪽
» 병장과 상병과 일병 24.03.16 144 2 12쪽
24 빛의 마법사 24.03.05 148 1 11쪽
23 늦은 밤의 기나긴 대화 24.02.27 168 1 12쪽
22 장왕 24.02.24 188 0 12쪽
21 감기약 24.02.22 214 2 11쪽
20 기억의 편린 24.02.17 231 3 12쪽
19 세 가지 부류의 인간 24.02.15 256 2 12쪽
18 폭우가 지나간 자리 24.02.09 295 2 12쪽
17 간발의 차이 24.02.08 309 2 12쪽
16 살아남은 인간 24.02.07 339 4 11쪽
15 소문 24.02.05 370 2 12쪽
14 방주 점검 24.02.04 429 4 12쪽
13 목숨을 건 비무 24.02.03 447 4 12쪽
12 약탈의 시대 +2 24.02.02 533 3 12쪽
11 상승의 경지 +2 24.02.01 610 5 12쪽
10 비울수록 버릴수록 채워진다 24.01.31 622 5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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