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 죽이면 그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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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기꿀호빵
작품등록일 :
2024.01.19 12:33
최근연재일 :
2024.07.24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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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2.01 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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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상승의 경지

DUMMY

우진을 바라보던 백은문의 무인들의 눈동자가 파르르 좌우로 흔들렸다.

믿을 수 없었다.

분명 방금 전까지 간신히 숨만 붙어있던 시체나 다름없지 않았던가?

어떻게 살아있는 것인가?

단순히 죽기 직전에서 살아난 정도가 아니었다.

다르다. 이젠 백은문의 무인들도 조금씩 눈치채고 있었다.

아까와는 다른 사람이라고 느껴질 정도로 우진은 변해있었다.

방주의 주민들을 지켜보던 우진의 눈빛이 뜨거운 분노로 일렁거렸다.

여자들의 찢어져 나간 옷. 몸을 끌어안고 고개를 숙이고 있는 여인들.

백은문의 무인들이 무슨 짓을 저지르려고 했는지는 그다지 어렵지 않게 유추할 수 있었다.


츠팟!


순간 우진이 눈앞에서 사라졌다. 적어도 백은문의 무인들에게는 그렇게 보였다.


“컥!”

“크아아!”


우진이 섬전처럼 사방을 휩쓸고 지나간 건 순식간이었다.

장내는 처참했다.

배가 뚫린 시신. 가슴이 뚫려 내장이 갈가리 찢어진 시신. 눈을 부릅뜨며 경악에 가득한 얼굴로 절명해버린 시신.

죽은 백은문의 무인들의 표정은 하나같이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공포와 절망이 가득했다.

어느덧 백은문의 무인은 단 한 명. 묘남천만이 남아 있었다.

우진을 지켜보고 있던 묘남천의 관자놀이를 타고 식은땀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그래. 제법 실력은······.”


순간 우진의 몸이 시야에서 사라졌다.

당황하여 눈을 크게 뜬 묘남천의 지척까지 순식간에 섬전처럼 쇄도한 우진의 주먹이 허공을 터트리며 사방에서 난무했다.


콰콰콰콰콰!


파극주야(破極晝夜), 파극무월(破極無月), 파극천구(破極天球), 파천신월(破天神月), 파천유열(破天有熱)로 초식이 순식간에 이어지며 묘남천의 온몸을 난타했다.


“커헉!?”


미처 막을 사이도 없이 이어진 기예에 가까운 초식의 폭우에 묘남천의 몸이 갈피를 잃어버린 풍연처럼 사방으로 흔들렸다.

여지껏 태어나서 이토록 일방적으로 당했던 적이 있던가? 없다. 이런 일방적인 폭행과 고통을 당해보는 건 묘남천에게 있어서 처음 있는 일이었다.

백은문에 처음 입문했을 때부터 모두가 묘남천을 떠받들어줬고 모든 관심과 사랑은 묘남천의 차지였다.

어렸을 때부터 하늘에 있기 위해 태어났으며 하늘에 걸맞는 남자라고 묘남천은 언제나 스스로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런 묘남천이 지금은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자신보다 한참이나 어려 보이는 젊은 놈의 주먹에 묘남천은 무력하게 난타당하며 밀려 나가고 있었다.


“크윽······ 크으으······! 기어오르지 마라! 애송이!”


폭풍처럼 초식을 퍼부우던 우진은 잠시 주먹을 멈추며 묘남천을 지켜봤다.

갑작스러운 우진의 돌변에 묘남천이 당황하며 눈을 크게 끔뻑거리자 우진은 깊이를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무겁게 가라앉은 눈빛으로 묘남천을 지켜보며 검지 손가락을 까딱였다.


“덤벼.”


그제야 묘남천은 우진이 이젠 자신을 명백히 하수로 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솟구치는 분노로 묘남천의 이마에 굵은 힘줄이 툭 튀어나왔고 온몸을 타고 유형의 푸른 기운이 일렁거렸다.

묘남천의 몸 주변으로 용오름이 일어나며 날카로운 폭풍이 휘몰아쳤고 칼날처럼 사방을 베며 지나갔다.


“너는 방금 손을 멈춘 것을 평생토록 후회하게 될 것이다.”


순간 둘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를 향해 돌격했다.


콰아아!


“꺅!”


멀리서 지켜보고 있던 오퍼레이터가 둘이 부딪치자 사방으로 터져 나오는 풍압을 이기지 못하고 쓰러졌다.

지켜보고 있던 금 장문인이 눈을 치켜떴다.

묘남천의 주먹이 우진의 가슴에 한 치 정도 떨어져 있었다. 가슴에 붉게 피멍이 생겼으나 그다지 심한 부상으로 보이진 않았다.

묘남천의 상태는 처참했다.

시뻘건 양강의 기운이 일렁이고 있는 우진의 주먹이 묘남천의 복부를 관통해있었다.

붉은 화염이 일렁이는 주먹을 우진이 뽑아내자 충격으로 몸을 떨던 묘남천의 입에서 시꺼먼 핏물이 왈칵 쏟아져 나왔다.


“그건 무슨 초식이냐?”

“무극무야광천하(武極無夜光天下)다.”

“훌륭한 일격······ 커헉!”


뒤로 힘없이 쓰러지며 부르르 몸을 떨던 묘남천은 눈을 부릅뜨고 숨을 거뒀다.

가슴에 손을 모으고 지켜보고 있던 단아가 황급히 달려들며 우진을 끌어안고 은서가 미소를 지으며 어깨를 붙잡자 장내에 있던 오퍼레이터들이 크게 한숨을 쉬며 주저앉았다.


“살았다······.”


방주의 주민들이 가슴을 쓸어내리며 안도하는 사이 밖에서 어두운 흑의를 입은 여인이 방주에 뛰어 들어왔다.

바닥을 흠뻑 적신 핏물과 처참하게 쓰러져있는 시신들을 보는 여인의 눈동자가 파르르 흔들렸다.

백은문의 제자, 군미옥은 뒤늦게 후회가 밀려왔다.

억지로라도 동문들을 말렸더라면 하다못해 사제들이라도 말렸다면 이런 참변은 일어나지 않았을 거라는 후회는 걷잡을 수 없었고 가슴은 슬픔으로 무거워졌다.

동문의 시신을 보던 군미옥의 시선이 서서히 우진에게로 향했다.

끝을 알 수 없을 정도로 깊게 가라앉은 한 쌍의 눈이 군미옥을 바라보고 있었다.


‘애초에 처음부터 저 자에게 칼을 겨누지 말았어야 했어······.’


군미옥은 황급히 우진의 앞에 달려가서 땅에 머리를 부딪치며 절을 올렸다.


“공자님! 부디 크나큰 하해와 같은 아량을 베풀어 본문의 제자들의 시신을 데려가는 것을 허락해주셨으면 합니다!”


우진은 차갑게 가라앉은 눈빛으로 절을 올리고 있는 군미옥을 내려보고 있었다.


“사제.”


옆에 있던 단아가 우진의 팔을 붙잡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는 우진은 닫혀있던 입술을 움직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오늘 백은문이 저지른 행동은 처벌받아 마땅한 극악무도한 만행이었다. 하지만 그대가 진심으로 간청했기에 청을 허락해주겠다.”

“감사합니다! 공자!”


군미옥은 바닥에 머리를 부딪치며 더욱 깊게 절을 올렸다. 황급히 백은문의 무인들의 시신을 벙커 밖으로 옮기는 군미옥을 우진은 깊게 가라앉은 눈빛으로 지켜봤다.



밤이 늦도록 방주에서는 수리 공사가 한창이었다.

묘남천에게 방주의 동체가 20% 이상 파괴되었기에 혹시라도 모를 사태를 대비하여 서둘러서 수리를 해놓을 필요가 있었다.


“어이. 장 씨. 오늘 낮에 아크 로드님 봤어?”

“그래. 당연히 봤지.”

“움직이는 게 총알보다 빠르지 않았던가? 사람이 그렇게 갑자기 사라졌다가 저짝에서 나타나고 이짝에서 나타나는 게 가능한거여?”

“그러게 말이여. 나도 처음 봤을 땐 깜짝 놀랐다니까? 요즘 세상이 그런 게 가능한 사람이 있었다니······.”


기술자들 사이에서는 우진이 보였던 상식을 뛰어넘는 무예에 대한 대화가 한창이었다.



연공실에서 나오는 우진의 눈동자는 깊고 신묘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사제!”


뒤를 돌아보자 단아가 밝게 미소를 짓고 있었다.

단아는 오늘 기분이 좋은지 평소에 입고 다니던 하얀 도복이 아닌 하얀 와이셔츠와 무릎까지 오는 검은색 플리츠 스커트를 입고 있었고 아래로는 검은색 니삭스와 검은색 앵클 부츠를 신고 있었다.


“저녁 먹었어?”

“아직 안 먹었습니다.”

“그럼 지금 먹으러 가자!”

“네.”


우진의 눈빛은 깊고 신묘하여 무슨 생각을 하는지 읽을 수가 없었다.

예전에는 손에 닿을 듯 가까웠는데 언제 이렇게 서로 격차가 벌어지게 된 걸까.

단아는 이대로면 우진이 더는 건드릴 수 없을 만큼 멀어질까봐 괜히 불안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단아의 손에 이끌려 우진은 방주의 지하 2층에 있는 식당으로 들어갔다.






방주로부터 서쪽으로 20km 떨어져 있는 황무지에서 흑색의 기모노를 입은 사내들이 방주를 노려보고 있었다.


“다이스케. 사실이냐?”

“네. 어제 벙커에 있던 놈이 아문왕과 싸워 크게 다친 것을 제가 두 눈으로 똑똑히 봤습니다.”

“크흐흐!! 하늘이 우리 카게류의 편을 들어주는구나!”


흑색 기모노를 입은 무리는 다름 아닌 일본에서 건너온 사무라이들이었다.

거대한 해일과 지진에 휩쓸리고 화산의 폭발로 초유의 피해를 입은 일본은 이제 사람이 살기에는 너무나도 척박한 섬이었다.

백두산의 폭발로 북한이 사라져버리며 대재앙으로 중국이 회생 불가능한 극심한 피해를 입은 지금 그나마 아직 사람이 살아갈 수 있는 나라는 한국밖에 없었다.

2년 전에 있었던 엄청난 한류의 여파로 대부분의 일본인들은 꽤 유창하게 한국말을 할 수 있었다.

만약 우진이 아문왕과 목숨이 오고 가는 사투를 벌이지 않았다면 사무라이들은 절대로 방주 근처에 오지 않았을 것이다.

약자에게는 한없이 강하며 강자에게는 한없이 약하고 은밀하게 속내를 감추는 건 대부분의 일본인들이 갖고 있는 습성이었다.

카게류. 실전됬다고 알려져있는 일본의 검술은 사실 비밀스럽게 명맥이 이어져 오고 있었고 고대부터 내력을 보유하고 있는 사무라이들의 전력은 가히 중국에 못지않았다.

히카루는 얼굴이 일그러질 만큼 크게 웃으며 천천히 방주를 향해 걸어갔다.


“히카루 씨! 설마 지금 습격하려는 겁니까?”

“그래! 놈이 크게 부상을 입은 지금이 기회다!”

“하지만 사범님께서 기다리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멍청한 놈! 언제까지 사범님 눈치만 보고 살 것이냐?”


다이스케가 주저하며 고개를 숙이자 히카루는 멀리 보이는 커다란 벙커를 보며 힘주어 말했다.


“우리가 저 벙커를 뺏는다면 사범님께서 무척이나 기뻐하지 않겠느냐? 더 이상 기다릴 필요 없다. 가자!”


히카루가 빠르게 몸을 날리자 주변에 있던 문하생들이 뒤를 따랐다.

벙커의 굳게 닫혀있는 두터운 철문 앞에 오자 히카루는 눈을 치켜뜨며 큰 목소리로 소리쳤다.


“당장 방주의 주인은 밖으로 나와서 우리 일본의 사무라이들에게 예의를 갖춰라! 순순히 벙커를 바친다면 쓸데없는 피를 뿌리는 일은 생기지 않을 것이다!”


히카루는 내심 언제나 일본인이 세상에서 가장 우월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겉으로 내색하진 않아도 한국의 영토는 결국 일본의 토지나 다름없다는 생각이 은연중에 깔려있었다.



오퍼레이터의 다급한 호출에 지휘작전실에 온 우진은 스크린으로 고함을 지르며 게이트 밖에서 소란을 피우고 있는 사무라이들을 보며 한숨을 쉬었다.


‘정말이지 조용할 날이 없구나.’


일본에 고대부터 내려오던 사무라이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금 장문인에게 들어서 이미 알고 있었으나 너무나도 뻔뻔하게 방주를 내놓으라고 하자 너무나도 어이가 없고 황당했다.


“도아 씨. 기계식 방어 모드로 전환하세요.”

“알겠습니다.”


벙커의 외벽에서 수많은 게틀링 건과 포탑이 나타나자 게이트 주변에 있던 사무라이들이 몹시 당황하며 뒤로 물러났다.


“무례한 놈! 이게 대체 무슨 짓이냐!”

-당신이 먼저 예의를 갖춘다면 나도 당신을 손님으로 대접하겠습니다.


우진이 일부러 과장하여 허세를 부리고 있다고 생각한 히카루는 오히려 더욱 눈을 치켜뜨며 큰 목소리로 소리쳤다.


“당장 총구와 포를 거둬라! 그렇지 않으면 나중에 반드시 후회하게 될 것이다!”


타앙-!


순간 방주의 외벽에 있던 게틀링 건이 히카루의 발치를 사격했다.


“히익!”


식은땀을 흘리며 넘어진 히카루는 공포로 안색이 창백하게 질렸고 턱은 덜덜 떨리고 있었다.


-후회하게 될 건 당신들입니다. 이건 마지막 경고입니다. 손님이라면 손님답게 예의를 갖추세요.


문하생들 앞에서 부끄러운 행동을 했다는 사실에 히카루의 얼굴이 분노와 수치심으로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언젠가 오늘을 반드시 후회하게 될 것이다!”


땅에 발을 크게 구르며 분을 삭이지 못하고 씩씩거리던 히카루가 문하생들을 데리고 도망치듯 자리를 떠나자 스크린을 지켜보던 우진은 한숨을 쉬었다.


‘겁쟁이가 목소리만 우렁차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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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전쟁 24.04.27 63 1 12쪽
31 출진 24.04.21 61 1 12쪽
30 이면 24.04.15 66 1 11쪽
29 소나라의 왕녀 24.04.09 80 1 11쪽
28 아버지의 마음 24.03.20 118 1 12쪽
27 귀환 24.03.18 140 2 12쪽
26 다시 만난 처자 24.03.17 138 1 11쪽
25 병장과 상병과 일병 24.03.16 144 2 12쪽
24 빛의 마법사 24.03.05 149 1 11쪽
23 늦은 밤의 기나긴 대화 24.02.27 168 1 12쪽
22 장왕 24.02.24 189 0 12쪽
21 감기약 24.02.22 215 2 11쪽
20 기억의 편린 24.02.17 232 3 12쪽
19 세 가지 부류의 인간 24.02.15 256 2 12쪽
18 폭우가 지나간 자리 24.02.09 295 2 12쪽
17 간발의 차이 24.02.08 309 2 12쪽
16 살아남은 인간 24.02.07 339 4 11쪽
15 소문 24.02.05 370 2 12쪽
14 방주 점검 24.02.04 430 4 12쪽
13 목숨을 건 비무 24.02.03 448 4 12쪽
12 약탈의 시대 +2 24.02.02 533 3 12쪽
» 상승의 경지 +2 24.02.01 611 5 12쪽
10 비울수록 버릴수록 채워진다 24.01.31 622 5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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