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 죽이면 그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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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기꿀호빵
작품등록일 :
2024.01.19 12:33
최근연재일 :
2024.07.24 21:10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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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4.15 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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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이면

DUMMY

한편 소왕의 벙커에서는 지도를 펼쳐놓고 한창 어디를 치면 좋을지 의논하고 있었다.


“그대들은 혹여 좋은 방책이 있거든 괘념치 않고 자유롭게 말해보시게.”


본래 일본에서 건너왔던 소왕의 진영은 수뇌부 또한 모두 일본인이었다.


“동쪽에 있는 영왕을 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남쪽에 있는 구나라가 요즘 식량이 떨어져서 힘들다고 하니 기회를 놓치지 않고 쓰러트리는 게 좋을 듯 싶습니다.”

“음······.”


소왕이 마음에 드는 전술이 없어 고민하자 옆에 있던 히카루가 고개를 숙이며 진언을 올렸다.


“전하. 지금 북쪽에 있는 염제는 날이 갈수록 더욱 커다란 위험이 되어 저희들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비록 염제는 무가 출중하고 머리가 총명한 책사가 곁에 있사오나 동쪽과 남쪽에 있는 영나라와 구나라와 동맹을 맺는다면 필시 쓰러트릴 수 있으리라 사료됩니다. 그러니 기회를 놓치지 않고 지금이라도 염제를 제거하는 것이 좋을 듯 싶습니다.”

“네 이놈! 무엄하다! 염제의 나라는 우리에게 있어 형제나 다름없는 나라다! 어찌 인간으로 태어나서 피를 나눈 형제를 배반한단 말인가!”


쾅!


소왕은 거대한 지도가 펼쳐져 있는 테이블을 주먹으로 후려친 뒤에도 화가 누그러들지 않아 눈을 부릅뜨며 소리쳤다.


“밖에 있는 근위병은 무얼 하는가! 당장 와서 이 놈을 매로 흠씬 두들겨 쳐라!”


넓고 판판한 몽둥이를 들고 부리나케 달려온 근위병들은 황급히 히카루를 바닥에 강제로 눕히고 거칠게 엉덩이를 몽둥이로 후려쳤다.


퍽! 퍼억!


“으윽!”


거친 소리가 전술실에 울려 퍼지고 엉덩이가 부르터지며 핏물이 튀어 나가자 대신들은 모두 두려워 고개를 옆으로 돌리며 소왕의 눈치를 살폈다.


“으으윽!”


매질이 300대가 넘어가며 히카루가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혼절해버리자 소왕은 눈을 부릅뜨며 주변에 있는 대신들을 둘러봤다.


“지금부터 나와 염제를 이간하려는 자는 이유를 불문하고 모두 형벌을 내릴지니 앞으로는 모두 말을 하기 전에 입을 조심하도록 하여라! 당장 이 무엄한 자를 지하 감옥에 수감하라!”

“옛!”


소왕이 히카루를 손으로 가리키자 근위병들은 재빨리 혼절한 히카루의 몸을 붙잡고 작전실 밖으로 끌고 나가버렸다.



***



소왕이 염제의 벙커를 치자고 했던 히카루를 매질한 소문은 빠르게 주변 나라에 퍼져나갔다.

밖에 있던 정보원의 연락으로 머지않아 방주의 주민들도 소왕의 소식을 알게 됐다.


“이봐! 그 소식 들었어? 소왕이 방주를 습격하자고 했던 대신을 아주 묵사발로 만들어줬다던데.”

“모모코 씨의 아버지가 우리를 그리 각별히 생각해주는지는 몰랐지 뭐야.”

“아무래도 일본 사람이라고 내가 너무 색안경을 끼고 있었나 봐. 앞으로는 모모코 씨한테 더 잘해드려야겠어.”


처음에는 모모코가 일본인이라고 기피했던 사람들은 복도에서 모모코가 보이면 전과는 다르게 친근하게 먼저 다가갔고 마주치면 인사를 하기 일쑤였다.

자상하고 부드러운 아름다운 모모코에게 남자들은 빠르게 마음을 열었고 나중에는 선물을 주는 사람들도 많았다.


“모모코 씨는 의외로 상냥한 사람이었구나.”

“그러게 내가 처음에 말했잖아? 예쁜 여자 중에 나쁜 여자가 세상에 어디 있겠어?”

“처음에는 말 붙이기 어려워서 너무 차가워 보여서 그랬지. 흠흠.”

“모모코 씨는 타지에 와서 힘드시잖아. 우리가 더 잘 해드리자구.”


모모코는 한국어가 유창했으며 방주에 있는 여자들에게도 먼저 말을 걸고 대화를 하기에 주저함이 없었다.

처음에는 아름다운 모모코의 외모와 함께 그녀가 우진의 첩으로 들어왔다는 사실에 질투를 했던 여인들도 자상하고 사려 깊은 모모코의 성격에 감동하여 반성하고 오히려 모모코를 더 좋아하게 돼버렸다.

시간이 흐르자 처음에는 몹시 모모코를 경계했던 자경대원들은 점차 아름다운 그녀를 조금씩 흠모하게 돼버렸고 나중에는 경비가 느슨해져 모모코를 경계하는 자경대원은 사라져버렸다.



“하암······.”


길게 기지개를 켜며 침대에서 일어난 모모코는 천천히 걸어오는 고양이를 내려보며 미소를 지었다.


“안녕하세요, 네로 씨. 잘 잤나요?”


냐옹-.


검은 고양이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모모코의 얼굴은 부드럽고 자애로워 어긋난 사심이라고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다.

모모코가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가장 먼저 하는 건 언제나 탁상에 놓여져있는 꽃의 손질이다.

어젯밤 꽃꽂이를 했던 꽃을 정성스럽게 다듬고 정리해준 모모코는 의자에 앉아 책을 읽었다.

모모코가 지금까지 수십 번도 넘게 읽은 이 책은 여인이 몸가짐을 단정히 하고 아름다운 마음씨를 가지도록 해주는 책이었다. 이미 책의 모든 내용은 눈을 감고 있어도 곧바로 모두 떠오를 만큼 숙지하고 있었으나 모모코는 조금도 지루해하는 기색 없이 책을 읽었다.

아침 8시가 되자 모모코는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연무장으로 향했다.


“안녕하세요, 모모코 씨!”

“안녕하세요. 은호 씨.”

“밤중에는 편안하셨나요?”

“물론이죠. 자경대가 있어 날마다 편안히 잠들고 있답니다.”


처음에는 복도에서 마주쳐도 눈짓조차 주지 않던 자경대원 최은호는 어느새 상냥한 모모코에게 반해버린 지 오래였다.

최은호와 헤어진 모모코는 마침 연무장에서 우진이 나오자 눈을 감으며 기품있게 허리를 숙였다.


“염제님. 별안간 무탈하셨습니까?”

“그래. 아침마다 번거롭게 인사하러 올 필요는 없다고 전에도 말했을 텐데?”

“하오나 소첩에게 있어 아침의 인사는 참으로 중요합니다. 만약 정말로 마음에 들지 않으신다면 내일부터는 오지 않도록 하겠나이다.”


모모코가 아름답고 한편으로는 유약해 보여도 사실은 고집이 상당히 강하다는 것을 알기에 우진은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냥 편한 대로 해.”

“송구합니다, 전하.”

“둘이 있을 때는 전하라고 부르지 말라니까.”


아침 인사를 끝내고 모모코가 지하 3층에 있는 식당에 오자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던 오퍼레이터 여성들이 반갑게 미소를 지었다.


“모모코 씨! 좋은 아침!”

“오늘은 일찍 오셨네요! 벌써 인사드리고 오신 건가요?”

“네! 여러분은 오늘도 활력이 넘치시네요.”


처음에는 모모코를 외지인이라며 싫어하고 기피했던 여성들은 어느새 모모코를 좋아하고 있었다.

모모코가 식탁에 앉아 점잖고 기품있게 천천히 식사를 하자 보고 있던 여성들은 내심 감탄했다.

무릇 식사 뿐만이 아니었다. 길을 걸을 때에도 대화를 할 때에도 사소한 행동이나 말투에도 모모코에게는 규수로서 살아온 기품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왔다.

아침 식사를 끝내고 방에 돌아오자 모모코는 다다미를 깔아놨던 바닥에 앉아 조용히 다도를 했다.

무릎을 꿇고 앉아 다도가 끝나자 다음으로 이어진 건 서예였다.

보고 있는 사람이 없어도 모모코의 행동은 깍듯했으며 몸에 익어있는 예의에는 어긋남이 없었다.

꽃꽂이와 다도, 서예는 모모코가 매일 빼먹지 않고 해오던 일과였다.

본래 모모코의 가문은 기품과 예의를 중요시하는 가문이었기에 일반적인 여성이었다면 답답한 일과를 이기지 못하고 진작에 정신이 나가버렸을지도 몰랐으나 모모코에게 있어서는 이젠 그저 당연한 일과에 지나지 않았다.

서예가 끝나자 모모코는 복도를 걸어 다니며 벙커를 산책했다.


“모모코 씨! 안녕하세요!”

“현우 씨. 오늘도 건강해 보이시네요.”


모모코는 방주에 온 지 겨우 나흘이 지났을 뿐이지만 80명이 넘는 벙커의 주민들의 이름을 모두 머릿속에 기억하고 있었다.

산책을 하던 모모코는 식물 재배실에 오자 식물을 심고 있는 여인들의 곁에서 조심스럽게 작물을 심었다.


“모모코 씨! 이러실 필요 없어요!”

“모모코 씨는 벙커에 오신 귀한 손님이시잖아요. 굳이 손에 흙을 묻히실 필요는 없어요.”

“모든 생명은 무릇 흙에서 비롯되는 법입니다. 어찌 사람으로 태어나서 손에 흙을 묻히기를 멀리하겠습니까?”


하얀 손과 기모노가 흙이 묻어 더러워지는데도 눈 한번 깜빡이지 않고 모모코가 정성을 다하여 흙에 작물을 심자 보고 있던 여인들이 놀라며 감탄했다.

식물 재배실을 나오자 모모코는 여유롭게 복도를 걸어 다니며 벙커를 구경했다. 우진과 더 많은 대화를 하기 위해서라도 앞으로 방주에 대해서 더 많은 것들을 알아야 할 필요가 있었다.


“나 잡아 봐라!”

“기다려!”


10살 남짓의 남자아이 둘은 술래잡기를 하고 있는지 웃으며 복도를 뛰어다니고 있었다.

마침 방에서 복도로 나오던 노인은 미처 달려오던 아이들을 발견하지 못했고 부딪치는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뒤로 밀려나 버렸다.


“어이쿠!”


노인이 신음하며 뒤로 넘어지려던 순간 근처를 지나가던 모모코는 황급히 쓰러지던 노인을 붙잡아 조심스럽게 일으켜줬다.


“어르신. 괜찮으세요?”

“고맙군요, 모모코 씨. 허허. 얘들아. 복도에서는 걸어 다녀야지. 하마터면 허리 부러질 뻔 했잖니.”

“앞으로는 조심할게요!”


아이들이 활기차게 달려가 버리자 김 노인은 허탈한 미소를 지었다.


“원. 녀석들 참.”


김 노인과 헤어진 모모코는 천천히 복도를 걸어 다니며 벙커를 구경했다.

방주는 정말이지 평화로웠다. 길을 뛰어다니는 아이들도 주민들도 고민이나 근심이라고는 얼굴에서 찾아볼 수 없었다.

방주는 모모코의 가문과는 달랐다. 고요하며 조용했어도 모모코의 집안은 언제나 생각해야 하는 것들이 많았다. 집에서는 복도를 걸을 때에도 사소한 말을 하며 대화를 나눌 때에도 언제나 생각하고 혹여나 어긋나는 것들이 있는지 고민해야만 했었다.



모모코는 복도를 걸어 다니며 마주치는 사람들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며 시간을 보내다 보니 시간은 어느덧 밤이 되어 버렸다.


“윤태 씨. 늦은 시간까지 고생이 많으시군요.”

“아닙니다. 자경대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하고 있는 것 뿐이죠.”


복도에서 우연히 마주친 자경대원은 모모코를 신뢰하고 있을 뿐만이 아니라 이름을 기억해주고 있었다는 사실에 뿌듯함마저 느끼고 있었다.

방으로 돌아오자 더는 모모코의 방문 근처에서 경비를 서고 있는 자경대원은 없었다.

밤마다 안전을 지켜주겠다며 방문 밖에 서 있던 보초들이 안전은 허울 좋은 명분이고 사실은 신용하지 못하기에 감시하기 위하여 방 문 밖에 서 있었다는 건 모모코는 처음 방주에 왔을 때부터 이미 눈치채고 있었다.

이젠 밖에서 보초를 서지 않을 정도로 자신을 확실히 믿어준다는 사실이 모모코는 고마울 따름이었다.

서서히 모모코의 얼굴이 얼음장처럼 차가워졌다.

입가에 언제나 걸려있던 자애로운 미소는 점차 흔적도 없이 사라졌으며 아름다운 얼굴은 차갑고 냉엄하여 흡사 아까 전 까지와는 다른 사람처럼 여겨질 정도였다.

모모코는 천천히 공력을 끌어올리며 밖에 사람의 기척이 남아있는지 세심하게 확인했다.

방주에 처음 왔을 때부터 줄곧 귀한 집안에서 곱게만 자라온 가녀린 여인이었던 모모코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남아있는 것은 아주 어렸을 때부터 무예를 익히며 냉철하게 자라온 마음이 얼어붙어 있는 무가의 여식만이 존재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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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전쟁 24.04.27 62 1 12쪽
31 출진 24.04.21 60 1 12쪽
» 이면 24.04.15 66 1 11쪽
29 소나라의 왕녀 24.04.09 79 1 11쪽
28 아버지의 마음 24.03.20 117 1 12쪽
27 귀환 24.03.18 139 2 12쪽
26 다시 만난 처자 24.03.17 137 1 11쪽
25 병장과 상병과 일병 24.03.16 143 2 12쪽
24 빛의 마법사 24.03.05 148 1 11쪽
23 늦은 밤의 기나긴 대화 24.02.27 167 1 12쪽
22 장왕 24.02.24 188 0 12쪽
21 감기약 24.02.22 214 2 11쪽
20 기억의 편린 24.02.17 231 3 12쪽
19 세 가지 부류의 인간 24.02.15 256 2 12쪽
18 폭우가 지나간 자리 24.02.09 295 2 12쪽
17 간발의 차이 24.02.08 309 2 12쪽
16 살아남은 인간 24.02.07 339 4 11쪽
15 소문 24.02.05 370 2 12쪽
14 방주 점검 24.02.04 429 4 12쪽
13 목숨을 건 비무 24.02.03 447 4 12쪽
12 약탈의 시대 +2 24.02.02 533 3 12쪽
11 상승의 경지 +2 24.02.01 610 5 12쪽
10 비울수록 버릴수록 채워진다 24.01.31 621 5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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