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과의 어색한 동침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렇게까지 해 놓냐? 이 나쁜 노랑이 새끼들아!”
우리를 치료해주던 수는 험상궂게 난 상처를 보고는 다시 화가 많이 났는지 노랑이들을 죽일 듯이 노려보며 소리쳤다.
“아, 아야야! 수야! 우리는 괜찮아. 결국은 우리가 동굴 차지 했잖냐! 수가 약도 발라주고 이런 날도 있네. 헤헤헤!”
민기는 동굴 안이 따뜻해서 기분이 좋았는지 수가 약을 발라줘서 들떴는지 기분 좋게 웃어댔다.
“어허헉! 아야!”
그 말이 약 올랐는지 수의 손길이 갑자기 거칠어졌다.
“야아! 민기야! 수가 잘해줄 때 가만있어라. 미안. 수야! 이 녀석 여전하지?”
내가 민기를 째려보며 웃었다.
그 말에 민기를 제외한 모두가 껄껄 웃었다.
“그래도, 미끼 오빠 용감했어. 베이컨을 구하려고 나서고. 대단해!”
수는 예전부터 민기를 미끼라고 불렀다.
그냥 미끼!
하지만 지금은 오빠라는 호칭을 붙이고 있는 것이다.
“아냐. 별 거 아니었어. 우헤헤!”
민기가 뒷머리를 긁으며 멋쩍게 웃었다.
녀석의 눈빛이 단번에 온화해졌다.
수를 쳐다보다가 나와 눈이 딱 마주친 그 녀석에게 내가 따끔하게 경고했다.
“야야야! 꿈도 꾸지 마라. 엉?”
그 말을 듣고 모두가 크게 웃었다.
그날은 우리 모두에게 정말 힘든 하루이기도 했지만 좋은 날이기도 했다.
다 같이 살아서 육지에 도착했고 또 수가 민기 녀석에게 만 년 전 자신이 지나쳤었다고 사과까지 한 날이기도 했다.
민기는 수의 사과에 감동해 눈시울까지 붉혔다.
그 후 며칠 더 비가 미친 듯이 퍼부었다.
동생 말로는 화산이 폭발해 높이 분출된 화산재 때문에 비가 더 오는 거라고 했다.
그 때문에 우리는 밖에 나가서 음식을 구할 엄두도 못 내고 제주에서 비축해 가지고 온 음식들을 노랑이들 몰래 살금살금 먹어야 했다.
노랑이들에게도 나눠줬다가는 우리는 한 끼도 제대로 못 먹고 쫄쫄 굶어야 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끼끼! 끼잉! 끼우!’
그래도 냄새를 맡고 온 노랑이 새끼들이 불쌍했는지 수는 자신의 몫 대부분을 그놈들에게 나눠줬다.
어린 노랑이들은 온갖 귀여운 표정을 지으며 동생에게서 음식을 뺏어 먹었는데, 나는 그게 괘씸해서 놈들을 차버리고 싶었지만 겨우 참고 있었다.
우리와 노랑이들 사이에 생겼던 팽팽한 긴장감이 이틀 쯤 지나자 좀 누그러졌다.
역시 어색한 사이는 반 강제 대면이 답인가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심지어 노랑이 새끼들은 수에게 와서 수의 머리털까지 골라주는 수준이 됐다.
어쩌다 비가 잠깐씩 덜 올 때 노랑이들 선발대가 나가서 먹을 것을 구해 왔는지 녀석들은 또 우리 눈치를 보며 뭔가를 자기들끼리 살금살금 먹기 시작했다.
‘쩝! 쩝! 쩌접!’
그놈들이 하고 있는 것을 보니 우리가 몰래 먹고 있을 때, 그 녀석들은 얼마나 우리가 얄미웠을지 짐작이 갔다.
드디어 시간이 더 흘러 하늘이 맑게 개어 있는 시간이 길어졌다.
마침 먹을 것이 똑 떨어졌던 우리는 교대로 바닷가에 가서 조개를 주워왔다.
그리고 숲속에서, 돌아다니고 있을 지도 모르는 맹수에 주의하면서, 먹을 것을 구하러 다니기 바빴다.
그 즈음 드디어 노랑이들이 물러갔다.
‘끼기! 꾸끼이이! 우하하까! 끼기끽!’
그것들은 어느 맑게 개인 아침, 요란한 소리를 내면서 한 번에 우두머리를 따라 쏙 빠져나갔다.
원래는 나무 위에서 살던 놈들이라 제 살길을 찾으러 간 것이었다.
동굴에 더 머무르다간 언제 맹수들이 덮칠지 모르는 일이었기에 서두른 것일거라 생각했다.
우리는 먹을 것을 찾는 것과 동시에 마른 나무를 열심히 구해오고, 제주에 두고 온 것 대신 쓸 바구니, 그릇 같은 것들을 만드는 재료들도 구하러 바삐 다녔다.
정말 괘씸하게도 노랑이들은 달갑지 않은 선물을 우리에게 주고 갔다.
노랑이들이 물러간 직후 우리는 그놈들에게 얹혀 살던 벼룩들이 우리에게도 옮겨온 것을 알고는 무척 분노했다.
정말 온 몸이 미친 듯이 가렵고 잠을 잘 수 없었다.
어머니는 모기와 각종 곤충을 쫓는 식물을 겨우 구해 와서 불을 내 연기를 피웠다.
며칠 매운 연기와 같이 살다보니 비로소 가려움이 덜해졌다.
그 즈음부터 가끔씩 동굴 앞에는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놓여 진 과일들이 있었다.
‘지 새끼들을 먹여준 수에게 보답을 하는 것이겠지!’
그렇게 싸가지 없고 안하무인인 노랑이들도 은혜를 알긴 아는 구나하고 생각하니 그 놈들이 좀 달라 보이긴 했다.
반면에 베이컨 이 놈은 자기 짝과 신나게 돌아다니는지 터널을 빠져나와 헤어진 후, 코빼기도 한 번 비추지 않았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라고 나는 녀석이 잘 살고 있기를 속으로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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