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를 지워버리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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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ra96
작품등록일 :
2024.05.10 2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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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09 2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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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04 2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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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화. 1부 에필로그 (3)

DUMMY

내가 태어나기 15년 전, 크로노스가 10대 초반의 청소년이던 무렵, 아버지인 우라노스, 오라비인 크로노스와 히페리온, 어머니 가이아, 이 4인으로 구성된 작은 가문인 올림피아 가문의 일원들은 올림포스 산과 아테네 교외에 각각 거처를 두고 소박하게 살고 있었다.

하투사에 살았던 나를 사람들 앞에 끌고나가셨던 것처럼 오라비들에게도 사람들과 어울리는 법을 교육하고 싶어하셨던 어머니의 교육방침 덕에 세 사람은 주기적으로 아테네에 내려가 사람들 속에 섞여 사는 생활을 하곤 했었다. 아버지의 모습은 사람들에게 알려져 있었던 터라 아버지는 아테네에 머무는 일이 없었다. 이 단란한 가족에 불행이 닥치리라곤 아무도 생각하지 못할 만큼 평화로웠다.

그 사건은 아테네에 잠입한 오벨리아의 ‘사냥개’들을 크로노스가 발견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그 일이 있던 당시 크로노스는 이미 능력을 각성했고 능력자를 알아보는 감각, 아버지인 우라노스에게서 물려받은 특수한 감각 역시 깨우친 상태였다. 이 때의 크로노스는 아직 때묻지 않은 순수함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마을을 방문한 능력자 무리에게 호기심을 가졌고 자신을 따라다니는 히페리온을 뒤에 단 채 겁도 없이 사냥개들에게 접근하고야 만다. 그들이 모인 임시 거처에 겁도 없이 접근하려 했던 것.

솔직히 좋은 거처는 아니었다. 인적 드문 곳에 있던 만큼 허름한 집이었고 가까이 접근하는 것 만으로도 집 안의 소리를 들을 수 있을 정도의 오두막이었다. 그들의 입장에서도 이런 곳까지 사람들이 찾아올 일이 없겠다고 여겨 정한 거처임이 틀림없었다. 크로노스와 히페리온은 그렇게 사냥개들의 이야기를 엿듣게 된다. 밖에서 안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만큼 안에서도 밖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법. 운이 나쁘게 기척이 들킨 그 둘은 사냥개들에게 발각되고 말았다.

각성한 로얄블러드인 사냥개들은 제 아무리 잡견이라고 하더라도 일반인들보다 뛰어난 오감을 지녔다. 두 사람이 발각된 건 어찌보면 필연일지도 모른다. 그들은 첩보 활동에 대한 작전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자신들의 신분과 임무 내용까지 떠벌리고 만 상황, 내용을 들은 사람을 살려 둘 이유가 없었다. 그들 입장에선 누가 이렇게 듣게 되더라도 처리하면 그만이었다. 그야, 일반인들은 능력자인 사냥개들에게서 절대로 벗어날 수가 없으니.

하지만 상대는 일반인이 아니었다. 능력을 각성했던 크로노스는 저항을 할 수 있었다. 수확의 낫을 소환하여 자유자재로 다루는 능력을 쓸 수 있었다. 하지만 그걸로 히페리온을 지켜내는 것은 무리였다. 목숨을 걸고 임하는 전투에 경험이 없었던 크로노스는 방어적인 태세를 취한 끝에 히페리온을 잃었고, 공포가 아닌 분노가 몸을 지배하고 나서야 공격적으로 낫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우라노스의 피를 가장 진하게 이은 덕에 잡견들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뛰어난 무력과 짐승 같은 야성을 기반으로 한 전투감각을 활용해 사냥개들을 소탕하는 것에 성공한다.

이 일을 알게 되어 격노한 우라노스가 오벨리아 땅에 쳐들어 가 도시 하나를 혼자서 파멸시킬 무렵에 그 일은 크로노스에게 큰 상처가 되어 있었다. 더 이상 아테네에 나가는 것을 포기한 크로노스는 때마침 올림포스에 놀러 온 네메시스를 만나게 된다.

네메시스는 크로노스의 눈을 바라보고 나서 크로노스에게 싸우는 방법을 가르쳐 주기 시작했다. 투기 서린 그 눈을 마주한 네메시스의 즐겁다는 얼굴이 그녀가 무슨 생각으로 크로노스를 지도했는지 이야기해주기도 했다.

그 순간부터 크로노스는 단 하나의 목적을 위해서 힘을 길렀다. 어머니는 그걸 말릴 수 없다고 느끼자 아테네에 머물렀을 무렵 크로노스와 가장 친했던 여자아이인 ‘레아’를 반려로써 올림포스에 데려왔다. 크로노스는 레아와 다시 마주할 때 까지만 해도 힘을 기르던 목적을 포기하지 않았다. 히페리온을 죽게 만든 오벨리아의 ‘라’에게 복수한다는 목적을.

어머니는 그런 크로노스에게 레아를 붙여주었다. 역시나 어머니는 현명했던 것이다.

사람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도 특별하고도 각별한 일이다. 크로노스와 레아가 어울리는 동안에 크로노스의 타오르던 복수심은 천천히, 다른 종류의 강렬한 감정이 되었다. 자신이 새로 얻은 가족을 지키겠다는 강한 의지가 된 것이다. 잃었던 것이 소중했기에 타올랐던 감정이 다시금 소중한 것을 얻게 되자 마치 대장장이들이 열기로 금속을 재련하듯 강하게 굳어가기 시작했던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그 의지가 뻗어나간 방향이었다. 그 방향이 마냥 그릇된 방향이었다고 나는 생각하지 않는다. 크로노스의 의지에도 나름 일리가 있었으니까. 다만 좀 더 현명했더라면, 크로노스가 그 일을 실천하는데에 있어서 조금만 더 차분했더라면, 그의 정신상태가 조금만 더 안정되어 있었다면 지금 같은 일들은 잃어나지 않았을 것이란 것 하나는 확신할 수 있다.

크로노스는 아테네에서 히페리온을 잃었다. 그랬기에 크로노스는 ‘싸우게 된다면 적지에서, 올림피아의 사람들이 위험에 노출되어선 안 된다.’ 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랬기에 아버지에게 항상 올림피아를 위협하는 외세를 먼저 쳐서 없애버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아버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적어도 크로노스의 기억 속에서 아버지의 태도는 완고했다. 아마도 수년간 끊임없이 그 설득을 해왔겠지만 최후의 순간까지 아버지는 그걸 허락하지 않았으니까.

자신의 의견이 거절당할 때, 크로노스의 의지가 부정당할 때면, 그럴 때 마다 사냥개에게 사냥당하는 히페리온이 모습이 밤마다 꿈에 나와서 크로노스를 괴롭혔다. 그리고 그 꿈 속에서 히페리온은 때로는 레아의 모습으로 때로는 헤스티아의 모습으로, 때로는 어머니의 모습으로 변하며 크로노스를 끝없이 괴롭혔다.

상처가 아물기도 전에 흉을 긁어내는 것과 비슷한 이치였다. 어떤 상처든 낫기 전에 긁어내면 온전히 나을 일이 없기 마련이다. 크로노스에게는 그 날의 그 기억이 끝없는 트라우마가 되어 자신을 갉아먹었던 것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크로노스의 가족은 늘어갔고 지켜야 할 사람들이 나날이 늘어났다. 그리고 어머니가 뒤늦은 나이에도 나를 세상에 태어나게 해주셨을 때, 잃어버린 동생과는 다른 또 다른 동생이 크로노스에게 찾아왔을 때, 그의 수확의 권능은 결국 초월하게 된다.

초월해버린 크로노스는 자신이 어떤 능력을 깨달았는지 앎과 동시에 이 능력이라면 자신의 의지를 실천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처음 초월한 크로노스의 ‘수확’은 상대를 죽음에 이르게 만든다는 부작용이 있었지만 우리가 고전했던 ‘수확’ 그 능력 자체를 개화했다는 건 아버지가 억눌렀던 크로노스의 의지, 당하기 이전에 공격한다는 그 마음에 불을 지폈다.

수확한 상대의 능력을 그대로 가져다 쓸 수 있다는 힘은 바꿔 말하면 ‘최강의 능력을 손에 얻는다.’는 걸 가능하게 해 주는 힘이었으니까. 더 이상 억눌릴 필요가 없게 되는 것이니까. 그랬기에 그 힘은 매일밤 악몽에 시달리던 크로노스에게 홀린 듯한 선택을 강요하고야 만다.

크로노스는 자신이 직접 아버지의 힘을 휘둘러 자신의 뜻대로 칼을 휘두르려 했다. 크로노스가 네메시스에게 했던 이야기엔 거짓이 섞여있었던 것이다. 크로노스는 아버지를 죽이고 초월한 것이 아니라 초월했기에 아버지를 죽였던 것이다.

그리고 그날 크로노스가 홀린 듯 일을 벌인 그 날, 크로노스가 지키고 싶어했던 자신의 가정은 파국에 이르게 된다. 어머니는 눈물을 흘리며 올림포스를 떠났고 레아는 크로노스에게 실망해 매일 그와 싸웠다. 크로노스는 뒤늦게나마 자신이 무슨 짓을 벌인 것인지 깨달았지만 이미 자신이 지켜야 할 모든 것들이 자신의 손을 떠난 뒤였다.

그리고 얄궂게도 그 후회 탓에 그는 한 번 더 초월을 하게 된다. 상대를 죽이지 않고도 수확을 할 수 있게 되었으며 능력이 없는 상대라도 그 힘을 휘두르는 게 가능하게 되었다. 감지능력마저도 초월에 이르러 미각성자의 잠재력마저도 꿰뚫어 볼 수 있게 되었고 동시에 복수의 권능을 수확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가족들의 신뢰를 잃어버린 크로노스는 이미 꺾여있었다. 자신을 잃어 실의에 빠진 상태였다. 여기서 얼마나 더 강해진다고 한 들 더 이상 그의 의지를 관철하며 전진할 의미가 그에겐 더는 없었다. 그렇지만 모든 걸 내던질 수도 없었다. 왜냐하면 남아있는 가족들이 그에게는 너무나도 소중했으니까. 신뢰를 잃어버린 자신이라도 서 있지 않으면 가족을 지킬 수 없었으니까.

이미 자신이 돌이킬 수 없는 짓을 했다는 걸 알아서일까? 자신이 용서받아야 한다는 생각 같은 걸 하지 않았던 걸까? 날씨의 권능을 손에 넣었다고 한 들, 그 어떤 권능을 추가로 더 손에 넣는다고 한들, 단신으론 내세를 지키면서 외세를 모두 격퇴할 수 없다는 걸 아는 크로노스는 한가지 결단을 내리게 된다.

그는 자신의 아들 제우스에게 타도해야만 할 ‘악’이 되었다. 언젠가 그가 성장해 자신을 꺾어줄 날을 고대하며 스스로 ‘시련’이 되었다. 그렇게 자신을 꺾어낼 정도로 강인해진 제우스가 자신이 없는 올림포스를 지켜주길 바라면서. 다른 모두의 인정과 신뢰를 받아 현명하게 세력을 이끌기 바라면서.

크로노스는 ‘날씨’의 권능을 포기했다. 그걸 손에 쥐고 있는 한 제우스가 어느 누구의 도움을 받더라도 자신을 이기는 게 불가능했다고 생각했으니까. 그 대신 ‘대지’의 권능을 손에 쥐었다. 제우스의 벼락에 대처할 힘을 가지고 있는 한 제우스는 자력으로 자신을 이겨내는 게 불가능했으니까.

제우스가 자식들을 늘려가며 미래를 그리고 있을 때에는 철저하게 그 희망을 밟아 주었다. 자신을 향한 원한을 증폭시키기 위함도 있었고 이 그릇된 여정에 새로 태어난 아이들이 물드는 것을 막고 싶었던 것도 있었으니까. 자신이 제우스에게 하고 있는 일을, 제우스가 자신의 자식들에게 들이밀지 않았으면 했으니까.

그렇게 20년, 아테네에서 제우스가 새로 만났다는 여인이 다른 누구도 아닌 20년 전 올림포스를 떠났던 자신의 친동생이라는 걸 눈치챘을 때. 운명의 수레바퀴가 그 누구의 의도와도 상관없이 맞물려나가기 시작했을 때, 크로노스는 비로소 때가 왔음을 직감했고 우리들을 마지막 시험대에 올려놓았던 것이다.

그 시험의 끝에, 제우스가 기대왔던 사람들에게 무너진 끝에 이 어리석고 우둔한 인간은 아마도 그 결과에 만족하며 쓸쓸하게 눈을 감았겠지.

이것이 내가 본 이 일의 전말이다.


***


“바보 같은 사람이예요. 그 사람이 한 짓은 어떻게 생각해 보아도 이해할 수 없어요. 일의 선후관계를 이해할 수 없다는 게 아니라 나라면 절대 그런 짓들은 안 했을 거라는······.”

“내가 모자랐던 탓이란다.”

어머니는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그냥, 다 지난 일이니까요. 그냥 잊고 살아가도 괜찮지 않을까요? 제 생각엔 그래도 좋을 것 같은데.”

“네가 그렇다면 그러자꾸나. 이제 어떻게 지낼 거니?”

“글쎄요? 임무 때 아테네에서 지냈던 것처럼, 사람들이랑 어울리다가 놀고 마시고 떠들고 춤추고······.”

문득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그런 걸 제가 주도해서 하면 재밌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렇게 말하는 내 표정에서 무언가를 읽기라도 한 것인지 어머니는 만족스럽다는 듯 미소지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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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 63화. 바벨 006. 마인의 행방 24.09.09 4 0 14쪽
63 62화. 바벨 005. 정산(2) 24.09.06 7 0 12쪽
62 61화. 바벨 005. 정산(1) 24.09.02 6 0 13쪽
61 60화. 바벨 004. 시련(4) 24.08.30 13 0 12쪽
60 59화. 바벨 004. 시련(3) 24.08.26 10 0 13쪽
59 58화. 바벨 004. 시련(2) 24.08.23 11 0 16쪽
58 57화. 바벨 004. 시련(1) 24.08.19 8 0 13쪽
57 56화. 바벨 003. 잠입 준비(3) 24.08.16 11 0 15쪽
56 55화. 바벨 003. 잠입 준비(2) 24.08.12 11 0 12쪽
55 54화. 바벨 003. 잠입 준비(1) 24.08.09 11 0 12쪽
54 53화. 바벨 002. 그 날의 기억 24.08.05 11 0 12쪽
53 52화. 바벨 001. 폭풍의 전조(3) 24.08.02 11 0 12쪽
52 51화. 바벨 001. 폭풍의 전조(2) 24.07.30 11 0 11쪽
51 50화. 바벨 001. 폭풍의 전조(1) 24.07.25 11 0 12쪽
50 49화. 2부 프롤로그(4) 24.07.22 13 0 13쪽
49 48화. 2부 프롤로그(3) 24.07.19 10 0 12쪽
48 47화. 2부 프롤로그(2) 24.07.15 11 0 12쪽
47 46화. 2부 프롤로그(1) 24.07.12 10 0 12쪽
46 45화. 2부 프롤로그(0) + 짧은 공지 24.07.08 13 0 15쪽
45 44화. 1부 마지막화 24.07.06 11 0 11쪽
» 43화. 1부 에필로그 (3) 24.07.04 12 0 12쪽
43 42화. 1부 에필로그 (2) 24.07.03 14 0 15쪽
42 41화. 1부 에필로그 (1) 24.07.02 11 0 13쪽
41 40화. 올림포스 015. 최종장 마지막(투지) 24.07.01 13 0 14쪽
40 39화. 올림포스 015. 최종장 일곱째(최종 국면) 24.06.28 12 0 15쪽
39 38화. 올림포스 015. 최종장 여섯째(역습의 전조) 24.06.27 11 0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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