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를 지워버리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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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ra96
작품등록일 :
2024.05.10 2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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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09 2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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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09 2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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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화. 바벨 003. 잠입 준비(1)

DUMMY

나는 그렇게 그 날의 이야기를 마쳤다. 기분 탓인지, 내 이야기를 끝까지 들은 가브 언니의 낯빛에 조금 화색이 도는 것만 같았다. 아무래도 그게 내 기분 탓이 아니었다는 듯, 가브리엘은 생기가 감도는 말투로 단언했다.

“네 말대로야. 아니, 오히려 네 말 이상이야. 네가 루시퍼를 막아낼 수 있는 수단을 가지고 있다면 우리에겐 확실한 승기가 있어, 아피.”

“정말?!”

“응, 너는 우리들뿐만 아니라 네 목숨줄까지 루시퍼에게 잡혀 있기 때문에 이 일이 어려울 거라 생각한 것이겠지만 사실 그 일은 네 생각만큼 그렇게까지 치명적인 문제가 아니야.”

“방법이라도 있다는 말이야?”

“간단한 이치야. 들키지만 않으면 아무런 상관이 없어. 완전한 기습, 그걸 성공시킬 수만 있다면 루시퍼는 네가 이 일에 개입할 것이란 인식조차 갖지도 못하고 네게 당해줄 테니까.”

당장 내가 떠올리지 못했던 맹점이었다. 순식간에 그 말을 납득한 나는 나도 모르게 손뼉을 쳤다.

“정말이네, 왜 그 생각을 못 했지?”

“물론 기습을 성공시키려면 모아야 할 정보들이 많아.”

“확실히, 루시퍼의 동향이라던지, 그런 정보들이 없으면 계획을 세우지도 못할 테니. 언니라면 잘 알지 않아?”

“아쉽지만 지금 내게 우르크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수 있는 방법은 별로 없어 격무에 시달리느라 지방을 돌기 바빴으니까. 그래도 걱정하지 마. 이건 내가 어떻게든 해 볼테니.”

“그럼 제법 고된 일일 텐데, 혼자서 괜찮겠어?”

“정보를 모을 시간은 충분히 만들 수 있어. 상황을 눈치채기 전엔 임무에만 충실하느라 그럴 여유가 없었지만, 상황을 눈치챈 지금은 오히려 그 ‘임무’가 비교적 나를 자유롭게 만들어주고 있으니까. 우리들, 감시당하고 있는 건 아니거든.”

확실히, 가브 언니가 날 찾아왔다는 건, 행동의 제약이 없다는 걸 의미한다.

”지금 이렇게 널 찾아온 게 그 증거잖니? 루시퍼도 ‘정도’라는 걸 알았던 거겠지.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을 조종하는 일 외에 천사들을 감시하는 사람들마저 조종했다간 우리들 중 어느 누군가가 감시를 눈치챈 순간 일이 이상하게 돌아간다는 걸 눈치챌 여지가 생기니까.”

확실히, 루시퍼는 이 짓을 4년 가까이나 해왔던 것이다. 루시퍼가 감시를 붙였다면 다른 천사들이라면 몰라도 가브 언니는 무조건 눈치채고도 충분했을 기간이다.

”그걸 뒤늦게라도 눈치챘으니 다행이야. 오히려 그 덕에 이쪽에선 그걸 이용해 임무를 핑계로 출장을 나간 척 다른 일에 시간을 할애할 수 있게 되었어.”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가브 언니는 이야기를 이었다.

“물론, 임무 자체도 해결하지 않으면 의심을 살 게 뻔하니 실질적으로 벌 수 있는 시간은 한정되어 있겠지만 내게는 그거면 충분해. 우리들 중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이야. 우리엘이나 미카엘에겐 아직 이 정도 역량은 없으니까.”

“실수했다간 라파엘처럼······.”

“맞아.”

“조심해야 해. 시간, 조금 걸러도 괜찮으니까 위험한 영역엔 들어가지 않았으면 좋겠어.”

내가 그렇게 걱정했지만 가브리엘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러고 있을 여유가 없어. 아마도 시간이 별로 없으니까.”

“시간이 별로 없다니?”

“우리들의 쓸모가 얼마 남지 않은 게 아닐까 한 거야.”

“쓸모?”

“만약 루시퍼가 이런 귀찮은 방법을 쓰지 않고, 성녀님을 지배한 시점에 성녀님에게 명령해서 우리 천사들을 몰살시켰다면 어떻게 되었을 거라 생각해?”

“그게 무슨······.”

당장에 떠오르지 않는다. 아마 가브 언니가 뭘 말하고 싶은 건지 모르겠어서 그런 게 분명하다.

“천사들이 한 번에 자취를 감추면 나라가 혼란스러워질 수밖에 없어.”

“맞아···!”

너무나도 간단한 사실이다. 그리고 그 사실이 가져오는 의미, 그러니까 가브리엘이 말하고자 하는 건······.

“이브를 지배함으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혼란, 천사들이 없으면 그 혼란을 절대 수습할 수 없다는 거구나.”

“맞아. 루시퍼가 우리들을 살려둔 건, 성녀님을 이용해 ‘탑’을 올리는 동안 나라가 무너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 그럼에도 라파엘을 죽였다는 건, 우리들의 역할이 필수적이라는 건 아닌 것. 수 틀렸을 때 엎어도 상관없는······. 루시퍼에게 우리들은 그런 존재라는 거야. 우리들이 언제까지고 나라를 유지하게 할 생각은 없다는 거야.”

“지금은 필요하지만 앞으로는 필요 없다······.”

“그래, 이건 내 직감이지만 성녀님이 탑을 완성하는 순간, 그 순간이 마지막이야. 그 때가 되면 루시퍼는 목적을 달성해. 성녀님이 탑을 올리는 동안 우리들이 나라를 유지하게 한다는 계획이 성공되는 순간이 된다는 거야. 그러고 나면 아마 이제 우리들은 필요 없어지겠지. 아피, 네가 루시퍼라면 어떻게 할 것 같아?”

깊게 고민할 것도 없었다.

“모두······. 죽여버리지 않을까······?”

“맞아. 내가 루시퍼라도 그랬을 거야. 우리들의 이용 가치가 사라져버린 순간에, 우리들은 루시퍼에게 장애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게 될 테니까.”

사실상 사형선고. 지금 그 집행일을 기다리는 형국.

“이브가 탑을 완성하는 데까지 얼마나 남은 거야?”

가브리엘은 분명 시간이 많지 않다고 했다.

“이 페이스대로라면, 한달 내로는 완성될 거야.”

“고작 한 달?!”

이건 좀 큰데?

심란해진 머릿속, 나는 인상을 쓰며 이마를 짚었다. 한 달, 어쩌면 더 빠를 수도 있다. 그 안에 가브 언니가 정보를 모아올 수 있을 지는 내가 걱정할 게 아니다. 이런 상황을 누구보다도 잘 인지하고 있는 가브 언니 스스로 저렇게까지 말하는 거다. 자신이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나. 내가 도대체 뭘 해야 할지 당장에 떠오르지가 않는다.

이럴 때 ‘그 여자’가 있었다면 좀 편했을텐데.

아니, 아쉬워하고 있을 때가 아니야. 분명 그 여자의 능력이 뛰어난 건 사실이지만 지금 내 앞에 있는 사람이 그 여자에게 꿇린다는 생각은 절대 안 들어.

“언니.”

“응?”

“내가 어떻게 하면 좋을지 알려줬으면 해. 내가 지금부터 뭘 준비해야, 언니랑 발을 맞출 수 있을까?”

내 질문에 가브리엘은 대답을 고르는 듯 눈을 잠시간 감고 생각에 집중했다. 잠시간 생각한 뒤 결심이라도 한 듯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내가 없더라도 에데니아에 잠입하는 건 할 수 있겠어?”

“그건 걱정 마. 내 권능을 활용하면 충분히 가능해.”

“그럼 아피, 3주 뒤에 우르크 북쪽, 투샤 마을에서 만나자. 루시퍼와 메타트론, 둘의 이목을 끌고 둘을 상대할 수 있을 만한 사람들과 함께 와줘.”

“알았어. 그럼 이브 쪽은?”

“그 쪽은 우리 천사들이 맡을게. 걱정 마. 내 생각이 맞다면 분명 안전하니까.”

“내 쪽에서 준비한 사람들로 루시퍼의 주의를 끌고, 천사들이 합심해 이브의 발을 묶은 뒤 내가 루시퍼의 허를 찌른다는 작전인 거네.”

“대충 그런 느낌이지.”

확실히, 천사들이 직접 루시퍼를 상대할 수 없는 이상 이것이 가장 타당한 인선이다. 그럼 가브 언니의 말대로 루시퍼의 주의를 끌 전투원들을 내가 구해서 가야한다는 것인데······. 당장 떠오른 얼굴은 제우스. 솔직히 제우스에게 이 일을 부탁해도 될지 나는 잘 모르겠다.

제우스에게 이 일을 이야기한다면 제우스는 분명 에덴으로 가는 걸 망설이지 않을 것이다. 전력으로도 뛰어나다. 아군을 신경써야 하지 않아도 되는 전장이라면, 제우스의 역량이 십분 발휘될 수 있다는 건 이미 제우스의 권능을 수확한 크로노스의 권능 활용을 통해 보았던 바가 있다.

다만 문제는, 만의 하나의 경우. 일이 잘 풀리지 않았을 때의 경우. 만약 가브리엘의 쪽에서 변수가 발생해 이브가 루시퍼와 합류한다던가 하는 일이 생기면, 벼락의 상성인 ‘우리엘의 금속’ 그 자체를 창조할 수 있는 이브는 제우스를 상대할 수 있다. 아니 분명 그 뿐만이 아니야. 이브가 마음만 먹으면 제우스 정도는 손바닥 위에서 가지고 놀듯이 굴릴 수 있을 것 같다는 예감이 들어.

올림포스의 아이들이 성장하지 않은 지금, 제우스는 올림포스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그를, 큰 위험이 도사리는 전장으로 이끄는 것이 과연 맞는 판단일까?

지금 결정할 수가 없다. 아무래도 오랜만에, 올림포스에 돌아가봐야 할 것만 같다.

애초에 내 인맥에 떠오르는 전투원은 얼마 있지도 않다. 그날, 크로노스와의 일전을 함께 치렀던 면면들. 내가 데려갈 수 있는 사람들은 애초에 이 사람들 밖에 없다. 올림포스의 제우스, 크레타 섬의 헬리오스, 거처를 아는 두 사람, 천사인 우리엘은 제외하고 나머지 한 명.

“언니.”

“응?”

“혹시, ‘네메시스’라는 여자를 알고 있어?”

그래, 네메시스, 그 여자다. 어느날 홀연히 내 앞에 나타나서 에덴이 돌아가는 꼴이 심상치가 않다는 말만 던지고 사라진 그 여자. 도대체 어디서 뭘 하고 있는지 짐작조차 가지가 않는 그 여자다.

“네메시스라면, 우리엘에게 들었던······.”

“그래, 그 날, 우리들을 도왔던 어둠의 권능을 가진 여자야. 이브 에데니아의 비밀 친구 같은 인간이지. 에덴의 동향이 수상하다는 정보를 내게 처음 가져왔었던 것도 그 여자야. 그 여자만 찾을 수 있다면, 일이 훨씬 수월해질 것 같은데.”

“꽤나 그 사람을 의지하고 있나 보구나?”

“의지? 그런 건 아니야.”

별로 그 여자랑 그렇게까지 친한 건 아니다.

“그냥 그 여자가 강하다는 걸 알 뿐이지.”

내가 그렇게 말하자 가브리엘은 가볍게 웃었다. 그 모습이 뭔가 그리 달갑지는 않았다.

“뭐, 왜?!”

“아니야.”

“아무튼, 그 여자의 행방을 모르는 이상 조력을 기대하긴 어렵다고 생각하니 조금 아쉬울 뿐이지 뭐.”

가만, 근데 꼭 그럴까?

애초에 내게 에덴의 동향을 알려준 게 그 여자다. 그 여자는 적어도 그 때까지 계속해서 에덴을 살펴봤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랬던 여자가, 자신의 눈으로 에덴에 심상치 않은 일이 일어났다는 걸 판단해서 나와 제우스에게 언질까지 했던 그 여자가, 과연 가브 언니가 내게 찾아올 정도로 극한까지 몰릴 이 상황에, 아무것도 안 하고 있을까?

“표정이 변했네? 생각의 변화라도 생겼나 봐?”

“응, 아마 걱정 안 해도 될 것 같아. 그 여자라면 이미 사건의 중심에 있을지도 모르니까.”

구태여 찾아다닐 필요가 없다.

“아마 자연스레 만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어.”

내가 그 말을 했을 때였다. 돌연 응접실 문이 쾅하고 열렸다. 문을 열은 건 다름아닌 헤라클레스, 문 밖에서 우리의 대화를 엿듣기라도 한 것인지 헤라클레스는 조금 놀란 듯, 한편으로는 뭔가를 결심한 듯, 복잡오묘한 심경이 그대로 드러나보이는 표정을 보여주고 있었다.

“아프로디테 님! 저도···! 저도 데려가 주세요!”

아, 이럴까봐 저 아이를 내보냈던 것이었는데, 내가 저 아이를 잘 몰랐구나. 아니, 알았어야만 했는데, 어머니를 찾겠다며 주신의 자리를 거절했던 저 아이가, 마냥 말 잘 듣는 그런 아이가 아니라는 걸 진작 알았어야 했는데.

“부탁이예요···!”

간절한 눈빛으로 어머니를 만나고 싶다고 애원하는 저 아이의 눈을 똑바로 마주하던 나는 관자놀이에 양 손을 얹고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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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 63화. 바벨 006. 마인의 행방 24.09.09 4 0 14쪽
63 62화. 바벨 005. 정산(2) 24.09.06 8 0 12쪽
62 61화. 바벨 005. 정산(1) 24.09.02 7 0 13쪽
61 60화. 바벨 004. 시련(4) 24.08.30 13 0 12쪽
60 59화. 바벨 004. 시련(3) 24.08.26 10 0 13쪽
59 58화. 바벨 004. 시련(2) 24.08.23 12 0 16쪽
58 57화. 바벨 004. 시련(1) 24.08.19 8 0 13쪽
57 56화. 바벨 003. 잠입 준비(3) 24.08.16 12 0 15쪽
56 55화. 바벨 003. 잠입 준비(2) 24.08.12 11 0 12쪽
» 54화. 바벨 003. 잠입 준비(1) 24.08.09 12 0 12쪽
54 53화. 바벨 002. 그 날의 기억 24.08.05 11 0 12쪽
53 52화. 바벨 001. 폭풍의 전조(3) 24.08.02 11 0 12쪽
52 51화. 바벨 001. 폭풍의 전조(2) 24.07.30 12 0 11쪽
51 50화. 바벨 001. 폭풍의 전조(1) 24.07.25 12 0 12쪽
50 49화. 2부 프롤로그(4) 24.07.22 14 0 13쪽
49 48화. 2부 프롤로그(3) 24.07.19 10 0 12쪽
48 47화. 2부 프롤로그(2) 24.07.15 11 0 12쪽
47 46화. 2부 프롤로그(1) 24.07.12 11 0 12쪽
46 45화. 2부 프롤로그(0) + 짧은 공지 24.07.08 14 0 15쪽
45 44화. 1부 마지막화 24.07.06 12 0 11쪽
44 43화. 1부 에필로그 (3) 24.07.04 12 0 12쪽
43 42화. 1부 에필로그 (2) 24.07.03 14 0 15쪽
42 41화. 1부 에필로그 (1) 24.07.02 12 0 13쪽
41 40화. 올림포스 015. 최종장 마지막(투지) 24.07.01 13 0 14쪽
40 39화. 올림포스 015. 최종장 일곱째(최종 국면) 24.06.28 12 0 15쪽
39 38화. 올림포스 015. 최종장 여섯째(역습의 전조) 24.06.27 11 0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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