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를 지워버리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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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ra96
작품등록일 :
2024.05.10 22:49
최근연재일 :
2024.09.09 2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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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1,8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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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2 2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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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55화. 바벨 003. 잠입 준비(2)

DUMMY

“미안하지만 그럴 수 없어.”

나는 헤라클레스의 부탁을 들어줄 수 없었다. 저 아이는 아직 권능조차 각성하지 못한 경험도 없는 그저 ‘아이’일 뿐이기 때문이다. 제 아무리 일손이 모자라다고 해도, 그런 아이를 끌어들일 순 없다. 위험천만하고, 도움도 안 된다.

그런 내 말을 들은 헤라클레스의 충격받은 얼굴은 내게 꽤나 아프게 다가왔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나는 저 아이에게 꽤나 정들었었던 모양이다.


***


아테네에서 출발해 마차를 갈아타며 올림포스를 향한지 이틀차, 헤라클레스의 입에서 자신을 데려가 달라는 말이 나온지도 이틀차. 이틀이나 지났음에도, 올림포스를 향한 여정 동안 계속 붙어 다녔음에도, 나와 저 아이 사이엔 어색함의 벽이 자리잡고 있었다. 뭐랄까, 다른 사람 같았으면 능청스레 넘겨보려고 여럿 시도를 했었을텐데, 저 아이를 데려갈 수 없다는 판단을 내린 게 저 아이에게 왠지 모르게 미안했기 때문에 내 쪽에서 뭔가를 못 했던 것 같다.

기죽은 저 아이가 먼저 다가올 리 역시 만무했고 이상한 교착 상태가 지금까지 이어져왔다.

“평소에 운동 좀 해둘 걸!”

그리고 지금 나는 산속을 헤매고 있다. 아니, 헤매고 있지는 않다. 내 앞에서 뛰고 있는 길잡이가 있으니 길을 헤맬 리 없다. 하지만 그 길잡이를 따르는 내 심정은 산속을 헤매는 심정과 다르지 않았다. 길잡이를 따라가는 게 체력적으로 벅찼기 때문이다.

길잡이는 헤라클레스, 나는 지금 밤중의 산속에서 숨을 헐떡이며 헤라클레스를 쫓고 있다.

‘저 아이는 전력이 될 수 없다.’ 가, 내 생각이었다만, 저 아이를 길잡이 삼아 올림포스 산기슭을 타고 오르기 시작한지 두시간째, 해가 져버려 어두컴컴한 산길에 달빛을 이정표 삼아 쉼없이 돌파하고 있는 지금, 나는 그 생각을 철회해야만 하나 진심으로 고민하고 있었다.

쟤, 왜 이렇게 잘 달린다냐? 정말로 각성하지 못한 게 맞아? 해질 무렵인 걸 개의치 않고 산을 오르려고 하는 모습이 너무나도 자연스러웠기에 말리지 않았던 것인데, 여차해서 야영하게 될 경우 내가 밤새 망을 봐 줄 생각으로 오르긴 한 건데, 뭔가 저 아이에게 미안한 감정이 있었기에 저 아이가 다른 일을 하려는 걸 막고 싶지 않았던 마음이 커서 그런 건데.

그런 내 걱정이 괜한 걱정이었다는 걸 증명하듯, 밤 등산을 하는 것에 거리낌이 없어 보이는 태도가 왜 나왔는지를 몸소 보여주듯, 헤라클레스는 거침없이 산길을 달려나갔다. 제대로 길도 나지 않은 산 속을 햇빛도 없이 두시간째 쉼없이 달렸다. 심지어 지금도 달린다. 내가 뒤쳐지지 않는지 간간히 뒤돌아 확인하면서 달린다. 헤라클레스의 이 템포는 도저히 비각성자라고 여길 수 없을 정도였다.

결국 슬슬 벅차다고 느낀 내가 다리를 멈추고 거칠게 숨을 몰아쉬고 있자 헤라클레스는 그럴 나를 보고 멈춰선 뒤 내게 외쳤다.

“괜찮아요?! 이 근처에 가끔 ‘마수’들이 나와서 빨리 가야만 해요!”

‘마수’라고?

“헐?!”

에덴에 있었던 시절, 우리엘이 ‘마수’토벌 임무를 몇번 갔었다는 건 들었는데, 실제로 본적은 없다.

“그거 정말 있는 거였어?!”

“몇번 본 적 있어요! 산 중턱에 사는 놈들은 야생동물이랑 별 다른 차이가 없어보이긴 한데, 이미 깊게 들어와버렸으니까요! 이쯤 사는 놈들은 제법 사나워요!”

“그런 게 있었으면 빨리 좀 말해줄래?!”

아오 힘들어.

투덜거리며 헥헥거리고 있을 때였다. 내 거친 숨소리 사이에 섞여들어오는 이질적인 소리, 무언가가 빠르게 수풀을 헤치는 소리. 내 우측이다. 반사적으로 고개를 틀었을 때, 웬 덩치 큰 늑대 한마리가 날 향해 쇄도하고 있는 걸 볼 수 있었다. 늑대의 이마에 난 거대한 뿔, 아, 저게 마수구나 싶었다.

“위험해요!”

생각도 못한 상황. 날 향해 달려오는 늑대는 순식간에 거리를 좁혀 내 목덜미를 향해 아가리를 들이밀려 했다. 반사적으로 팔꿈치를 들어올리긴 했다만 늑대의 공격을 막을 수 있는 건 아니다. 이건 물리겠다 싶었을 때, 둔탁한 소리가 울려 퍼지며 몇 방울의 피가 내 얼굴에 튀겼을 때, 내 눈앞에 있던 것은 늑대의 아가리가 아니라 헤라클레스의 뒷모습이었다.

“헤라클레스···!”

나는 헤라클레스를 살폈다. 그의 무릎 부근에 붉은 액체가 보였다. 조금 멀리, 헤라클레스에게 치여 굴러 떨어진 마수가 보인다. 뿔 달린 늑대의 얼굴 한쪽이 심하게 뭉개진 것만 같다. 함몰된 안구에서 붉은 피를 주룩주룩 흘리던 늑대는 한차례 이를 갈다가 고개를 쳐든다.

“아우우우우우!!”

늑대의 울음소리를 들은 헤라클레스가 뒤돌아 말했다.

“도망가죠!”

헤라클레스는 내 대답은 기다리지 않고서 내게 등을 내밀었다. 업히라는 건가 싶어 업히니 헤라클레스는 그대로 달려나가기 시작했다. 달리는 헤라클레스의 등에 업혀 있으니 알 것 같았다. 이 녀석, 아까까지 전력으로 뛴 게 아니었구나.


***


밤중의 산 속을 제 집 앞마당인 것처럼 누비던 헤라클레스는 조금 달리더니 여유가 생겼는지 아까 그 늑대에 대한 이야기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물론 달리면서.

“저 뿔 달린 늑대들은 잘못 상대하면 무리를 부르기 때문에 제법 성가셔요.”

“이 산 속엔 저런 게 산다는 거야? 저런 거랑 같이 산다고 생각하면 좀 어지러운데?”

갑작스레 다른 아이들의 안부가 걱정되기 시작한다.

“걱정 마세요. 아버지가 서열정리를 확실하게 해 놓아서 거처 주변으론 오지 않으니까요.”

“마수의 영역 한가운데에 안전지대를 만들었다라. 이거야 뭐, 평범한 사람들은 접근할 수조차 없겠구나.”

“저희들도 나갈 때, 가끔 식겁하고 그래요. 마주치면 진심으로 싸우거나 도망쳐야 하니까, 어린 애들은 숲 속을 돌아다니지 말라고 당부하는 편이죠.”

“저런 게 다른 산이나 마을로 내려간다면 피해가 생길 만도 한데.”

“희한하게도 이 산 바깥으로는 안 나가는 놈들이라 괜찮아요.”

“영문 모를 놈들이네.”

“저희는 뭐, 대충 이 산의 주민쯤으로 생각하고 있어요.”

“그러니?”

사실 마수들도 영문 모를 놈들이긴 하지만, 제일 영문 모를 놈은 날 업고 있는 이 놈이다.

“근데 너, 분명 각성하지 못했다고 하지 않았어?”

“네. 확실히, 지금도 ‘권능’이라 칭할 능력을 쓸 수 있다는 자각이 없어요. 다른 모두들, 각성한 순간에 ‘권능’을 사용할 수 있다는 자각이 생겼다는데, 그러지 못했다는 건 역시 아닌 거겠죠.”

“어쩌면 아닐지도 몰라. 너의 이 체력, 운동능력, 마수에게 순식간에 치명상을 입힐 정도의 육체와 근력, 그건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일반인의 그게 아니야.”

“그런가요? 그렇다는 느낌은 없었는데, 아버지도 그렇고 아폴론이나, 헤스티아 누님도 이 정도는 하는 것 같으니까요. 저도 운동 하나는 열심히 했으니 이 정도는 할 수 있어요.”

“그 사람들이 평범한 사람들이니? 그건 운동으로 비빌 수 있는 영역이 아니야.”

“아.”

내 이야기에서 뭔가를 깨달은 듯한 헤라클레스는 희망이라도 본 걸까, 내 말에 살짝 격양된 톤으로 질문해왔다.

“그렇다면! 제가 혹시 ‘각성’한 거라면! 저를 데려가주실 수 있는 거예요?”

다만, 그 질문엔 역시 신중해야만 할 필요가 있다. 이 아이의 힘이 정확히 뭔지 모르겠으니 그렇다. 이 아이가 정말로 ‘권능’을 각성해, 그에 걸맞은 힘을 지녔는지, 아니면 남들보다 체력이 좀 많이 좋을 뿐인 그런 아이인지. 그걸 알 수 없다면 이 아이를 데려갈지 정할 수 없다. 아마도 이 앞은, 단지 체력이 좀 많이 좋은 것 만으로는 생사를 장담하기 힘들 여정이 될 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안 된다.’는 생각은 이제 버려야만 하겠지.

“조금, 시험해보고 정하기로 하자.”

내 대답이 마음에 든 것인지 헤라클레스는 기운차게 대답했다.

“네!”

뭔가 한 숨 돌리는 기분이 들어 몸에 힘을 뺀 나는 헤라클레스의 등에 온 몸을 맡긴 채 이 아이가 뛰는 것을 멈추는 것만을 기다렸다. 그저 피곤함이 몰려왔다. 내 발로 걷지 않으니까 긴장이 풀리기라도 한 걸까? 엽혀있는 채 달리고 있는 상황이 도저히 쉴 수 있는 환경은 아니었지만 이 등에 업혀있는 게 묘하게 안정감을 줘, 헤라클레스의 등에 몸을 맡긴 나는 생각을 비우고 눈을 감았다.


***


“도착했어요!”

그 말에 눈을 뜬 나는 정면을 바라보았다. 크지도 작지도 않은 오두막 세 채가 보인다. 내가 알고 있던 올림포스 거처의 모습 그대로였다. 그런데, 그건 그거고. 아래쪽에서 뭔가 시선이 느껴지는 것만 같아 나는 고개를 내렸다. 그 곳엔 많아야 4살 정도로 되어보이는 아이 하나가 한 손에 고기를 쥔 채 나와 헤라클레스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어···! 아테나!”

나와 헤라클레스를 번갈아 보던 아이, 아테나는 아테나를 발견한 헤라클레스가 아이에게 인사하려던 찰나 뭔가 충격이라도 받은 듯 입을 벌리고는 손에 쥔 고기를 흘리고 있는지도 모른 채 정신없이 뒤돌아 오두막을 향해 뛰며 외쳤다.

“아빠! 아빠!! 형이! 헤라클레스 형이 결혼했어!!”

“야! 아니야!”

애처롭게 뻗어진 헤라클레스의 팔은 뛰어가는 아이에게 닿지 못했고 여전히 날 업은 채 그대로 굳어버린 헤라클레스. 나는 그 광경에 크게 터져버리고 말았다.

“하하하하하! 아하하하하하하! 아하하하!”

뭔가 날 업고 있던 헤라클레스의 힘이 쭉 빠진 게 느껴진다. 나는 헤라클레스의 어깨를 두드리고 웃음을 대충 참으며 말했다.

“하하하······. 이제 내려줘도 괜찮아.”

“네······.”

“남동생?”

4년 전, 크로노스와의 일전을 마치고 한번 왔을 땐 못 봤던 아이다. 저 아이의 나이대를 생각해보면 그 때는 태어나지도 않았거나 갓난아기이거나 둘 중 하나였겠지. 정말이지 제우스의 번식력 하나는 알아줘야 한다.

“여동생이예요. 자기가 남자인 줄 알고 있어요.”

“정말? 전혀 몰랐네. 뭔가, 위화감이 없었어.”

“머리가 짧아서 그런 거 아니예요? 잘 보면 귀엽다고요?”

그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아테나가 뛰어갔던 집에서 덩치 큰 어른이 나오는 게 보였다. 그 어른은 아이의 손에 끌려나온 듯 나와서는 나와 헤라클레스를 보았다.

우릴 본 남자는 아무래도 나를 알아본 것 같다. 나도 그 남자를 보자마자 그가 누군지 알아볼 수 있었다. 저 덩치에 지저분한 사자갈기같은 갈색머리를 한 남자는 내가 알고 있는 한 한 명밖에 없다.

제우스를 끌고 나온 아테나는 손가락으로 우리를 가리키며 제우스에게 외치고 있었다.

“봐봐! 아빠! 형 결혼했다니까?!”

날 본 제우스는 놀란 심정을 숨기지 못했다. 그 모습을 보니 뭔가 맥이 빠져버린 나는 가볍게 미소지으며 이야기했다.

“오랜만이네? 어머니 장례식 이후로 처음인가?”

“그러게, 설마 헤라클레스가 데려왔다는 여자가 너였을 줄이야.”

나와 제우스의 인사를 듣던 아테나는 이게 의외라고 느낀 건지 제우스의 옷깃을 붙잡고 조심스레 물어왔다.

“누나, 형아랑 결혼하는 거 아니야?”

그 말에 대답해 준 건 헤라클레스였다.

“아니야, 아테나. 이 분은 그러니까······.”

이야기를 이으려던 헤라클레스의 뒤에서 나는 자그마하게 속삭였다.

“할머니라고 말하면 죽인다.”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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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 63화. 바벨 006. 마인의 행방 24.09.09 4 0 14쪽
63 62화. 바벨 005. 정산(2) 24.09.06 8 0 12쪽
62 61화. 바벨 005. 정산(1) 24.09.02 7 0 13쪽
61 60화. 바벨 004. 시련(4) 24.08.30 13 0 12쪽
60 59화. 바벨 004. 시련(3) 24.08.26 10 0 13쪽
59 58화. 바벨 004. 시련(2) 24.08.23 12 0 16쪽
58 57화. 바벨 004. 시련(1) 24.08.19 9 0 13쪽
57 56화. 바벨 003. 잠입 준비(3) 24.08.16 12 0 15쪽
» 55화. 바벨 003. 잠입 준비(2) 24.08.12 12 0 12쪽
55 54화. 바벨 003. 잠입 준비(1) 24.08.09 12 0 12쪽
54 53화. 바벨 002. 그 날의 기억 24.08.05 11 0 12쪽
53 52화. 바벨 001. 폭풍의 전조(3) 24.08.02 11 0 12쪽
52 51화. 바벨 001. 폭풍의 전조(2) 24.07.30 12 0 11쪽
51 50화. 바벨 001. 폭풍의 전조(1) 24.07.25 12 0 12쪽
50 49화. 2부 프롤로그(4) 24.07.22 14 0 13쪽
49 48화. 2부 프롤로그(3) 24.07.19 10 0 12쪽
48 47화. 2부 프롤로그(2) 24.07.15 11 0 12쪽
47 46화. 2부 프롤로그(1) 24.07.12 11 0 12쪽
46 45화. 2부 프롤로그(0) + 짧은 공지 24.07.08 14 0 15쪽
45 44화. 1부 마지막화 24.07.06 12 0 11쪽
44 43화. 1부 에필로그 (3) 24.07.04 12 0 12쪽
43 42화. 1부 에필로그 (2) 24.07.03 14 0 15쪽
42 41화. 1부 에필로그 (1) 24.07.02 12 0 13쪽
41 40화. 올림포스 015. 최종장 마지막(투지) 24.07.01 13 0 14쪽
40 39화. 올림포스 015. 최종장 일곱째(최종 국면) 24.06.28 12 0 15쪽
39 38화. 올림포스 015. 최종장 여섯째(역습의 전조) 24.06.27 11 0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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